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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하다 케이스케 지음, 고정아 옮김 / 베가북스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내안에 꾹꾹 눌러왔던 억제된 감정들이 더 이상 담을 수 없는 포화 상태가 될 때면 나는 쌓인 감정들을 떨쳐 버리기 위해 여행을 떠나거나, 그것 마저도 여의치 안으면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린다. 달리다보면 속상한 일도 화나는 일도 미움도 떨쳐버리게 된다. 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가고 응어리진 감정까지 땀과 함께 배출될 때면 후련한 기분이 들고 새로운 힘이 생긴다. '달려라 하늬'란 만화를 즐겨봤던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다. 하늬가 달릴 때만큼은 엄마가 못견디게 보고플때면 그녀도 달리고 또 달린다. 오늘도 내일도...
이책의 제목이 '달려라'이기에 무조건 읽고 싶었다. 그리고 성장 소설이기에.
이웃에 사는 형이 자기에게는 더 이상 필요 없다며 건내준 이탈리아제 경주용 자전거 ‘비양키’를 집안 어딘가에서 우연히 찾아낸 고등학생 혼다, 로드레이서라 불리우는 이 날렵한 자전거에 올라타는 순간 그는 질주의 본능을 온몸으로 느끼며 매일의 똑같은 반복적인 삶과는 다른 기분에 휩싸여 무작정 가출하게 된다. 학업과 훈련에 억눌린 일상생활 속에 묻혀있던 일탈의 본능이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패달을 밟아 그렇게 그를 달리도록 부추켰나 보다. 달릴 때의 흥분은 육체적 피로를 너머 머릿속의 피를 격하게 돌게 하고 가슴은 뜨겁게 반응한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 싫어 학교와 반대 방향으로 달리게 되고, 딱히 정해 놓은 목표나 목적지도 없이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달린다. 늘 보아왔던 거리도 신선하게 다가오고 달리면서 또 어떤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될지 기대하며, 고층 빌딩에 둘러쌓인 도시와 골목길을 지나고 시골 길을 가로 지르며 바다를 끼고 해안도로를 달리는 그를 빗방울도 어둠도 태풍조차도 막을 수 없다. 한편의 그림처럼 스쳐지나가는 풍광들 너머 자유, 해방감, 완전히 혼자라는 고독 그리고 느껴지는 속도감.
'도심을 향하는 상행선 전철이나 수많은 자동차들과는 정바대로 나는 달린다. 아침부터 세상의 흐름과 반대로 움직이다니, 매우 자극적 이었다. 학교에서 점점 더 멀어져 간다. 폐달을 한 번 회전시킬 때마다 왠지 흥분이 되었다. 평일 오전, 수업을 빼먹엇다는 죄책감이 짜릿한 스리람을 가져다주었다.'
- 본문중-
평범한 십대 청소년의 내면을 유리를 통해 들여다 보듯 투명하고 섬세한 심리 묘사가 이 글에 자석처럼 끌리게 한다. 수줍은 대화나 보고싶단 말이 휴대전화로 주고받는 문자메시지나 이모티콘이 대신하지만 그래도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황순원의 소나기처럼 주인공의 픗내나는 사랑과 방황이 곳곳에 담겨 있음에 사춘기 방황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고개를 주억거며 그를 이해 한다. 가슴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