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잠언록 - 추호의 끝보다 큰 것은 없다 태산도 작은 것이다
황천춘 외 지음, 김현식 옮김 / 보누스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고전을 읽는 즐거움에 흠뻑 취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왠만큼 벼르지 않고서야 방대한 문량의 고전을 접하기가 쉽지 않다. 곱씹어 생각하며 읽어야 옛 성현들의 말씀하신 바를 알수 있음이며 즐거움이 크지만 그로 인해 다른 일이나 생각을 할 겨를이 없어 바쁜 생활에 짬내기가 쉽지 만은 않다.
 
'장자 잠언록'은 원문에서 주옥같은 장자의 대표적인 철학 사상을 가려내 엮은 말 그대로 잠언록 이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났건만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그의 인생관과 철학은 삶의 지표가 되어 준다. 도연명이나 소동파 등 당대의 문인들 역시 그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리라. 
 
장자는 빠르게 변화하는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세상을 살아 가기 위해 고정관념이나 편협한 가치관을 버리고 유연하고 자조적인 사고 방식을 통해 변화를 추구하라고 말한다. 천지 만물이 움직이는 자연의 이치와 철학 사상, 처세 교훈과 삶의 지혜를 들려주고 고요하게 소박한 삶을 사는 방법을  해학과 우화를 통해 우리에게 이야기 한다. 또한 장자의 말씀 뒤에 서양철학의 명언을 덧붙여 놓아 읽는이로 하여금 동서양의 철학자들이 지닌 사상을 비교해 보는 즐거움과 더불어 지혜로운 교훈을 얻도록 했다. 모든 도는 한곳으로 통하는가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동서 고금의 철학이 이처럼 비슷할 수 있으랴.
 
사람들은 어째서 서로 비교하기를 좋아하고 마음과 눈에 차별이 있을까? 
차별과 제한을 두는것은 사람들의 마음이며 착각일 뿐이다. 길고 짧은것, 고저와 대소, 아름답고 추함, 옳고 그름은  비교로 인해 생기며 상대적일 뿐이다. 원래 만물은 어떤 차별도 없다. 오히려 사람들이 만든 차별에 의해 스스로 미혹되고 덫에 걸리게 된다. "사물의 이쪽면은 바로 사물의 저쪽 면이며 사물의 저쪽면 또한 사물의 이쪽 면이다"  어둠이 없다면 빛의 고마움을 알수 있을까. 행,불행과 죽음 마저 초월하여 자연의 일부로 받아 들일 수 있는 것은 욕심을 버리고 세상 모든것으로 부터 자유롭기에 가능 하리라.
 
“알지 못하겠다. 내가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인가? 나비가 꿈에서 내가 된 것인가?” 
이는 장자를 이야기할때‘물아일체’의 사상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유명한 이야기  다. 장자는 자신과 나비 사이에 근본적인 구분이 없다고 보았다. 만물은 하나이고 변화하기 때문이다. 물아의 구별이 없는 초월의 경지 속에서는 꿈도 현실도 구분이 없다. 그가 물욕과 명예를 탐하지 않고 재상의 자리 마저 거절하고 진장한 자유인으로 살수 있었던 것은 초월의 경지에 이름이며 빈마음의 상태, 편안함 곧 즐거움이다. 그리하여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장자는 도가 어디에 있냐는 물음에 도는 기왓장이나 바위, 심지어 똥오줌에도 도가 있다고 답한다. 어디에나 도가 있으니 없는곳이 있을까. 하여 비천의 구분이 없음이며 사람과 사물, 나와너, 귀하고 천함의 구별이 무의미하다. 학업의 실패나 실연, 사업의 실패, 배신이나 상처, 금전적 손실, 고립무원 등 비극적 상황은 마음을 죽이는 것이니 사람이 죽는것 보다 더 큰일이 아닌가. 우리는 아름다움도 겪을 수 있으며 재앙과 화도 만날수 있다. 불필요한 걱정과 좌절, 고민을 키우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키우고 적극적으로 사고하도록 하자. 그렇게 하여 여유롭고 평탄한 삶을 누릴수 있으리라.
 
시공을 초월하여 여전히 그의 철학이 생활의 지혜가 될수 있음은 다만 자연스러움을 강조하기 때문일 게다. 나도 자연의 일부임을 누가 부인 할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그 어떤 삶도 귀하지 않은것이 없다고, 곤경과 좌절을 만나더라도 자기를 환경의 노예로 만들지 말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라고, 그의 가르침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가슴에 한편에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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