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알고 있다. 필연적으로 이 싸움은 우리가 지게 될 것이라는 걸. 나도 마찬가지로 생각한다. 노화보다 빠르게 진화하는 병을 보고 있노라면 진절머리가 난다. 그러나 사실은 생각한다. 병이 펼쳐주는 지평도 상상만큼 나쁘지 않다고, 가끔은 기꺼이 그의 움직임을 보조한다. 나는 많은 약을 먹고 있지만, 그것들이 병증을 공격하고 소멸시킨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약은 병을 좀 더 합리적인(병과 병자 모두 고개를 끄덕거리는 수준의) 크기로 조정하는 역할이다. 선두에서 씨름하는 건 자신이다. 그리고 전선의 선봉에 서야할 때 나는 가끔, 아니 종종, 아니 좀 더 자주 병에게 진두지휘를 양보하기까지 한다. 우리는 이제 너무 섞이고 얽히고 휘말려버렸다. 무언가 하려 해도 그게 정말 자신을 위한 일인지, 병이 속삭여 하자고 조르는 일인지 구분하기도 모호하다. - P25
나는 정신병자들이 나을 수 있다고 믿는다. 다만 낫는다는 것이 완전한 회복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지금보다 나아진다는 의미로, 과거 그 사람의 어떤 ‘맑았던‘ 시점으로 돌아가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는 모두 똑똑하고 영리했던, 기민하고 총명했던, 꽤 괜찮았던 시기를 안다. 하지만 병은 그곳 그 정류장으로 가는 버스가 아니다. 오히려 병의 힘을 빌려 우리가 그때보다 똑똑하고 영민할 수 있는 미래에 당도한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가능성이 높다. - P26
병이 없는 사람은 병식을 가진, 병식을 가져야 한다는 괴로움을 모른다. 병식은 단순히 ‘나는 병이 있습니다.‘ 하고 인정하는 것과 다르다. 병식은 병을 인정하고, 이 병을 관리하는 패턴을 만들며, 병적 상태에서 자신의 행위가 자신 또는 타인에게 가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나는 병이 있다.‘라고 생각하 - P40
기만 하는 ‘병식 없는‘ 환자 A와, 병식이 있는 환자 B는 똑같이 조증이 와도 그 사고와 행동이 다를 것이다. 예를 들면 A에게 조증이 왔다. A에게도 자신의 상태에 대한 통찰이 있기 때문에 조증 상태가 점점 심해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A는 여러 가지 딴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다음 주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조증을 밝혀야 하나? 2주 후에 친구들과 모임이 있는데 그때까지 가만 있다가 ‘재미 좀 본‘ 다음에 하이텐션으로 놀고 나서 그때 의사에게 말해도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조증은 규칙적인 속도로 역을 향해 들어오는 기차가 아니라 살얼음에 미끄러져 마구 회전하며 주위의 모든 것을 들이받는 자동차에 가깝다는 것이다. 예측불가한 그 진행 속도에 그대로 올라타버려 그는 친구들과의 모임 전에 이미 사고를 치거나 자신과 타인들에게 불쾌한 일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인식한 즉시 빠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증상이 악화된다는 것을 알고, 조증이 아무리 발버둥치며 달콤한 말을 해도 귀를 막고 자신을 병원에 끌고 가는 것. 후일을 대비하여 미리 조증의 퇴로를 차단하는 이 행동이 병식 있는 병자의 것이며 여러 가지 불상사로부터 병자를 지킨다. 병식을 가진 B의 경우, 조증을 눈치채면 단번에 불려간다. 이름하여 조증 법정으로. "조증 인정하십니까?", "최근 며칠간 50만 원 쓰셨죠? 당장 병원 갑시다.", "자이프렉사(항조증제로 체중이 증가하는 부작용이 있음) 먹고 10킬로그램 찌겠네요. 그래도 가셔야 합니다."라 - P41
고 말하는 검사와, "아니 아무 문제도 없으시잖습니까. 좋아 보이시는데?", "과장된 걱정을 하시는군요. 기분이 좀 나아지셨을 뿐입니다." 하며 정중하고 뻔뻔하게 부인하는 변호사 사이에 끼어 우왕좌왕할 것이지만, 그래도 그는 판결을 내린다. 그는 여러 수를 생각하지만 결국 머릿속 법정을 폐회하며 과거의 판례, 사고의 전적을 쭉 한번 읊고 ‘병원에 가라.‘라는 판결에 따라 버스에 몸을 싣는다. 당신이 병적 상태에서 아무리 계산하고 생각하고 예측해서 발걸음을 디뎌도 그 길은 당신이 원했던 방향으로 당신을 안내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미 병이 침입한 상태로 병을 다루려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것도 곧 지나가리라."라는 말처럼, "지금 병원에 가라."라는 말 또한 우리에게 언제든 실천할 수 있는 잠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옷을 꿰입은 후 병원에 가 고백한다. 이어지는 치료와 치료의 망망대해에 닻을 내린다. 우리는 병식을 가졌으니까. - P42
이런 맥락에서 나는 ‘병밍아웃‘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 용어는 명백히 퀴어의 단어를 차용한 것이다. 그리고 정신병을 밝히는 일 역시 1) 반복해야 하고, 2) 말을 꺼낼 상대에 대한 사전 조사가 필요하며, 3) 밝힐 상대 그리고 자신에게 감정적 동요가 발생하여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 P45
자신의 병을 사회적 맥락 속에서 발화해야 하는 이들은 이 ‘정신병‘이라는 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다른 (비슷한 소수자의) 습속이라든지 문자를 베꼈다. 이에 관해 ‘퀴어의 소수자성을 지운다.‘라고 비판한다면 반론이 있을 수밖에 없다. 퀴어라는 집합의 여집합에 정병러가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이들이 두 집합의 교집합에 속한다. 피차 언어 없는 소수자들끼리, 기저도 서로 공유하고 있는 이들끼리 누가 누구의 언어를 갖다 쓰고 말고 한다고 하나가 다른 하나를 ‘지울‘ 만큼 권력이 강대하다고 할 수 있을까? - P46
이를테면 누구에게나 "나 같은 사람이?", "내가 설마 그런 것까지 하겠어?" 싶은 행위들이 있을 것이다. 조증은 그런 선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버린다. "조증은 뭐든지 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면 언뜻 긍정적인 말처럼 들리겠지만, 결코 그런 의미만은 아니다. 이것은 당신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뜻도, 동시에 어떤 범죄든 저지를 수 있다는 뜻도 된다. - P90
조증이 처음 발발한 사람들은 이것을 가히 신이 자신에게 내린 선물인 것처럼 받아들인다. 그들은 뭐든지 할 수 있고 또한 뭐든지 될 수 있었다. 조증을 딛고 솟아난 인생. 그러나 몇 차례 재발하게 됐을 때 조증 환자는 비로소 시름에 잠긴다. 아직 조증이 망칠 미래가 선명하지 않은 이들은 이 과정에서 조증을 숨긴다. 일이 터졌을 때야 조증을 재우려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조증이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벼랑으로 몬다는 걸 알게 된 조증 환자들은 솔직해진다. 그들은 증상이 생겨나기도 전에, 예감이 들었을 때 즉시 병원에 간다. 그리고 그전까지 먹던 모든 약들을 항조증 약으로 바꾸고, 거대한 데파코트와 줄줄이 이어지는 리튬과 라믹탈과 셀 수 없는 알프라졸람을 달고 돌아온다. 그렇게 돌아온 곳은 지옥이다. 조증에 정직한 사람들이 가는 지옥. - P73
나는 BPD는 사람들에게 좀 해를 끼쳐야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동시에 ‘살면서 그런 해를 좀 입으면 어때?‘ 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그래서 BPD의 존재가 그렇게 사람들이 말하듯 불가촉민인 양 여겨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정말로 누군가 자신에게 해가 된다면 그를 내치는 방법도 배우고 해봐야 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 P107
한편에서는 로맨틱 코미디를 촬영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자살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것이 BPD의 일상이며, 이 아이러니가 발각되어도 그는 상대가 왜 충격을 받았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에게는 원래 극단이 당연하기 때문에. BPD의 감정이야말로 롤러코스터처럼 역동적이다. 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고도도 모를 곳까지 끌려올라갔다가 하루에도 몇 번이고 내동댕이쳐지는 삶을 살아왔다. 만성적인 불안과 공허에 지속적으로 시달려 익숙해진 그들의 내면 세계에서는 파괴적인 생각과 실험 들이 연이어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것은 다분히 폭력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이로 인해 자살사고나 타인에게 해를 끼치고자 하는 마음으로 기울어도 이것을 ‘그렇게 해야 하는‘, ‘마땅한‘ 것으로 여긴다. 문제는 BPD들에게 생각(사고)이란 단순히 머릿속에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 바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모범적인 역동이라는 데에 있다.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해 이는 고통은 BPD들에게 수족을 잘라낼 때 느끼는 것처럼 실제로 감각하는 고통과 다름없다. 그런 고통을 지우기 위해 무슨 수든 쓰는 BPD를 사람들은 언제나 오해할 뿐이다. - P109
정신이 망가진 사람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마지막까지 해치는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 특히 자기 자신의 육체다. 많은 정신병자들 - P137
이 몸과 정신병을 분리하여 사고한다. 체력 저하, 체중 증감, 무기력증, 수면장애 같은 신체의 신호를 무시하고 자신이 분석한 정신병의 원인을 소거할 수 있으면 지금 봉착한 제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처음에는, 혹은 어떤 시점까지는 이런 전략이 먹혔을 수도 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하는 실수가 초발 삽화에서 약물 치료로 호전을 보이면 빨리 약을 끊고자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실수는 병을 치료할 기간을 이를테면 1~2년 정도로 잡고 그 안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만든 마지노선에 쫓기듯이 치료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섣불리 자의적으로 단약하게 되면 일이 힘들어진다. 단약 이후에 삽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제로가 아니므로 병이 다시 발발하게 되면 이들은 필연적으로 무너지며 재차 병의 이유를 찾으러 돌아다닌다. 사실 이유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다시 병원에 가게 되었을 때에 그들은 이미 이전에 먹었던 용량을 상회하는 약을 복용하게 되며, 이런 일들이 반복될수록 병은 점진적으로 자라난다는 사실이다. 자라나는 정신병은 교묘하다. 임계점을 넘어선 정신병은 더는 우리 안의 타자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과 긴밀하게 섞여버린다. 병에 오염되었다고 보든, 병과 혼합되었다고 보든 이제 자기 자신의 고유한 감정과 기분을 잃어버리고 병증이 호소하는 대로 사고하고 판단을 내릴 공산이 커진다. 병은 우리가 감각하는 세계를 보다 - P138
확장하고, 우리가 인식을 마치면 그 속으로 재빨리 스며들어 자신의 몸집을 불린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병을 통제하고자 하는 욕구가 상승하는데, 사실 제어가 가능했던 시기는 이미 놓쳤다. 이제는 확대되는 병의 지각을 쫓아가려는,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려는 시도에 그칠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알게 된다. 병이 내부에서 발발하는 느낌이 아니라 외부에서 내려오는 느낌을 병이 내 내적 자양분을 먹으면서 자라나는 게 아니라 다 자란 성체로 불쑥 등장하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이쯤되면 이제는 물을 수밖에 없다. 이 병을 낫게 하는 게 가능할까? 정신병을 앓는 이들 중 일부는, 의사가 당신이 정신과 약을 평생 먹어야 하고, 이 병은 죽을 때까지 관리해야 하는 병이라고 말하면 실망감과 낭패감을 감추지 못한다. 한편, 일부는 덤덤히 받아들이고 자기도 당연히 그리 생각했음을 피력하는 경우도 있다. 더 이상 무엇을 좋아지게 하기 위해 치료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지금보다 나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약을 복용하고, 생활 습관을 개선하고, 환경과 여건을 갖추는 데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상상 이상의 비용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어떤 이들은 그 비용을 지불할 여력이 되지 못해 간신히 저공비행으로 버티거나 추락하고 다시 올라오지 못한다. 그리고 마침내 이런 교착상태에 새로운 지평이 되어줄 신체 질환이 발발한다. 경증으로는 약물 부작용부터 근골격계 이상, 대사 질환, 각종 감염증, - P139
피부 질환, 자가면역 질환, 심지어 탈모에 이르기까지 더는 몸이 이전같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원인과 진단이 명확한 병증들은 비교적대처하기 용이하다. 약물 부작용이나 정신 흥분 상태가 유발하는 발작을 경험해본 이들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감각과 육체를 완전히 제어할 수 없고 자기 멋대로 날뛰는 신체 말단들을 갉아대는 듯 기이한 통증을 겪으며 벗어날 수 없는 경험 말이다. 신경과에서도 원인을 찾지 못하고, 증상이 폭발할 때에 응급실에 내원해도 이유 없는 ‘액팅 아웃(acting out, 말이 아닌 행동으로 갈등을 분출하는 정신과적 증상)‘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그런 고통들. 당신은 이제 고통이 불합리하게 배분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 원인 불명의, 저절로 생기는 병(특발성 질환)을 병 - P140
자들이 홀로 이겨내기란 매우 어렵다. 이제껏 내 말을 잘 듣고, 내 편이라 여겨왔고, 함께 정신병과 맞서던 육체의 배반은 마치 누군가 나를 포기한 것처럼 느껴진다. 당신의 마음이 지각하는 시간의 흐름이 어떻든, 육체는 차곡차곡 나이 들어간다. 스무 살의 숙취와 서른 살의 숙취가 다르듯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신체가 담보가 되기는커녕 신체의 병이 마음의 병과 손을 잡고 함께 행복의 나라로 가버리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당신의 사고장애, 정신증이 생각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너덜너덜한 몸과 결합해 여러 이상 사고를 야기한다. 당신은 ‘내가 죽어야이 고통이 끝난다.‘ 하고 맹목적인 믿음을 갖기도 하고, 얼마나 더 시달려야 구원받을 수 있을지 탐구하는 방식으로 자기를 내몰 수도 있다. 그리고 이제는 반대되는 상황, 즉 육체의 질병을 해결해야만 정신의 짐도 덜 수 있을 거라는, 정신병의 초기와 반대로 작용하는 생각을 키워나가는데, 문제는 육체의 고통이 사라지더라도(고통의 원인이나 고통스러운 요소를 제거·치료하더라도) 정신에 생겨난 얼룩들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이 얼룩은 비단 자살사고나 자해 충동같은 자기파괴적이고 분명한 형태로 표출되지 않더라도,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자신을 돌볼 만한 이유를 찾지 못해 제대로 된 의식주를 제공하지 않는다거나, 병이 어떻게 진행되든지 개의치 않는 무시일관의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다. 어쨌든 긴 투병, 투병과 투병들 사이의 중첩은 우리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포 - P141
기하게 유도한다. 병이 낫지 않는 사람들은 울적하다. 그들은 자신에게 새로운 질병이 생긴다는 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사소한 것, 이를테면 위장장애같은 것에도 쉽게 견디지 못해 한다. 입마름이나 오심 같은 사소한 증상을 겪을 때조차 마치 자기가 앉은 의자가 동댕이쳐졌다는 얼굴로 시름에 젖는다. 그러나 병이 펼쳐지는 장은 다른 나라의 월드컵경기장이 아니라 자기 몸이다. 그 연관성을 병이 낫지 않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우울증으로 침대에 오래 누워만 있을 때 누워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습관이 생겼다면, 자연스럽게 팔꿈치에 체중을 싣는 자세가 되므로 테니스를 치지 않아도 테니스엘보가 생길 수 있다. 이처럼 오래 누워만 있으면 테니스엘보가 생길 수 있다는 것, 불규칙한 섭식 습관으로 역류성 식도염이나 만성적 위장장애를 얻게 될 수 있다는 것, 활동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특정 근육에만 부하가 가서 근육통이 생긴다는 것 등을 겪으며, 어쩌면 실은 모두 원인은 자신의 행동 양태에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문제는, 이유를 찾고 그것을 해결하면 해소되는 일이 아닌, 병이라는 존재 자체가 주는 좌절이다. 병을 주렁주렁 달고 사는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병들은 각기 다른 시기에 날아왔지만, 이 병이 저 병에 어떻게 기대고 있고 저 병은 다시 다른 병이랑 손잡고 있으며, 경한 몇몇의 병증이 사실은 중대 - P142
한 질환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모두 함께 개선하는 것이 아니면 그다지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 그러나 불규칙한 식습관과 폭식에서 온 섭식 문제, 활동 부족과 갑작스러운 체중 증가로 관절 이상을 겪어 이를 한번에 타개하고자 마음먹고 운동 계획을 세워 충실히 이행하고자 했고 며칠 실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신이 유감스럽게도 갑자기 새로운 활동을 감당하지 못해 손을 들어버려 프로젝트가 실패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대해서 말이다. 이처럼 여러 번 자신이 처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노력한 사람도 종내에는 두 손 들고 말기 때문에, ‘질병 관리 프로젝트‘는 언제나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와 핵심은 아주 아주 간단한 것으로 잡아야 한다. 그리고 절대 혼자서 완성할 수 없기 때문에 주위의 도움이 꼭 필요한데, 도움을 받으려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도움을 요청하기를 수치스러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프로젝트와 관계 사이에서 당신의 병은 (그것이 정신병이든 육체의 병이든 오래된 병이든 신생 병이든) 언제든 심한 기복을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 P143
정신병은 처음에는 증상이 양호하고 환자가 잘 대응하는 것처럼 보여도 한 번 균형이 어긋나기 시작하면 비가역적인 파괴를 거듭하다 고립을 맞기 쉽다. 리튬을 1200밀리그램, 토피라메이트를 300밀리그램 먹고, 쿠에티아핀을 800밀리그램 먹고, 그리고도 모자라서 리스페리돈을 8밀리그램, 클로르프로마진을 50밀리그램 먹어도 나아지기는커녕 지금 상태에서 더 나빠지지 않게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있을 뿐이라는 비참함을 정신병이 없는 사람들은 모른다. 그리고 그런 비참한 상태가 마치 질 좋은 양분인 양 혹처럼 돋아나는 새로운 질병들의 존재가 얼마나 사람을 괴롭게 하는지, 그것은 정말로 아무도 모른다. 다만 끝없는 병의 계주를 지켜보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 P145
은 다음과 같다. 설명하고 분석하는 데 힘을 쏟지 말 것. 치료할 수 있는 질환은 절망의 상태로 버려두지 말고 충분히 치료할 것. 그리고 희망적일 것. 당신이 자신의 모든 기회가 끝났다고 생각하더라도, 악화일로라도, 가능성이 없더라도 희망적일 것.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예상치 못한 질병이 발견되었을 때, 그것이위중한 질병일 때, 당신을 위로하러 오는 사람들을 밀어내지 마시길 바란다. 고립을 두려워하라. 고립이 죽음으로 가는 티켓을 이미 끊어놓은 자의 최후의 보루 같은 것이어도 그 비장함을 두려워하고 언제나 연대를 구하라. - P146
이론적으로는 여러 가지 약을 써보며 집중 관찰하여 최적의 약물을 찾겠지만, 우리는 안다. 많은 환자들이 몇 주가 아니라 몇 개월, 심지어는 해가 지나도 ‘나한테 맞는 약!‘의 느낌을 알지 못하며, 지지부진한 통원 치료를 반복하며 부작용만 주렁주렁 달고 절망감만 쌓여가기 십상이라는 것을. 처음 정신과에 갔을 때, 나는 나를 이해하는 의사가 있는 병원에다녀야 당연히 좋을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병원을 발견한 것은 5년이 지나서였다. 그전에 계속 다니던 병원은 단점이 많았는데, 그럼에도 계속 다닌 이유는 그곳이 좀 더 퀴어 프렌들리하고(동성애에 유난을 떨지 않아서) 나와 애인이 같이 다니니 관계 문제 등에대해 이해도가 높을 것이고 그만큼 우수한 처방이나 조언을 받을수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약물 치료에서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의사와 대화가 통하는지’가 아니다. 의사가 자신이 처한 복잡한 상황이나 특수한 관계에 대해 아주 자세히 듣고 고개를 끄덕인다고 약을 잘 지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은 당신의 서사를 이해해줄 만한 정신과에서 진료받기 위해 집에서 매우 먼 곳까지 찾아가거나, 환자가 몰리는 곳이라 오랜 시간 대기해야 해 스트레스를 받으면 - P149
서까지 내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투자하는 시간과 비용만큼 내게 도움이 되는지를 꼭 따져봐야 한다. 만약 정신과에 가는 것만으로도 나의 많은 스트레스가 해소된다면 유익한 일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충분히 재고해볼 만하다. 약물은 자신의 고민, 정체성, 관계, 갈등 등을 단번에 해결해주는 마법의 도구가 아니다. 당연히 약을 먹는다고 즉각적으로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약물 치료는 몇 가지로 나뉠 수 있는 자신의 증상, 이를테면 불안, 공황, 우울, 조증, 자살사고, 환각 등 병증의 구체적인 면면에 대응하려는 치료다. 그러므로 약물 처방 면에서 신뢰할 수 있는 의사를 찾는 것이 우리가 병과의 싸움에서 반드시 쟁취해야 하는 조건이다. - P150
그렇다면 병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언제 정신과에 내원할지 결정하는 것, 대학병원에 갈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 병원을 바꿀 때에 들 이유를 찾는 것, 그리고 약이 자신에게 어떤 작용을 하는지를 파악하는 것, 무엇이 약물의 작용이고 무엇이 부작용인지 선을 그어놓는 것, 병원비를 마련하는 행위를 하는 것, 내원해 약물 치료를 받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을 하는 것, 약물 치료의 조력 집단과 - P157
연결되어 있는 것, 약물 복용 시간과 용량을 지키는 습관을 만드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약을 복용한다는 사실에 너무 많이 몰입하지 않을 것 등 너무나도 많아 다 쓰기 어려울 정도이다. 하지만 결론은 단순하다. 약물 치료는 약물의 영역이므로 약물 치료는 약이 하게 의 일게 맡기는 것. 그리고 사람은 사람의 일을 하면 된다. - P158
의사와 이야기하는 것은 정신질환의 세계에 익숙지 않은 초심자에게는 분명히 어려운 일이다. 자기가 어제 울며 죽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면서도 티슈를 다섯 장 쓴다. 하물며 의사의 약물 처방에 불만이나 문제를 제기하는 일은 분노와 슬픔으로 티슈가 50만 장쯤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의사에게 그간의 불만족스러운 상담과 약 처방에 대해 확실히 이야기해야 한다. 광인이 된 자신과 대면하는 것보다야 덜 어려울 테니까. - P161
정신과 의사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복잡한 까닭은, 처음 정신과 진료실에 들어가면 이제까지 쌓아놓았던 모든 이야기가 떼로 몰려들어 자기가 먼저 말하려고 아우성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맞은 것부터, 유치원 시절의 따돌림, 초등학생 때 집안의 파산, 중학생 때에는 일진들에게 구타당함,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었으나 우울하고 결국 입시에 실패하여 그동안의 가족 갈등이 폭발해 모두 동반 자살을 하자고 난리가 났던 일들, 가족을 떠나서 대학에 왔지만 연애는 실패하고 성적은 학사경고를 면할 수 없으며 돈은 없어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모욕적인 상황을 마주하며 마음속에 살의가 일어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라고 눈물을 훔치며 말을 꺼내기 시작하면 어느덧 상담 종료 시간이 다가와 의사는 슬슬 난처한 기색을 보이고 오늘은 약을 줄 테니 다음 주에 오시라며 내보내는데 그때 그렇게 한스러울 수가 없다. 내 말을 듣기는 한 건가? 내 말에 반응이 없다? 내가 바보로 보이나? 내가 그 빌어먹을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가지고 온 건데…… 하는 마음으로 대기실에 다시 앉아 기다릴 적에 그래도 속 시원하게 털어놓지 않았나 스스로 자위한다. 이름이 불려 약을 타서 몰래 꺼내보니 이름 모를 약 두 알이 봉지 하나에 들어 있어, 드디어 정신과 약을 먹게 되었구나, 나는 이제 공인된 정신병자구나, 하고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 사람들을 보니 모두 정신이 멀쩡하고 나와는 다른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 사회의 일원으로 느껴져 집에 오는 입맛이 쓰면서도 나는 이제 인정받은 병자라는 마 - P162
음에 몸이 단다. 곧이어 계단을 올라가 문을 열고 가방을 열고 약봉지를 꺼내서 물컵에 물을 따라 경건하게 약을 입에 넣고 물을 머금었다. 그리고 일주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신과를 처음 찾은 초심자라면 다음을 기억해야 한다. 1. 이것은 약물 치료를 위한 상담이다. 심리 상담을 받고자 한다면 따로 심리 상담을 신청하라. 너무 많은 정보를 의사에게 전달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2. 모든 의사가 이해심이 많고 온당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핵심(예를 들어 특정 가족에게 폭력을 당해온 것, 섹슈얼리티, 종교가 있는지 여부, 출신 지역, 학력 등)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의사도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라. 그런 의사와도 의사-환자와의 관계를 잘 맺을 수 있다. 하지만 시간과 비용이 낭비되는 기분이 든다면 피하라. 3. 의사의 말에 일희일비하지 말라. 4. 의사의 언행에서 당신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수치를 주는 기색이 느껴진다면 그 병원에다시 가지 않아도 괜찮다. 이것은 약물 치료를 - P163
위한 상담이므로. 5. 의사는 타격팀이 아니다. 약물이 타격팀이다. 의사의 말들에 나를 돌아보기보다 바뀐 약물이 주는 느낌을 조목조목 기록하는 편이 낫다. 6. 약물은 내 느낌으로 복용하는 것이 아니라, 통계로 따져 처방한다. 우울한 기분이 든다고 재깍 항우울제를 받는 것이 아니다. 의사와의 충분한 상담을 통해 받는다. 고로 질문하지 않는 의사는 다시 살펴보도록 하자. 7. 어떤 특정 약을 타고 싶어 그 약을 타려고 연기하는 건 위험하고 병적이므로 그런 생각이 든다고 말하라. 8. 의사도 마찬가지로 당신이 너무 많은 정보를 제공하면 필요한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것이 어렵다. 이를테면 상담 때 내 정보들을 시간순으로 나열하는 것보다 중요도나 항목순으로, 한 번에 하나씩 나열하자(가정/친구/학교/직장 등). 2. 할 말을 메모하되, 리스트 형식으로 - P164
두괄식으로 작성한다. 10. 하지 못한 말이 상담 뒤에 기억나면 카운터에 양해를 구하고 말한다. 특히 미처 진료실에서 말하지 못했던 것 중 약 부작용이 있다면 꼭 말한다. 처방된 약물에 대해 의문이 있다면 이것도 꼭 말한다. 11. 진료실에 들어가서 약물에 관한 것을 우선으로 말하는 습관을 들여, 약물 조정이 진료의 핵심이 되도록 습관을 들이자. 12. 상담의 많은 시간을 약에 관련하여 말한다. 잘 듣는 약, 보통, 안 듣는 약 하나하나 체크해 자신에게 맞는 약물군을 찾고 약물 지도를 함께 그려나간다. 13. 그다음으로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한 내용을 주로 이야기한다. 보다 객관적으로 자신의 언행과 상태를 관찰할 수 있다. - P165
우울증 환자는 냉혹한 현실 인식의 달인이다. 가장 엄격한 기준을 먼저 자신에게 적용한다. 우울증이 심하거나 우울 삽화일 때에는 행복이나 기쁨이 생의 본질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가령 좋은 일이 일어나 미소지어도 금세 무감하고 공허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간다. 길고 극심한 우울증을 겪어온 환자들은 최상을 상정하지 않는다. 그들의 기준점이 되어 마음을 차지하고 정신을 압도하는것은 ‘최악‘이다. 때문에 최악에서 살짝 벗어나거나 최악을 모면했을 때 만족을 느낀다. 이 중증 환자들은 고통스러운 상황(자해나 사고 등)에 너무 익숙해져서 고통을 느끼는 상태를 ‘편안한‘ 것으로 느끼기도 한다. 어떤 우울증 환자는 삶에서 불행, 갈등이나 파국이 발생해야 비로소 "살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고 한다. 우울이 너무나 오래 지속되었기 때문에 무기력하고 침울한 것이 디폴트가 되고, 예측을 벗어나는 극적인 상황에 놓이면 그제야 분노와 증오를 겪으며, ‘뭔가 느껴진다=좋은 일이다’라는 순환을 학습하는 것이다. 결국 우울증 환자들은 좋은 일보다 나쁜 일에서, 기분의 상승보다 기분의 바닥에서 사금을 찾는 자들이 되고 만다. 신체적으로도 그들은 구부정하다. 바닥을 보며 걸으며, 구석에 인접할수록 편안함을느낀다. - P170
우울증은 단절의 병이다. 인간은 어떤 행위를 할수록 지식과 정보가 누적되지만, 우울증 상태에서는 그것이 어렵다. 그들이 뭔가 해도 그것이 점을 찍듯 모여서 패턴을, 그 사람의 인생의 그림을 그려주지 못하고 점과 점 사이의 거리는 별처럼 멀고 분산된다. - P171
소위 ‘생각이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 상태에 돌입하면 아주 작은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작은 정보들에도 긴 생각의 꼬리표가 생겨난다. 이것의 문제는 이미 병에 노출되어 사고의 왜곡이 심한 이들에게 왜곡된 사고가 활보할 수 있는 운동장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많은 우울증 환자들이 자기에게 쏟아지는 정보에 둔감과 민감을 동시에 발휘한다. 동시에 우울증은 사고를 편집증적으로 빼곡하게 구성시킨다. 우울증 환자는 조용하고 정동이 둔해 보이지만 사실 굉장히 많은 생각과 의식으로 가득 차 있으며 때때로 이런 생각은 끝나지않고 며칠이고 계속되곤 한다. 자살사고라든지, 이 세상의 불합리라든지, 자신이 살아오며 받은 모든 상처들을 되새긴다든지 하는 부정적인 테마가 가득 차 사슬처럼 이어진다. 이런 연속된 사고들을 끊을 강경한 수단을 도입해야 한다. 꼬리를 잇는 생각들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일단 주변 환경에 집중해보자. 눈에 보이는 사물의 개수를 세어보자. 색상은 어떻게 보이는가? 이렇게 자신을 둘러싼 공간에 관심을 돌리고 주의를 환기하는 것은 비단 생각에서 벗어나는 데에만 유용한 것이 아니다. 우울증 상태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법에 적용할 수도 있고, 이처럼 관심을 기울이다 보면 나아가 자신의 공간을 더 안녕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다. 당신은 자신의 병을 증명받기 위해 위험한 선택을 내릴 수도 있다. 혹은 정신병에 애정과 사랑을 느끼거나 헌신하기도 한다. 환자 - P172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병적인 우울이야말로 자신의 토대이자 전부 혹은 특기라고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병증의 일환이다. 우울증은 언제나 같은 모습, 같은 강도로 다가오리라는 법이 없다. 뿌리를 딛고 내릴 안정적인 형태의 토양으로 여길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보다 병에 초점을 맞춰 병의 존재에 일희일비하며 애정이든 증오든 필요 이상의 정념을 쏟는 것 자체로 병들은 기뻐 날뛰며 자란다. 그들이 기뻐할 일을 최대한 줄여보도록 하자. 만성적인 우울 상태에 놓이거나 우울증이 계속 재발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악화되기 쉽다. 악화가 누적된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지금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선택지일 수 있다. 이전의 삽화 기간에 할 수 있었던 일을 다음 삽화에는 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절대로 많은 일을 한 번에 해결하려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일만 하되 아주 느리게 넓혀가야 한다. 그 기간에 언어 능력이 떨어지고 문해력이 낮아지는 것은 당신을 위협할지는 몰라도 당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이런 ‘능력 저하‘가 자신을 괴롭히는 가장 큰 원인이 된다면, 해당 능력의 영역에서 재활 프로그램을 시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결국 ‘능력‘의 회복이 아니라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사회로의 회복이다. 또 능력 저하를 회복할 수 있는 시간 또한 한계가 있다. 는 것을 알아야 한다. - P173
우울은 생활반경과 할 수 있는 일들을 축소한다. 처음에는 직장또는 학교에 나가기 어렵게, 그러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렵게, 집 앞 편의점에 가기도 어렵게, 침대를 나서 화장실을 가기도 어렵게 줄여나가고 당신이 돌아다닐 수 있는 지도의 영역은 점점 어두워지고 작아질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당신에게는 퇴행성 관절염, 관절 이상, 대사증후군 등 각종 신체 질환이 발발하기 쉽다. 신체 질환이 발병하면 당신의 정신병의 지평이 순식간에 달라진다. 병은 당신의 모든 약해진 부분을 공략하기 시작한다. - P174
우울증 환자에게도 자신의 삶을 챙기는 것 이상의 책무가 존재한다. 우울증 환자도 직장에 나가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고, 돌봐야 - P179
할 동물 식구가 있을 수도 있고, 빚이 있을 수도 있다. 우울증으로 인해 많은 것을 잃었을 수도 있지만 우리의 목표는 ‘남들처럼‘ 움직이고 비장애인의 습속을 모방함으로써 견뎌내는 것이 아니다. 이 실험 과정은 자신만 알 것이고, 자기만이 이 재활의 고충을 알 것이다. 그래서 우울증 환자는 몇 배로 노력하는 데에 어려움과 억울함을 느끼기 쉽다. 남들이 쉬는 걸 당신은 쉬어줘야 할 것이며, 남들이 먹는 걸 당신은 먹어줘야 할 것이고 남들이 잠드는 걸 당신은 잠들려고 노력을 해야 이룰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타인과 비교하면 박탈감만 심해질 뿐이다. 링에 올라 싸우는 둘은 당신과 당신의 병이지 남들이 아니다. 타인과 겨루는 것은 기나긴 재활 실험 후의 일이다. 그러나 당신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어떤 시점에는 더 나빠질 수도 있고, 어떤 측면에서는 더욱 우수해질 수도 있다. 당신의 지금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변할 것이고 그리하여 우리는 살아남을 것이다. - P180
양극성장애인은 한 사람이지만, 완전히 다른 것처럼 느껴지는 두 병증을 모두 상대해야 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조증에서는 병이 자신 - P183
을 장기 말 취급하면서 이래라저래라 요구하고 그에 대응해야 한다. 반면 우울증 상태에서는 도리어 환자가 직접 일궈야 하는 부분이 많이 존재한다. 우울증은 오로지 자신에게만 내리는 비와 같기에, 가랑비에 옷이 젖듯 점점 비가 내려 조증처럼 병증 자체에서 에너지를얻기는커녕 자기 몸 하나 간수해내지 못하는 데다가 병든 자신도 돌봐야 하므로 그렇다. 조증은 얼마나 빨리 예측하는지가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 맨 처음의 조증은 돌발하나 그다음은 이전 조증이 찾아왔던 시기 또는 계절에, 트라우마적 사건이 발생했을 때, 스트레스가 높거나 정신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때 등장한다. 흔히 간과하는 것이, 좋은 일, 축하할 만한 일이라도 양극성장애 환자에게는 절댓값이 큰 감정적 사건, 이른바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다.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은 기나긴 우울증을 버텨낸 뒤 찾아오는 선물 같은 조증이다. 조증은 마치 위기에 등장하는 수퍼히어로처럼 몸과 마음이 피폐한 양극성장애인에게 앞날을 헤쳐나갈 기운과 좌표를 보여준다. 그러니 조증을 사랑하지 않고 배길 수 있겠는가! 조증은 환자의 사고, 감각과 같은 내적 요인보다는 외적 요인에 의해 더욱 강력해진다. 동료의 위기나 죽음 등에 잠재력을 폭발시키는 만화 주인공처럼. 물론 현실을 살면서 그런 만화 같은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조증이 치밀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상황은 허를 찔린 듯 닥쳐오는 경우가 많다. 아주 사소한 일, 이를테면 - P184
카페 직원이 "다른 직원한테는 말하면 안 돼요."라며 자신에게만 무료 리필 커피를 줬다든지, 아니면 택시를 탔는데 바닥에 1만 원권이 떨어져 있다든지, 다른 사람에게 감사, 호의, 친절, 칭찬을 받았다든지 한 후 난데없이 조증이 증폭되는 케이스를 몇 보았다. 불특정다수 중 예외적으로 선택을 받았고 이득을 얻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외부 요인‘의 상황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공통적으로 ‘특별한‘, ‘선택받은‘, ‘뛰어난‘ 나의 유일성을 자극하는 상황이 많은 경우 조증이 심화되도록 작용할 수 있다. 개인을 겨냥한 언행이 아니더라도 정신질환 삽화가 발발해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겐 충분히 커다란 자극으로 흡수되어 병이 증폭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조증의 발발과 증폭을 감지한다면, 바로 병원에 가서 변화된 상태를 말하고 다른 처방을 받아야 한다. 조증은 시간이 아주 중요하고, 특히 초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현재 기분조절제나 항조증제를 복용하고 있어도 의사와 상의해서 약물을 조절해야 한다. 많은 양극성장애인들이 조증 초기에 오는 ‘예외적으로 선택받은 나‘라는 느낌, ‘유능해진 나‘,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을 잃고 싶지 않아 치료를 지체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초기 진화에 실패한다면 보통 1주(DSM-5 기준)에 달하는 조증 삽화가 지속되는데, 조증이 기거할수록 그것을 앓는 사람은 빠르게 망가져간다. 조증자의 상승하는 기분은 반드시 동그랗고 예쁜 헬륨 풍선 모양이라는 법이 없다. 언제나 해피 벌룬이 올 거라고 기대 - P185
하는 것은 안일한 생각이다. 때때로 찌그러지거나 접힌, 구겨져 있는 왜곡된 상태도 많다. 주의가 산만해져 집중을 하지 못하고, 성마르고 강팍해져 신경질을 내고, 수면과 식사가 불규칙해 엉망인 몸, 그런 자신을 돌보지 않고 여기저기 돌진해 일어나는 수많은 충돌, 게다가 신체화 증상과 정신증이 계속되는 1주(혹은 그 이상). 조증은 당신을 나은 존재로 만들어주기 위해 온 기회가 아니다. 양극성장애의 특징은 한쪽이 아닌 양쪽에서 일어나는 결함이라 할 수 있다. 양쪽에서 한 입씩 베어 무는 사과가 된 꼴이다. 양극성장애인 자신이 갖는 고유의 회복탄력성보다 언제나 그것을 상회하는 병의 침범이 존재한다. 이 땅따먹기는 초발한 이후 지지부진하게 힘 싸움을 계속하다가 결국 병이 진전되면 역전할 수 없는 오셀로처럼 진행된다. 조증과 우울증을 대립 구도로 설정하는 것은 양극성장애인이 저지르기 쉬운 실수다. 자식을 편애하는 부모처럼, 우울증일 때 마땅히 돌보고 보살펴야 할 부분은 삭제하고, 조증일 때 범하는 실수와 실패는 무시한다. 이것은 그들의 전장인 당신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 이외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양극성장애인에게 중요한 것은 성과를 내거나 변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정상적인‘ 수준의 생활을 해나가는 것도 아니다. 마음 같아서는 조증은 ‘이용‘하고, 우울증은 ‘인내‘하고 싶을 터이지만, 중요한 건 성질이 다른 두 병을 앓는 사람은 자신 한 명으로, 양쪽 삽화에 다르게 반응할수록 자아만 - P186
분열한다는 점이다. 삽화가 올 때마다 우왕좌왕한다면 매번 삽화의 막강함에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양극성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성질이 다른 두 가지의 손 쓸 수 없는 병이 신들의 전쟁을 일으켜도 부서지지 않는 강력한 자아를 갖는 것이다. 여기에서 강력한 자아라 함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자신이 내다보는 미래를 포괄하는 일관적이고 연속적인 자아를 말하며, 생애를 거쳐 지속되는 성질의 것들을 말한다. 이들의 존재는 인생을 토막토막 내 그 시간을 증발시키는 삽화와 겨뤄야 할 때 유용하다. 그러나 이는 생각만으로 가질 수 있거나 이뤄지지는 않는다. 물론 자기 자신이 제 인생을 하나의 서사로 만들어 서사 내의 연결고리들을 긴밀하고 단단하게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각의 범주에서 하는 작업들은 생각에 스미어 왜곡을 일으키는 정신병에 취약한 점이 있다. 양극성장애인들은 반드시 생각뿐 아니라 현실 세계에 물리적인 토대를 두고 있어야 한다. 설혹 생각이 병증에 지배되더라도 물리적인 것들까지 병이 가로챌 수는 없다. 두 가지 병증이 오가기 때문에 양극성장애인에게는 그에 지지않는 단단한 토대가 필요하다. 파도 한 번에 무너지는 모래성은 100개, 1000개를 쌓아봤자 노동력과 정신력을 소모하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자신의 일관성을 담보해내야 한다. 만약 양극성장애인이 자신의 삶을 매번 더 높은 곳을 향해 지금보다 한 발 나아가는 서사로 구상하고 있다면, 그는 계단을 만났을 - P187
때 기꺼이 자신을 한 발짝 더 딛게 해줄 모든 에너지를 끌어올 것이며, 조증이 오고, 조증의 힘을 빌리고, 추락할 것이다. 그러므로 계속 나아가고 발전한다는 이미지(상승하는 그래프)는 적절하지 못하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예를 들면 자기 집 뒤에 작은 뒷산이 있고 한 시간이면 한 바퀴 돌 수 있다고 상상하는 편이 병에 이롭다. 일정한 시간, 적은 힘으로 하나의 완결된 서사를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수평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고 조증이든 우울증이든, 조증 때 가뿐히 해내든 우울증 때에 몇 시간을 걸려 힘겹게 달성하는 한 바퀴를 돈다는 완결성이 병을 진정시키고, 또 우울 상태일 때에는 이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다행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런 한 바퀴들이 누적되어 양극성장애인의 안정을 담보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그리고 이렇게 쌓인 토대는 병과 별개로 존재한다. - P188
조증일수록 미래를 내다보려 하지 말고 하루하루 완결성을 충족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을 한 장 한 장 완결을 내자.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 밤에 자기 위해 눕기까지를 한 페이지로 완성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다음에 그것의 연속성 아래에서 계획을 세우는 것이지, A플랜, B플랜, 미래로 향하는 열차표를 잔뜩 끊어놓고 열차를 놓쳤다고 자기 인생이 망한 것처럼 느끼는(실제로 조증 시 좌절은 자신의 전부를 잃는 듯한 느낌이다.) 정동을 가지고 좌절하는 건 지나치게 가혹하 - P191
나는 조증은 결단코 사람이 견딜 수 있는 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때로는 생물 같고, 어떨 때는 고양이 같으며 어떨 때는 암흑이나 공기처럼 나를 감싸기도 한다. 그렇게 살다 보면 주변에 아무것도 남지 않고 정신병과 나만 덩그러니 남을 때도 있다. 그러다 우울증이 찾아오면 조증은 원래부터 너라는 존재는 가치가 없었다는 듯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버리곤 한다. 그러면 나는 뭘 하느냐, 긴긴 우울증을 앓으면서 조증이 오기만을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얼마나 가소로운지 나중에야 알았다. 내가 현실 세계에서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 존재임을 확인하고, 현실에 남기로 마음을 정한 뒤에는 조증을 바라지 않았다. 그래도 조증은 온다. 정해진 계절에, 예기치 않게, 여전히 돌발, 급성으로. 완벽하고 아름다우며 힘센 조증도 있지만 지리멸렬한 좀스러운 조증도 있고, 아무 역할도 못하는 것도 있다. 다만 이제는 어떤 열차도 타지 않는다. 적어도 내 어떤 부분은 언제까지고 기꺼이 열차에 올라타 끝까지 가려 하겠지만, 다른 부분은 언제고 내리는 손님 하나 없는 그 역 그 자판기 옆에 식은 종이컵을 들고 앉아 있을 것이다. - P195
정신병과 시간은 밀접한 관계다. 생활 공간, 조건과 환경이 정신병에 영향을 주는 것처럼 시간은 정신병과 병자를 지배하고, 병자는 그 손아귀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정신병은 단절의 병이다. 특히 삽화가 뚜렷한 이들, 중증 우울증의 환자들에게 정신병은 매일매일 잎이 나고 꽃을 피우고 하루 만에 지는 식물처럼 기이한 시간 감각과 더불어 절대적인 단절을 겪게 한다. 병이 없는 사람들은 자가 호흡을 하듯 아주 자연스럽게 시간의 시계와 발맞춰 가지만, 병자들에게는 그 속도가 몹시 느리거나 둔중하고 어떤 경우에는 굉장히 빨라 궤적을 쫓을 수 없기 때문에 일반적인 시간 감각과 다른 일들이 왕왕 발생한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경합할 때 병자들은 그래도 아직 아침에 일어나려 하고, 씻으려 하고, 외출하고자 하며,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자 노력하지만 불행하게도 대개의 경우 병자들이 패배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패인은 사실 단순하다. 첫째로는 자신을 먹이고 씻기고 외출을나가게 하는 이른바 ‘일상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병자의 상황을 극적으로 달라지게 만들 수 없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는 이런 장벽에 부딪혔을 때 병자는 쉽게 단념하기 때문이다. 특히 언제나 내심 자신 - P199
을 이곳에서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도록, 떠날 수 있도록, 자신의 삶을 ‘혁신적‘으로 ‘단번에‘ 바꿀 수 있는 존재를 갈망하는 병자들은 더욱 상심에 빠진다. 그래서 정신병자들은 이사를 하더라도, 룸메이트를 들이더라도, 고양이를 기르더라도, 매일 카페에 가더라도, 학교를가더라도, 출근을 하더라도, 가사를 하더라도 자신의 기분이 궁극적으로 바뀌지 않을 거라는 사실에 좌절하고 만다. 또 이미 더는 생각만으로 현실을 바꿀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마음을 먹으면, 사고방식을 바꾸면 작금의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고 믿기도 한다. 이것은 대단한 함정으로, 한번 ‘우울은 사고방식의 문제‘라는 늪에 빠져버리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다. 홀로 집에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공상하고 있는 이들은 반드시 자신의 상태를 재점검해야 할 것이다. 내 주변의 정신질환자들 중 지나치게 모든 변수를 통제하려 하고, 행동하기 이전에 거듭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이가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통제력을 아득히 벗어나는 사고(accident)가 발생하자 10년 전 발병 이래로 가장 상태가 나빠지고 말았다. 우리는 분명 과거에서 벗어나, 현재에 충실하며, 미래를 예방해야 하지만 셋 모두를 한번에 할 수 없을 경우가 많고 따라서 보통은 현재에 충실한 상태로 출발하는 편이 가장 적절하다고 본다. - P200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자기 전에 핸드폰 등 스마트 기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정말로 중요하다. 다들 경험했을 것이다. 스마트 기기를 사용하는 순간 시간은 새벽이 되고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수면제의 약 기운도 이겨낸 채 서핑의 서핑과 SNS의 SNS를 거쳐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까지 갖가지 탐방을 하다가 어느덧 죽은 듯이 잠들어 오후 느지막이 깨어나는 쓰레기 같은 기분으로 망했네, 중얼거리는그 경험. - P203
하고 싶은 것이 떠오르지 않는 이들을 위해 덧붙인다. 취미는 어떤 장면이고, 그 장면을 향해 뛰어드는 일이다. 그곳은 당신이 고민한다 해서 도달할 수 있는 곳은 아니고, 그토록 진절머리나는 시간을 이번에는 제 손으로 쌓아 만드는 성이다. 당신이 어떤 취미생활에 작은 만족감이라도 느꼈을 때, 그때 시간은 패배한다. 그러니 당신을 가로막는 시간의 행진을 토막 내버려라. 스스로 시간을 쥐고 운용하라. - P211
그가 평생 느껴왔던 결핍과 결여는 돈이 생기자 전부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보였다. 다만 그의 머릿속에는 전자책 100만 원어치, 전자책을 읽기 위한 이북리더기, 이북리더기를 감싸는 보호 케이스, 그것을 넣고 다닐 검은 가죽 가방, 이런 식으로 살 것들이 끊임없이 떠올랐고, 그것은 그가 겪은 가난이 커다란 하나의 구덩이가 아니라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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