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미혼, 중년은 이혼, 노년은 사별." 많은 경우 사실이라 해도 빈약한 설명이다. 특히 중년이 그렇다고 느꼈다. 40세 이상의 중년 1인 가구 중 결혼을 당위로 여기지 않는 비혼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뭉뚱그려도 되나. 더 께름칙하게 느꼈던 건 이 허술한 공식이 혼자 사는 삶에 대한 설명을 결혼의 반대편에만 묶어둔다는 것이다. 결혼을 중심에 두고 그것의 대척점인 주변부에 혼자 사는 삶을 놓은 뒤, 결혼 바깥의 삶이 괜찮은가 아닌가를 측정한다. 결혼의 편에 서서 혼자 사는 삶을 바라보며 취약하다고 단정 짓는다. 마치 결혼이 표준이자 정상이고, 비혼은 일탈이자 비정상인 것처럼. 되레 현실은 거꾸로 아닌가. 비율만 놓고 보면 성인들이 살아가는 방식에서 혼자 살기는 다수이자 주류가 되었다. 2015년 무렵부터 한국의 주된 가구 형태가 - P8
된 1인 가구는 2021년 기준 716만 6,000가구로 전체의 33.4%에 이르렀다. ‘정상가족‘이라 불리는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가구(29.3%)보다 많다. 전체 가구의 3분의 1이 넘을 정도로 흔한 삶의 유형이 여전히 사회적으로 비정상, 소수, 비주류처럼 이야기되는 것은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국내의 1인 가구 담론에서는 중년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1인 가구를 다룬 정책과 담론은 주로 청년을 중심에 둔 ‘당당한 싱글‘이거나, 노인을 중심에 둔 ‘돌봄이 필요한 싱글‘ 위주다. 중년 1인 가구가 등장할 때는 이혼 또는 ‘기러기 아빠‘로 혼자가 되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남성의 사례로 다루어지거나, 새롭게 등장한 사회적 취약 계층으로 여겨진다. 아마 1인 가구 중 이미지가 가장 부정적인 세대는 중년이 아닐까 싶다. - P9
중년 1인 가구, 홀로 나이 들어가는 ‘에이징 솔로Aging Solo‘가 대폭 늘어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혼자 사는 게 과도기적 상태가 아니라 삶의 기본값인 사람들이 나이 듦이라는 과제를 함께 직면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노인 1인 가구는 노년기에 접어든 뒤 배우자와 사별한 경우가 대다수였지만, 이제는 혼자인 상 - P11
태로 중년에서 노년으로 생애 전환을 겪게 될 대규모 집단이 등장했다. 우리가 가본 적 없는 초고령 사회에, 솔로의 조건으로 진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아무리 요즘 자녀가 부모를 돌보지 않는다고 해도 노년에 자립이 어려워지면 중요한 의사결정을 자녀에게 의존하는데, 자녀가 없는 에이징 솔로가 늘어나면 노년과 생의 막바지 풍경도 크게 바뀔 것이다. 에이징 솔로는 결혼에 대한 주위의 압력에서 어느정도 자유로워졌고, 혼자인 삶을 오랫동안 꾸려온 사람들이다. 혼자 사는 성인도 경제적 독립, 주거, 친밀한 관계 맺기, 정서적 안정, 노년의 준비 등 모든 사람이 겪는 생애 과제들을 마주한다. 세상이 비혼인 중년을 취약하고 비정상적이며 비참해질 것이라고 바라보는 이유는 나이 들어서도 혼자 사는 사람들은 이 생애 과제들을 제대로 치러내지 못하리라 예단하기 때문은 아닐까.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그건 결혼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성숙해지고 온전한 삶을 살아내는 과정은 애초에 결혼 여부와 상관없는 일이다. - P12
중년여성의 어려움으로 ‘빈둥지증후군‘을 이야기하고 잘 늙어가는 방법으로 ‘배우자와의 관계 재정립‘을 말하는 사회에서, 혼자 사는 내가 참조할 만한 현재와 미래의 이야기를 찾을 수 없었다. 에이징 솔로의 삶에 ‘없는‘ 것 말고 ‘있는‘ 것, 그들이 경험하는 여정과 마주하는 문제들에 대처하는 방식, 새로이 만들어 가는 관계들이 궁금했다. 있는 듯 없는 듯 취급받는 에이징 솔로의 삶을 가시화하고 싶었다. 款혼자 사는 사람을 정의하는 기준은 다양한데, 이 책에서 말하는 에이징 솔로는 결혼의 경험이 있건 없건 스스로 배우자와 자녀가 없는 상태로 살기를 선택해 현재 그렇게 살고 있는 중년을 뜻한다. 대다수가 1인 가구지만, 친구 등 동거인이 있는 경우에도 배우자와 자녀가 없는 비혼의 중년은 에이징 솔로에 포함했다. - P13
그러나 혼자 살기는 이미 많은 이들이 공통으로 갖는 삶의 조건이 되었다. 그러한 삶의 방식과 그것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제대로 논의되고 있는가? 1인 가구의 급증으로 관련 담론도 증가하는 추세지만, 당사자가 내어놓는 이야기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위기‘이자 공동체가 무너지는 징후처럼 다루어진다. 그런 담론 안에서 자신의 삶이 설명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 P15
세대 간 차이는 비혼 담론의 변화에서도 또렷하게 드러난다. 지은숙 박사가 한국 비혼 담론의 흐름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비혼 1세대는 "1970년대 이후 출생하여 민주화운동 속에서 비판적 사회의식을 길러왔고, 가부장제와 소유 중심의 사회로부터 거리를 두고 공동체적 지향으로 살면서 주로 생활정치와 복지정치의 영역에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의제를 형성해온 사람들이다. 2015년 이후에는 "미투운동,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등을 거치면서 20~30대 여성을 중심으로 온라인에서 새로운 페미니즘의 흐름이 등장"했고 그 속에서 "비혼을 남성과 가부장제를 타격하는 정치적 행동의 수단으로 간주하는 시각"이 탄생했다. 비혼 2세대가 주도하는 이러한 흐름이 등장하면서 비혼의 대중화 시대를 맞게 되었다는 것이다. - P59
한국의 기록적인 저출생 현상의 구조적 원인은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들의 이기심과 페미니즘이 아니라, 뿌리 깊은 성차별과 가부장 문화에 있다. - P73
비혼·비출산 여성은 자신의 아이만 없을 뿐이지, 사회에 무관심하고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존재가 아니다. 되레 사회 참여에 더 적극적인 경우가 많다. 사회봉사단체 등 자발적 결사체에 참여하는 정도를 비교해 보면 남성은 기혼자의 참여가 높고 비혼자는 그렇지 않지만, 여성은 거꾸로 비혼자의 사회 참여가 높고 기혼자의 참여는 낮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즉, 한국 사회에서 가족을 꾸리지 않은 남성은 주관적 삶의 질뿐 아니라 공동체와 결속하는 정도도 낮아진다. 그만큼 자신을 희생하고 뒷받침해 주는 여성의 존재가 남성에게 중요하고, 가족이라는 일차적 사회관계가 ‘관계 자원‘으로서 남성에게 훨씬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 여성에게 아내와 엄마 역할이라는 부담은 공동체 참여를 가로막는 장애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 P76
‘혼자 살면 젊을 때나 좋지 나이 들어 외롭다‘라는 말은 ‘혼자 살면 아플 때 서럽다‘와 함께 ‘혼삶‘의 입구에 - P80
서 사람들을 위협하는 오래되고 불길한 2대 경고다. 이 경고를 뒤집으면 사람들은 외로울까 두렵고, 아플 때 돌봄 문제가 걱정되어서 가족을 꾸린다는 말도 될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 두 문제를 가족 밖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 채, 가족을 만들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혼삶‘에 외로움과 아픔을 덧칠한다. - P81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던 때에 친한 친구들은 다들 결혼해 아이를 키우느라고 만날 수가 없었어요. 고통을 누구와도 나누지 못하고 너무 외로웠죠. 그런데 지금은 혼자 있고 싶을 때와 관계를 맺고 싶을 때를 제가 알아서 결정할 수 있어요. 가끔 외롭더라도, 싫은 사람과 같이 있지 않아도 되는 게 제일 좋아요. 물론 외로움이 정말 문제인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고정관념에 전염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막 너무 즐겁지는 않지만 그냥 혼자 - P82
있는 감정 상태에 사람들이 외로움이라고 딱지를 붙이니까, 이게 외로운 거구나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고 봐요." - P83
1사회적 고독과 고립, 소외를 해결하고 유대를 만들어 내는 방법을 찾는 것은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1인 가구의 증가가 사회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내는지도 주목하고 대응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 두 현상을 뒤섞어 1인 가구의 증가가 사회적 고립의 주원인인 양호도하는 것은 진단이 잘못됐을뿐더러 데이터로도 입증되지 않는다. 어떤 문제든 부정확한 진단과 과도하게 단순화된 서사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 적은 없었다. - P90
병원이 보호자로 법적 가족을 당연하다는 듯이요구해서 법적 근거가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의료법에는 병원에서 관행적으로 사용하는 수술 동의서나 입원 동의서에 관한 세부 규정이 없다. 응급 상황에도 항상 법정대리인이나 보호자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입원할 때 연대보증인을 요구하는 병원의 관행도 법적 효력이 없다. 보건복지부는 2018년 국민권익위원회의 제도 개선 권고에 따라 연대보증인을 세우는 관행을 시정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일부 대형병원에서는 이 관행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연대보증인을 요구하는 민이 - P96
간병원들이 많다. 수술할 때 보호자의 동의서를 받는 관행에 대해서도 보건복지부는 이미 2007년 대한병원협회에 공문을 보내 보호자의 수술 동의서가 없다고 환자의 수술을 지연시키거나 거부하면 의료법의 진료 거부 행위에 해당해 처벌이나 행정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런데도 직계가족인 보호자를 찾고 동의서를 요구하는 관행은 여전하다. 의료사고가 나거나 수술비를 청구할 때 분쟁이 날 것에 대한 병원 측의 우려 때문이다. 사회건강연구소는 2019년 펴낸 연구 보고서 「의료현장에서의 보호자 개념은 다양한 가족을 포함하고 있는가?」에서 "병원의 과도한 ‘보호자 찾기‘는 ‘리스크 관리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이며 "‘환자 중심‘의 사고가 아니라 ‘의료현장의 편의성‘ 중심 사고"라고 짚었다. 이 관행 때문에 1인 가구, 동성 커플 등 소위 ‘정상 가족‘의 틀을 벗어난 사람은 실제 일상을 함께하는 이가 실질적 보호자가 될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 이 보고서는 "이는 단순히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존재 조건이 사회에서 체계적으로 무시되고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뜻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 P97
걱정은 되지만, 다른 건 몰라도 돌봄의 문제는 절대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우에노 지즈코는 ‘팀K‘를 소개하면서 "가족에게 의지할 수 없는 싱글에게는 가족을 대신할 네트워크가 반드시 필요하다. 없다면 노력해서 만들어야 한다"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먼저 해본 사람들이 "절친한 친구가 많을 필요도 없다", "누구나 할 수 있다"라고 한 말에 은근한 기대를 걸어본다. 그런 돌봄 관계망들은 조한진희의 말마따나 "혈연 관계나 친밀한 관계 등으로 배타적 경계를 나누지 않고도 누구나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사회"로 가는 작은 씨앗이 될는지도 모른다. 그 씨앗들이 여기저기에 뿌려지는 광경을 보고 싶다. - P107
"(...) 어떤 일로 힘들 땐, 가령 상사의 말도 안 되는 지시로 화가 났거나 프로젝트 진행이 굉장히 힘들어졌을 때는 사적으로는 별로 안 친밀하지만 그 상황을 같이 겪고 있는 동료가 그 순간엔 둘도 없이 친한 사이가 되어 공감하면서 신세 한탄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렇게 회사에서 힘든 일을 함께 겪으며 서로 위로했던 동료 중엔 제가 회사를 그만둔 뒤 멀어지거나 연락이 끊긴 사람이 많죠. 그렇다고 삶의 어떤 국면에서 가진 그 순간의 친밀함이 피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순간의 친밀감을 여러 사람과 이어가면서 살아가는것 도 삶의 한 가지 방식 아닌가요?"
사람마다 친밀감에 대한 욕구가 전부 다른 것을 두고 남지원은 "친밀감은 식욕과 비슷한 것 같다"라고 표현했다. 충족되어야 하는 최소한의 양은 있을지 몰라도 - P119
어떤 종류의 친밀감을 원하는지는 기질과 경험의 차이에 따라 다르고 색깔도, 총량도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친밀감에 대한 욕구가 클 거고, 결혼해 봤거나 낭만적 사랑에 근거한 친밀한 관계를 맺어본 사람은 그것을 원했던 적이 있으니 그리움, 결핍 같은 게 있겠지요. 그런데 저는 그걸 원한 적이 없어서 그 삶을 몰라요. 제게 필요한 친밀감은 원가족과 친구들을 통해 채워지죠. 제가 겪어보지 않은 관계를 아쉬워하지 않기 때문에 낭만적 친밀감에 대한 욕구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제 옷장에는 제 스타일의 옷들이 있는 거죠. 내가 입어보지 않은 옷을 두고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미니스커트도 입어볼걸 그랬다‘ 같은 식의 생각은 전혀 들지 않거든요." - P120
친밀한 관계가 주로 낭만적 사랑에만 국한된 것처럼 여겨져 온 것은, 낭만적 사랑에 대한 신화가 지나치게 강력한 바람에 그것이 아닌 다른 친밀한 관계의 사례와 대안에 관한 이야기가 빈약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낭만적 사랑은 인간의 본성이라기보다 문화의 산물에 가깝다. 낭만적 사랑은 18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시인들이 사랑을 낭만화하면서 태어났고, 문학을 통해 확산했다. 그런데도 낭만적 사랑을 통해서만 사람이 온전해진다는 신화가 강고해서 다른 유형의 사랑의 중요성이 쉽게 간과된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삶에서 우정이 차지하는 비중이 낭만적 사랑보다 과소평가된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우정에서도 이른바 ‘베프(베스트 프렌드)‘나 ‘솔메이트‘ 등 ‘온리 원‘을 추구하는 경향을 종종 보게 되는데, 이 역시 낭만적 사랑에 대한 신화가 끼친 강력한 영향의 결과가 아닐까 짐작한다. 에이징 솔로가 친밀감을 추구하는 방식은 "식욕이 사람마다 다르듯" 저마다 달랐다. 원가족과 긴밀한 사람도 있고, 친구·공동체·스스로 만든 모임 등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구성하며 친밀감을 충족하는 사람들도 - P122
있다. ‘가장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이 없어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들며 살아간다. 솔로도 친밀한 관계를 원한다. 다만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인 관계를 원치 않을 뿐이다. 가장 사랑하는 한 사람보다 각기 다른 친밀한 관계를 여럿 갖는 것이 삶의 만족도를 더 높여준다는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도 있다. 슬퍼서 위로가 필요할 때, 행복한 일을 같이 나누고 싶을 때, 불안을 누그러뜨려야 할 때 등등 서로 다른 감정을 나눌 각각의 관계를 여러 개 가진 사람이 그 모든 감정을 아주 가까운 소수의 관계에서만 나누는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특정한 감정을 다룰 특정한 관계를 그냥 관계relationships 대신 감정 관계emotionships라 불렀는데, 그런 감정 관계의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는 것이 삶의 질을 더 높여준다고 했다. - P123
서울시에 사는 25~42세의 고학력 비혼 1인 가구 여성 14명을 심층면접한 김민지의 연구에서 원가족과 얼마나 가까운지와 별개로 비혼 여성이 생각하는 가족의 기준은 여전히 "원가족과 그들이 사는 공간"이었다. 연구자는 이들이 "가부장적인 정상가족에 비판적이고 혼자 살기를 통해 정상가족과 거리 두기를 하면서도, 대안적인 친밀성의 모델이 문화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 가족 형성에 대한 전면적 부정과 정상가족의 추구 사이를 오가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 P134
가족이 아닌 친밀한 관계를 말할 때 ‘가족 같은 사이‘, ‘가족이나 다름없는 친구‘처럼 계속 가족을 기준으로 삼아 비교하는 사고방식도 새로운 관계의 상상과 확산을 어렵게 한다. 비혼 연구자인 지은숙 박사는 "공동체나 새로운 주거 형식, 새로운 연대의 방법을 생각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근대가족의 프레임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프랑스 혁명 이후 등장해서 300년 정도 유지되어 온 근대가족 프레임이 정서적 애착을 중심에 둔 삶의 모델이 되어버렸어요. 서양의 근대가족 모델은 커플 중심인 반면, 한국에선 자녀가 있어야 세트가 완성돼요. 특히 여성은 자녀와의 밀착감을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기고요. - P135
오히려 커플 중심 관계는 선택지가 다양할 수 있어서 변화가 빠른데, 한국의 경우 자녀 중심인 근대가족 모델의 대체 불가능성이 너무 강력해서 변동도 느리죠. 비혼인 제 친구들에게서도 나이 들수록 부모에 대한 친밀성의 농도가 더 짙어지는 모습을 봐요. 자기의 역사, 존재를 확인하는 데 가장 많이 의지하고 평생 가장 오래 알아온 존재가 부모니까요. 저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난 사람은 아니지만 이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는 비혼 여성이 나이 들수록 부모와 더 밀착되는 현상을 "수렁"이라고까지 표현했는데, 이 밀착된 관계가 솔로의 부모 돌봄 독박을 합리화하는 도덕적 핑계로 쓰이기도 하니 수렁이라 할 만도 하다. 뒤에서 에이징 솔로의 부모 돌봄 독박을 따로 살펴보겠지만, 기혼인 형제자매가 부모 돌봄을 솔로에게 떠넘기는 일도 잦은 한편, 본인 스스로 부모 돌봄을 자신이 짊어져야 할 책임과 도리라고 여기는 에이징 솔로도 많다. - P136
가족에게서 독립하지 못했다기보다 전략적으로 가족 관계를 활용하는 에이징 솔로도 있다. 혼자가 된 여성 노인이 친척, 자매와 가까운 곳에서 살거나 함께 사는 것이 그런 경우라 할 것이다. 앞서 자신의 노후를 챙기겠다는 조카를 나무랐던 정세연 같은 솔로가 있는가 하면, 인터뷰를 사양했던 한 60대 초반의 비혼 여성은 자신의 집에서 서른이 넘은 조카와 함께 산다. 그는 조카에게 노후를 의탁하고 사후에 자신의 재산을 물려줄 예정이라고 했다. 해외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솔로들이 기혼자보다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더 진지하게 생각하며 넓은 의미의 가족에게 시간과 노력을 많이 투자하는 방법으로 노후를 대비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런가 하면 성장 과정 내내 가족 안의 가부장적 폭력에 시달렸고 가부장제로부터의 탈주와 반격으로 - P138
비혼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가족은 끊어내야 하는 구속이자 극복해야 할 상처다. 에이징 솔로와 가족의 관계는 한마디로 단언하기 어려운 넓은 스펙트럼에 걸쳐져 있는 셈이다. - P139
친구의 수와 관련해 가장 유명한 연구는 인간이 자연스럽게 형성하는 공동체의 규모가 어디에서나 150명에 수렴한다는 ‘던바의 수‘다. 이 수 안에는 여러 층위의 친구들이 포함된다. 원 안에 더 작은 원을 잇달아 그리듯 50명의 ‘좋은 친구들(파티 친구들)‘, 15명의 ‘친한 친구들(저녁 식사에 초대하거나 술집에 같이 가는 친구들)‘, 5명 가량의 ‘절친한 친구들(기대어 울 수 있는 친구들)‘로 좁아진다. 이 중 맨 안쪽의 원, 즉 5명의 절친한 친구가 나이들수록 집중되는 ‘관계의 핵‘이다." 던바에 따르면 이 ‘핵‘에는 친구, 가족, 반려동물, 푹 빠져 ‘덕질‘하는 가수, 신앙심이 두텁다면 각자가 믿는 신 등이 모두 포함된다. 어떤 대상이든 감정적 친밀감을 품고 자신의 내면에 가장 가깝다고 느끼는 대상이면 상관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만 친구가 없어" 하고 좌절할 필요도 없고, 숫자는 잊어도 좋을 것이다. 남지원처럼 영성에 기대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넓고 묽은 우정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 여동생처럼 좁고 진한 우정으로 충분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자신에게 친구가 충분한지 아니면 더 필요한지 스 - P150
스로 진단하는 방법도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마리사 프랑코Marisa Franco는 "당신의 정체성 중 일부가 억눌려 있다고 느끼는지를 스스로 살펴보라"라고 조언한다.
각각의 친구는 우리 안의 서로 다른 부분을 끄집어낸다. 다양한 친구 그룹과 함께하면서 골프를 사랑하는 자신의 이런 면, 꽃을 사랑하는 저런 면 등 다양한 자신의 특성을 스스로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만약 당신의 정체성이 위축되고, 당신 스스로 당신답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다른 유형의 친구가 필요하다는 신호다. - P151
비비가 30대에 처음 만나 50대가 되어 여성 노인 주거 공동체를 준비하기까지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들은 함께 잘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살면서 같이 정체성을 다듬고, 달라지는 생애주기를 함께 겪으며 삶의 파도를 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출산, 자녀의 취학, 졸업, 취업에 맞추어 부부의 생애주기가 변하듯 말이다. 가족 같으면서도 가족 같은 성격에 국한되지 않는 비비의 특징에 대해 마을은 다른 연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족이란 말 말고 다른 말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단어가 없는 게 아쉬워요. - P165
가족에 비교하자면 가족보다 더 긴밀한 게 비비인데. 혈연적인 의미를 떼놓고 봐서는 사실 어느 부분에서는 가족 같은 게 분명해요. 그런데 가족이라고 표현하기에는 한정적인 것 같아요. 가족이라 칭하기엔 친구 같고, 친구 같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가족 같고, 또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동지적인 측면이 있잖아요. 미래를 같이 준비해 가는 사람이니까. 저에게는 가족보다는 훨씬 더 큰 개념으로 자리 잡은 것 같아요. 비비를 중심으로 미래를 상상하기 때문에. 우리 대부분은 원가족에게 잘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는 여기(비비)를 기반으로 상상하고 있는 거죠."
서로의 꼴을 봐주는 공동체
이들은 비비가 크고 작은 일을 함께 겪어가며 긴 세월 유지될 수 있었던 힘으로 "공부와 돌봄과 여행"을, 그중에서도 "공부와 돌봄의 결합"을 꼽는다.
"비비의 한 친구가 암 투병을 하게 됐는데 - P166
그때부터 아픈 몸으로 사는 것을 주제로 같이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친구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하는 공부였죠. 사실 가족이 병에 걸리면 공부를 해가면서까지 이해하려고 하지 않을 텐데, 공동체 구성원이 아프니까 그것이 무엇인지 공부하게 되더라고요. 아픈 친구가 자기 삶에 대해 생각하는 범위와 경험이 우리와 다른데, 아프지 않은 다른 사람은 ‘아프면 병원에 가서 수술받고 나온다‘와 같이 단순하게 생각하다 보니 아픈 몸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경험인지를 몰랐던 거죠. 모르면 아픈 친구에게 점점 더 공감하기 어렵고 ‘정상‘을 자꾸 요구하게 될 수도 있고요. 그래서 병원에 같이 가고 돌보는 수준을 넘어서서 같이 공부하기로 한 거예요. 시간이 좀 지난 뒤엔 다른 친구가 부모 돌봄을 하게 됐는데, 이번에도 부모 돌봄을 같이 고민하면서 공부하고 이걸 담론으로 만들 방법을 생각해 보고 하는 식이었죠. 각자의 생애 경험이 그냥 개인의 경험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우리의 경험이 되고, 함께 문제를 극복할 방법을 만들면서 - P167
지내왔다고 할까요." (마을)
마을의 이야기를 들으며 몸이 서서히 데워지듯 잔잔한 감동이 차올랐다. 비비에서는 누군가 아프면 중도하차하고 아프지 않은 사람들이 먼저 가는 게 아니라, 같이 멈춰 서서 아픈 친구의 일상을 이해하려 공부하며 애쓰고 서로 돌본다. 누군가 부모를 돌보는 부담이 늘어나면 공동체에서 빠지는 게 아니라 ‘부모 돌봄 자조모임‘을 만들어 서로의 고통을 나누고 위로한다. 그렇게 서로를 부축하고 서로에게 기댄다. 봄봄은 "비비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모임으로서 우리가 무엇이 되어야 한다가 아니라 각자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집중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비비는 서로 격려하고 지지해 주는 안전한 관계, 안전한 공간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를 "서로의 꼴을 봐주고 사는 공동체"라는 한마디로 명쾌하게 요약했다. - P168
그런 점에서 "폐 끼치고 다른 사람이 내게 기댈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것에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건 정말 연습이 필요한 일"이라는 주얼의 말에 크게 공감했다. 마을도 "특히나 1인 가구로 오래 살아온 사람이 못하는 말이 ‘도와줘‘라는 말"이라며 거들었다.
"비비를 운영하면서도 우리가 늘 도우면 도왔지 다른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청하는 입장에 처해본 적이 별로 없어서 그 말을 - P169
하기가 어려워요. 하지만 도와달라고 말하면서 살아오지 않아서 그렇지, 도와달라고 하면 누구라도 도와준다고 생각해요. 도와달라고 말할 줄 아는 것이 도와줄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거죠. 그런 게 자기 돌봄이라고 생각해요. 성향에 따라 다르기도 하니까 너무 노력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받을 줄은 알아야 해요. 도와달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가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누군가 손을 내밀고 나를 도와주려 할 때 감사하게 받을 줄 아는 것도 공동체 정신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나는 꽤 오랫동안 독립적으로 살아가고 1인분의 삶을 스스로 감당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그것이 혼자서 모든 것을 알아서 하는 삶을 의미하는 거라면 독립을 협소하게 바라보는 태도라는 생각이 요즘에야 든다. 얼마 전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를 읽다가 작가 이반지하가 "내가 정말 1인분을 다 할 수 있었으면 사회가 필요 없다"라고 단호히 쓴 부분도 생각났다. - P170
우리는 순간순간 어떨 때는 0.8인분, 또 다른 상황에서는 내 깜냥으로 1.5인분을 할 때도 있는 거예요. 그렇게 얽혀서 사는 것이지, 지금 당장 내가 1인분인가 아닌가 꼭 그렇게 따질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순간순간 관계에 따라서 내 역할도 계속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혼자 사는 것은 가능하지만 역설적으로 혼자서만 살아가기란 불가능하다. 관계 속에서 살아가려면 비비 구성원들의 말마따나 "서로 꼴을 봐주고", "폐 끼침을 주고받는" 연습이 필요하다. 내가 잘하지 못하는 일이지만 꼭 연습해야 한다고, 비비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노후 계획 1번으로 마음에 새긴 일이다. - P171
"예전엔 일터의 스트레스가 집까지 고스란히 묻어 와서 먼지처럼 쌓이는 느낌이었는데, 텃밭에 모여 흙이랑 풀을 만지고 잡초를 뽑고 있으면 그 자체가 힐링이더라고요. 비가 오면 비 온다고 좋아하고, 가물면 가물었다고 - P173
걱정하고. 그렇게 우리가 같이 텃밭을 돌봤어요. 같이 김장도 하고 서로 일상을 파고드는 경험을 하면서 우정이 깊어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뿌리내리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더라고요. 셋 다 온전한 성인인데도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온전하지 못하다는 취급을 받고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는 기분이었는데, 이 3평짜리 텃밭에서 뿌리내린다는 느낌을 갖게 된 거죠." - P174
"친구들과의 관계가 텃밭에서 물리적 공간과의 관계 맺기로 이어지고, 이 경험이 마을에서 익숙한 얼굴들과 맺는 느슨한 관계로 확장되면서 마을에 비빌 언덕이 하나둘씩 늘어났어요. 비혼 여성이 안전하게 나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방범용 CCTV가 많은 동네가 아니라, 골목골목 익숙한 얼굴들이 많은 동네라는 생각이 들어요."
관계가 단단해지고 마을에 뿌리내린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는 자신이 바뀌어 가는 걸 느꼈다고 했다.
"2022년 7월에 코로나에 확진됐는데 집에 비타민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텃밭을 같이 가꾸는 친구가 광명에 사는데 자기 집의 - P175
비타민을 다 싸 들고 은평구까지 와서 우리 집 문에 걸어놓고 갔어요. 다른 친구도 택배로 뭘 잔뜩 보내고요. 그런데 예전 같았으면 ‘아냐, 괜찮아, 오지 마‘ 했을 텐데 이번엔 친구가 온다고 하니까 ‘그래, 와줘‘라고 대답했어요. 제게는 그게 큰 변화예요. 제가 기댈 수 있게 된 거죠. 우리가 여행 친구에 그쳤더라면 그런 말들을 하기 어려웠을 텐데, 텃밭을 같이 돌보면서 우정이 깊어졌고, 어느 시점에는 각자의 집을 돌면서 친구가 해주는 걸 그냥 다 받아먹고 와도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괜찮아, 오지 마"가 "그래, 와줘"로 바뀌었다는 말. 나는 이 말이 묘하게 감동적이었다. 자율과 독립을 가치 선반의 가장 높은 자리에 놓고 살아오던 사람이 굳건하게 믿는 상대에게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순하게 기대는 말, 로맨틱한 관계가 아니어도 가능한 사랑의 고백처럼 들려서였다. 아직 "괜찮아, 오지 마" 세계의 거주자인 나도 언젠가는 "그래, 와줘"의 세계로 건너갈 수 있게 될까. 그럴 수 있는 마음의 징검다리를 스스로 만들어 낸 그가, 문득 부러워졌다. - P176
월소득 200만 원이 넘으면 OECD 기준 중산층에 해당한다. OECD는 중산층을 "소득이 중위소득의 4분의 3보다 크고, 2배보다는 작은 사람"으로 정의한다. 즉, 아주 넉넉하지도 않고 몹시 어렵지도 않은, 보통의 경 - P191
제력을 가진 사람이다. 이 기준을 적용해 30여 년에 걸친 중산층의 변동을 계산한 민간연구소 랩2050 이원재 전 대표에 따르면 2022년 1분기를 기준으로 봤을 때, 1인 가구가 월 200만~540만 원(4인 가구는 400만~1,000만 원)을 벌면 중산층에 해당한다. 금액의 범위가 좀 넓다는 느낌이 드는데,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내가 만난 19명의 에이징 솔로 중 3분의 2가량은 이 기준으로 중산층 범위에 들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들이 갖는 미래에 대한 경제적 불안은 소득에 좌우되지 않았다. 훨씬 중요한 기준은 주거 안정성이었다. 뒤에서 주거 문제를 따로 살펴보겠지만, 소형 아파트를 가진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장기간 주거가 가능한 공공임대아파트에서 살거나 전세이더라도 장기적으로 살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한 사람들이 집 없는 고소득자보다 미래에 대해 훨씬 안정적인 전망을 갖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질 좋은 집에서 살 수 있는 권리가 확보되어야 하는 이유다. - P192
노후의 빈곤은 1인 가구의 미래를 넘어서는 문제 - P193
다. 한국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OECD에서 가장 높다. 노인이 받을 수 있는 공적연금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녀가 있는 노인의 상당수는 장기간 자녀의 값비싼 교육 비용을 부담해 왔기 때문이다. 가난한 노인 중에서도 비수도권에서 혼자 사는 여성 노인이 가장 가난하다. 젊어서부터 혼자 살아온 여성 노인보다 생애 내내 가족 뒤치다꺼리만 하느라 교육을 받거나 직업을 가질 기회가 없었던 기혼 여성이 배우자와 사별한 뒤 더 큰 곤란에 처하기 쉽다. 평생토록 자기 자신을 위한 소득과 자산을 축적할 수 없다가 혼자가 된 여성 노인의 가난은,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는 고난으로 이어진다. ‘혼삶‘에 나이·성별·가난이 이중 삼중의 덫이 되는 가혹한 상황에 내몰리지 않도록 우리를 받쳐주는 것이 공공의 역할이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정부가 제 역할을 하는 것을 본다면 가난한 독거노인이 될지 모른다는 에이징 솔로의 불안도 다독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 P194
거의 모든 한국인이 꿈꾸는 ‘내 집 마련‘은 다수의 1인 가구에게는 요원한 일이다. 통계청의 「2022 통계로 보는 1인 가구」에 따르면 1인 가구의 주거 형태는 월세가 42.3%로 가장 많았고 자가가 34.3%, 전세 17.5% 순서였다. 전체 가구의 자가 소유 비중이 57%인 것에 비해, 1인 가구의 자가 소유 비중은 낮은 편이다. 내가 만난 에이징 솔로의 경우 19명 중 5명이 자가 소유자이니 1인 가구 평균보다도 살짝 낮다. 1인 가구의 3명 중 1명이 자가 소유자라는 전체 통 - P197
계도 성별을 구분해 들여다보면 그림이 사뭇 달라진다. 지은숙 박사는 서울시가 2017년 발간한 성인지 통계로 40~50대 비혼 여성의 주거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지표를 추정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성별에 따른 주택 점유 형태를 보면 여성 가구주는 월세, 자가, 전세 순으로 많지만, 남성 가구주는 자가, 전세, 월세 순이었고 자가가 50%를 넘었다. 또 여성 가구주는 20~50대에 월세 형태로 거주하는 경우가 많고, 60대 이상일 경우에만 자가의 비율이 높게 나타난 반면, 남성의 경우 20대만 월세 거주 비중이 가장 높고, 30대에는 전세, 40~60대에 이르면 자가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주거 형태상 아파트에 거주하는 비중은 여성 가구주보다 남성 가구주의 경우가 훨씬 높았다. 이렇듯 주거 상황에서 드러나는 젠더 격차는 일차적으로는 성별 간의 생애 소득 격차를 반영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 가구주 중에 1인 가구가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1인 가구의 주거 빈곤이 젠더 - P198
간의 주거 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분석과 앞에 인용한 통계청의 전체 통계를 종합해 보면, 결국 자가를 소유한 1인 가구는 대부분 남성이거나 남편과 사별한 60대 이상 여성일 가능성이 크고,다수의 40~50대 여성 1인 가구는 주거 빈곤을 겪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 박사는 "1인 가구라는 가족 형태에서 오는 차별, 성차별, 그리고 나이차별이 중첩되어 주거 사다리가 이미 끊어진 한국에서 ‘끊긴 사다리의 가장 밑바닥‘에 중년의 1인 가구 비혼 여성이 놓여 있다"라고 진단했다. - P199
어디서 사느냐 하는 문제는 비단 공간만의 문제는 아니다. 비비는 2010년부터 계속 비혼 여성들과 만나면서 각자가 가진 삶의 주요한 고민을 마주해 왔는데 "많은 경우 그 삶의 종착역이자 해법은 안정된 주거"라고 했다. 이들이 말하는 주거권은 내 소유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세 가지 요건을 갖춘 권리였다.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친구, 서로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는 이웃. - P207
그리고 내가 갑작스럽게 이동할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적정 규모의 집. 이 세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내용의 권리"가 비혼 여성이 바라는 주거권이라고 설명했다. 주거 안정성과 연결이 비혼 여성 주거권의 핵심이라는 뜻인데, 에이징 솔로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친구나 이웃과 가까이에서 살고 싶다는 소망을 품은 사람들이 꽤 있었다. 원하는 형태와 방식은 모두 달랐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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