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를 시작하기 전 나는 그들과 나의 삶이 무관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커피를 좋아해서 공정무역 커피와 아프리카산자들의 삶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깻잎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표정이 어떤지는 몰랐다. 동물복지 제품을 고르며 스스로를 ‘가치‘ 소비자로 여긴 적도 있지만 그 동물을 다루는 손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유기농, 무농약, 친환경, 로컬푸드, 동물복지, 무항생제 같은 표시에만 안심하며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기를 주저한 시간들이었다. 4년이 넘게 이주노동자들을 만나면서 나는 그들이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해 있음을 보았고, 그들의 눈물로 우리의 - P13
밥상이 차려지고 있다는 현실도 알게 되었다. 내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은 건 우리 밥상 위의 인권이다.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그들이 처한 문제를 같이 고민함으로써 사회 전체가 따뜻한 밥상을 차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 P14
사람이 온다는 건 한 사람의 일생이 오는 것이라는 시구를 좋아한다. 이주노동자는 단순히 ‘인력‘이 되어 우리 사회의 노동력 빈칸을 메우러 오는 것이 아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한 보따리 짊어지고 오는 사람들이다. 그 보따리 안에는 삶도 있고, 꿈도 있고, 울음도 있고, 웃음도 있다. 특히 이주노동자의 인권이 있다. 이주노동자의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밥상도 건강하다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 P15
앞서 언급한 컨테이너 2개로 만든 집에 다섯 명의 노동자가 살면 얼마를 기숙사비로 내야 할까? 한 사람당 기숙사비 약 15만 원에 각종 공과금 5만 원을 더해 약 20만 원씩 내야 한다. 열 평 남짓 화장실도 없는 그 집에 고용주는 이주노동자로부터 월세 1백만 원을 합법적으로 받을 수 있고 실제로 그랬다. 단독 주택이나 빈집을 개조해 기숙사를 만든다면, 이는 상시 주거 시설로 간주되어 고용주는 한 사람당 월급의 15퍼센트인 약 3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 전기세, 수도세, 인터넷통신비 등을 합하면 한 사람당 5만~10만 원이 추가된다. 따라서 이주노동자 다섯 명을 고용한 사업주가 농촌의 빈집을 고쳐 기숙사로 제공하면 월세 2백만 원을 받을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서울 한복판에 있는 집의 월세가 아니다. 농촌의 논밭 한가운 - P32
데 다 쓰러져 가는 폐가를 대충 고쳐놓은, 한겨울에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집의 월세가 2백만 원인 것이다. 이주노동자는 월급에 비례해서 기숙사비를 내기에 매년 최저임금이 올라도 월급 인상 액수가 그리 크지 않다. 세입자의 월급이 올랐다고 해서 그때마다 집주인이 월세를 올려 달라고 요구한다고 생각해보라.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주노동자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들은 좁고 더러운 공간에 여럿이 함께 살면서도 어마어마한 월세를 낸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한국인에게 상식적이지 않은 정책은 이주노동자에게도 부당한 정책이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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