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정신만이 혼자 세상을 감당하게 둘 수는 없었다. 반드시 육체를 적당히 혹사해줄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함께 세상에 맞서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 삶을 지속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집 근처 (꺅) 게이 스피닝과 (욱) 부치 웨이트 학원을 차례로 체험하고 나자, 절대로 이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좀더 기존 사회의 전형과 틀을 답습한, 너무 열려 있거나 전복적이지 않은 에너지였다. 대안적이지 않은 시간이 목말랐다. 그러니까 조금만, 정말 조금만 더 정상적인 분위기의 꽉 막힌 운동 사회가 필요했던 것이다. - P16
영상 속 그는 주먹을 날릴 때 팔만 뻗지 말고 허리와 엉덩이를 동시에 비틀어 온몸의 힘과 무게를 주먹에 실어줘야 상대에게 강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 자신만의 무기를 정성 들여 세공해왔던 그는 그 소중한 주먹을 고작 자기 아내의 얼굴을 때리는 데 사용했다. 코뼈가 산산이 부서진 아내는 이후 평생을 비염과 코골이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가 한 TV 프로그램의 캡처 이미지와 함께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와 있었다.
노트북을 잠시 덮었다. 그렇게 퀴어와 페미니즘을 거세하고자 했던 나의 마음에 대해 잠시만 명상. - P19
다시 노트북을 열어 구독을 취소.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던 척, 디지털 복싱의 바다에 다시 한번 뛰어든다. 다시는 운동선수를 깊게 검색하지 말자 다짐한다. 모양만 보자, 모양만. 자꾸만 심연의 페미니즘이 여성 복서를 검색하게 한다. 핵심만 보자, 핵심만. 어쨌든 지금 그냥 막 잘 때리는 방법만을 배우고저 한다. 그 너머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고 간주해내고저 한다.
그러다 결국 깊은 깨달음에 다다른다. 나, 복서 될 수 없다. 나, 조금도 맞고 싶지 않다. 나, 오로지 패고만 싶다. - P20
세상은 예술을 응원할 리가 없었다. 성과를 가져와 누리고 싶을지는 몰라도 예술의, 예술가의 시간을 응원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시간관념으로 돌아가는 세계를 인정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머리, 몸, 감정을 정해진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시간 대비 성과를 쭉쭉 뽑아내야 직성이 풀리는 이 사회의 - P29
노동과 시간의 개념은 예술의 그것과는 좀 다른 결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 셈 안으로 예술이 기꺼이 욱여들어가지 않는다. 세련되고 멋진 세상이 요구하는 적절한 방향으로 몸과 머리를 써 그 대단한 돈을 벌고 집에 돌아온 날이면, 나는 바로 작업에 뛰어들지 못하고 숨을 돌리고 싶어하는 나를 원망했다. 세상 사장님들이 요구하는 효율만큼 창작을 해낼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돈도 예술도 놓치지 않은 채, 나 자신을 충분히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는 일생에서 몇 번 정도 세상과 닿아 있을 수 있을까 생각한다. 횟수가 아니라 면적이라면 어느만큼일까 생각도 해본다. 다른 삶들을 끊임없이 마주치고 있을지는 몰라도 내가 나의 예술이 그들과 정말로 만나고 있나 생각해본다. 접촉면은 사실 기대보다 넓지 않을 수도, 양쪽 다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아주 잠깐일 수도 있다.
나는 내가 삶의 시간 대부분을, 연결되지 못한 채 열렬히 닿고 싶어하는 그 애매하고 서투른, 벤자민 버튼식의 부적절한 상태로 보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택하려는, 혹은 오래전부터 주어져버린 삶이라는 직업은 그런 모양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 - P30
지만 그것은 스물몇 살에게는 참으로 아득한 생각이었다. 아주 슬프고 답답하고 아득한 생각. 처음 카페에서 벤자민 버튼의 이야기를 읽은 지 10여 년이 지났다. 카페는 사라졌고, 나는 아직 예술가로 살아 있다. 시간은 여전히 부딪친다. - P32
사장님이나 다른 알바분들의 대타가 필요한 때는 주로 오늘같은 명절이나 휴가철이었다. 모두가 아는 크고 작은 명절이 돌아올 때마다 나는 꽤 핫한 인력이 되었다. 만약 우리 모두가 정상이었다면, 모두의 가족이 때맞춰 정상적으로 지탱되는 일은 불가능 - P34
했을 것이다. 365일 24시간 편의점이 닫히지 않게 유지하면서, 각 정상 가정의 존폐를 주관하는 되게 보이지 않는 손이 바로 여기 이 비정상이셨다 이 말이다. 정상 가정들은 비정상 가장의 서포트 없이는 가족 행사 하나 말끔히 치러낼 줄 모르는 족속들이었다. 올해도 추석이 다가오자 정상들은 비정상의 스케줄부터 먼저 체크하려 들었다. 나는 약간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해본다. 왜 이렇게 일과 가정을 양립 못하고 이러실까. - P35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조금 반갑다.
산뜻하고 따뜻한 봄 같은 반가움은 아니다. 분명 멀리멀리 떠나왔지만 여전히 같은 맛을 내는 프랜차이즈 햄버거와의 재회같은 반가움이다. 맛있다. 맛없다 등의 감상 영역은 지난 지 오래인채 그냥 그 맛. 그냥 바로 그 맛. 몸속 어디에 묵혀둔 잊지 않고 있던 감각이 자극된 반가움. 그것이 바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만사가 힘들어진다. - P36
세상은 죽고 싶은 사람을 위해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고 싶다는 생각은 곧 참는 생각이 된다. 오줌을 싸갈기듯 저질러버리고 싶지만 꾹 참는 생각이 된다. 온통 살아 있는 것에 둘러싸여 매 순간 얼른 화제를 돌려보려는 의지가 된다. 한편, 그런데, 그건 그렇고, 그나저나 그런 말들을 자연스럽게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어디선가 배운 대로 죽고 싶다는 말을 애써 다르게 표현도 해본다. 지쳤다. 때려치우고 싶다. 배고프다. 피곤하다, 아니 사실은 재가 죽어야지 등등. 이렇게 죽고 싶다를 변주할 수 있으면 어물쩍 살아진다. 다룰 수 있게 된 듯 느껴진다.
살아있는 상태를 잊어야 자연스럽게 살아진다.
죽고 싶어지면 살아 있는 상태를 의식하게 되기 때문에 그때부터 삶이 어색해진다. 문득 내가 살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아, 지금 내가 ‘살‘이구나, 이게 아니면 죽음이겠구나. 그렇게 그 어떤 것보다도 ‘살아 있다‘는 개념에 사로잡히고, 그것을 홱 패대기치고 싶어진다. 그것이 죽고 싶다는 생각이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조금 싸구려이다. - P37
순도 백프로의 다이아처럼 오롯이 한 가지로 빼곡하다기보다 아주 많은, 낮은 픽셀의 불순물들이 죽고 싶다는 생각 옆에 덕지덕지 붙어 있다. 구질구질한 바람들이 너덜너덜 붙어 있다. 꾀죄죄한 고온의 수치심도 끼여 있다.
맛의 속성이나 결과와 무관하게 그때 그 햄버거를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알고 보니 그 맛은 정말 많은 가맹점을 가지고 있어서 삶의 골목 여기저기에 지어져 있었다. 아, 이게 여기도 있었구나 하며 무심코 들어가 사 먹고는, 그래 내가 알던 그 맛이네, 한다. 그 맛을 음미하면, 그 맛은 있다고 해야 할지 편안하다고 해야 할지 그리웠다고 해야 할지 모르게 된다. 가끔 다른 이에게도 그 햄버거 얘길 하고 그도 그걸 먹어봤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같은 햄버거 얘기를 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 P38
매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기 바쁜 퀴어들에게 어른이 귀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우리는 툭하면 고작 5년, 10년 터울의 윗세대 혹은 그 이전 세대를 소환하며 그들에게 퀴어른 노릇을 바라거나 그냥 덜컥 맡겼다. 세상에 조금 먼저 와 살아남은 그들에게 분명 뾰족한 수가 있을 거라 믿었다. 사회와 친족이 철저히 감당을 실패한 원망과 하소연받이 역할을 떠넘겼고, 태초부터 맡겨놓은 지지를 뻔뻔히 요구하는 와중에, 그들이 조금이라도 생색을 내는 것 같으면 가차없이 재수없어하기를 잊지 않았다. 분명 누구에게나 위험하고 어려운 자리에 적어도 나보단 앞서서 방패막이가 되어주길 기대하며 그들의 옆구리를 습관처럼 찔러댔다. 물론 그 모든 것은 너무나 온당하고 그럴 법한 일이었다. 어느 커뮤니티에나 있을 법한 흔하디흔한 세대와 마음의 역동이었다. 하지만 가끔 우리는 우리 모두가 평생토록 온당한 존재가 아니란 사실을 잊는 듯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시민 대접을 해주지 않는 사회에 인간 대접을 해달라 몇 년을 외치다 뒤를 돌면, 어느새 나보다 그닥 어리지도 특출나게 귀엽지도 않은 퀴어놈들이 - P45
떼로 몰려나와 어르신 어르신 하며 인간성과 시대를 뛰어넘는 지혜와 인내를 요구한다. 마땅히 어른 대접을 받아야 할 곳에선 끊임없이 철부지 어린애 취급을 받고, 아직 그 밥에 그 나물이고 싶은 곳에선 갑자기 실제 나이의 몇 배나 되는 선조 노릇을 요구받는다. 한마디로 퀴어른이란 참으로 좃같은 일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지금 건넛상에 앉아 성성한 흰머리를 얹고 꼿꼿이 소맥을 자시고 계신 주름진 분들께 자꾸만 마음을기대는 일을 참아낼 수 없다. 그 한줌의 이들에게, "아, 제발 쫌 죽지 말고 늙기만 하세요!!!" 라고 외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오늘만은 나보다 한 살이라도 많은 이들을 모조리 찾아내 되도 않는 애교와 어리광을 권력처럼 부려대고 싶어진다. 당신들의 죽음은 영원히 이르다며, 해준 것도 없는 주제 특유의 뻔뻔한 어깃장을 놓고 싶어진다.
그리고 또다른 건넛상에서 울음소리로 성별을 가늠할 수 없는, 피자가 살려낸 이들을 본다. 피자가 있어 피자의 장례에 올만큼 늙어낸 사람들을 본다. - P46
촘촘히 벽에 붙어가는 검은 리본의 행렬, 그리고 거기에 적힌 정의로운 이름들을 보며 나와 같은 상에서 밥을 먹는 이들과 절대로 위대해지지 말자는 다짐을 나누고 난 후, 나는 이 모든 사람들 틈에서 언제쯤 죽어도 될지 눈치 게임을 시작해본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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