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그들이 날 ‘진정한 보호자‘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배우자도, 가족도, 친인척도 아닌 ‘그냥 친구‘니까. 그래서 이후 나는 ‘환자와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친구‘라 답했던 일을 내내 후회하게 된다. 그리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보호자의 자격은 무엇인가?‘ - P33
다시 거슬러가 생각해보면 나는 썩 좋은 보호자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의 치료 과정에 함께했지만, 치료 방향을 제시하거나 어떻게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환자가 하고 싶다면 하는 것이 후회가 없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력사는 워낙 고집이 강한 사람이니까, 괜히 그런 문제를 두고 대립하면 스트레스를 받을 테니까. 하지만… 어쩌면 나는 두려웠던 게 아닐까? 내가 주장하고 선택한 방법으로 치료하다 무슨 일이 생기면 원망을 듣게 될까봐? 나는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가 원하는 당근 주스를 만들고 레몬즙을 짜냈다. 환자의 질병을 낫게 해줄 수 없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며,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적극적으로 따르고 소극적으로 주장했다. 력사는 이제 환자니까 서울에 올라와 있어야 한다고 강권했을 뿐,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병원에 다니고 어떤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 P43
토론하지 않았다. 막연히 병원을 신뢰했던 것이라고, 력사의 결정을 믿었던 거라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두려워서 회피했던 것 같다. - P44
력사에게 말했다. 이제는 요양병원을 나와서 마지막을 준비해야 한다고. 그래도 력사는 듣지 않았다. 아니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에게 요양병원은 마지막 선택, 최후의 보루 같은 것이었다. 력사에게 요양병원에서 퇴원한다는 것은 곧 그 선택이 실패했음을, 더 이상 삶에 남은 희망이 없음을 의미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와 친구들은 끈질기게 마음을 다해 력사를 설득했고, 결국 력사는 요양병원에서 퇴 - P47
원하여 서울로 돌아왔다. 그것이 력사가 세상을 떠나기 삼 주 전의 일이다. - P48
그리고 그 모든 것과 별개로, 그러한 상황에서도 환자를 죽어가고 있는 불쌍한 존재가 아니라 동등한 한 인간으로 대하고, 여전히 소중한 친구이며 가족이라고 이야기해주는 그 목소리들이 환자의 존엄을 지켜주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력사의 마지막 순간 우리 친구들은 줌(zoom)으로 모였다. 그때 그들이 건네준 말 한마디 한마디가, 력사가 존엄을 가진 한인간으로서 사망할 수 있게 했다. 정말로 큰 선물이었다고 생각한다. 인간으로서 각자 생각하는 존엄과 품위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자기 신체를 통제하는 것, 어떤 이에게는 효능감과 유능감, 어떤 이에게는 또 다른 것이겠지. 이것은 삶의 순간순간마다 처한 상황마다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명확한 한 가지는, 이 존엄이라고 하는 것을 나 혼자 만들어낼 수는 - P70
없다는 사실이다. 서로의 삶이 존엄할 수 있도록 바라봐주고 말 걸어주는, 기댈 수 있는 옆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함께여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 P71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내 호스피스 병동에 자리가 나서 력사는 친구들로부터 환송받으며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게 되었다. 당시는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병원은 간호·간병을 엄격히 관리하고 제한했고, 보호자는 최대 한 명만 상주할 수 있다고 했다. 이전까지는 어디든 내가 함께였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이번 보호자의 권리는 력사의 어머니가 가져가셨다. 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자식의 마지막을 곁에서 지키겠다는데,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나는 그저 어머니께 힘들면 언제든 교대해드릴 수 있다고 거듭거듭 말씀드리고, 매일매일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며 병동에 들어갈 수 있기를, 가서 력사를 볼 수 있기를 바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력사는 이미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태였다. 이따금 전화 통화를 할 때조차 력사가 엄마랑 24시간 붙어 있어야 했기 때문에 꼭 필요한 용건만 이야기할 수 있었다. 눈치가 보여 둘만의 이야기 같은 건 거의 하지 못했다.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과 력사의 상황을 알 수 없었기에, 이때부터 나는 - P79
갈수록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보지 못하는 공간에서, 내가 모르는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면 어쩌나 매일 전전긍긍했다. 화도 났다. 내가 력사의 배우자였다면, 저 병동에 보호자로 들어가는 사람은 어머니가 아니라 나였을 텐데. 어머니께서도 비록 자식의 죽음이 슬프지만, 자신이 아니라 력사의 배우자가 보호자로 동행하는 게 맞다고 동의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배우자가 아니었을 뿐 아니라 법적으로 아무 관계도 아니었고, 력사가 가족에게 커밍아웃하지도 않았기에 어머니는 우리 관계를 전혀 알지 못하셨다. 그래서 나는 어떤 권리도 주장할 수 없었다. 다행히 력사는 호스피스 병동에 오래 있고 싶어 하지 않았고 력사의 막내 이모가 집을 내주신 덕분에 첫 번째 호스피스 생활은 길지 않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때의 경험은 두고두고 나의 권리 없음을 생각하게 하는 큰 트라우마가 되었다.
력사가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호스피스 임종실에 들어가던 날, 응급실을 통해 력사를 입원시키는데 보호자 한 명만 동행할 수 있다고 했다. 당연히 어머니께서 자연스럽게 함께 들어가셨다. 그렇게 력사와 - P80
어머니를 응급실에 들여보내고, 병원 로비에 앉아 한•참 울었다. 이젠 정말로 마지막일 것만 같은데, 나는 력사와 함께할 수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너무나 무력했고, 두렵고 또 두려웠다. 력사를 떠나보내는 것만도 두려운데, 력사에게 잘 가라는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멀리서 사망 소식을 듣게ㅍ될까 봐 너무나 절망스러웠다. 친구들이 찾아와 넋 놓고 있는 나를 근처 숙소에 집어넣어 주었다. 그렇게 자는 것도 안 자는 것도 아닌 밤을 보낸 다음 날, 력사의 어머니에게 연락이왔다. "내가 간호사 선생님께 말해서 너도 같이 있어도된다고 허락받았어. 얼른 와!" 하늘의 도움인지 인간의 측은지심인지 아니면 그간 동고동락한 나에 대한 어머니의 애정 때문인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력사에게 갈 수 있으니 되었다. 나는 한달음에 병원으로 달려갔다. - P81
6월 9일 저녁, 친구들이 연락해 와 력사와 함께 줌 미팅을 하자고 했다. 나는 전혀 그럴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말했다. 력사는 그냥 자고만 있다고, 아무 반응도 할 수 없다고, 그냥 안 하는 게 낫다고. 친구는 그래도 단호했다. "누가 반응해주길 바란다니. 그래도 력사가 우리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렇게 말하며 력사에게 이어폰이나 꽂아주라고 했다. 그렇게 열린 회의실 제목은 ‘줌으로 ASMR_력사에게‘, 그 소개에는 "력사는 계속 잠을 자고 있어요. 그러나 들을지도 몰라요, 친구들의 목소리를 력사에게 꼭 들려주고픈 친구들의 말을 나지막하게 나누어요. - P86
력사 곁에 있는 캔디가 력사에게 이어폰을 꽂아주고 호스피스실에서 함께 들을 거예요"라고 적어두었다. 속속들이 모인 친구들은 력사에게 안심하라고 이야기하며 편지를 읽어주기도 하고,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우리가 이렇게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은 지금이 마지막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력사에게 건네주는 마음들이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그날 늦은 시간 나도 어머님이 잠드신 틈을 타서 력사에게 소근소근 귓속말을 건넸다. "너를 만나는 동안 나는 정말로 행복했어. 너와 함께한 시간들은 언제까지나 나에게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거야. 불안해하거나 걱정하지 마. 사랑해." 답변도 미동도 없는 력사였지만, 분명 내 말을 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시간은 이토록 차분하고 처절했다. 마지막을 향해 가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하지만 왜 난 그깟 사랑한다는 말을 이렇게 눈치 보고 숨죽여가며 해야 하는 걸까. 서글펐다. 이건 행운인가, 불행인가. 그냥, 지금 주어진 상황에 그저 감사하면 되는 걸까. 한순간도 평온할 새 없이 끝이 오고 있었다.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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