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물
홍은전 지음 / 봄날의책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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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건 고양이 카라로부터 시작되었다.
2019년 카라를 입양하고 그와 함께 보낸 첫여름을 생각하면, 굴속에서 쑥과 마늘만 먹으며 100일을 견딘 곰이 마침내 인간이 되었다는 어떤 신화적 시간을 통과한 기분이다. 인간이 된 곰의 후손인 나는 수천 년 뒤 작은 맹수와 함께 살며 동물을 먹지도 입지도 쓰지도 않으며 100일을 견딘 결과 다시 동물이 되었다.
세상에, 동물이 되었다니.
오버하지 말라고 누군가 코웃음 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하지만 사실이다. 나는 동물이 되었다. 곰이 인간이 됐다는 것만큼 황당한 이야기는 아니다. ‘인간도 동물‘이라는 지루할 만큼 사실인 그것을 비로소 자각한 ‘인간 동물‘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것은 인간의 확장이 - P9

아니라 인간밖에 모르던 세계의 무너짐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며 인간이 동물을 이용하고 죽이는 것은 자연의 섭리‘라고 믿었던 세계가 무너짐으로써, 나의 세계는 빛의 속도로 확장되었다. 이전에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던 목소리들이 쓰나미처럼 나를 덮쳐 왔다. 20여년 전 장애인권운동을 만났을 때처럼, 나는 동물권운동을 만나 이전과 다르게 보고 다르게 듣고 다르게 말한다. 다른 근육과 감각을 쓰게 되었다는 것, 그것은 다시 태어났다는 뜻이다. - P10

하지만 나는 카라와 함께 살며 내가 인간다운 것이라 여겼던 것들이 실은 동물다운 것임을 깨달았다. 자유롭고 싶고 사랑하고 싶고 연대하고 저항하고 싶은 열망과 투쟁 말이다. 인간이 독점해버린 아름다운 가치들을 동물이란 이름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그것은 인간과 동물 모두를 새롭게 정의하는 일이다. 억압받는 자들의 자리에서 세상을 다시 정의하는 것, 그것이 내가 저항하는 장애인들로부터 배운 일이었다. - P11

이제 나에겐 ‘인간‘보다 ‘동물‘이 더 해방적인 단어처럼 느껴진다. 때론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이 좋은비장애인이나 좋은 이성애자가 되고 싶다는 말처럼 낯설게 들린다. 나는 좋은 동물이 되고 싶다. - P12

하지만 이 가슴 시린 이야기의 끝에 테일러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왜 수어를 모르는 침팬지는 외롭게 감금되고, 그렇지 않은 침팬지는 대중적 항의를 불러일으키는가. 언어는 어떻게 그런 권력을 갖게 되었나. 우리가 케이지에서 꺼 - P20

내고 싶은 것은 침팬지가 아니라 언어라는 인간적 능력이 아닌가."
나는 이 질문에 사로잡힌 채 몇 개월을 보냈다.
나는 인권이 짓밟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장애인이나 부랑인 수용소의 생존자 같은 이들을 만나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어이 말하게 하고 그것을 글로 바꾸는 일이다. 삶이 부서진 사람들의 말은 갈가리 찢기고 조각나 있기 일쑤였다. 장애 때문이기도 하고 낮은 교육 수준이나 트라우마 때문이기도 했다. 그 파편들을 모아 거기에 논리와 서사를 부여하는 일, 그래서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게 내 역할이다. 그것은 내가 그들을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기록한 글을 보며 자주 공허함을 느꼈다. 현실의 그들은 ‘짐승처럼‘ 울었는데 글 속엔 ‘인간‘만 보일 때 그랬다.
출구가 필요했으므로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인간의 공감을 얻으려면 인간의 언어를 써야 했다. 인간이란 비장애인이고 그 언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쓰는 서울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파우츠 같다고 생각했다. 언 - P21

어를 통해 누군가의 해방을 도우려는 인간의 모순과 번뇌를 알 것 같다고.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점점 나는 내가 부이였다는 걸 깨달았다. 갇힌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누군가의 고통을 기록하면서 나는 언어가 얼마나 대단한 힘을 가졌는지 알아갔다. 그리고 그만큼 두려움도 커져갔다. 내가 만난 인간들은 내가 가진 언어보다 언제나 훨씬 더 복잡했고 거대했기 때문이다. 항상 출구를 찾아 헤매는 기분이었고 제대로 된 언어만이 그 열쇠라고 믿었다. 나는 점점 더 불안해졌고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해방은 벼락같이 찾아왔다. 단어와 문장, 이성과 공감 같은 것들로 꽉 차 있던 나의 감옥에 작은 고양이가 사뿐사뿐 걸어 들어온 날이었다. 그가 지나는 자리마다 내가 추구했던 모든 인간적인 것들의 권위가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언어가 자라났다. 몸으로 말하고 현재를 살며 서로의 작은 몸짓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동물적 언어. 그것이 미치도록 좋았다.
불안으로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엔 고양이를 쓰다듬 - P22

는다. 그는 몸통 어딘가를 울려 그르렁 그르렁 낮은 진동소리를 낸다. 인간이 이해할 수 없고 언어가 흉내 낼 수 없는 세계가 있다는 걸 받아들이며 잠이 든다. 동물의 해방을 위해 무엇이든 하고 싶다는 마음은 공감이나 죄책감 같은 인간적인 것과 상관이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나는 내가 너무 인간인 것에 지쳤고 동물적인 관계 속에서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해방감을 느낀다. 기쁨만큼 슬픔을 바라볼 힘이 생기고 해방감만큼 책임감이 생긴다. 나는 동물인 것이다. (2020. 10. 11) - P23

그들은 인간이 동물을 감금하고 강간하고 새끼를 빼앗고 살해하는 것은 전혀 당연하지 않다며 그것을 ‘종차별‘이라 불렀다. 몹시 충격적이면서도 익숙한 말이었다. 아니, 익숙했기 때문에 충격적이었다. ‘동물‘의 자리에 ‘장애인‘을 넣으면 그것은 내가 무수히 반복해온 말이었다. 나는 이 놀라운 존재들을 나의 동료들에게 달려가 알려주고 싶었지만 어쩐지 한 마리 짐승처럼 말도 함께 잃은 기분이었다. 그날의 기억이 걸리는 것이다.
3년 전 장애인들은 ‘나는 개가 아니다, 나는 ○○○(이름)이다‘라는 선언을 장애심사센터 건물의 외벽에 붉은 페인트로 커다랗게 쓰는 시위를 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 퍼포먼스가 동물을 차별했다며 문제를 제기했고, 온라인상에서 동물권 옹호자와 장애 인권옹호자 사이에 격렬한 설전이 벌어졌다. 장애인들의 시위 방식이 ‘불법‘이라는 비난은 익숙했지만 우리들의 구호가 개와 - P25

돼지를 무시하고 있다는 공격은 처음이라 무척 당황스러웠다.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없던 사람들에게 불행히도 그것은 또 다른 차원의 ‘짐승 취급‘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지금 개, 돼지에 밀린 거야?‘ 하면서.
그럼에도 나는 이 새로운 적들이 그저 신기했다. 인간이 아니라 ‘개, 돼지‘에게 감정이입 하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과, 그런 입장을 ‘우리를 개, 돼지 취급하지 말라‘ 외치는 장애인들 앞에 드러내는 용기가 놀라웠기 때문이었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이 싸움을 관전했던 나와 달리이 위험한 전장에 뛰어든 양측 선수들은 그날 밤몹시 진지했고 그만큼 상처 입었다.
이제 나는 그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개와 돼지들이 어떻게 살고 살해되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을 되돌려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그들의 편에 서지는 못할 것 같다. 장애인이 어떻게 살고 죽는지 잘 알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를 정말로 어렵게 하는 건 내가 비장애인이라는 사실이다. 한 번도 ‘짐승 취급‘ 당해본 적 없는, 인간임을 입증하기 위해 이번 생을 다 쓰지 - P26

않아도 되는 이미 충분한 인간 말이다.
그의 문제 제기는 옳았지만 나는 그를 옹호할 수 없다. 동시에 나는 우리를 옹호하면서도 우리가 틀렸다고 말하고 싶다. 아니, 나는 둘 모두를 옹호하는 법을 찾고 싶다. ‘장애인도 인간이다‘라고 외치는 인간들과 ‘인간도 동물이다‘라고 외치는 동물들의 사이는 내가 경험한 가장 가깝고도 먼 거리다. 한마디를 꺼내기도 조심스럽다. 장애인들이 수십 년간 싸워서 얻은 자그마한 성과를 짓밟게 될까 봐, 무엇보다 나의 동료들에게 미움받을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짐을 끄는 짐승들》은 이렇게 시작하는 책이다.
"동물 산업 곳곳에 장애화된 몸이 있다. 또한 동물과 장애인이 억압당하는 방식은 떼려야 뗄 수 없다.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동물과 장애를 둘러싼 억압이 서로 얽혀 있다면 해방의 길 역시 그렇지 않을까."
책을 펼치자마자 신이 나서 나는 발을 동동 굴렀다. 관절굽음증이라는 장애가 있는 수나우라 테일러는 어떤 몸들을 열등하다고 낙인찍고 감금하고 때리고 죽일 수 - P27

있는 존재로 바라보는 한 동물해방도 장애해방도 이뤄질 수 없음을 치열하게 보이며, ‘짐‘과 ‘짐승‘으로 제시되어온 이들이 서로를 끌어주며 함께 나아가자고 손을 내민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외치는 인간들과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고 외치는 동물들이 함께 둘러앉아 이 책을 읽고 싶다. 경쟁과 효율, 이성과 언어를 중심에 두지 않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상상하며 서로가 꿈꾸는 세계가 놀랍도록 닮아 있음을 기쁘게 확인하고 싶다. (2020. 11. 8) - P28

자기 고통의 주체가 되어야만 기쁨도 희열도 선명하게 움켜쥘 수 있다고 명애의 삶이 말하는 것 같다. 그는 더 이상 아름다운 풍경을 구경하러 가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더 많은 일상을 원한다"라고 외치며 아스팔트 바닥을 맨몸으로 기어가는 투쟁을 벌이고 노숙을 하고 밥을 굶고 오줌을 참는다. 사람들의 삶은 언제나 짐작과 다르고 짐작보다 더 복잡하고 미묘해서 고유하게 근사하다. (2021. 2. 1) - P46

선을 넘는다는 건 위험한 일이다. 모욕과 멸시가 화살처럼 빗발치고 거대한 동물이 백주 대로에서 총을 맞 - P50

고 살해된다. 그러나 진실을 본 존재는 반드시 선을 넘는다. 그리고 선을 넘은 존재들만이 볼 수 있는 어떤 세계가 있다. 나는 그들로부터 더 아름답고 위험한 세계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목숨을 걸고 탈주하는 비인간 동물과 짐승 취급을 거부하며 인간이 되기 위해 투쟁하는 장애인, 그리고 인간이기를 거부하고 동물이 되기 위해 싸우는 어떤 인간 동물들 사이에서 나는 이 세계를 다르게 감각하는 법을 배운다. (2021. 2. 28) - P51

낮에는 대학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야학에서 수업을 했다. 낮과 밤의 세계가 너무 달라서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어떤 이는 평생 죽을힘을 다해 달려왔는데, 어떤 이는 평생 같은 자리에 누워 창밖만 바라보았다고 했다. 모두가 전력 질주하는 낮의 세계는 강한 사람들로 가득찬 황폐하고 허약한 세계였다. 그와 달리 둥글게 둘러앉은 밤의 세계에는 눈부신 생기와 에너지로 가득했다. 약한 사람들이 단단하게 연결된 아름답고 강한 세계가 나에게 속삭였다.
"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러 이곳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과 나의 해방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 P59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봅시다."
몇 달 뒤 나는 선착순 달리기의 대열에서 빠져나왔다. 임용시험은 보지 않았다. 아무도 이기고 싶지 않았다고 말하면 내가 좀 근사해 보이는데 실은 그 반대였다.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았다. 질 것이 분명한 싸움이었다. 무엇보다 나 자신과 싸우는 일을 그만하고 싶었다. 싸워야 할 대상은 나 자신이 아니라 나를 억압하는 세상이라고, 노들이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 P60

사람들은 비장애인인 내가 장애인운동을 하는 것을 ‘연대‘라고 하거나 다른 이의 해방을 돕는 것이라 여긴다.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장애인운동이란 이 세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목소리이자 이 사회의 설계를 완전히 바꾸는 운동이다. 버스를 점거하고 달리는 자동차를 향해 뛰어든 그들은 내 인생도 아름답게 망쳐놓았고, 그것이 나를 구원했다. (2021. 4. 26) - P61

장애인을 공동체의 짐으로 간주하여 가스실로 몰아넣고 단종을 시행하던 그 과학은 여전히 건재한 정도가 아니라 거대한 산업이 되었고 그 위에서 풍요로운 문명과 인권이 꽃피었다. 어떤 인간도 ‘짐승처럼‘ 살게 해서는 안 된다며 떠나온 그 자리에 인간은 ‘짐승들‘을 남겨두었다. 그리고 그들에겐 역사상 유례없는 학살이 자행되었다. 거대한 학살보다 끔찍한 것은 거대한 출생이다.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이 불의와 폭력이 그들의 숫자만큼 태어난다. - P65

중증 장애를 가졌어도 사랑과 지지를 듬뿍 받고 자라 - P88

면 영희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나 보다 생각하던 중이었는데 영희는 이렇게 말했다.
"밤마다 울었어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법을 모르겠더라고."
살아 있는 인간에게 그 이상의 고통이 있냐는 듯이 영희는 벌써 몇 번째 그 ‘방법이 없다‘는 소리를 반복하고 있었지만, 비장애인으로 살아온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한 채 물었다.
"낮엔 동생들의 숙제를 그렇게 열심히 해주던 언니가 밤만 되면 죽고 싶어서 울었다고요?"
나는 영희의 동생도 아니면서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영희가 주저 없이 대답했다.
"그건 내 것이 아니잖아요."
그 말은 뜨겁고도 서늘했다.
"나는 그렇게라도 해서 나의 존재와 쓸모를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아요." - P89

억압과 통제가 싫어서 제도 바깥으로 끊임없이 탈주하던 그는 이제 방향을 바꿔 제도 안으로 난입한다. 철로로 내려가 지하철을 막고 도로로 뛰어들어 버스를 세운다. 자신을 밀어내는 세상 속으로 불청객처럼 들이닥치는 것이다. 전반전의 목표가 자유라면 후반전의 목표는 평등, 전반전의 생존 기술이 담치기였다면 후반전의 그것은 점거 농성이다. 경석은 그런 방식으로 많은 제도를 만들어왔지만 그가 정말로 바라는 건 제도 안의 한 자리가 아니라 안과 밖의 경계를 뒤흔드는 것이다. 누가 한 인간을 쓸모없는 존재로 규정해 격리하는가. 무엇이한 인간을 능력 없는 존재로 낙인찍어 추방하는가. - P95

먹고사는 일이 불법인 그는 존재 자체가 범죄였다. 돈을 벌 방법이 없는 사회에서 돈을 벌겠다고 나선 장애인은 어떻게 해도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다. ‘병신‘들에게 허락된 노동은 구걸뿐이었다.
한 인간이 자기 자신을 불태우기로 마음먹는 어떤 밤을 생각한다. 그의 저항을 지켜보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은 이 고통스러운 의식을 절대 실패하지 않겠다는 의지처럼 느껴져 더욱 무섭고 슬프다. 고백하건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기가 버거운데 죽은 사람들의 얘기까지 꼭 들어야 할까 생각했었다. 그랬던 내게 시장 바닥에 엎드려 수세미를 팔던 최정환이 기어서 다가왔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2022년 출근길 지하철 바 - P133

닥을 기며 장애인 권리 예산을 요구하는 장애인 활동가의 모습과 겹쳐졌다. "그건 당신들 사정이고 왜 우리가 피해를 입어야 돼요?" 하고 당당하게 말하는 ‘죄 없는‘ 시민들의 자리에 나는 앉아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이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어마어마한 특권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2022. 6. 5) - P134

2005년 소연은 한국 최초로 장애인 시설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인권 실태를 조사했다. 소연을 압도한 건 이런 것이었다. 누워서 생활하는 중증 장애인에게 뭐가 제일 힘드냐고 물었을 때 그는 천장을 바라보며 - P155

대답했다.
"나한테만 주스를 안 줘요."
소연이 다시 물었다.
"뭘 안 준다고요?"
그가 서글픈 얼굴로 말했다.
"간식이 나올 때 혼자 화장실에 갈 수 있는 사람들한테는 빵도 주고 주스도 주는데, 나한테는 아무것도 안 줘요."
소연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또 다른 남성에게 직원들이 어떻게 부르냐고 물었을 때였다. ‘반말‘ 정도를 예상했으나 돌아온 답은 이것이었다.
"모르겠어요. 20년 동안 한 번도 이름을 불려본 적이 없어요."
현재의 소연이 17년 전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진 채 내 이름을 불렀다.
"은전아, 그런 삶이 상상이 가니?"
그해 겨울 소연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 왔다. 전남 영광의 시설에서 만났던 꽃님이었다. 그는 다짜고짜 말했다. - P156

"나, 나갈랜다. 네가 도와줘야겠다."
꽃님은 누워서 생활하는 중증 장애인이었고 바깥엔 그가 살아갈 수 있는 아무런 사회적 환경도 마련되지 않았다. 소연이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뭐, 뭐, 뭘 도와요?"
꽃님이 주저 없이 말했다.
"일단 집이 있어야지. 나 밥 먹고 화장실 가려면 네가 도와줘야지. 그리고 나 먹고살려면 네가 돈도 줘야지."
소연은 꽁꽁 얼어붙은 채로 솔직하게 말했다.
"언니, 집, 없어요. 나오셔도 누가 도와줄 수도 없어요.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면 돈이 나오는데요, 그것도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없어요. 그런데도 언니가 나오시겠다면요......."
소연은 침을 꿀꺽 삼킨 뒤 말했다.
"최선을 다해 알아볼게요."
꽃님이 생각해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한 달 후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그래도 나 나갈랜다." - P157

6개월 뒤 꽃님은 서울에 도착했다. 활동 지원 서비스가 없던 시절이었다. 소연은 꽃님의 활동 지원을 할 사람을 구하느라 사돈의 팔촌까지 전화를 돌렸다. 그럼에도 공백은 생겼고 그 공백은 꽃님에게 커다란 공포였다. 혼자 있다 불이라도 나면 바로 죽을 것이다. 소연은 "언니, 24시간 다 채워주지 못해 미안해" 하면서 울었다. 꽃님은 "그럼 네가 오늘 자고 가면 안 돼?" 하면서 울었고, 소연은 "언니, 나도 집에 가야지, 만날 같이 잘 순 없잖 - P158

아" 하면서 울었다. 꽃님이 신경질을 버럭 내며 "네가 나오라고 했잖아!" 하면서 울면 서운해진 소연도 "우리가 다 해줄 수 없다고 했는데 언니가 나왔잖아" 하면서 울었다.
두 사람이 혼신의 힘을 다해 부둥켜안고 우는 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면서도 뜨거워진다. 모든 탈시설엔 눈물이 녹아 있다. 탈시설운동은 지역사회에 존재할 권리조차 빼앗긴 이들의 존재 투쟁이고, 그 투쟁이 한국사회의 가장 밑바닥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장애인은 무능하며 그런 이들의 탈시설을 ‘범죄‘라고 모욕하는 이들에 맞선 그 모든 탈시설은 그래서 혁명이고, 탈시설한 장애인 한 명 한 명이 모두 혁명가다. 그 어렵고 대단한 일을 해낸 이들을 어떻게 사랑하고 존경하지 않을 수 있느냐는 소연을 나 역시 사랑하고 존경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2022. 11. 6) - P159

비대칭의 몸 위로 모욕과 혐오가 빗발친다.
"병신이 벼슬이야?"
"이러니까 동정을 못 받지!"
문명인들이 이토록 거칠어진 이유는 지각을 하면 큰일 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먹고사는 주제에 이렇게 남한테 피해를 주면 안 되죠!"
20분을 늦은 여자가 20년을 갇혀 산 여자에게 자신이 - P169

입은 피해를 보상하라고 핏대 세우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는 또 다른 여자가 고개를 숙인 채 눈물 흘린다. 다른 쪽에선 경찰과 실랑이하다 넘어진 장애인을 어떤 남자가 쇼하지 말고 빨리 일어나라며 가차 없이 끌어당긴다. 그리고 어른들의 아수라장 속에서 한 소년이 휴대전화를 꺼내 높이 치켜든다. 화면엔 "장애인의 시위를 지지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전장연은 지하철이라는 일상의 공간을 단번에 한국 사회의 가장 논쟁적인 무대로 만들었고 놀랍게도 시위는 1년 동안 지속되었다. - P171

"자기 인생이 기록될 만한 가치가 있다는 높은 자신감은 어떻게 생기는 거예요?"
뜻밖에 규식의 대답은 ‘자기 인생이 얼마나 특별했는지‘가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언어 장애가 있다는 건 단지 남들보다 느리게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규식이 입을 열면 노인들은 혀를 끌끌 찼고 식당 주인들은 밥을 주지 않고 쫓아냈다. 20여 년 동안 온갖 투쟁을 이끌어온 대표적 활동가였음에도 그에게 마이크를 잡을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규식은 생애 내내 이야기를 억압당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권리인지 뼈저리게 알았다. 이야기한다는 것은 타인과 관계 맺는 일이고 우정을 나누는 일이며 그들로부터 날마다 배우고 성장하는 일이라고, 규식 - P180

이 말했다.
작년에 규식의 동료들이 그의 자서전을 함께 쓰기 위해 팀을 꾸렸다. 그들은 규식과 끝없이 이야기하면서 마침내 규식의 생애를 완성했다. 이 책은 한국 사회에서 한 번도 등장한 적 없는 중증 뇌병변 장애인의 생애사이면서 동시에 ‘이야기할 권리‘의 탄생을 알리는 아름다운 이야기책이다. 2023. 3. 5) - P181

"장애인도 인간이다. 이동권을 보장하라!"
내가 충격을 받은 건 장애인의 열악한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 때문이었 - P184

다. ‘장애인도 버스를 타자‘라는 언뜻 소박해 보이는 구호는 실은 장애인을 배제한 이 문명 전체를 문제 삼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고작 버스‘조차 탈 수 없는 불구의 몸으로 거대한 세상에 맞선다는 건 얼마나 답이 없는 일인가. 그러니 사람들은 문제를 보고도 문제를 덮거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며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2001년 내가 만난 사람들은 놀랍게도 그 모든 것을 문제 삼고 실패할 것이 분명한 싸움을 시작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저항하는 장애인들에게 둘러싸여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배웠다. 우리는 서지 않는 열차를 멈춰 세웠다. 당장 가야 할 길이 막힌 사람들이 길길이 날뛰며우리가 법을 어겼다고 비난했다. 참 이상한 말이었다. 장애인은 어길 법조차 없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한 발짝만 내디디면 벼랑 끝인 이들에게 이 사회는 신호를 지키라고 했다. 그러나 선을 넘지 않고서는 절대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열차를 막았고, 동시에 어떤 죽음을 막았다. 우리는 누군가의 이동을 방해했고, - P185

동시에 차별과 배제를 방해했다. 우리는 선량한 시민들의 발목을 잡았고, 아프고 늙고 가난한 사람들을 버리고 폭주하는 야만적인 사회의 발목을 잡았다.
수억의 벌금을 내고 누군가는 구속되었지만 그렇게 우리는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새로운 사회의 법과 제도를 만들어왔다. 그 기록을 묶어 책 《전사들의 노래—서지 않는 열차를 멈춰 세우며》(오월의봄)를 냈다. 전장연의 일원으로 살았다는 게 인생의 자부심인 내가 우리의 역사를 기록할 수 있어 큰 영광이었다. 많은 사람이 읽어주길 바란다. 기록되었으므로 잊히지 않을 것이다. (2023. 4. 2) - P186

"여기 너무 싫어요, 화가 나요"라는 말을 듣고 싶었지만 기어이 "여기 좋아요. 내가 다녀본 병원 중에 제일 좋아요"라는 말만 들었다. 나는 속으로 ‘여기 병원 아니에요. 당신은 15년이나 갇혀 있었고, 여기서 죽을지도 몰라요. 정신을 차려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그건 실행 가능성이 전혀 없는 희망고문일 뿐이었다. 1년에 한 번 카드를 내주고선 돈을 뽑게 하는 그런 프로그램을 두고 ‘사회 적응 훈련‘이라고 말하는 요양원 측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할 수 있는 말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빠르게 깨달은 나는 압도적 무기력에 투항해 그녀의 희로애락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그래,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까. 이 안에도 기쁨이 있고, 불안이 있고, 슬픔이 있고, 또 희망도 있겠지. 바깥세상의 잣대로 이들의 삶을 평가하는 건 부당하고 무례하고 오만한 일이라고 짐짓 반성도 하면서. 언제 희망을 느끼냐는 질문에 우쿨렐레를 어제보다 잘하게 되었을 때라거나 언제 고마움을 느끼냐는 질문에 아버지가 ‘면회‘를 - P203

와줄 때라는 대답을 들으며 그 안의 삶에서도 일말의 긍정적인 면을 찾으려는 그의 노력을 존중해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내가 몰입에 실패하고 정신이 번쩍 든 순간은 김진숙 씨의 동생들이 찾아오지 않는다기에 내가 별 뜻 없이 동생들 보고 싶으세요, 하고 물었을 때였다. 그녀가 아무 말 없이 한동안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를 꿰뚫는 듯한 그녀의 눈빛이 점점 매서워지는가 싶더니 한순간 눈물이 차오르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럼, 내가 맏이인데, 동생들이 안 보고 싶겠어요?"
나는 갑작스러운 그녀의 태도 변화에 당황해 황급히 고개를 떨구었다. 그녀의 말엔 슬픈 분노 같은 것이 서려 있었다. 당연한 말 같지만 ‘시설병‘*의 존재를 알고 있다 해서 시설병을 맞닥뜨리는 순간에 그것이 시설병인 - P204

줄 바로 알아챌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는 그녀가 엄청난 비극을 아무렇지 않은 듯 평온하게 읊조리는 그 이상한 불일치를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러다 그녀의 말과 표정이 처음으로 일치한 순간, 뒤늦게 그것이 시설병이란 걸 깨달았다. 시설병은 생각보다 훨씬 기괴해서 몸서리가 쳐질 정도였다.
"나가고 싶으세요?"
마지막 질문이었다. 그녀가 여전한 평온함으로 주저없이 네, 하고 대답했기 때문에 나는 그만 울고 싶어졌다. 그녀가 조금 지친 듯 말했다.
"나가고 싶다고 계속 말했어요. 그런데 여기 오래 살아야 한대요. 아버지는 늙었고 동생들하고는 같이 살 수 없대요."
그렇게 듣고 싶은 말이었는데 막상 듣고 나니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한마디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P205

농업혁명의 일부로서 인간 진보의 핵심이라고 여겨졌던 가축화의 디테일을 아는 건 매우 중요하다. 차별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동물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이 사회의 토대가 되고 자연적 질서로 인식되면서 어떤 폭력과 무자비함이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면 동물뿐 아니라 인간까지도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다루게 된다. 바로 인간 노예제이다. 노예제는 동물을 예속화하는 가축화가 인간으로 확장된 것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인간이 미개한 동물을 지배하는게 마땅하듯 동물처럼 미개한 인간을 지배하는 것도 마땅한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정복하고 싶은 인간들이 생기면 그들을 동물로 칭했다. 인간을 동물로 부르는 것 - P229

은 언제나 불길한 징후, 대량 학살의 징후다.
(...)
동물의 가축화는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종차별로 이어지고 그것은 어떤 인간이 다른 인간들을 ‘동물 같다‘고 낙인찍어 지배하는 인종차별로 이어진다. 이 책의 1부를 읽는 동안 1만 년이 흘렀다. 족쇄를 차고 새끼 - P230

를 빼앗기고 낙인찍히고 거세당하고 도살되는 동물의 모습과, 동물이라 칭해진 인간들이 동물처럼 낙인찍히고 거세되고 도륙당하는 모습이 마치 릴레이 달리기를 하듯 계속 이어진다. 어느샌가 그 순서와 구분이 모호해진다. 모욕과 도륙을 당하는 존재들을 보며 그 끔찍함에 몸서리를 치면서도 내가 충격을 느끼는 것이 인간의 죽음인지 동물의 죽음인지 헷갈리는 혼돈, 인간과 동물이 계속 겹쳐 보이는 환시를 느끼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저자가 원하는 일일 것이다.
(...)
산업화 이후 이 착취는 그야말로 폭주하기 시작한다. 동물 착취와 인간 착취는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살피는 2부는 이렇게 시작한다.
"아우슈비츠로 가는 길은 도살장에서 시작되었다." - P231

역사는 진보한다고 믿었다. 그 역사에 동물이 포함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게 됐다. - P242

어떤 앎은 나에게 들어와 차곡차곡 쌓이고 어떤 앎은 내가 쌓아온 세계를 한 방에 무너뜨린다. 전자는 나를 성장시키고 후자는 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간다. 새로운 세계에 들어섰을 때 나는 연신 감탄하며 동시에 이렇게 읊조린다.
"온통 잘못 알고 살아왔군."
"나는 아무것도 몰랐던 거야."
나에겐 이런 이동의 순간이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19년 전 노들장애인야학을 만났을 때이고, 두 번째는 1년 전 고양이 카라를 만났을 때이다. 두 사건은 18년을 사이에 두고 일어났지만 나에겐 거의 똑같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 몸의 반응이 그것을 말해준다. 멀미가 날 것 같은 상태가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노들장애인야학을 만난 후 나는 줄곧 장애 인권의 현장에 있었 - P243

다. 그리고 요즘 두 세계 사이를 오간다. 하나는 ‘장애인도 인간이다‘라고 외치는 인간들의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도 동물이다‘라고 외치는 동물들의 세계이다. 이것은 내가 경험한 가장 가깝고도 먼 이동이다. - P244

몇 년 전 장애인들은 ‘나는 개가 아니다, 나는 OOO(이름)이다‘라는 구호를 장애등급심사센터 건물의 외벽에 커다랗게 쓰는 시위를 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질병수당을 받지 못했던 주인공이 지원기관에 항의하며 했던 행동을 오마주한 것이었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와 함께 이 퍼포먼스는 제법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이 시위 기사 아래에 동물권을 옹호하는 어떤 사람이 불쾌함을 표현하며 ‘개와 소, 돼지는 그렇게 살아도 된다는 겁니까?‘라고 공격적인 문제 제기를 하면서 댓글 창에서 격렬한 논 - P246

쟁이 벌어졌다. 그때 나는 상대편에 있는 사람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인간이 아니라 개와 소, 돼지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런 자신의 입장을 ‘우리를 개, 돼지처럼 취급하지 말라‘고 외치는 장애인들, 그러니까 우리 사회에서 가장 차별받는 존재들 앞에서 드러내는 저 용기가 그저 놀라웠다.
몇 년이 지나 이제 나는 그의 마음을 안다. 개와 소, 돼지들이 어떻게 살고 또 살해되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을 되돌려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이다. 장애인이 어떻게 살고 죽는지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나를 정말로 어렵게 하는 건 내가 ‘그냥 인간‘이 아니라 ‘비장애인‘이라는 사실이었다. 한 번도 짐승 취급을 받아본 적 없는 사람인 것이다. 그의 문제 제기는 정당하지만 나는 그를 옹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동시에 나는 우리를 옹호하면서도 우리가 틀렸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수십년간 싸워서 만들어낸 자그마한 성과를 짓밟게 될까 두려웠다.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러웠다. 두 세계 사이를 - P247

연결할 언어가 나에겐 아주 절실하게 필요했다.
(...)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동물산업 곳곳에 장애화된 몸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또한 동물의 몸이 오늘날 미국에서 장애를 가진 몸과 마음이 억압당하는 방식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동물을 둘러싼 억압과 장애를 둘러싼 억압이 서로 얽혀 있다면, 해방의 길 역시 그렇지 않을까?"
"비인간화된 사람들(장애인들을 포함해)에게는 동물화에 맞서면서 자신들이 인간임을 주장해야 하는 절박한 욕구가 있다. 이런 도전은 절박하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어떻게하면 인간의 동물화라는 잔인한 현실과 동물 멸시에 맞 - P248

설 필요성이 양립할 수 있는지 묻는 것,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우리 자신의 동물성을 자각할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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