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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더 피플 - 복수하는 사람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7월
평점 :
한국은 지금 바이러스와의 싸움이 한창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로 사람과 사람간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공기로 인한 전파 감염의 우려에 대비해 마스크 착용을 필수화하고 있다. 손 씻기 권장과 각종 모임을 자제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과의 접촉. 누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연 된 확진자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일상생활을 해 나가야 하고 돈을 벌고 집 밖을 나갈 수밖에 없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관계를 통해 삶을 구축해 나가야 하는데 그 통로가 막혀 버렸다.
막연한 공포와 불안감은 인간을 더욱 가시 돋치게 만들고 서로를 불신하며 타인에 대한 미움이 증폭게 만든다.
만약 일생일대의 중요한 일을 해야만 하는 순간 죽음의 그림자가 언제 어디에서 다가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떠한 사람도 믿을 수 없다면 어떻게 할까? 상상만으로 그 불안하고 초조함에 심장이 멎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까?”
책을 두르고 있는 띠지에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드는 문구가 있다.
복수와 관련된 이야기라고 어렴풋이 알고 읽어 내려간다.
소설의 시작은 어느 소녀가 누워있는 병실을 연상케 하는 곳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게이브’는 아내와 딸이 있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일을 마치고 집에 귀가하는 고속도로에서 자신의 딸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여자 아이를 보고 그 누군가의 차를 쫒아 달려간다. 그것이 그가 마지막으로 본 딸 ‘이지’의 모습이 된다. 하루아침에 아내와 딸은 집에서 주검으로 발견되고 딸의 모습을 사건이 일어난 시간에 다른 곳에서 목격한 게이브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3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 단순 아동 실종 사건인 줄 알았지만 살인 사건 이였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죽음에 게이브는 자신의 딸을 찾아 바람처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생활한다. 그러다 오랜 슬픔과 지친 삶에 희망을 잃어버리고 스스로 목숨을 가볍게 하려던 그 순간 사마리아인을 만나게 된다. 우연인 듯 필연인 듯 그와 알고 지내면서부터 그날의 새로운 사실들을 찾게 된다.
실종은 죽음과 다르다. 어떻게 보면 더 나쁘다. 죽음에는 끝이 있다. 죽음에는 슬퍼하는 시간이 허락된다. 추모하고 촛불을 켜고 꽃을 놓는 시간이. 떠나보내는 시간이.
실종은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는 림보다. 당신은 오도 가도 못하게 발목이 잡힌다. 지평선 위로 희망이 희미하게 어른거리고 절망이 콘도르처럼 맴을 도는 낯설고 암울한 세상 안에서. -p27-
등장인물은 그리 많지 않다. 사건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장인 해리와 장모 에벌린.
프랜은 차갑지만 책임감이 강하고 강인한 여성으로 앨리스라는 딸과 함께 어딘지 모를 안전한 곳을 찾아 떠돌아다니고 있다. 케이티는 샘과 그레이시의 엄마로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밥벌이를 하느라 힘들게 휴게소에서 일하고 루는 그녀의 여동생으로 일 나가있는 동안 아이들을 돌봐준다. 샬럿 해리스는 이사벨라의 엄마로 아주 부유한 미망인이다.
게이브가 십대 때 실수로 차 사고를 냈는데 그때 피해자로 소설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식물인간 소녀 이사벨라이다. 옆에서 오랜 세월동안 가정부와 간호사 역할을 맡고 있는 미리엄은 자신이 맡고 있는 일에 흐트러짐 없이 완벽함을 추구 한다.
사건과는 서로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로 그들의 생활 하나하나를 각기 다른 장면으로 보여준다. 게이브는 사건의 전말을 적극적으로 나서서 찾기 보단 누군가에 의해서 떠밀리듯 쫒아가기 바쁘다. 연관성이라곤 전혀 없는 주변의 사람들의 모습과 알듯 말듯 하나씩 들어나는 실마리들이 퍼즐 조각을 맞추듯 판이 완성되어 간다. 소설의 배경은 고속도로와 집 위주로 공간의 이동이 거의 없고 인물의 특성이 크게 드러나지 않아 살인 사건이 일어난 거 말고는 인상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 속에서 일어나는 뭔가 꺼림직하고 궁금증을 자아내는 사소한 일들이 사건을 풀 수 있는 열쇠가 된다. 작가의 치밀하고 탄탄한 구성에 한 번 빠져들면 걷잡을 수 없이 페이지를 넘겨가게 된다. 가독성이 좋으면서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이어지게 써내려가서 필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긴장감을 그대로 유지하며 끝까지 페이스를 놓치지 않고 결말에 가서 시원하게 터트리는 이야기 구성에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우리는 죽음과 관련해서 간과하는 부분들이 많다. 무엇보다 피비린내 나는 처참한 죽음이 그렇다. 일단 그런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내가 아는 사람에게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우리는 현실을 부정하며 지낸다. 나는 다르다고, 특별하다고 맹목적으로 믿는다. 모든 나쁜 일은 비껴가게 만드는 신비의 역장이 나를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p101-
‘디 아더 피플’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게이브에게 일어난 많은 일들이 주변 사람들과도 연관되어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지게 되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대리 복수극의 숨겨진 얼굴이 드러난다. 이 세상에는 죄를 범하고도 제대로 벌을 받지 않거나 너무 가벼운 처벌로 끝나는 범죄자가 너무 많다. 억울하고 분한 피해자들 혹은 그 가족들은 평생을 가슴에 상처를 입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는 절대 죄인의 죄를 제대로 심판받지 못하지만 테두리 밖에서 이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흔적도 남기지 않고 완벽한 복수를 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이러한 물음에 ‘네’, ‘아니오’ 를 단숨에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너무나 달콤한 유혹이지만 그 넘어 에는 그에 응당한 또 다른 복수가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상처받은 자들의 고통과 죄를 지은 자들의 뻔뻔하게 잘 사는 모습의 대비를 통해 우리는 이러한 복수극에 더 매료가 되는지도 모른다.
단순한 사건인데도 살을 덧붙이고 모양을 내고 맛을 어떻게 내는지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소설의 포인트는 줄거리가 아니라 작가가 독자들을 어떻게 손에 쥐고 마음대로 주무르는지, 작가의 의도대로 얼마나 자신도 모른 사이에 사건의 진실을 알기 위해 게이브와 함께 새로운 증거와 사실들을 찾아 나서고 결국에는 갈피를 못 잡은 체 작가가 답을 쥐고 펼쳐 보이는 순간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생각지도 못한 결말과 반전 스토리가 소름끼치도록 재미를 더해준다. 빠른 전개에만 집중했다면 크게 와 닿는 부분이 별로 없었을 것 같다. 소설 곳곳에서 보이는 철학적인 물음들과 삶에 대한 성찰적 이해가 스릴러물이지만 절대 가볍게만 읽을 수만은 없게 만든다. 초자연적이고 비현실적인 분위기만을 묘사한게 아니라 현실성이 반영된 작품이라 우리 주변의 누구의 이야기라도 되는 듯 주의 깊게 그 이야기를 듣게 된다.
C.J 튜터는『초크맨』과『애니가 돌아왔다』라는 작품을 통해 ‘괴물 작가’라고 불리게 되는데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호평을 받으며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고 한다. 나에게는『디 아더 피플』이 그녀와의 첫 만남이지만 첫인상이 너무 강렬한 탓에 다른 작품들도 궁금해졌다. 전에 요 네스뵈의 소설에 한창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한 그 때가 떠오른다.
사전 서평단이 먼저 읽고 대다수가 극찬한 책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그 어느 때 보다 무겁고 더운 여름을 나게 될 것 같지만 이렇게 재미있는 책과 함께라면 길고긴 방콕 시간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