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깃든다
조송희 지음 / 더시드컴퍼니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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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살에도 어떤 것에 도전한다는 일은 큰 두려움으로 다가오고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데 나이 마흔아홉 살에 첫 해외여행을 하고 그 후로도 바이칼, 안나푸르나, 산티아고, 인도, 유럽, 몽골, 중앙아시아, 일본, 중국 등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제2의 인생의 스토리를 써나가는 사람이 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문화 재단에서 10년째 사진을 찍고 글 쓰는 일을 하는 조송희 작가가 바로 그 사람이다. 중년의 나이로 관광지가 아닌 오지에 가까운 곳을 찾아 세계 각국을 여행하기란 상상만으로도 힘들 것 같다. 평범한 직장인 이였고 주부이자 아이들의 엄마의 삶을 살 던 그녀가 우연한 기회로 해외여행을 가게 되는데 마치 운명인 듯 그 한 번의 여행이 그녀의 삶을 전혀 다른 세계로 이끌었다.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었던 시간들, 혼자서 감당해야 했던 시간들이다.” -p35


가족이 있어도 외롭고 쓸쓸한 시간들은 존재하고 익숙한 것들로부터 오는 소외감이 드는 순간들의 연속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순간들이 있다. 열심히 달려왔던 그동안의 시간들이 무색하게 보람과 기쁨보다는 지치고 피곤함만이 남는 시간들, 작가의 삶에 드리워진 건조함이 그녀의 등을 떠밀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에서 가장 깊은 호수인 바이칼을 영혼의 피정지(避靜地)로 여기는 데는 자연이 주는 광활함과 아름다움, 경외감이 그녀를 감동시켰기 때문이 아닐까. 한 번뿐인 인생에서 그런 곳을 찾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생각이 든다.

안나푸르나에 올라 선 그녀는 생각한다. 여길 오르기만 하면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될 것이고 인생의 어떠한 답이라도 구할 수 있을 것만 같다고. 산행이라고는 제대로 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 안나푸르나를 오른다는 것이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그녀는 해내고야 만다.

그러나 그녀가 꿈꿨던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여전히 허약하고 자신감 없고, 외로움을 많이 타는 본연의 그녀 자신만이 남아 있었을 뿐이다. 달라지는 건 없지만 앞으로 만나게 될 수없이 많은 난관과 인생의 높은 산들을 마주했을 때 주저하거나 피하지 않고 당당히 오를 자신이 생긴 것이다. 그것이 나의 주어진 길이기에 나는 길을 계속 걸어 나갈 뿐인 것이다.

 

“장애물이 나타나면 피할 궁리부터 하고, 어렵거나 힘든 일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것이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는 욕심이 많지 않은 사람이라고 착각했다. 원해도 가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미리 포기하면서 나는 집착 같은 건 안 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속였다.” -p89


마치 내 이야기처럼 들린다. 매사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용기가 없어 도전이란 단어와는 친해질 수 없는 그런 성격의 소유자. 그랬던 그녀가 중년의 나이에 많은 것들에 도전하고 실패에도 주저하지 않고 용기 내어 끊임없이 다시 시작하는 모습은 일상에 안주해 있던 나에게도 자극제가 되어 준다. 그녀처럼 해외여행을 당장 떠날 수는 없지만 삶의 반경에서 조금은 벗어나 새로움을 접하고 삶의 자극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은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고 때론 인생 역전의 순간이 될 수도 있다.


TV 프로그램 삼시 세끼에서 스페인 하숙이란 이름으로 스페인에서 순례자들이 머무는 숙소를 운영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알베르게’라고 부르는데 산티아고 길을 트레킹하며 여행자들이 잠시 쉬어가는 곳이라고 한다. 시각적인 정보들이 먼저 인식 되서 그런지 저자가 소개하는 곳들이 마치 그곳을 연상시켜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지는 듯 했다.

“삶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사는 것이다.” 영화 <사티아고 가는 길>에서 아들의 대사였다고 하는데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여행지와 관련된 책과 영화도 소개되어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고 가보고 싶은 곳은 ‘쾨니히스제’ 호수다.

알프스의 산속 높은 곳에 있는 호수로 그 맑음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청정하고 황홀함까지 느낄 정도의 아름다움이라니.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자연의 아름다움 그대로를 잘 보존하고 있어 숨은 보물을 찾아낸 기쁨과도 같았을 것 같다. 여행 에세이에서 느낄 수 있는 대리만족감이나 잠시 잠깐의 일탈을 꿈꾸는 시간만으로도 사람들은 힐링을 느끼곤 한다. 멋진 풍경 사진만 봐도 숨통이 트이는 것 같은 상쾌함도 느낄 수 있다. 젊은 여행자들과는 다른 중년 여성의 시선으로 본 세상과 느낌들은 사뭇 진지하고 농익은 듯 익숙한 여행지의 모습도 다르게 비춰진다. 자극적이고 환상적인 여행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잘 담아낸 것 같아 마음에 든다.

코로나 확산으로 세계가 비상사태로 돌입했고 해외여행, 심지어 국내 여행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잠시라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여행에세이를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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