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와 광인. 이것은 44년이란 시간을 들여 발간된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사전이라 일컬어지는 옥스퍼드 대사전 발간에 전해져오는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글이다. 천재적인 언어학자인 제임스 마리와 정신병동에 갇힌 광인인 월리엄 체스터 마이너의 기묘하고도 드라마틱한 우정에 관한 글이다. 그둘은 전혀 다른 배경속에서 살고 있었지만 옥스퍼드 대사전이란 하나의 매개를 통해 서로를 알게된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에 대한 동경과 열정을 키워가며 기묘한 우정을 맺게 된다. 인생이란 그 자체로 하나의 소설 같다. 만약 마이너가 미치지 않았다면, 살인을 해 정신병동에 갇히지 않았다면, 머리가 그저 평범한 은행원으로서의 인생을 살았다면 옥스퍼드 대사전은 빛을 보지 못하고 사그러들었을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업은 영광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이너에게 살해당한 평범한 가장인 한 남자의 죽음과 평생을 감옥안에 갇혀 자유를 누리지 못한 불행한 남자의 고혈로 만들어진 사전이다. 이 인생을 그려낸 신은 인간에게 무슨 말을 전해주기 위해 이러한 비극을 자아냈을까. 하지만 사전을 간행하던 시기의 마이너는 행복했을 것이다. 진실로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아내며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최고의 축복이니까.
퇴마라는 장르는 의외로 만화계에서 개척이 잘된 장르중 하나이다. 상당히 많은 작가들이 도전했었고, 지금도 계속 간행이 되고 있는 두꺼운 매니아층을 가지고 있는 토양인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단순히 퇴마만 하는 그런류의 만화에 질려버렸다. 뭔가 특이한 것은 없는것일까? 아름다운 sm 여왕님께서 채찍을 가지고 귀신을 때려잡는 이야기가 바로 이것... 은 아니다. 만약 이렇게 전개됐더라면 당장 집어던져버렸겠지만. 주인공인 마사키는 상당히 특이한 캐릭터이다. SM 걸인 동시에 이계의 혼령을 보는 영매사인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혼은 여타의 만화처럼 이성이 남아있고 간절히 도움을 갈구하는 모습이 아니라, 악의와 이지러진 욕망만이 형상화된 영혼이다. 각각의 에피소드로 전개되는 이야기들은 때론 슬퍼지기도 하고, 때론 나를 피식 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이야기들이다. 4권까지 전개되었지만 아직은 미스테리가 많은 캐릭터들. 과연 마사키와 그의 일행들은 사람을 자살로 몰고 가는 네크로맨시아를 잡을 수 있을것인가, 그리고 그는 또 얼마간의 상처를 안은 자일까하는 점이 기대되는 만화이다.
제목이라고 하기엔 밋밋해보이지만 이 만화에 어울리는 제목은 역시 '건방진 천사' 이 문구 밖에는 없어보인다. 이 만화는 오늘부터 우리는으로 유명한 히로유키 니시모리의 후속작이다. 투박한 그림체였던 전작과는 약간 달리 부드러워진 그림체는 읽는 이의 마음을 기쁘게 한다. 뭐 하지만 역시 현대만화에 길들여진 독자들의 눈엔 맞지 않을지도. 그래서 이 만화가 재미에 비해 크게 알려지진 않은것 같다. 이 만화의 백미란 뭐니뭐니해도 캐릭터성이다. 천사처럼 아름다운 여자지만 사실은 악마에게 저주를 받은 메구미와, 열혈바보에 깡패인 그러나 메구미를 위해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겐조, 그리고 진지한 때론 얼빵하게 보이는 사무라이 고바야시, 그리고 다른 친구들의 가슴이 뜨거워지는 이야기는 정말 이 책을 덮게 하지 못한다. 뭐랄까 이 작가 특유의 버닝 기질이랄까? 가끔 터지는 만담같은 이야기 또한 극상의 재미를 추구한다. 아아 그때마다 이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왜 이리 적은것일까 하는 아쉬움이 들지만. 자 당신도 메구단에 들어와서 우리의 아름다운 건방진 천사를 위해 그녀를 지켜주는 기사가 되고 싶지 않은가?
그대는 다카하시 츠토무의 지뢰진이란 만화를 아는가? 거친 펜선으로 그려진 일그러진 장면처리와, 그에 어우러져 어둡게만 비추는 현실의 조명을 그려놓은 매니아들에게 전설처럼 되어버린 작품을. 이것은 그 작가의 후속작이라는 것만으로도 내가 선택할 이유가 충분히 되었다. 과연 그럴것이 채 얼마 읽지도 않아 이 작가 특유의 인간에 대한 어둡고 일그러진 장면이 점철되듯 펼쳐진다. 갇힌채 살인기계로만 키워진 주인공인 동양계 남자와, 광적인 백만장자와의 갈등 구조는 순식간에 전쟁을 방불케하며 거대한 배틀크루저를 불길속에 삼킨다. 아직은 불과 2권밖에 나오지 않은 만화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보여줄지는 미지수다. 그래도 그만의 그림체가 그려내는 독특한 캐릭터들의 매력만으로도 이 만화는 볼 가치가 있다. 다만 너무 급격한 스토리전개가 아니었나 생각이 되지만,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가 이런 아쉬움을 씻어주기를 바란다. '나는 누구인가? 인간은 과연 살아갈 가치가 있는가?' 주인공의 자문. 이것은 현대인이 짊어져갈 숙명같은것은 아닐까?
후르츠 바스켓은 상당히 특이한 소재를 취하고 있는 순정만화이다. 저주로 인해 이성의 손에 닿으면 12지의 동물로 변해버리는 소마가라는 집단과, 멍청해보이지만 사실은 정말로 강하고 사랑스러운 소녀의 이야기이다. 절망에 빠진 세상은 춥고 암울하기만 하다. 하지만 작가는 그런것이 마치 구원될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려는듯, 주인공인 소녀를 통해 상처를 받으면서도 딛고 일어설 수 있다는것을. 그리고 모든것을 감싸안을수 있는 거대한 사랑의 표용력을 섬세한 붓끝으로 그려내고 있다. 물론 이런것이 단지 만화 내에서만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후르츠 바스켓의 작가는 사고로 오른손을 거의 쓸 수 없었다는데 의지로 왼손으로 다시 그림을 그리며 재기했다는 후일담을 들은 적이 있다. 진실된 작가가 진실되게 그리는 이 작품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다는것을 어쩌면 당연한게 아닐까? 절대 후회하지 않을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