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라는 그림 - 찬란한 계절을 사랑하게 만드는 명화 속 여름 이야기
이원율 지음 / 빅피시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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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장을 넘기니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고, 푸른 바다와 뜨거운 모래 위에서 들뜬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잔잔한 윤슬이 반짝이며 손짓하고, 어느새 마음은 그림 속 아이들과 함께 수평선을 향해 달려간다.


비록 해변과 강가가 이국의 풍경일지라도, 여름날의 기억은 각자의 가슴에 선명히 새겨져 있다. 뜨거운 모래 위에 앉아 수박 한 조각을 베어 물면 팔뚝까지 흐르던 달콤한 끈적함, 발끝이 얼어붙는 듯한 계곡물의 쨍한 시원함, 평상 에 둘러앉아 나누던 백숙 한 그릇의 따스한 온기까지, 이 모든 감각이 그림을 보며 되살아난다.

어느 특정한 날이라고 할 수 없는 무수히 많았던 여름날의 추억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은 프리다 칼로의 『Viva la Vida(인생이여 만세)』다. 붉은 속살을 드러낸 일곱 개의 수박 위에 선명히 새겨진 “Viva la Vida”라는 글귀.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불과 8일 전 남긴 이 마지막 외침은, 달콤하고 연약한 과육의 신선함과 절절하게 대비된다.


무슨 마음으로 그렸을까? 맛있고 달콤한 수박의 유혹, 칼끝에 맺힌 연약한 껍질과 과육, 그 위에 새긴 ‘인생이여, 만세’라는 문장. 영화처럼 극적이었던 그녀의 삶을 떠올리면 가슴이 저려 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삶을 끌어 안고 긍정한 그녀의 의지에는 말 못할 경외감이 밀려온다.


모든 여름이 지나고 찬란함과 고통, 기쁨과 슬픔을 겪어 낸 뒤에도, 과연 나도 그녀처럼 ‘인생이여, 만세’라고 외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렇듯 찬란한 빛과 깊은 사유가 공존하는 이 책은, 우리의 숨겨진 여름 기억을 부드럽게 소환하며 그때의 설렘과 쉼, 시원한 물방울의 감촉을 되살려준다.


이런 여름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그 풍경을 화폭에 담은 화가들의 작품 100점이 『여름이라는 그림』 안에 있다 . 매년 여름이면 고향의 해변으로 달려가 푸른 바다를 그렸던 호아킨 소로야, 대표적인 여름꽃인 수련이 만개한 정원을 남긴 클로드 모네, 한여름 해변의 낮 풍경을 자주 그렸던 필립 윌슨 스티어, 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여름의 풍경을 포착해, 우리에게 계절의 서정과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들려준다.


어쩐지 가장 빠르게 스쳐 가는 계절, 여름. 선선한 선풍기 바람 아래 수박 한 입 베어 물며, 마치 미술관을 집으로 옮겨 놓은 듯한 이 책을 펼쳐 보아도 좋겠다. 순간의 빛과 색이 오래도록 마음에 머물며, 여름의 설렘을 다시금 느끼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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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 무지개 - 제12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작
김용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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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릴 때나 어른이 되어서나, 무지개를 보면 어쩐지 설렌다.

그 신비한 빛의 띠가 단순한 굴절 현상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어린 준재는 비 오는 날, 엄마와 함께 놀이터에서 본 ‘과잉 무지개’를 기억한다. 엄마는 “행복이 너무 많을 때 보이는 거야”라고 말했다.


그러나 성인이 된 그는 하루를 여는 일조차 버거웠고,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려웠다.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화재로 어머니를 잃었으며, 믿었던 친구에게 부모님의 사망보험금을 맡겼다가 전부 잃었다.

남은 건 점점 불어나는 빚뿐이었다.


그런 그 앞에, 운명처럼 하나의 사이트가 나타났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단 하나의 제안을 했다. ‘백 일 동안 살아 있기.’

그 시간 동안 그들이 내준 일을 해내면, 약속한 날 조용히 죽음을 맞게 해주겠다고 했다.


“산다는 건 도대체 뭐길래, 한없이 놓고 싶다가도 어느 순간 있는 힘껏 붙잡고 싶게 만드는 걸까.”


나 역시 그런 마음이 스쳐간 적이 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정확히 말해 ‘잘 살고 싶었지만, 그게 되지 않아 힘들었던’ 순간들이었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

사르트르의 이 말처럼, 삶은 결국 탄생과 죽음 사이, 끊임없는 선택들로 이루어진 여정이다.

그 말은 곧, 인생이 태어남과 함께 이미 죽음과 묶여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끝이 없을 것만 같던 고통과 상실도 결국은 끝이 있다.

삶 또한 그렇다. 오늘의 하루가 내일로 이어질 수 있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러하기에 죽음을 앞에 둔 삶은 매 분 매 초가 더 선명하고 귀하게 느껴진다. 소설 속 준재가 단체와 약속한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삶을 향한 열망이 되살아났던 것처럼.


생명체는 본성적으로 살아가려는 욕구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살아 있으면서도 마치 죽은 듯한 절망에 잠기기도 한다. 그 절망의 한가운데에서도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붙잡을 것인지, 놓아버릴 것인지.


『과잉 무지개』는 삶과 죽음 사이, 한 존재가 일상의 소소한 장면 속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붙잡아 살아내는지를 잔잔히 비춰준다.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 안에서 오히려 삶의 숨결이 또렷해지는 역설.

그리고 끝을 각오한 순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 삶이란 얼마나 아슬아슬하고도 기적 같은가.

살아 있다는 것은.


무지개는 굴절된 빛이 만든 환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찰나의 빛이 우리를 설레게 하는 건, 순간의 아름다움 속에서 희망을 엿보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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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가로막은 건 언제나 나였다
게리 홀츠 지음, 강도은 옮김 / 스몰빅라이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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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물리학을 전공한 뒤 우주항공 산업에서 사업적으로도 잘나가던 저자는, 어느 날 다발성 경화증 진단과 함께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발가락의 마비로 시작된 증상은 하반신 전체로 퍼져나갔다. 절망 속에서 방황하던 그는 우연히 호주 원주민의 치유법에 대해 듣게 되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들의 세계로 향한다.


겉으로는 모든 것을 이룬 듯했지만, 그의 삶은 균열투성이였다. 첫 결혼은 실패로 끝났고, 자녀들과의 관계도 소원했다. 두 번째 결혼 역시 위태로웠다. 사업적으로는 성공한 물리학자였지만, 그의 내면은 오랫동안 방치된 채였다.


책 중반에 이르렀을 때, 지극히 개인적인 치유의 기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솔직히 혼란스러웠다. 세상에는 과학으로 풀리지 않은 신비가 많으니, 그런식의 체험으로 읽어야 할지말이다.


치유의 과정에서 그는 오랫동안 외면해온 내면의 상처와 마주하게 된다. 알코올 중독과 폭력으로 얼룩졌던 아버지와의 관계, 그로 인해 쌓인 분노와 수치심, 미움. 그리고 그것들이 자신도 모르게 반복하게 된 삶의 방식. 사랑을 밀어내고, 관계를 망치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행동들이 바로 그 결과였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진짜 치유가 시작된다.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감정과 의식, 자아의 형성과정에서 신체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는 마음이 단지 뇌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게리 홀츠의 체험은 과학을 넘는 기적이라기보다, 몸과 마음이 연결된 인간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 읽힌다.


호주 원주민들의 치유법과 통찰은 인간의 몸을 고립된 객체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깊이 연결된 존재로 보는 것이다. 몸과 마음, 영혼은 나뉠 수 없는 하나의 전체이며, 그 몸은 타인, 자연, 신, 우주의 질서뿐 아니라, 존재의 뿌리로서 조상들과도 이어져 있다고 여긴다.


그들에게 병이란 단순한 신체의 고장이 아니다. 삶 전체의 불균형, 관계의 단절, 존재의 흔들림이 드러나는 방식이며, 회복이란 존재 전체의 조화를 되찾는 일이다. 이는 다마지오가 말한 ‘몸에 뿌리내린 마음’이라는 개념과도 맞닿아 있으며, 서구 의학이 놓치고 있던 몸과 마음, 그리고 관계까지 아우르는 치유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의학은 흔히 이런 복잡한 고통을 ‘스트레스’라는 말로 단순화한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어린 시절의 상처, 관계에서 비롯된 외로움,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미움과 수치심, 죄책감은 마음에만 머무르지 않고, 몸의 언어로 드러나기도 한다.


이처럼 쌓인 감정들은 결국 신경계와 면역계를 흔들고, 마침내 병이라는 형태로 자신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고통은 삶의 균열로 드러난다.


그래서 처음엔 반신반의하며 넘기던 책장이었지만, 마지막에 이르러 게리가 삽입된 도뇨관을 스스로 빼내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마치 내 일이기라도 한 듯 기쁜 마음에 눈물이 났다.


이 책은 한 남자의 치유 여정을 따라가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호주 원주민들의 통찰을 통해 나라는 존재가 결코 홀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무수한 관계 속에서 때로는 어긋나고, 때로는 충만함을 느끼며 살아간다. 넘어지고 아프기도 하지만, 결국 그 관계들 속에서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어쩌면 회복이란, 나와 세계의 관계를 다시 들여다보고, 그 감각을 새롭게 구성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마치 거대한 오케스트라 속에서 삐걱대던 내 파트를 다시 찾아 연주를 시작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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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건너는 교실
이요하라 신 지음, 이선희 옮김 / 팩토리나인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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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My battery is low and it’s getting dark.”

이는 화성 탐사 로버 오퍼튜니티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다. 책을 읽다가, 그 로봇이 남긴 바퀴 자국 사진을 찾아보다가 나는 결국 오열하고 말았다. 『하늘을 건너는 교실』은 ‘있을 곳’을 찾지 못했던 이들이 다시금 배우고 성장하며, 삶의 궤도를 되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도쿄 히가시신주쿠고등학교 야간반에는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이들이 모여든다. ‘불량품’이라 자책하는 스물한 살의 노란머리 다케토, 일본어조차 익숙지 않은 마흔 살 혼열 안젤라, 평생을 일만 하며 살아온 일흔네 살의 나가미네, 그리고 마음을 닫아버린 열여섯 살의 가스미까지. 이들은 삶의 가장자리에서 상처를 안고 다시 배움을 선택한다.


붉은 별, 화성의 황량한 대지를 묵묵히 걸어간 오퍼튜니티의 모습은, 세상에 내던져진 채 고군분투하는 야간 고등학생들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자율신경장애로 인해 호흡조차 쉽지 않았던 가스미는, 가족의 무관심 속에서 조용히 고통을 삼켜왔다. 그녀의 손목에 남은 수많은 흉터는 죽기 위한 흔적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과학 선생님 후지타케와 함께 본 오퍼튜니티의 바퀴 자국 사진이 그녀의 눈에 들어온다. 처음에는 그것이 외로움과 상처의 흔적으로만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그 사진을 떠올렸을 때, 그녀는 그것이 단순한 고독의 표식이 아님을 깨닫는다. 거센 모래폭풍 속에서도 조금이라도 더 앞으로 나아가려 했던 작은 로봇의 궤적. 그것은 포기하지 않은 의지였고, 언젠가 자신도 그렇게 다시 걸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조용한 믿음이 그녀 안에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별다른 희망이 보이지 않던 이들은 후지타케 선생과 함께 과학부를 만들어 조금씩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화성 크레이터를 재현한다’는 무모해 보이는 실험은 단순한 과학적 도전을 넘어, 상처 입은 존재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자신만의 궤도를 다시 그려가는 여정이 된다.


“알고 있었나요? 화성의 저녁놀은 파란색이에요.”

파란색 책표지에 형광 핑크 띠지. 발랄한 성장소설쯤으로 가볍게 펼쳤던 책장에서 나는 세 번이나 울었다. 문득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의 야간반이 떠올랐다. 소위 ‘날라리’라 불리던 그들은 거칠고 화려한 겉모습으로 쉽게 분류되고 치워지곤 했다.


나는 이해받기를 바라면서도, 정작 타인을 겉모습만으로 쉽게 판단하고 밀어냈던 내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모두 밤하늘의 별처럼, 저마다 다른 빛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각자 고유한 서사와 고통을 품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시간을 견디며 살아간다.


때때로 어두운 밤, 길을 잃지 않으려면 나만큼이나 소중한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마음, 그리고 함께 걸어가려는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 발랄한 책표지의 책을 읽으며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밤하늘에 홀로 빛나는 별은 없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서로의 빛을 받아 함께 어둠을 건너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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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 양정무의 명작 읽기
양정무 지음 / 사회평론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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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우리는 유쾌하고 좋은 것은 가까이 두고 싶어하고, 불쾌하거나 불편한 것은 멀리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어떤 작품을 마주할 때 우리는 가장 먼저 그 시각적 아름다움이나 예쁨에 반응하게 된다.


그림에 관심은 있지만 미술사나 이론에는 익숙하지 않은 나 역시 그렇다.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구성이 마음에 들면, 이유를 따지기보다 먼저좋다는 감정이 앞선다. 하지만 그렇다면, 아름답지 않은 것은 미술이 아닌가? 저자는 이 질문을 건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름다움만이 미술의 본질이 아니라고 말한다. 미술은 반드시 아름다워야 한다는 통념을 뒤흔들며, 미술의 또 다른 얼굴을 꺼내 보인다. 때로는 낯설고 불편하며,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작품들이야말로 인간의 감정을 가장 깊숙이 건드리는명작일 수 있다는 것이다.


책 표지에도 등장하는 메두사호의 뗏목은 이 주장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프랑스 화가 제리코는 실재한 조난 사건을 바탕으로, 뗏목 위에 펼쳐진 절망과 고통의 장면을 날것 그대로 화폭에 담아냈다.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인육을 먹었던 사람들, 광기와 의심, 죽음의 공포를 드러낸 인간 군상은 날 것 그대로이기에 불편하다.


제리코는 생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장면을 구성했으며, 해부학적 정확성을 위해 단두대에서 처형된 시신의 부패 과정을 직접 관찰하기까지 했다. 그의 몰입과 집요한 재현은 이 작품을 통해 정치적 비판과 함께 인간 존재의 밑바닥을 응시하게 만드는 명작으로 만들어냈다.


이와 비슷한 결로 고야나 뭉크의 그림이 떠올랐다. 고통을 피하지도, 미화하지도 않고 정면으로 응시함으로써 두 화가는 인간 내면의 깊은 불안과 비극을 그려낸다.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은 민중들의 공포와 절망을, 뭉크의 《절규》는 존재 자체를 뒤흔드는 실존적 불안을 그려낸다. 이들의 작품은 감상자를 불편하게 만들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우리가 외면해온 감정에 대한 예술의 정직한 응답이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명작의 '불완전함'을 오히려 찬미한다는 데 있다.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예로 들며, 완벽한 구도나 비례보다 표면의 얼룩, 드로잉의 흔들림, 어색한 손동작 같은 흔적에서 또 다른 감동을 발견한다. 완벽함보다 그 안에 깃든 고뇌와 망설임, 인간적인 손길이 이 작품을 더욱 빛나게 만든다는 것이다. 기술적 완성도보다 중요한 것은 실패와 번민까지 담긴 진정성이다. 그러고 보니, 천장화를 그리기 위해 건물 7층 높이에서 그림을 지우고 또 그렸을 그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또한 이 책은 명작을 ‘시간과 논쟁을 견디고 살아남은 존재’로 정의한다. 석굴암, 시스티나 성당, 메두사호의 뗏목처럼 논란과 파장을 겪은 작품들이 결국엔 새로운 의미를 덧입으며 살아남는 과정을 통해, 예술로 완성된다고 말한다.


우리를 처음 매료시키는 것은 이미지일 수 있지만, 그 아름다움 속에 존재의 진실이나 시간의 흔적이 담길 때 비로소 작품은 살아 있는 예술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덧. 책이 작고 아담해서 아깝고 조금 아쉬웠지만, 아름다운 도판 이미지가 알차게 담겨 있어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미술사의 통사를 쓰는 것이 목표라는 양정무 교수의 다른 책들도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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