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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 양정무의 명작 읽기
양정무 지음 / 사회평론 / 2025년 6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우리는 유쾌하고 좋은 것은 가까이 두고 싶어하고, 불쾌하거나 불편한 것은 멀리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어떤 작품을 마주할 때 우리는 가장 먼저 그 시각적 아름다움이나 예쁨에 반응하게 된다.
그림에 관심은 있지만
미술사나 이론에는 익숙하지 않은 나 역시 그렇다.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구성이 마음에 들면, 이유를 따지기보다 먼저 ‘좋다’는
감정이 앞선다. 하지만 그렇다면, 아름답지 않은 것은 미술이
아닌가? 저자는 이 질문을 건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름다움만이 미술의
본질이 아니라고 말한다. 미술은 반드시 아름다워야 한다는 통념을 뒤흔들며, 미술의 또 다른 얼굴을 꺼내 보인다. 때로는 낯설고 불편하며,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작품들이야말로 인간의 감정을 가장 깊숙이 건드리는 ‘명작’일 수 있다는 것이다.
책 표지에도 등장하는 메두사호의 뗏목은 이 주장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프랑스 화가 제리코는 실재한 조난 사건을 바탕으로, 뗏목 위에 펼쳐진 절망과 고통의 장면을 날것 그대로 화폭에 담아냈다.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인육을 먹었던 사람들, 광기와 의심, 죽음의 공포를 드러낸 인간 군상은 날 것 그대로이기에 불편하다.
제리코는 생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장면을 구성했으며, 해부학적 정확성을 위해 단두대에서 처형된 시신의 부패 과정을 직접 관찰하기까지 했다. 그의 몰입과 집요한 재현은 이 작품을 통해 정치적 비판과 함께 인간 존재의 밑바닥을 응시하게 만드는 명작으로 만들어냈다.
이와 비슷한 결로 고야나 뭉크의 그림이 떠올랐다. 고통을 피하지도, 미화하지도 않고 정면으로 응시함으로써 두 화가는 인간 내면의 깊은 불안과 비극을 그려낸다.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은 민중들의 공포와 절망을, 뭉크의 《절규》는 존재 자체를 뒤흔드는 실존적 불안을 그려낸다. 이들의 작품은 감상자를 불편하게 만들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우리가 외면해온 감정에 대한 예술의 정직한 응답이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명작의 '불완전함'을 오히려 찬미한다는 데 있다.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예로 들며, 완벽한 구도나 비례보다 표면의 얼룩, 드로잉의 흔들림, 어색한 손동작 같은 흔적에서 또 다른 감동을 발견한다. 완벽함보다 그 안에 깃든 고뇌와 망설임, 인간적인 손길이 이 작품을 더욱 빛나게 만든다는 것이다. 기술적 완성도보다 중요한 것은 실패와 번민까지 담긴 진정성이다. 그러고 보니, 천장화를 그리기 위해 건물 7층 높이에서 그림을 지우고 또 그렸을 그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또한 이 책은 명작을 ‘시간과 논쟁을 견디고 살아남은 존재’로 정의한다. 석굴암, 시스티나 성당, 메두사호의 뗏목처럼 논란과 파장을 겪은 작품들이 결국엔 새로운 의미를 덧입으며 살아남는 과정을 통해, 예술로 완성된다고 말한다.
우리를 처음 매료시키는 것은 이미지일 수 있지만, 그 아름다움 속에 존재의 진실이나 시간의 흔적이 담길 때 비로소 작품은 살아 있는 예술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덧. 책이 작고 아담해서 아깝고 조금 아쉬웠지만, 아름다운 도판 이미지가 알차게 담겨 있어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미술사의 통사를 쓰는 것이 목표라는 양정무 교수의 다른 책들도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