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 이후의 중국
프랑크 디쾨터 지음, 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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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지난 1월, 중국의 딥시크가 출시되자 전 세계가 술렁였다. 불과 일주일 만에 애플 앱스토어에서 챗GPT를 제치고 1위에 올랐으며, 미국의 반도체 제재 속에서도 저사양 칩으로 오픈AI와 동등한 성능을 95% 저렴하게 구현했다.


중국은 이제 단순한 ‘세계의 공장’을 넘어 기술 혁신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1980년대 제조업에서 출발해 오늘날 AI·5G·전기차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며, 딥시크 사태는 중국이 단순히 기술 추격자가 아님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프랑크 디쾨터의 『마오 이후의 중국』은 이처럼 화려한 경제·기술 성과 뒤에 감춰진 권위주의적 실상을 집요하게 파헤친다. 마오쩌둥 사망 이후부터 시진핑 집권기에 이르기까지, 지난 40여 년간의 성장 서사를 냉철하게 재검토한다.


한마디로 이 책을 통해 본 현대 중국은 분열과 환상의 나라였다. 대외적으로는 개방을 표방하며 외국의 자본과 기술을 받아들이지만, 내부적으로는 폐쇄성과 통제를 강화해 왔다.


“그러나 확실히 기호화되는 물건보다 기호 자체가, 원본보다 복사본이, 현실보다 환상이, 본질보다 외관이 더욱 선호되는 오늘날의 시대에는… 오직 환상만이 신성한 것이고 진실은 세속적인 것이다.” 포이에르바하의 『기독교의 본질』 속 이 구절은 중국 공산당의 이데올로기와 놀랍도록 맞닿아 있으며, 자본주의의 환상과도 닮아 있다.


그들은 경제적 성과를 신성시하며, 그 이면의 불평등·억압·모순은 하찮게 여긴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성장 지표에 집착했고, 정작 노동자와 인민의 삶에는 무관심했다. 정권은 사람보다 사회 기반 시설에 더 많은 투자를 해왔으며, 덩샤오핑 시대 총서기는 “국민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게 하자. 그들에게 직접 교사를 모집하고 학교를 짓게 하자”라고 말하기도 했다.


새로운 권력자가 등장하거나 권력이 느슨해질 때마다 ‘정신 오염’이라는 명목으로 서구 사상과 자유주의적 가치를 배격하고, ‘마르크스·레닌·마오쩌둥 사상’을 신성한 이념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실상 맑스 없는 맑스주의 아닌가.


마르크스가 런던의 영국 박물관 도서관 열람실에서 『자본론』을 집필하던 시기, 그의 시선은 자본가에 의한 노동자의 소외와 착취에 향해 있었다. 그는 노동이 인간의 본질적인 활동이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단순한 생계 수단으로 전락하고 생산물마저 노동자와 분리돼 자본가의 것이 되는 현실을 비판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사상을 계승한다고 주장하는 그들은 값싼 노동력을 착취해 GDP 세계 2위의 경제 성장을 이루었을 뿐, 노동자의 소외를 해소하지 않았다.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공산당’이라는 이념이 오늘날 실현된 나라는 없다. 중국을 비롯한 다른 공산국가 역시 일당 독재체제일 뿐이다. 개혁·개방 이후 경제 발전이 정치 민주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는 완전한 착각이었다.


그러나 『마오 이후의 중국』이 던지는 질문은 우리 자신에게도 향한다. 성장과 발전에 눈이 멀어 그 이면의 어둠을 외면하는 것은 중국만의 문제일까. 환상과 현실, 이념과 실제 사이의 간극을 우리는 제대로 보고 있을까. 150년 전 포이에르바흐가 기독교를 비판하며 던진 말이, 오늘날 이데올로기 비판에도 여전히 적용된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시간은 모든 것이다.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인간은 기껏해야 시간의 잔해이다.” 마르크스가 『철학의 빈곤』에서 남긴 이 말처럼, 거대한 역사의 흐름과 이데올로기 앞에서 개인은 무력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개인에게 자신의 삶은 곧 우주 전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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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젓한 사람들 - 다정함을 넘어 책임지는 존재로
김지수 지음 / 양양하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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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작가가 말하는 의젓함이란 무엇일까.
의젓함은 삶의 무게를 견디며 자신의 몫을 책임지는 태도이자더 나아가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고 그것을 자신의 윤리로 껴안는 자세를 뜻한다.


이 개념은 아침마다 한 페이지씩 읽고 있는 레비나스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레비나스는 철학이 타인을 향한 책임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그는 타인의 얼굴 앞에서 느끼는 윤리적 부름을나를 넘어서 타자에게 응답하는 존재의 시작으로 보았다.


의젓한 사람들에는 국내외 예술가와 인문학자 등 14인의 깊이 있는 인터뷰가 담겨 있다이들은 말로 설득하기보다삶으로 증명해 보이는 사람들이다. 인터뷰는 그들이 걸어온 삶의 기록이자고통과 불안흔들림 속에서도 끝내 자신만의 방식으로 선택하고 책임져온 태도의 이야기다.


“인생이 그냥 슬럼프의 연속이에요.”
슬럼프가 언제였느냐는 질문에작곡가 진은숙은 이렇게 답한다.
2024
클래식 음악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지멘스 음악상을 수상한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창작자로서 특별한 비밀이나 거창한 철학을 들려줄 것 같지만그의 답변은 오히려 담백하고 쿨하다.


음악만이 자신의 인생이자 해방구라 믿기에
그저 묵묵히 작품을 쓰는 일에 몰두할 뿐이라고 말한다그리고 이어서 “음을 붙들고 있으면 마약을 한 것 같아요그냥 머리부터 발끝까지 음악에 푹 잠겨 있을 뿐이에요”라고 덧붙인다.


“어제도 포기하고 싶었고오늘 아침에도 포기하고 싶었다고요. 365일 중 65일은 도망가면서도 300일을 버텨요.”
배우 박정민의 말이다. “왜 그렇게 초인적으로 열심히 사느냐”는 질문에 그는 “다들 열심히 살지 않나요?”라며 반문한다영화 동주하얼빈에서그리고 자신이 운영하는 출판사 '무제'에서까지 그는 언제나 묵묵하게그러나 치열하게 자기 몫의 자리를 지켜낸다.

“사는 건 어차피 고군분투입니다원하는 것을 이뤘더라도 고통과 문제는 계속되지요문제없는 삶이란 없으니까요.”
신경 끄기의 기술의 저자 마크 맨슨은 말한다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나는 어떤 종류의 고통을 견딜 수 있는가어떤 것이 내게 가치 있는 고통인가.


14인의 인터뷰 중에서도 나는 이 세 사람이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알 수 없는 위안을 느꼈고그들의 말에 깊이 감응했다이들에게 공통되는 점은삶의 고통과 불안을 덤덤히 받아들이고 껴안으며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는 것이다.


“왜 나에게만 이런 고통이 있을까
?”라는 질문에 머무르기보다자신이 가치 있다고 믿는 방향을 향해 온몸을 걸고 살아낸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들이 남다른 재능을 지녔거나스스로에게 잘 맞는 길을 비교적 일찍 발견했을 수도 있다그러나 결국 중요한 것은어떠한 조건 속에서도 끝내 책임지는 태도를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있다. 14인의 인터뷰이는 각자의 삶에서 분명 의젓하게 살아왔지만작가가 정의한 의젓함타인의 얼굴에 응답하는 책임의 윤리까지 나아갔는지는 다소 분명하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의젓함 너머에 있는타인에 대한 책임의 윤리가 좀더 나은 존재로 살기 위한 지향점이라고 생각한다. ‘나’로부터 시작해 ‘나’ 끝나는 삶은 결국 허무로 이어질 수 있다그것은 자아에 갇히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뛰어나든 그렇지 않든, ‘나’를 열고 ‘너’에게 다가가는 일은 존재를 더 풍성하고 깊게 만든다. ‘내’가 빛나지 않더라도 ‘너’에게 빛을 전할 수 있는 삶그것이야말로 의젓함을 넘어선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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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 장영희가 남긴 문학의 향기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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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작은 것들로 이루어졌네. 위대한 희생이나 의무가 아니라 미소와 위로의 말 한마디가 우리 삶을 아름다움으로 채우네." - 메리 하트만 『삶은 작은 것들로 이루어졌네』


유학파 영문과 교수가 쓴 글이라 하면, 어딘가 세련되고 이지적인 분위기를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장영희 교수의 글은 그와는 전혀 다르게, 슴슴할 정도로 담백하면서도 다정하다. 화려한 수사를 걷어낸 문장 속에서, 작가는 우리가 놓치고 지나치기 쉬운 소중한 가치들을 이야기한다.


라는 말만 점점 커지는 시대에, ‘우리나의라는 말은 나만큼 소중한 타인을 함께 품는 언어다.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내며 말썽만 피우던 한 제자는우리 상호, 많이 다쳤구나라는 선생님의 한마디에 마음을 열었다고 고백한다. ‘우리라는 단어에 담긴 연대의 힘이, 그의 닫힌 마음을 천천히 녹여낸 것이다.

야학에서 가르쳤던 한 학생은 성적 부진으로 꿈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가 정비공이 되기로 한다. “에이, 선생님. 제가 어떻게 이 세상에 기쁨과 행복을 줄 수 있겠어요?”라는 자조 섞인 질문에, 장영희는 유학 시절 만났던 경비 아저씨 토니의 이야기를 꺼낸다.

전직 택시 기사였던 토니는 크리스마스 새벽, 한 할머니 승객을 태운다. 호스피스 병원 주소를 내민 할머니는 시내를 돌아서 가자고 부탁한다. 그는 그녀가 젊은 시절 일했던 곳, 처음 갔던 무도회장, 신혼 때 살던 동네를 차례로 돌며 조용한 드라이브를 함께한다. 마지막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할머니는자네는 늙은이에게 마지막 행복을 줬어. 정말 행복했다우 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우리는 삶이 특별한 사건이나 위대한 성취로 채워져야 한다고 믿지만, 작가는 말한다. 진짜 위대한 순간은 어쩌면무심히 건넨 한마디 말, 별생각 없이 내민 손, 스치듯 지은 작은 미소 속에 보석처럼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나를 살게 하는 근본적 힘은 문학이다.
문학은 삶의 용기와 사랑, 인간다운 삶을 가르쳐준다.
나는 기동력이 부족한 사람이라 문학을 통해 삶의 많은 부분을 채워왔다.”

어릴 적 소아마비에 걸려 신체가 자유롭지 못했던 그녀는 세상의 많은 문턱 앞에 자주 가로막혔다. 입학조차 거절당하는 현실 앞에서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문학은 단순한 학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과 연결되는 창이자 날개였다. 자유롭게 걷는 대신 문장 위를 걸었고, 타인과의 거리는 언어의 온기로 좁혀갔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글에는 삶을 사랑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고통을 외면하지도, 미화하지도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빛나는 희망을 놓치지 않는다. 『주홍 글자』 속 칠링워스에게서 느낀 연민도, 어쩌면 자신의 그림자를 조용히 들여다본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암 투병 끝에 2009년 세상을 떠난 장영희 작가의 마지막 산문집이다. 영문과 교수이자 에세이스트, 번역가로 활동했던 그녀는 중학교 영어 교과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혹시나 싶어 아이방 책장을 뒤적여 봤지만, 그녀의 이름이 적힌 책은 이미 정리된 듯 보이지 않았다.


폭염 속에서 그저 시원한 것만을 찾던 내게, 이 책은 오히려 마음 깊은 곳에 아련하고 따스한 온기를 남겼다. 마치 이른 아침에 마시는 따뜻한 차 한 잔처럼, 고요히 하루를 열어주는 그런 문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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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닿는 거리
우사미 마코토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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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을 감싸는 사랑이 태양빛이라면우리의 인연은 달빛 같은 거야부드럽고 덧없는 달빛에 감싸인 가족."


고등학생 미유는 예기치 못한 임신으로 집에서 쫓겨나 거리를 헤맨다절망 끝에 아이도 자신도 모두 포기하려는 순간따뜻한 손을 내민 이들을 따라 오쿠타마의 게스트하우스 ‘그린 게이블스 향한다이름은 빨간머리 앤의 매튜와 마릴라 남매의 집에서 따왔다소설 속 중년 남매가 고아 앤을 품었듯현실의 ‘그린 게이블스’에서도 아키라와 가나코 남매가 사정 있는 아이들의 위탁 부모 역할을 하고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살아간다집을 뛰쳐나와 거리를 전전하며 몸을 파는 소녀들그 절박함을 이용하는 어른들이름만 부모일 뿐 자식을 품을 힘도 책임도 없는 이들그리고 스스로의 무력함에 갇혀 아이를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작품은 그들의 상처를 교차시키며 묻는다과연 가족이란 무엇인가.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는 분명 특별할 수 있다그러나 이름만 가족인 관계가 진정한 가족이 될 수는 없다피로 이어졌다는 사실만으로는 사랑도 보호도 대신할 수 없다. TV와 책 속에서 그려지는 가정은 대개 따뜻하고 포근하지만그 이미지는 상처와 억압을 덮은 채 만들어진 환상일지도 모른다.


아이는 연약하기에 혼자 살아갈 수 없다그래서 우리는 ‘가정은 따뜻해야 한다’, ‘엄마는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믿음을 만들어낸다그 믿음과 관념이 가족을 성스러운 것으로 고정시키고때로는 가장 은밀한 억압의 형태로 만든다.


알튀세르는 자서전에서 가족을 “항상 성스러운 장소권력과 종교의 자리”라 부르며 그것이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라고 말한다.

가족은 개인을 지탱하는 첫 울타리이자 동시에 치명적인 억압의 구조일 수 있다그렇기에 '가족'이라는 이름은 언제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품는다. 『달빛이 닿는 거리는 이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지점에서이름만으로는 결코 완전할 수 없는 가족의 본질을 드러낸다.


우사미 마코토는 이 작품을 통해 ‘가족은 따뜻하다’는 이상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진정한 애정과 유대를 보여준다혈연이 없어도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고 돌보는 관계야말로 가족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모습일 것이다가족이 해체되고 타인에 대한 혐오와 배제가 일상화된 시대 속에서태양처럼 뜨겁지 않더라도 달빛처럼 은은하게 서로를 감싸주는 온기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이 소설은 일깨운다.


그린 게이블스의 아키라와 가나코 남매가 보여주는 것은 바로 그런 달빛 같은 사랑이다어두운 밤길을 잃지 않도록 끝까지 남아 빛을 비추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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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여전히 빛난다 - 무력한 일상에서 찬란함을 발견하는 철학
로랑스 드빌레르 지음, 이주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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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인생은 그냥 생존하는 것이 아니다. 인생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를 깨닫게 해준 것이 아름다움과 마주했을 때 느끼는 극도의 기쁨이다."


평소 책을 읽을 때는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로 잔잔한 재즈를 틀어놓는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가 문득 더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유튜브를 검색해 카라얀이 지휘하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핸드폰 화면에 띄워두고 '스탕달 증후군' 챕터를 읽어 내려갔다.


피렌체에 처음 발을 디딘 스탕달은 뙤약볕 아래서 쓰러질 듯 숨이 막혔다. 도시 곳곳에 넘쳐나는 아름다움에 압도당한 것이다. 피렌체에서는 이런 일이 드물지 않다고 한다. 골목 하나를 돌 때마다 마주치는 르네상스의 걸작들이 관광객들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스탕달 증후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우연이었지만, 글자를 읽어 내려가던 중 배경음처럼 흘러가던 라흐마니노프가 나를 침범해왔다. 시선과 생각은 책에 향해 있었는데 음악이 파고들었다. 어느새 귓속을 가득 채운 선율이 나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감정을 뒤흔들더니 결국 눈물이 흘렀다.


핸드폰 속 유튜브 공연 화면으로 시선을 돌리니 카라얀이 우아한 자세로 지휘하고 있었다. 그의 지휘도, 흘러나오는 음악도 모두 아름다웠다.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다. 저자가 말한 '찬란함'과 '아름다움'은 아마도 이런 것일 것이다.


저자 드빌레르는 아름다움을 광기를 깨어나게 하는 충격이라고 말한다. 일상이 멈춘 것 같은 혼란함, '나'라는 자아도 사라지고 우리는 갑자기 온전히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특히 공감이 가는 구절은 '고통에는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부분이었다. 라흐마니노프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스물네 살에 발표한 교향곡 1번의 처참한 실패 이후, 그는 깊은 우울에 빠져 몇 년간 작곡을 멈췄다. 그러던 중 최면 치료로 겨우 어둠에서 빠져나온 그가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아 탄생시킨 곡이 바로 이 협주곡이었다. 가장 어두운 시절을 지나며 만들어진 이 곡에는 그 어둠의 무게만큼 깊은 아름다움이 스며들어 있다. 베토벤, 반 고흐, 렘브란트⋯ 그들의 작품 역시 고통의 심연에서 빛을 길어 올린 흔적들이다.


삶은 빨갛게 잘 익은 사과처럼 예쁘지만은 않다. 벌레를 품은 사과처럼 고통과 죽음을 안고 있다. 고통이 있었기에 기쁨이 있고, 슬픔을 겪었기에 행복이 있다는 작가의 말처럼 말이다.


저자는 "인생은 그냥 생존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어쩐지 우리는 팍팍한 하루를 생존을 위해 소비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어제와 같은 오늘 속에서 삶이 여전히 빛난다고 느낄 수 있는 순간이 필요하다.


그 빛은 피렌체나 루브르 박물관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장 한구석에서 야채를 파는 노인의 눈빛에도, 오슬로의 바람에도, 여름밤 별빛에도 그것은 숨어 있다.


삶의 찬란함은 먼 곳의 보물이 아니라, 불쑥 다가오는 우연이다. 그리고 그 우연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갖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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