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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닿는 거리
우사미 마코토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5년 7월
평점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을 감싸는 사랑이 태양빛이라면, 우리의 인연은 달빛 같은 거야. 부드럽고 덧없는 달빛에 감싸인 가족."
고등학생 미유는 예기치 못한 임신으로 집에서 쫓겨나 거리를 헤맨다. 절망 끝에 아이도 자신도 모두 포기하려는 순간, 따뜻한 손을 내민 이들을 따라 오쿠타마의 게스트하우스 ‘그린 게이블스’로 향한다. 이름은 『빨간머리 앤』의 매튜와 마릴라 남매의 집에서 따왔다. 소설 속 중년 남매가 고아 앤을 품었듯, 현실의 ‘그린 게이블스’에서도 아키라와 가나코 남매가 사정 있는 아이들의 위탁 부모 역할을 하고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살아간다. 집을 뛰쳐나와 거리를 전전하며 몸을 파는 소녀들, 그 절박함을 이용하는 어른들, 이름만 부모일 뿐 자식을 품을 힘도 책임도 없는 이들. 그리고 스스로의 무력함에 갇혀 아이를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 작품은 그들의 상처를 교차시키며 묻는다. 과연 가족이란 무엇인가.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는 분명 특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름만 가족인 관계가 진정한 가족이 될 수는 없다. 피로 이어졌다는 사실만으로는 사랑도 보호도 대신할 수 없다. TV와 책 속에서 그려지는 가정은 대개 따뜻하고 포근하지만, 그 이미지는 상처와 억압을 덮은 채 만들어진 환상일지도 모른다.
아이는 연약하기에 혼자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가정은 따뜻해야 한다’, ‘엄마는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믿음을 만들어낸다. 그 믿음과 관념이 가족을 성스러운 것으로 고정시키고, 때로는 가장 은밀한 억압의 형태로 만든다.
알튀세르는 자서전에서 가족을 “항상 성스러운 장소, 권력과 종교의 자리”라 부르며 그것이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라고 말한다.
가족은 개인을 지탱하는 첫 울타리이자 동시에 치명적인 억압의 구조일 수 있다. 그렇기에 '가족'이라는 이름은 언제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품는다. 『달빛이 닿는 거리』는 이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이름만으로는 결코 완전할 수 없는 가족의 본질을 드러낸다.
우사미 마코토는 이 작품을 통해 ‘가족은 따뜻하다’는 이상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진정한 애정과 유대를 보여준다. 혈연이 없어도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고 돌보는 관계야말로 가족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모습일 것이다. 가족이 해체되고 타인에 대한 혐오와 배제가 일상화된 시대 속에서, 태양처럼 뜨겁지 않더라도 달빛처럼 은은하게 서로를 감싸주는 온기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이 소설은 일깨운다.
그린 게이블스의 아키라와 가나코 남매가 보여주는 것은 바로 그런 달빛 같은 사랑이다. 어두운 밤, 길을 잃지 않도록 끝까지 남아 빛을 비추는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