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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여전히 빛난다 - 무력한 일상에서 찬란함을 발견하는 철학
로랑스 드빌레르 지음, 이주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평점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인생은 그냥 생존하는 것이 아니다. 인생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를 깨닫게 해준 것이 아름다움과 마주했을 때 느끼는 극도의 기쁨이다."
평소 책을 읽을 때는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로 잔잔한 재즈를 틀어놓는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가 문득 더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유튜브를 검색해 카라얀이 지휘하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핸드폰 화면에 띄워두고 '스탕달 증후군' 챕터를 읽어 내려갔다.
피렌체에 처음 발을 디딘 스탕달은 뙤약볕 아래서 쓰러질 듯 숨이 막혔다. 도시 곳곳에 넘쳐나는 아름다움에 압도당한 것이다. 피렌체에서는 이런 일이 드물지 않다고 한다. 골목 하나를 돌 때마다 마주치는 르네상스의 걸작들이 관광객들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스탕달 증후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우연이었지만, 글자를 읽어 내려가던 중 배경음처럼 흘러가던 라흐마니노프가 나를 침범해왔다. 시선과 생각은 책에 향해 있었는데 음악이 파고들었다. 어느새 귓속을 가득 채운 선율이 나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감정을 뒤흔들더니 결국 눈물이 흘렀다.
핸드폰 속 유튜브 공연 화면으로 시선을 돌리니 카라얀이 우아한 자세로 지휘하고 있었다. 그의 지휘도, 흘러나오는 음악도 모두 아름다웠다.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다. 저자가 말한 '찬란함'과 '아름다움'은 아마도 이런 것일 것이다.
저자 드빌레르는 아름다움을 광기를 깨어나게 하는 충격이라고 말한다. 일상이 멈춘 것 같은 혼란함, '나'라는 자아도 사라지고 우리는 갑자기 온전히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특히 공감이 가는 구절은 '고통에는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부분이었다. 라흐마니노프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스물네 살에 발표한 교향곡 1번의 처참한 실패 이후, 그는 깊은 우울에 빠져 몇 년간 작곡을 멈췄다. 그러던 중 최면 치료로 겨우 어둠에서 빠져나온 그가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아 탄생시킨 곡이 바로 이 협주곡이었다. 가장 어두운 시절을 지나며 만들어진 이 곡에는 그 어둠의 무게만큼 깊은 아름다움이 스며들어 있다. 베토벤, 반 고흐, 렘브란트⋯ 그들의 작품 역시 고통의 심연에서 빛을 길어 올린 흔적들이다.
삶은 빨갛게 잘 익은 사과처럼 예쁘지만은 않다. 벌레를 품은 사과처럼 고통과 죽음을 안고 있다. 고통이 있었기에 기쁨이 있고, 슬픔을 겪었기에 행복이 있다는 작가의 말처럼 말이다.
저자는 "인생은 그냥 생존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어쩐지 우리는 팍팍한 하루를 생존을 위해 소비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어제와 같은 오늘 속에서 삶이 여전히 빛난다고 느낄 수 있는 순간이 필요하다.
그 빛은 피렌체나 루브르 박물관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장 한구석에서 야채를 파는 노인의 눈빛에도, 오슬로의 바람에도, 여름밤 별빛에도 그것은 숨어 있다.
삶의 찬란함은 먼 곳의 보물이 아니라, 불쑥 다가오는 우연이다. 그리고 그 우연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갖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