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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만든 세계 - 500년간 지속된 서구의 군사혁명과 전쟁으로 가는 어두운 길
윌리엄슨 머리 지음, 고현석 옮김 / 미래의창 / 2025년 3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임박했을 때, 그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 소식을 들었을 때도 '에이 설마'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냉전시대에 태어나 자랐음에도 비교적 평화로운 시대를 살아온 탓에, 나는 전쟁의 가능성에 대해 안일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전쟁이 만든 세계』에는 지난 500년 동안 서구에서 일어난 전쟁들의 역사를 자료와 수치를 기반으로 꼼꼼하게 기록하고, 각 시대별 전쟁의 양상과 특징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그것이 현대 사회와 문명 발전에 미친 영향을 고찰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전쟁에 관한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던 지식들이 책을 읽으며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연결되는 시간이었다.
저자는 방대한 역사적 증거를 토대로 전쟁이 단순한 파괴 행위를 넘어 인류의 정치, 경제, 기술, 사회 구조를 어떻게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는지 보여주고, 인간과 인간사회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로서 전쟁의 역할을 이야기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전쟁은 모든 것의 아버지"라고 말했다. 저자는 전쟁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의 대부분을 형성했으며 지금도 끊임없는 변화를 이끌고 있다고 말한다. 전쟁의 근본적인 본질은 수세기 동안 변하지 않았지만,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 적응은 서구의 전쟁 방식과 사회구조를 지속적으로 바꿔놓았다.
예를 들어, 나폴레옹 시대의 대규모 징집 제도는 근대 국민국가 개념을 강화했고, 군사적 필요로 발달한 통신 체계는 현대 우편 시스템의 기반이 되었다. 남북전쟁 중 개발된 철도 물류는 글로벌 공급망의 원형이 되었고, 세계대전에서 발전한 항공, 레이더, 컴퓨터 기술은 민간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냉전 시대의 군사 경쟁은 우주 개발과 GPS 같은 현대 기술 발전을 촉진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충격적이었던 것은 역사적 사건들의 실체와 규모였다. 책의 앞부분 30년전쟁, 7년전쟁 등을 읽을 때만해도 너무 먼 이야기여서 그저 하나의 흥미로운 스토리처럼 읽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으로 7천~8천5백만명 정도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냉혹한 통계에 이르러서는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전쟁에서는 사람이 숫자로 대체된다.
『전쟁이 만든 세계』는 우리에게 불편한 진실을 상기시킨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1939년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보다 더 놀랄 일이 아니었듯이, 인간의 본성은 지난 500년 동안 크게 변하지 않았다. 저자가 경고하듯 '전쟁으로 가는 어두운 길은 여전히 열려 있으며, 과거의 교훈은 곧 잊혀지고 만다.' 21세기에도 전쟁의 가능성은 여전히 높으며, 그 형태만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많은 전쟁이 일어났을까? 저자는 이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여러 층위의 답을 제시한다. 가장 먼저, 인간의 본성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권력과 영토에 대한 욕망, 자원의 한정성, 그리고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는 집단적 정체성이 충돌의 씨앗이 되어왔다. 기술적 혁신과 군사적 우위에 대한 경쟁 역시 계속해서 새로운 형태의 전쟁을 촉발시켰다.
전쟁은 우리의 세계를 만들었고 미래를 결정짓는 힘으로 작용한다. 이 책은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세계에서 현대 문명과 국제 분쟁들을 역사적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복잡한 국제 정세를 더 넓은 시각으로 이해하게 되면서, 평화가 얼마나 위태로운지, 그리고 전쟁이 언제나 우리 곁에 있는 현실을 더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