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서현 지음 / 효형출판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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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읽었던 건축 관련 책. '꽤 괜찮다'라는 말만 듣고 사놓았었는데, 이제야 읽게 되었다.

 

부제가 '인문적 건축이야기'인데, 생각해보면 그렇다. 그 안에 들어가 사는 것이 사람일진데, 어찌 건축이 인문적이지 않을 수 있으랴.

 

  운동장 주위에는 이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관을 대변하는 인물들의 동상이 나열되어 있다. 이 동상으로 세종대왕보다 이순신 장군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은 한동안 이 땅의 정치 중심에 서 있던 이들의 배경과 가치관을 보여준다. 반공교육이 중요할 때는 이승복 동상이 세워지곤 했고 민족 자주성이 강조되면서 단군상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이렇듯 학교는 건축으로 구현된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아.. 여의도의 폭파대상 1호 건물 근처의 다른 건물들 높이가 왜 낮은지에 대한 설명도 이 책에서 처음 읽었다.

(제기랄. 그딴식으로 하면 없는 권위가 세워진대?)

 

저자는 건축의 인문적 요소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건축이 치밀한 계산으로 명확한 한계를 벗어나는 작업임을 조곤조곤 설명해준다.

건축이 무엇인가를 주장하고 외치는 방법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된 것도 큰 성과.

 

  <경희대학교 건축조경전문대학원>은 체육관을 개조한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낡은 건물을 개조하여 건축 교육을 담는 그릇을 만드는 작업을 맡게 된 건축가는 건축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건축 교육은 골방에서 이루어지는 도제 수련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교수와 학생, 학생과 학생 사이의 접촉과 토론이 더욱 중요한 건축 교육의 도구라고 생각했다. 건축가의 이런 가치관은 계단, 복도를 건물에서 가장 중요한 곳으로 만들었다. 건물 곳곳을 종횡무진 뚫고 지나가는 이 동선 공간들은 결국 사람들의 움직임을 서로에게 노출시킨다. 그리고 호객과 흥정이 떠들썩한 시장처럼 끊임없는 접촉과 토론을 강력하게 권유하는 장치가 된다.

 

그리고 그 장치를 만드는 과정 속에서, 생각 없이 타고는 했던 에스컬레이터 등의 수단이 상징적 기능을 가질 수 있다는 것도 흥미진진.

 

  움직임과 관련하여 건축가들이 특히 좋아하는 소도구로는 에스컬레이터만한 게 없다. 에스컬레이터는 엘리베이터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수송능력과 개방감을 가진 발명품이다. 이 신기한 물건은 자신이 움직이는 물체이면서 어디에 가져다 걸어도 3차원의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걸려야 한다는 점에서 공간의 박력을 주는 데는 더 없이 좋은 물건이다.

 

무엇보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건물들을 예로 들어 설명을 해주기 때문에 이해 또한 빠르다.

그리고 저자 자신의 눈으로 본 건축을 설명하되, 이제 당신의 눈으로 좋은 건물을 찾아내어 보라고 권하는 것이 맘에 들었다.

10년 후에 강의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무엇인가 내 인생에 중요한 강의였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경험이랄까.

 

사실 건축과 건설을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둘은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분명 다른 영역의 것이다.

지금의 대통령이 '건축 없는 건설'을 하는 단순한 삽쟁이라는 것도 더욱 명확해진다.

 

  교각과 상판으로 이루어진 다리는 간단하다. 이런 값싼 다리가 가장 가치 있던 시대가 아마 있었을 것이다. 그 간단함은 만들기 쉽다는 의미에서의 간단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드는 이가 지닌 사고의 단순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고의 명쾌함과는 분명 다른 것이다. 그것은 건너자는 의지 이외에 우리에게 보여주는 바가 없다. 문화라는 덕목으로 거론할 만한 구석이 별로 없는 것이다. 이들은 '대교'라는 이름으로 부르면서 후손에게 물려주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운 것들이다. 가장 값싼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사회에서는 가장 값싼 문화가 만들어진다.

 

  <교보생명 사옥>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은 인도라는 한정된 부분에만 서 있지 않는다. 건물 앞의 마당에 서 있는 것이다. 그 앞의 넓은 공터는 언제나 누구나 왔다갔다 할 수 있다. 사무소 건물 앞에 으레 있기 마련인 계단도 없다. 주위를 돌아다니는 사람에게 대지는 활짝 열려 있다. 우리는 그 지하에 들어가서 책을 사고 친구를 만난다. 누구나 책을 살 수 있고 누구와도 만날 수 있다. 그리하여 그 건물은 주위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이 되었다. 이 지하가 1주일만 문을 닫으면 한국의 지식 산업계는 비상사태에 돌입하여야 한다. 그 개방은 지명도로 곧 치환되었다. 이를 통하여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이는 그 바닥 넓이만큼의 임대료로는 도저히 계산할 수 없는 사회적인 보상을 받고 있다. "아, 그 왜, 누렇고 옆으로 줄쳐진 바로 그 건물 15층"과 "교보 15층!"이 어찌 비교될 수 있으랴.

 

  여기서 건축가는 다시 '누구를 위한?'이라는 질문에 부딪치게 된다. 도로와 건물 사이가 계단으로 분리되어 있다면 그 '누구'에서 휠체어를 타고 온 사람은 제외된다. 주차장이 있다면 자동차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 사람은 제외된다. 자동차가 있어도 기사가 없는 사람은 제외된다. 담이 있으면 거리의 시민은 모두 제외된다. 그만큼 건물은 배타성을 띠게 된다.

 

삐까뻔쩍한 '광장'을 지으면 뭘하는가. 폐쇄되고 포위된 광장은 광장이 아닌 것을.

'그들'이 세금으로 지어대는 그 '기념물'들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들인가. 누구를 위한 '삽질'인가.

 

어쨌거나, 저자의 인문학적 소양과 글솜씨까지 더해진 굉장히 멋진 책이다.

뒷부분에 한 건물을 자세히 설명해주는 부분이 생각보다 짧아 아쉬움이 계속 남았지만, 이제 건물을 보는 것은 나의 몫이니.

 

각주나 미주, 각종 부록까지 다 읽고야마는 변태같은 성격으로-_-,

저자가 이 책의 출판사인 효형출판의 건물을 건축설계한 사람인 것도 알 수 있었다. ㅎㅎ

언제 건물 구경하러 파주출판단지나 한 번 가볼까. 거기 특이하게 생긴 건물들 많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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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뱅이의 역습 - 무일푼 하류인생의 통쾌한 반란!
마쓰모토 하지메 지음, 김경원 옮김, 최규석 삽화 / 이루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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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곳마다 소란을 일으키고 다니는, 현재 재활용 가게 '아마추어의 반란' 5호점 점장의 '공짜로 사는 법'.

하지만 이 '공짜로 사는 법'은 누구에게 빈대를 붙거나 아끼고 아끼는 그런 법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힘으로 멋대로 살아가기'라는 이 책의 기본 원칙을 생각하면, 다른 사람한테 신세만 지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빈대 붙는 것도 지나치면 폐만 될 뿐이다. 게다가 남에게 얻어먹기만을 기대한다면, 지금처럼 바가지를 씌우는 경제의 포로로 잡혀 있는 얼간이 소비자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돈을 쓰느냐 쓰지 않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그놈이 그놈인 셈이다.

  폐만 끼치는 구두쇠가 되는 것은 인간 말종이 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니까 돈이 좀 생기거나 먹을 것이 남으면 곤란에 처해 있는 주변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그래야 균형이 잡힌다!

 

그가 재활용 가게를 운영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인데, 어쨌거나 구의원 선거까지 나온 그의 여러 작전이나 데모를 보고 있으면 포복절도.

찌개 투쟁, '내 자전거 돌려줘' 데모, 3인 데모, 바람맞히기 데모 등. 그 중에도 '3인 데모'는 진짜 웃겼다.ㅋㅋㅋ

그가 구의원 선거에 나온 것도 당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합법적으로 데모(?)를 하기 위함이었다.

 

소리를 중시하는 이유는 우선 우리가 즐겁게 하기 위해서지만 주변의 혼란을 가중시키려는 의도 때문이다. 질서정연하게 데모를 해봐야 아무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그게 뭔 데모람. 모처럼 '데몬스트레이션'으로 쌓이고 쌓인 불만을 터뜨리려고 작정했다면 틈만 나면 음향을 꽝꽝 울려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고 교통을 마비시켜 조금이라도 세상을 들썩거리게 해야 보람이 있다. 이게 바로 비폭력 직접행동이라는 거다. 까불지 말라는 경고를 귀청이 떨어지게 알리려면 마냥 예의 바르게 굴 수가 없는 법이다. 대혼란 만만세!

 

종종 '합법적' 집회 운운하면서 다른 사람한테 피해는 주지 말아야지.. 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꽤나 있는데.

그 '합법'이 어떤 '합법'인지나 알고나 얘기하는 건가? 매미 소리보다도 작게 소릴 내면서 인도로 걸으라고? 푸훗.

'합법적'으로 하면 관심이나 가져줄 것처럼 얘기하는 그들의 위선에 이젠 구역질이 나온다.

선거로 당당히 뽑힌 사람을 왜 끌어내리고 욕하고 난리냐고? 당신들 기억력 참 안좋아. 당신들이 했던 건 기억 안나?

뭐 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자는 아니지만, 그가 쿠데타라도 일으켜서 정권을 잡았던가?

인터넷에서 술자리에서 그렇게 대통령 까던 거 기억안나? 근데 지금 저 놈은 그것도 못하게 하잖아. 안그래? 웃겨요, 아주.

 

어쨌거나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우리가 노동운동과 다른 점은, 어떻게 하면 돈을 쓰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느냐를 고민한다는 거죠. 다시 말해 지금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어떻게 탈출하느냐 하는 이야기를 한다는 겁니다. 노동운동은 현존하는 체제 안에서 임금노동으로 살아가는 것을 전제로 삼고 그 속에서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대가를 받을까를 궁리하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그런 건 웃기지도 않는 수작이니까 일체 아무 것도 안하겠다고 떠들어대죠. "회사에서 일하지 않을 거야. 그냥 내 멋대로 살아갈 거야." 바로 이렇게요.

 

중간 중간 그가 실제로 벌였던 소동과 각종 표현들이 '푸훗!'하게 만드는 책이라 가볍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급진적인 '행동가'의 글인 셈이다.

최규석이 삽화를 넣었다는 그 이유 하나로; 책을 사서 보게 되었는데, 겉으로 포장된 그 가벼움에 비해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 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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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저널리스트의 죽음 - 한국 공론장의 위기와 전망
손석춘 지음 / 후마니타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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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손석춘 씨의 책. 미디어 비평서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아무래도 가장 시장 점유율이 높고 따라서 영향력도 큰 조중동 3사의 논설과 기사가 주요 비평 대상이 되고 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문제점이 가장 많기 때문. -_-

저자가 줄기차게 주장하듯이, 신문의 논조는 각기 다를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논조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논조를 숨기면서 악의적인 왜곡을 일삼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 정도면 정말 이 '찌라시'들을 언론이라고 불러야하는지 회의감이 든다.

 

중앙일보는 한국교육개발원의 발표를 28일자 3면에 편집하면서 "평준화 지역 학력 더 높다?"라는 표제를 달았다. 물음표 제목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처음부터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기사는 학계에서 "무리한 연구"라는 의견이 많다며 그 근거로 "연구에 사용된 기초 자료에 한계가 있고 방법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중앙일보의 보도에 대해 당사자인 김기석 교수는 강력히 반발했다. 김 교수는 자신이 기자 설명회에서 '평준화가 학력 하향 평준화를 초래한다'는 지난해 KDI 논문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정부가) 자료를 안 줬기 때문"으로 이유를 설명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중앙일보는 이를 자신의 연구에 대해 한계를 토로한 것으로 오도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종전 연구의 자료 한계를 지적한 말을 이번 우리 연구의 자료나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도한 것은 명백한 오보"라며 "평준화를 깨기 위해, 신념을 보도하기 위해 이렇게 사실을 왜곡해도 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반문했으나 아마 저들은 침묵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정도는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그냥 자기들이 의도한대로 싸지르듯이 기사를 남발한 뒤에 책임지지 않는 이 따위 것들이 무슨 신문이며 언론인가.

그리고 그런 기사들을 남발하는 것들이 무슨 기자인가.

(뉴스위크에서 이건희를 'The Hermit King'이란 타이틀로 특집보도한 것을 '수도자적 경영인'으로 옮기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논리와 분석은 없고 주장과 왜곡만 난무하는 저것들은 종이낭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때문에 철도노조 게시판에 한 노동자가 올린 글은, 저자의 말대로 그야말로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찌라시. 참 반가운 단어를 들어 봅니다. 어릴 적, 논쟁의 정점에서 모두를 한방에 보내 버리는 '그거 신문(방송)에서 봤어!'를 그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보게 됩니다. 사실은 사라지고, 쟁점은 묻혀 버리는, 그래서 누구라도 쉽게 뱉을 수 있는 그 말, '시민들의 불편을 볼모로 한 파업!' 얼핏 돌이켜 봐도 20년은 들어온 것 같습니다. 2,000명이 넘는 노동자를 직위 해제한 것이 '법의 엄정 적용'이 돼 버리고 조합원 하나하나에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것이 '원칙의 고수'가 돼 버리는, 충혈된 눈동자에 빰 위로 흘러내리는 눈물조차 느끼지 못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와야 하는 그 참담한 심정의 노동자들을 마치 '패잔병' 취급하는 찌라시들을 오늘 다시 만나게 됩니다."

 

여러가지 분석도 좋았지만, 뒷부분에 수록된 '언론의 후보자 공개 지지'에 관련된 부분은 많은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볼 문제고, 이 문제가 공론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하나 꼼꼼히 기사나 논설을 분석해나가는 방식은 마치 학부 수업을 듣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대학 초년생들이 읽어볼만한 책이다. 특히나 '난 언론에 속지 않아'라는 위험한 믿음까지 만들고 있는 요즘 더욱 그러하다.

더군다나 미디어 악법 또한 날치기 통과되지 않았던가.

 

책의 내용에 언급된 사설이 신문 이미지 그대로 스캔되어 작은 사이즈로 삽입되어 있는데, 꼬박꼬박 눈아픈거 참아가면서 읽었었다.

그러다가 반쯤 읽어가면서 이미지로 편집되어 있는 사설 전문은 포기해버렸다. 눈 아픈 것은 참겠으나 열 받아서 읽을 수가 없었다.

조선일보 기자도 먹고 살아야하니 어쩔 수 없이... 라는 말 따위, 웃기지 마라. 이젠 들어주지 않을테다.

 

이건 사족인데, 손석춘 씨가 사용하는 몇몇 단어나 문체가 좀 낯설어서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강조점을 찍기 위해서인지 문단의 시작을 '그래서다.'로 처리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 빈도가 너무 잦아서 오히려 방점의 기능을 못하는 것 같았다. 내 '글버릇'도 한 번 객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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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C. 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이반.김종철 옮김 / 녹색평론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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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대선 때 이야기되는 것들이 경제 밖에 없고, 또 결국에는 그 논리에 따라 괴물이 뽑힐 것 같은 분위기에 좌절을 느껴 사게 된 책.

하지만 역시, 읽은 것은 이제서야. -_-

 

저자는 '상식이라는 것은 불변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크게 변화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강조한다.

즉 결코 변할 수 없는 그 무엇도 바뀔 수 있으며,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상식이란 것이 실제로는 상식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경제발전론'은 일종의 사고장해라고 부를 수 있을만큼 사고력을 억압하는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겪었지 않은가. 더러운 놈이면 어때, 경제 발전시킨다는데. 미친 놈이면 어때, 잘먹고 잘살게 해준다는데.

(그 결과를 이미 보고 있지 않은가. 아니, 실은 이것이 단지 시작일 뿐이라는 것, 그것이 더 미칠 일이다.)

결국 실제로 벌어지는 환경파괴, 인간성파괴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비상식/비현실주의로 받아들여진다.

정부에게 폭력을 양도한 뒤, 훨씬 더 대규모의 학살이 이루어졌음을 증명하더라도 그것은 '비현실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또 그는 1949년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사용한 발전 개념이 이후 시대를 지배했다고 주장하는데, 경청할만한 이야기이다.

 

  "나라 A는 국가정책으로 나라 B를 발전시킨다(develop), 그것이 나라의 발전(development)이다"라고 하는 것, 이것이 왜 '고쳐 만들어진 말'인가 하면 기본적으로 일본어의 '발전'이나 '성장'도 그렇습니다만, 영어의 'develop(발전한다)'는 본래는 자동사입니다. 타동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언어로서 정당치 않게 들립니다. 국가 A가 국가 B의 '발전'을 정책으로 삼고 있는데 그 표현은 자동사라니, 이것은 큰 모순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문법상의 문제가 아니라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미개발'의 공통점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특징이 아니라 자기네와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즉 유럽이나 미국의 경제제도에 들어와있지 않은 그 '결여'입니다.

 

이 착취 이데올로기는 '발전'이라는 꽤나 긍정적인 단어로 교묘하게 포장된다.

 

내정간섭이 아니라 발전, 착취가 아니라 발전, 폭력적인 변화가 아니라 발전.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아닌가? 재'개발', 재'건축', '투자'...

 

경제발전이란 '슬럼세계'를 '고층빌딩의 세계'로 조금씩 변신시키는 과정이라고 하는 것은 착각이자 속임수입니다. 경제발전의 과정에 따라 예전에 있었던 다양한 사회가 '고층빌딩과 슬럼의 세계'로 바뀐 것이 20세기의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래도 옛날에 비하면 얼마나 나아'라고 하는 말은, '본래 있었던 빈부의 차를 경제발전이 합리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는, 제로성장을 주장한다. 대신 '정의로운' 부의 분배, 환경과 조화된 삶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보다 '더 못살자'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고 역설한다.

앞으로 100년을 내다보지 못하는 이 절박한 상황에서, 이 이야기가 왜 '더 못살자'라는 비현실적인 말이 되어야하느냐고 반문한다.

 

이렇게 현실주의가 비현실주의로 취급받는 상황은, '민주주의'가 왜곡된 것이 무엇보다 큰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미국의 '민주주의'는 많은 왜곡을 거쳐 완성된 것이다.

미 건국의 아버지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는 물론이고 평등과 자유에 대한 정의도 고치는데 성공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

보라. 결국 '신자유주의'가 '자유민주주의'와 동일시되고, '사회주의'는 '민주주의'의 적이 되었지 않은가?

 

사회주의는 해결할 수 없었다, 또는 적어도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는 해결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따라서 자본주의 경제제도는 민주적이다, 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

  경제제도를 민주화하는 과정의 첫걸음은, 경제적인 결정이라고 말해지는 정책결정의 대부분이 실은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 결정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입니다.

 

물론 이 책이 아주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하는 정책론이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논의되어야 할 점은 산적해있다.

그리고 부분부분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특히 맥아더가 전쟁이 없어야한다고 느꼈기에 일본의 군사력을 억제했다는 이야기등.)

하지만 다음의 말은 정말 명심해야만 하는 구절이다.

맨날 욕하다가도 몇 년에 한 번 돌아오는 그 보잘 것 없는 권리행사마저 헛되이 날려버리는 상황에서는.

 

  경제발전에 따라 빈부의 차이가 없어진다고 하는 환상은 로스앤젤레스를 보면 잘못도니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빈부의 차이란 경제발전에 따라 해소되는 것이 아닙니다. 빈부의 차이는 정의(正義)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경제학의 입장에서 보면, 빈부의 차이가 나쁠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정의라는 말은 경제학의 용어가 아닙니다. 경제학 공부에서는 정의라는 말을 배우지 않습니다. 빈부의 차이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은 커녕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정의'란 정치용어입니다. 빈부의 차이는 경제활동으로 고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빈부의 차이를 고치려고 한다면 정치활동, 즉 의논하고 정책을 결정하여, 그것을 없앨 수 있는 사회나 경제구조로 바꾸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해소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아마도 지금 이 정부가 미디어 장악을 성공적으로 진행한다면, 자신을 포장하고 사실을 왜곡할 것은 뻔한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훨씬 더 무서운 것은, 정치에 대해 더욱더 '역겨움을 느낄' 더러운 포장을 심화할 것이란 사실이다.

실제로 정치가 그러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겠지만, 그렇다고 고개돌린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아니 더 심해질 뿐이다.

정치적인 것 하나 생각하지 않고 경제논리로만 대통령 찍어놨더니 어떻게 되었는가?

경제논리로 결정한 그 선택은 그 어느 때보다 가장 '정치적인' 결정이 되고 말았다. (아니, 경제'논리'라도 있기는 했었나?)

정치에 대해 역겨움을 이끌어내는 언론들은, 그 누구보다도 그 역겨움 속에 깊게 발을 담그고 축배를 들고 있지 않던가?

역겹고 유치하고 더럽더라도 무시하지 말라.

당신이나 나나, 모래구덩이 속에 머리를 파뭍어봐야 허약한 몸은 피할 곳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던가.

 

더글러스 러미스의 주장대로, 진짜 상식을 상식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상식이 바뀌는 거, 그래 그거 쉽지 않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고작 10년 전의 상식이 지금 얼마만큼 유지되고 있는가를.

쉽지 않지만, 불가능하지 않다. 어차피 지금 이 '상식의 세계'에서도 충분히 힘들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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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의 귀환 - 신자유주의의 우주에서 살아남는 법
김태권 지음, 우석훈 / 돌베개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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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를 그렸던 김태권의 신간.

사실 2권에서 멈춘지 너무 오래되어버린 터라, 좀 뜬금 없게 느껴진 책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구입해서 읽었다.

10년 정도 여기저기 연재했던 것들을 모아서 낸 책인데, 본인이 이야기하고 있듯이 그래서 그림이 들쭉날쭉하다.

어차피 기본 내용과 콘티 정도는 거진 다 짜여져 있는 상태이니 그림을 다시 그렸어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매우 아쉽다.

 

어쨌거나 책의 내용은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그 비판을 김태권 특유의 비꼼과 패러디로 풀어내고 있는데, 역시나 정신 없기는 하지만 재치가 넘치는 부분도 적지 않다.

 

음, 길든다는 건 말이지. 이를테면 - 월급이 오후 네 시에 나온다면 나는 오후 세 시부터 설레기 시작할 거야.

그리고 여기! 봉투가 보이지? 난 편지를 쓰지 않으니, 봉투는 내게 소용없는 거야.

그런데 이제 봉투는 월급을 생각나게 하겠지! 그럼 난 봉투를 사랑하게 될 거야.

 

이 부분은 읽다가 진짜 뿜었다.

어쨌거나 만화라는 장르상의 특성(혹은 선입견)에다가 김태권 특유의 산만함 때문에 책이 너무 가벼워질 수도 있었는데

우석훈이 각 챕터마다 간단하고 쉬운 해제를 달아놓아 책의 가벼움에 작은 추를 마련하였다.

 

그런데 신자유주의가 극한까지 가면 시장 이데올로기가 말하듯이 모두가 자신에게만 관심을 가지고 개별화된 개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 혹은 민족의 이데올로기가 더욱 강조된다. ……

  이런 상태에서 경제적 실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의 경제적 위치는 계속해서 인종적 위치 혹은 국가적 소속감 같은 이데올로기적 실체로 치환되는 경향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 정당을 위해서 투표하는 등 경제적 합리성의 눈으로 볼 때 납득하기 어려운 행위들이, 국가주의나 지역주의와 함께 재생산되는 셈이다. 그리고 이렇게 강화된 국가 이데올로기는 개인들에게 자신의 경제적 상황을 이해시키기보다는, 인종, 국민, 혹은 지역과 같은 상징에 더욱 소속감을 느끼게 만든다. 그래서 세계화된 경제에서 사람들은 '세계시민'으로서의 의식을 키우기보다는, 더 인종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의식에 사로잡힌다. ……

  한국에서도 신자유주의가 강화되면서 '국론 분열'이라는 말이 더 많이 사용되기 시작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한 국가 내에 다양한 의견이 생겨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또한 개개인이 처한 경제적 삶과 경제적 운명이 다르기 때문에 국론이 통일되는 일은 처음부터 있을 수가 없다. 중요한 것은 의사소통의 과정을 통해서 서로 다른 의견들을 조율해나가고, 경제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통해 사회 전체적인 행복 및 후생 수준을 높여나가는 일이다. 그러나 강요된 국론 통일은 비정규직이나 여성과 같은 경제적 약자의 의견을 무시하게 되고, 이미 파편화해 분할통치하에 있는 사람들을 국가라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폭압적으로 이끌어 나간다.

 

절대적으로 공감이 가는 말이다. '분할통치'의 구체적 사례들이 궁금하다면 이 책의 단 몇 페이지가 도움이 될 것이다.

국론이며 국익이며 그런 것이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이것부터 찬찬히 따져봐야 한다.

이타적인 삶을 살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기적이려면 제대로 이기적이자는 이야기. 너무 냉소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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