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훅스,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
벨 훅스 지음, 이경아 옮김 / 모티브북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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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언제부턴가 우린 '계급'이란 말에 적지 않은 거부감을 갖게 되었다. 이것도 일종의 '레드 바이러스'인건가?

하긴 열심히 일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고, 가난하면 열심히 살지 않은 것으로 간단히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니.

 

사람들은 오랫동안 미국은 열심히 일을 하면 누구나 정상에 설 수 있는 계급 없는 사회라고 믿었다. 그런데 계급 없는 사회에 정상이란 것이 있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본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모두가 평등한 사회, 모두가 평등한 '자유 경쟁'의 이미지는 너무나 성공적으로 유포되었다. 그것이 현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벨 훅스는 페미니스트 영문학자인데, 그는 이 책에서 '계급'에 주목한다.

(나의 선입관인지는 모르겠는데, 많은 페미니스트들 또한 '계급'이란 말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진보영역에서도 이제 성이나 인종에 비해 계급은 산뜻하지 않은 주제이다. 계급이란 말을 하면 왠지 먼지가 날릴 것만 같다.

그러나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오늘날에도 엄연히 계급은 존재한다.

벨 훅스는 계급이 없다는 인식을 유포시키는 광고나 대중문화를 경계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모든 사회문제가 성이나 인종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핵심은 바로 계급인 것이다.

 

  언젠가 친구와 지인들에게 데이비드 힐파이커처럼 강의를 그만두고 저술활동에 전념하겠다고 말하자 이구동성으로 큰 실수하는 것이라고 겁을 줬다. 모두들 일 년에 2~3천 달러 수입으로 어떻게 먹고사냐고 걱정을 했다. 실제로 4인 이상의 가구도 그 정도 수입으로 생활한다고 했더니 "그건 다르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바로 계급이 다르다는 말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원래 적은 돈으로 살아야 하고 (질 나쁜 옷, 공산품과 음식처럼) 수준 낮은 생활환경을 받아들이도록 사회화된 반면, 부자들은 더 많이 가져야 하며 갖고 싶을 때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믿도록 사회화된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까지 상층계급으로 올라갈 기회가 있는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말살시켜야하는 것일까? 불타는 용산처럼?

 

가난한 이들을 은밀하게 공격해 말살시킨다면 부자들의 세계가 더 안전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진한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착각이다. 더 강력한 도난 경보기를 달고, 더 많은 감옥을 짓고, 가난한 사람들이 잡혀온 것처럼 사는 포로수용소 같은 거주 단지를 구축하는 조치는 포위 같고, 충돌 같고, 전쟁 같은 일상을 반영할 뿐이다.

 

그렇다. 벨 훅스가 입이 닳도록 이야기하는 '단순한 삶', 나눔과 연대는 그들을 동정하기 때문에 해야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바로 '우리'가 잘 살기 위한 방법일 뿐이다.

그리고 그 방법을 위해서는 이 책의 원제처럼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명확하게 인지해야만 한다.

그 명확함은 '단순함'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지금의 가난은 성의 문제와 인종의 문제를 모두 내포하고 있다.'

성은 그렇다치고 인종은 우리나라 얘기가 아니라고? 글쎄, 과연 그럴까?

다문화 가정이 이미 소수가 아니며, 게다가 대한민국엔 사회적 인종이 이미 등장하고 있다.

강남인, 강북인, 지방인, SKY출신.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가?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강남인은 강남인이 된다. 마치 흑인의 아이가 흑인인 것처럼.

 

벨 훅스는, 계급 문제를 거론할 때 성이나 인종을 부각시키고, 인종의 문제를 거론할 때 다시 계급의 이야기를 꺼내는 기만을 직시한다.

지배계급이 필요에 따라 갈등요소를 자의적으로 부각시켜 물을 흐린다는 것이다.

 

  백인이 백인에게 강도나 폭행을 당할 확률이 더 높다고 아무리 말해도 백인은 주택 문제에 대해서는 계급에 기반을 둔 인종 문제를 두려움의 원인으로 설명한다.

 

  계급 문제가 거의 혹은 전혀 이야기되지 않은 미국에서 부동산과 주택 분야의 인종차별이 거론될 때마다 백인들이 문제는 '인종'이 아니라 '계급'이라고 하는 사실이 참으로 흥미롭다.  내가 아는 백인들 중에서 가장 진보적인 친구들조차 부동산 문제에서는 백인우월주의 사고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백인 주민들이 백인 우월주의의 침투를 강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집값을 걱정하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은 것이다.

 

이 또한 미국만의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 '전략'은 2009년 대한민국에서도 유효하다.

생존권을 위해 옥상으로 올라갈 수 밖에 없었던 이들과 명령을 받고 현장에 투입되는 경찰이 가장 치열한 순간에 충돌했다.

그 비참한 현장에 있는 이들과 실질적으로 다른 계급에 속하는 이들은 쏙 빠져있다.

처참한 현장에 있는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그것을 볼 수 밖에 없는 우리는, 저 '충돌'이 누구와 누구의 충돌인지 순간 알 수 없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의 비난은, '옥상에 올라간 테러리스트'들과 '강경진압으로 일관한 경찰특공대원'들에게 쏟아지게 된다.

아니, 비난을 하는 '우리'조차 서로 엉겨붙어 싸우게 된다.

자, 한 발 떨어져 바라보자. 이것이 누구 때문에 벌어진 일인가? 이게 누구와 누구의 싸움이었던가?

(이런 의미에서 '경찰노조' 조직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한홍구 교수의 견해는 충분히 동의할만 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현대사회에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가? 정말로?

혹자는 그럴 것이다. 설사 계급이 존재한다하더라도 계급이동의 가능성이 열려있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아. 그래. '자유경쟁'의 시대였지.

누구는 100만원짜리 과외를 받아가며 학습하고, 누구는 경제생활에 힘든 부모를 두어 혼자 컴퓨터 앞에 하루 종일 있을 뿐이고.

그런데 이것도, 그 아이들의 능력 때문인건가?

(실제로 아이들이 학습성취도와 부모의 소득이 상관관계가 있다. 그에 대한 심각한 연구 결과들이 널려있다.)

나도 '다양한 계급을 넘나드는 것이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무척 어렵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먼지가 좀 날리더라도 다시 '계급'을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누차 강조하는 것이지만, 그 계급은 성이나 인종의 문제를 배제한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실타래처럼, 아니 오늘 날엔 마치 거미줄처럼 촘촘히 드리워있는 계급을 인지하고, 과연 내가 어디 서있는가를 생각해야할 때다.

그러니 지금은, '계급에 대해 말'해야만 할 때다.

 

220페이지 정도 되는 책이고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많이 이야기하고 있어서, 별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중간 부분엔 너무 뻔한 소리를 반복하고 있어서 흥미가 좀 떨어졌기 때문인 것 같다.

나눔, 단순한 삶... 이런 것들이 옳기는 하지만, 나는 저자가 강조하는 '계급의 문제'가 개인적 행동으로만 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개인행동의 방향이 좀 더 정치적인 방향, 정책적인 방향을 지향해야 좀 더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개인적인 삶에 있어 사소한(?) 선택 하나하나도 중요하다고 믿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거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는 조금 아쉬웠다. 강한 주장에 비해 구체적인 대안의 제시가 부족하달까, 그런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페미니스트가 이야기하는 계급 이야기가 신선했던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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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여성들, 부자유한 시대에 너무나 비범했던
박무영.김경미.조혜란 지음 / 돌베개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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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을 전공한 세 명의 여성이 쓴 조선시대 14명의 여성에 대한 글을 모은 책.

사실 이런 류의 책에 실망한 적이 많아서 별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기대를 안해서인지는 몰라도 상당히 괜찮은 편이었다.

가장 기억이 남는 여성은 이옥봉.

 

강은 갈매기 꿈을 품어 넓고                  江涵鷗夢闊

하늘은 기러기 슬픔에 들어와 멀다          天入雁愁長

 

  번역하기 어려운 시란 이런 시일 것이다. 어려운 글자도 없건만, 번역을 해놓으면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는 비문이거나 반쪽이 된다. 워낙 교묘하게 말을 놓았다. 강이 갈매기의 꿈을 적시고 하늘이 기러기의 슬픔으로 들어가는 것일 수도 있고, 거꾸로 갈매기의 꿈과 기러기의 슬픔이 강과 하늘에 들어와 담기는 것을 수도 있는 문법구조이다. 그래서 넓고 먼 것이 갈매기의 꿈과 기러기의 슬픔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강과 하늘일 수도 있게 만들어놓았다. 넓고 먼 강과 하늘은 철새인 갈매기나 기러기와 사슬처럼 얽히며 더욱더 넓고 멀어진다. 동시에 물에 젖은 꿈도, 하늘에 번진 슬픔도 아득히 넓고 멀어진다. 가을 하늘에 깔리는 깃털 구름처럼 여러 겹의 정서적 결이 서로 약간씩 어긋나며 잔잔히 이어지도록,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문법구조 속에 짜 넣었다. 표의문자인 한자의 특징을 시적인 애매성으로 기막히게 살려낸 경우이다. 가를 모를 쓸쓸함과 맑고 유장한 호흡이 이런 의도적 모호성과 다의성 속에 녹아 있다. 이런 시를 두고, 읽으면 읽을수록 말 밖에 무한한 정취가 있다고 하는 것일 터이다.

 

이렇게 멋진 시를 지어낼 문재가 있었던 여성은, 그러나 조선의 여성이었다. 하긴 굳이 조선이 아니더라도 상황이 크게 다르진 않았을테지만.

저자는 이옥봉의 도도함 속에서 컴플렉스를 발견해낸다. 아니, 직접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옥봉은 그(정실의 아들 조희철)를 향해, 그대의 글씨는 바람도 놀래키고, 내 시는 귀신도 울린다고, 그와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나란히 부각시킨다. '귀신도 울린다'는 것이 애당초 이태백의 시를 지칭하는 말이니, 그녀 자신, 이태백에 필적하는 시인이라는 도도한 자부심의 표현이다. 그런가 하면, 비록 소실이지만 예술적 재능으로 집안의 명성을 드높인다는 자부심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 이 도도한 선언에서는 역설적으로 옥봉의 신분적 컴플렉스가 느껴지기도 한다. 옥봉의 아버지 이봉이 교유한 인물들과 조원(남편)의 나이 차이가 그다지 나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보면, 아마도 옥봉은 조원과 나이 차가 많았을 것이다. 오히려 세대로는 조희철의 세대가 아니었을까? 그러니 '더할 나위 없는 명예가 모두 어린 사람들에게 주어졌다'고 할 수 있는 것일 것이다. 그 적자를 향해 '모자'라고 내세우는 그녀의 힘겨운 자존심이 안타깝다. 소실을 자처해 예술가로서 삶을 선택했던 그녀의 자의식에 놓인 분열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그밖에 열녀의 '현실적' 모습을 보여주는 풍양 조씨의 '자긔록'이나, 현실과 욕망의 뒤얽힘을 보여주는 김삼의당의 경우도 매우 흥미롭다.

 

아무래도 이 책의 저자들이 여성이라는 점이 꽤 긍정적으로 작용한듯 싶다.

'나'로부터 출발하는 문제의식은 언제나 진지하고, 보통 이상의 것을 끌어내는 법.

때문에, 나에게 가장 솔직한 것이 타인들의 동감을 얻어내기에도 쉬운 방법인 셈이다.

 

책 표지를 검은색으로 하는 것은 종종 도박일 때가 많다. 그만큼 예쁘고 깔끔하게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은 듯.

그런 의미에서 표지도 그럭저럭 괜찮은데, 아쉬운 것은 제목. 내용에 비해 다른 그런저런 책들과 차별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너무 섹시한 제목을 뽑으려 노력한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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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청년 안토니오 코레아, 루벤스를 만나다 - 히스토리아 001
곽차섭 지음 / 푸른역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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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가 그렸다는 '한복 입은 남자'. 그리고 이탈리아 알비의 꼬레아 씨들.

그리고 최초로 유럽에 건너간 것으로 보이는 안토니오란 조선 청년.

이 세 가지 흥미로운 사실 사이에서 연결고리를 찾아보려는 역사가의 시도가 돋보이는 책.

 

  안토니오와 '한복 입은 남자', 그리고 알비의 코레아 씨들 간의 관계를 추적하면서, 나는 탐정이라도 된 듯한 기분을 맛보았다. 단편적인 자료들을 실마리 삼아 한 장면 한 장면 이야기를 엮어 나가는 작업은 정말 흥미진진하였다. 통상적인 역사의 분야를 넘어서, 때로는 미술사로 때로는 복식사로 경계를 넘나들었다. 기존의 연구 성과를 수정하기도 하고 이용하기도 하면서 설득력 있는 나름의 '진실'에 다가가고자 노력하였다. …(중략)… 나는 이 작업의 전 과정을 통하여, 입수할 수 있는 모든 증거를 사용하되 때로는 증거와 증거를 잇는 최선의 가능성에도 주목하였다. 역사적 상상력이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은 '나름의 진실'을 찾기 위해 꽤나 꼼꼼히 그리고 처음부터 작업을 시작하고 있다.

루벤스의 그림에 나타나는 복식을 살펴보는 부분도, 증거가 불충분한 상황에서 반드시 필요한 작업으로 보인다.

이럴 때야말로 '기존 연구'의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활용이 빛을 발하는 법. 이것이 바로 '학문'이 아닐까?

 

저자가 꽤나 조심조심하기 때문에(나는 이 태도를 긍정적으로 본다), 결국 무엇인가 새로운 사실이 확연히 밝혀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동안의 연구결과들에서 보여진 크나큰 헛점과 신화들이 이 책에 의해 한꺼풀 벗겨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의가 있다고 본다.

특히 '민족'이라는 단어 때문에, 분명 확인할 수 있는 사실조차 당위적인 것으로 '왜곡'시키는 과정을 보여주는 부분이 이 책의 핵심.

따라서 이 책의 제목은 비록 안토니오 코레아와 루벤스의 관계를 암시하고 있으나, 내용은 오히려 현대적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내용이 더 흥미로웠다.

현대에서 '만들어지는' 과거들. 무엇을 목적으로 또 어떤 이들에 의해, 어떻게 창조되는가 하는 것.

 

이 책을 쓴 곽차섭 교수는 서양사 전공자다. 사실 서양사 전공자들 중에 '저작'을 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 번역을 하거나, 메타비평 성격을 가진 글을 많이 쓰고는 한다. 물론 이와 같은 작업이 중요하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한국에서의 서양사 전공자'가 가지는 슬픈 한계라는 것도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한국사를 바라보는 서양사 전공자들의 냉소적인 태도를 생각한다면, 저작물이 드문 것은 참 아쉬운 일이다.

그런 면에서 그 동안 문화사 관련 글을 꾸준히 번역하고 또 써왔던 저자가, 이렇게 분량이 적은 책이라도 출간했던 것은 환영할 일이다.

최근에 다른 서양사 전공자가 쓴 '대항해시대'라는 책도 나왔던데, 한 번 읽어봐야겠다.

 

그건 그렇고, 이 책은 출판사에서 기획한 '히스토리아' 시리즈의 첫 권인데, 이후 이 시리즈의 책이 나오지 않는 것 같다.

시장에서의 성과가 어떠한가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겠다. 혹은 이 출판 기획에 맞는 좋은 저자의 좋은 글이 없었을 수도...

시리즈로 나오면 사서 조로록 꽂아놓으면 이쁘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아쉽다. (응? 역시 나는 페티쉬즘을 벗어나지 못하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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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경제를 말하다
지승호 인터뷰어, 김수행 대담 / 시대의창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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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창'에서 시리즈로 나오고 있는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의 인터뷰 시리즈.

이 책은 얼마전 서울대에서 은퇴한 서울대의 경제학 교수, 김수행과의 인터뷰를 엮은 책이다.

인터뷰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깊은 논의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어렵게만 느껴지는 부분을 쉽게 풀어낸다는 점이 장점.

'자본론'이야 워낙 어려운 책으로 알려져있고 나도 읽지도 못했지만, 김수행의 주장은 생각보다 훨씬 단순명확하다.

그만큼 현재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말도 될 수 있다.

그가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내주 중심의 경제를 한번쯤은 해보라'는 것, 그리고 '국가의 개입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라고 하면 자유로워야 될 거 아녜요? 시장에 맡겨서 놔두자고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구요. 시장에 맡겨서 안되는 경우가 많아요. 왜냐하면 공기업을 민영화했단 말입니다. 가스, 전기, 철도 같은 것을 전부(영국의 경우를 말하고 있음). 사기업이 그것을 인수했으니 이윤을 보려고 하잖아요. 단기간에 이윤을 많이 뽑으려고 하니까 결국은 배당을 많이 해야 돼죠. 그렇게 하면 실질적인 설비개선은 안 된다구요. 그런 과정을 거쳐 철도 같은 것이 다 망했잖아요. 서비스의 질은 낮아지는데 요금은 자꾸 올라가니까 사람들이 '무슨 짓이냐, 민영화하면 서비스는 좋아지고 가격은 낮아진다고 했지 않느냐?'고 나서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이것을 규제하기 위해서 정부 기구를 다 만들었다니까요. 수도관리는 오피스 오브 워터, 가스는 오피스 오브 개스, 철도는 오피스 오브 레일로드, 이런 식으로 다 만들었다구요. 이처럼 시장에 전적으로 맡긴다는 개념이 실제로는 안 돼요. 이명박 같은 사람은 경찰서까지 뛰어가는 사람이잖아요. 전두환 하듯이 여기저기 쫓아다닐 가능성이 굉장히 많아요. 엄청나게 독재를 할 가능성이 많다구요.

 

시장에 상품이나 화폐만 있을 수는 없어요. 시장이 혼자서 있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시장에 나가서 물건을 사고팔 때는 하나의 법규가 있어야 돼요. 시장에는 정부가 개입을 하게 되어 있다구요. 그게 법적인 개입이든지, 어떻든지 말이에요. 가령,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돈을 안내면 잡아내야 할 것 아녜요? 사기를 쳤다면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하구요. 이렇게 보면 시장이라고 하는 곳은 언제나 정부가 개입을 하고 있다고 봐야 돼요. 시장과 정부를 대립시키는 것은 말이 안 돼죠. 그런데 주류경제학자들은 시장과 정부가 완전히 별개인 것처럼 얘기하고, 규제를 없애면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처럼 얘기하니까 문제가 생겨요.

 

이처럼 그가 보는 '현실'도 굉장히 '상식적'이다. 어려운 숫자나 공식 따위가 필요하지도 않은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기본적으로 자기의 세력권이 부자하고 대기업이기 때문에 이놈들한테 세금 인하해주고, 상속세 낮춰주고 분명히 그럴 거라구요(이 인터뷰는 이명박 정권 초기의  것이다). 그러면 세입이 줄어드는데, 정부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적은 세입을 가지고 일반 사람들을 위해서, 특히 못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쓸 가능성은 별로 없다구요. 그런데다 자꾸 북한하고 대결구도가 지속되면 안정을 위한답시고 무기 사와야 하고, 일반 시민들 생활은 분명 더 나빠질 겁니다. 그런데다가 교육을 학원에서 전부 할 수 있게 해버리니 사교육비 지출로 일반 서민들의 생활은 더 궁핍해지겠죠. 아파트 값을 올리는 것을 가만히 둔다든지 그러면 더 그렇겠죠. 서민들의 미래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독재를 하면서도, 정부가 해야할 일에 대해서는 '자유주의'라는 말로 손을 놔버리는 상황.

 

정부가 돈이 없어서 뭘 못한다고 하면 그건 직무유기에 해당해요. 돈이 왜 없어요? IMF 때 공적자금이 160조였어요. 그걸로 은행들 다 구제해줬잖아요. 은행장들, 이사들이 잘못한 것을 국민 혈세로 해결했다구요.

 

'상식'이야 분명 필요한 기본조건이지만, 사회의 담론이 '상식을 지키자'의 수준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은 분명한 위험의 증거다.

'정규직이 비정규직과 연대를 하지 않으면 정규직이 비정규직으로 갈 가능성이 많다'는 것도 마찬가지.

소비를 살린다면서 최저임금을 깎는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하는 걸까?

고소득층의 면세를 추진하면 소비가 살아난다고? 웃기시네. 그들의 그 돈이 어디 생필품 사는 데 들어가던가?

 

원론적이고 또 일면으로는 계몽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김수행 교수의 말은 오히려 2000년대에 너무나 적절하다.

지승호의 말대로, '지금 우리에게는 더 강력한 자본주의가 아니라 더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제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이 사회에서 천대받고 있다든지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조금 더 힘을 모아서 이 사회에 대해서 도전을 해야 하고, 그것을 지식인들과 다른 사람들이 많이 도와줘야 한다'는 겁니다.

 

  노동운동을 하더라도 자꾸 임금 인상에만 매몰되면 그 운동은 결국은 망한단 말입니다. 그래서는 새로운 사회가 안 온다는 말이죠.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노동자들이 스스로 이 세상을 움직이게 될 때 새로운 사회가 온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원론적인 말들이 되풀이되는 경향이 좀 있고, 중간 부분엔 인터뷰어가 인터뷰이보다 말이 더 많은 점이 좀 불만이기는 했다.

하지만 맨 뒷부분에 우석훈이 대화에 참여하면서 논의가 활성화되는 부분은 좋았다.

깊이 있는 논의를 기대하기보다는, 문제의식의 촉발점을 찾는다면 한 번쯤 읽어볼만한 책.

어렵지 않으니 읽는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애덤 스미스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보이지 않는 손'? 김수행 교수의 말에 의하면 '국부론'에 그 말은 단 한 번 나온다고 한다.

겨울 방학 때 '자본론'의 선수학습으로 '국부론'부터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원론'이 짜증난다면, 다시 한 번 마르크스의 '원론'을 제시해본다. 짜증만 낼 것이 아니라, '원론'이 왜 '원론'인가를 생각해봐야할 때다.

 

기계 그 자체는 노동시간을 단축시키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노동시간을 연장시키며, 기계 그 자체는 노동을 경감시키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노동강도를 높이며, 기계 그 자체는 자연력에 대한 인간의 승리이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인간을 자연력의 노예로 만들며, 기계 그 자체는 생산자의 부를 증대시키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생산자를 빈민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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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 - 미국의 식민지 대한민국, 10 vs 90의 소통할 수 없는 현실
지승호 지음, 박노자 외 / 시대의창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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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호의 인터뷰를 모은 책. 방학 동안 '시의성'이 떨어지면 읽을 가치가 없는 책들을 우선 '처리'(?)하기로 하고 읽은 첫 번째 책.

표지에 나와있는대로 총 7명의 인터뷰가 담겨있다.

이 책이 2007년도에 출간되었고 인터뷰는 그 이전에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비판의 날은 주로 개혁세력, 노무현 정권을 향해 있다.

때문에 지금 이 책을 읽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지만, 오히려 '이런 상황'이기에 지금 이 책을 읽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노무현 정권의 가장 큰 과오 중에 하나라면, 바로 '빨갱이'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세상에 신자유주의를 외치는 빨갱이가 어디에 있는가?

 

노무현 정권은 큰 틀에서 한나라당도 밀어붙이기 쉽지 않은 정책들을 밀어붙여서 관철해왔지 않습니까? 그러다보니까 정치적인 제스처를 제외하고는 굉장히 오른쪽의 두 세력이 경쟁하면서 그 나머지 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는 이념을 가진 모든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꼴이 되어버린 것 같은데요.

  노무현 대통령이 좌파 내지는 진보로 인식되거나 실제 그렇게 자처하기 때문에 그보다 더 왼쪽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현실감각이 없는 외계인 취급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승호)

 

이를테면 노무현 정부는 개혁적 보수라든지 자유주의 보수라든지 이렇게 규정해야 하는데요. 기존의 보수, 진보 이런 나눔, 그런 것에 매몰되면서 잘못된 현상이 나타난 거죠. 그래서 결국은 진보의 가치가 퇴색해 버리는, 동반해서 퇴락해 버리는 이런 현실을 낳았던 것이 아닌가 생각하구요. (홍세화)

 

  굉장히 슬픈 일인데, 우리가 상상력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어요. 더 나은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 믿음 같은 것이 적어요. 그래서 만날 '우리 현실에서 이것만 해도 어딘데'라는 생각이 지배해요. 개혁이라는 것이 진보의 기초적인 부분과 겹치기도 하지만, 개혁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진보를 가로막기 위해 사회를 좀더 합리화하는 데 있죠. 상상력이 없으니 그 부분을 놓치게 되는 거죠. 개혁이 갖는 소박하고 진보적인 경향에 너무 감사하는 거예요. '이것만 해도 어딘데'하면서. 그것은 어리석은 게 아니라 착한 거라고 봅니다. 그런데 그 착함 때문에 된통 작살이 나는 거죠. 누가 어떤 놈이 밟았는지도 모르는 채 삶이 너무 고달파지는 거예요. 그래서 "에이, 이제 진보고 개혁이고 뭐고 싫고 무슨 사회, 이념도 다 싫다. 먹고사는 문제가 제일이야. 이명박이 제일이야"하는 식으로 가는거죠. 이명박은 디지털 시대를 토목 건설로 해결하려는 몽상가인데 어떻게 된 게 이 사람이 가장 현실주의자가 되어버렸죠. 이것은 대단한 역사적 반동인데, 정말 슬픈 일입니다.

  개혁이 실패했다고들 하는데 사실은 그야말로 대성공을 한 셈이죠. 개혁의 목적은 진보를 가로막는 것이니까요. (김규항)

 

유연한 진보, 중도, 신진보, 이런 다양한 수식어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그런 수식어야말로 진보답지 않은, 진보로부터 뭔가 얻으려는 태도라고 봅니다.

…… 형식적 민주주의는 YS, DJ를 거치면서 사실은 공고화된 것입니다. 탈권위나 지역주의가 여전히 중요한 과제임에는 틀림 없고 여전히 의미 있는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에게 표를 준 다수 서민들의 가장 핵심적인 요구와 기대였느냐?'라는 점에서는 전혀 아니라는 겁니다. 이미 형식적 민주주의가 공고화된 그 민주주의를 수단으로 해서 다수 서민의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해결을 요구한 것이구요. 그것이 노무현 정부의 시대적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오히려 자본의 전면적인 자유화를 도모하면서 서민의 삶을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모는 그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얘기하는 '유연한 진보'는 사이비 진보고, 오히려 신자유주의의 가장 적극적인 대변자로서 진보의 카운터 파트의 위치에 서 있는 것이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심상정)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후, 혼자 많은 생각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이제는 정반대로 왜곡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위기감도 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스스로를 '진보'로 규정하고 싶어했으나, 그는 진보가 아닌 '자유주의자'였다. 그렇게 보는 것이 당연하다.

진보의 핵심 개념인 '계급'을 생각한다면, 노무현 정권을 '진보' 혹은 '빨갱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말 '상식이하'의 일이다.

(여기서 북한을 들먹거릴 수도 있겠는데, 훗. 그가 과연 '친북주의자'였을까? 아니, 그 전에. 북한이 어디 '빨갱이 국가'인가, 왕조국가지)

그럼에도 그의 죽음으로 인하여, 그를 진보였다고 규정해버리는 과오를 저질러서는 안된다.

그는 진정성을 가진 자유주의자였으며, 그들을 둘러싼 일파들은 그보다도 못한 기회주의자들이었다.

그 일파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 나름의 진정성을 수없이 왜곡시키고 외롭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랬던 현실을 그의 죽음으로 다 묻어버리고, 살아있는 기회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과오를 함께 묻으려 하고 있다.

그, 혹은 그들에 대한 비판을 '죽음'이라는 엄숙함을 내세워 인신공격으로 되받아치는 상황이 된 것은 아닌가 걱정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 저 이명박 대통령 같은 괴물과 한나라당과 같은 수구집단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이럴 때일 수록 선을 더욱 분명히 그어야하고, 내 자신의 위치를 모호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인터뷰 모음집이다 보니 쉽게 잘 읽히는 편이지만, 인터뷰 대상에 따라 읽는 속도가 떨어지는 부분도 있었다.

예를 들어, 홍세화 씨는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만 여기 그의 인터뷰를 읽는 것은 왠지 속도가 나지 않았다.

반면 김규항의 인터뷰는 100% 동감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인터뷰를 읽는 내내 많이 생각하고 또 많이 웃기도 했다. ^^;

 

뭐... 지금 굳이 사서 보길 권할 그런 책은 아니지만, 분명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오히려 지금.

현실을 생각하면 이 책의 제목은 틀렸다. '두 개의 대한민국, 하나의 현실'일뿐.

 

글은 제가 보기에는 불편해야 돼요. 그리고 사람이 글을 잘 쓰자면 위험해야 돼요. 위험하지 않은 학문은 이미 죽은 학문입니다. 학문이 위험해야 재미가 있죠. 독자들이 실망했다고 표현할 수도 있고 말입니다. 그건 각자 판단의 문제인데 위험하지도 않고 불편하지도 않은 글은 안 쓰는 게 더 낫죠. 자기 연구나 하는 게 낫습니다. (박노자)

 

'시민 사회가 얼마만큼 이 모순 구조를 극복하도록 도와 줄 수 있느냐, 같이 동참할 수 있겠느냐'를 고민하고 나서 비판을 하든지 그래야 되는 거 아니냐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홍세화)

 

부모들은 아이들 때의 인생이라는 것은 나중에 진짜 인생을 위한 준비기로서만 의미가 있다고 보는데, 인생은 매순간이 중요하고 매순간 세계와 나의 소통이 있는 것이죠.

 

계급이라는 말은 어떤 지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체라는 겁니다. 우리가 계급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말은 현실을 바라보자는 말일 뿐이예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양의 불편함과 똑같은 양의 위로를 주는 글을 나는 혐오한다. 내 글이 담는 불편함은 '과시'가 아니라 '권유'다. '글이나 읽고 해소하면 무슨 소용이겠어요. 함께 실천을 고민해야죠' 하는 권유 말이다. (김규항)

 

꼭 누굴 감옥에 보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우리는 처벌하려는 게 아니거든. 우리는 진실을 밝히려고 하는 거야"라는 얘기를 너무 쉽게 했단 말이죠. ……

  처벌이란 부분을 너무 쉽게 포기했어요. 처벌이 안 되니까 보복이 생기는 거예요. 처벌과 화해는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고 봅니다. 보복과 처벌이 대립하는 개념이지. 사회가 책임져야 할 사람을 책임지지 못했을 때 그 가족들은, 남아 있는 당사자들은 그 한을 어떻게 풉니까? 우리가 피해자의 유가족들이 보복하는 것을 막는 이유가 뭡니까? '보복하지 마라. 대신 사회가 처벌해준다'고 하니까 비로소 막을 명분이 생기는 거죠. 이걸 포기해놓고 뭘 한다는 게 말이 안 되죠.

 

  우리는 화해를 구걸하지 않을 겁니다. 절대로 화해를 구걸해서는 안된다고 봐요. (한홍구)

 

최종적으로 해방된 사회의 상을 그리고 나머지 운동들을 그쪽으로 나가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개별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다는 거죠. (진중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학생들이 워낙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가 없는 환경에 있다는 게 문제라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학생들의 보수화를 걱정하기에 앞서서 교수들의 보수화를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손석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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