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1 - 진시황과 이사 - 고독한 권력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1
김태권 글.그림 / 비아북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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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가 돌아왔다, 한나라 이야기를 들고!! 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 느꼈던 감정은 반가움이 아니었다.

'아니 이 양반이 장난하나'라는 생각부터 들었을 뿐.

그도 그럴 것이 십자군 이야기 3권이 안나온지 몇 년이 지났는데, 다른 책 작업만 하고 출간이 되는 건지 마는 건지 그러던 와중.

뜬금 없이 한나라 이야기를 들고 나왔으니 그럴 수 밖에.

뭔가 따지는 기분으로 홈페이지를 가보니 다행히 3권이 올해 안에 나온다고 한다(근데 1, 2권 리뉴얼은 왜.. ㅠ.ㅜ).

 

김태권 특유의 익살과 산만함(-_-)이 이 만화책엔 거의 빠져 있다. 그 대신 복식 같은 것들의 고증을 철저하게 한 티가 팍팍 난다.

다만 스토리와 무관한 각종 문양 같은 것들이 치밀한 고증을 거칠만큼 중요한 것들인지 조금 의문이 들긴 한다.

그 문양들이 전체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하면 할 말은 없다만.

 

내용 면에서도 아쉬운 점이 있는데, 김태권 자신만의 톡특한 역사 읽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평소에도 굉장한 독서력을 자랑하는 작가인만큼 학계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고는 있는데,

왠지 책의 내용이 '사기'나 '자치통감' 쉽게 읽기 정도에 그치는 것 같다. 3권부터는 뭔가 작가만의 역사읽기가 드러났으면 좋겠다.

작가의 서문에 비하면 내용 면에서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는 듯하다.

 

왜 한나라 이야기인가? 우선, 동아시아를 이해하는 열쇠가 한나라에 있다고 나는 말씀드리겠다. 서양 문명에서 로마 제국에 해당하는 것이 동아시아에서는 한나라다. 로마가 서양 역사에서 하나의 전범이듯, 한나라 역시 동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그러했다. 이성계와 정도전은 역성혁명을 준비하며 <한서> '곽광전'을 돌려 읽었다. 김종직은 단종을 죽인 수양과 의제를 죽인 항우를 빗대 '조의제문'을 썼고, 연산군 때의 무오사화는 이 글 때문에 일어났다. 오늘도 우리는 장기를 두고, 뉴스에서 '토사구팽'이란 말을 만난다. 동아시아 문화에 속한 우리의 마음속에서 항우와 한신, 관우는 2천 년 내내 무수히 다시 살고 다시 죽었다. 책을 불태웠던 진시황제는 죽었지만 분서의 공포는 후세 사람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았고, 유방의 제국은 사라졌지만 평민 출신도 천자가 된다는 그 판타지는 살아남았다. 이것이 독자 여러분께 말씀드릴 수 있는 객관적인 이유다.

 

물론 워낙 마니아층이 많은 시대라 여러가지 논쟁이 오가겠지만, 차라리 논쟁의 중심에 서는 것도 나쁘지 않을듯.

 

3권은 십자군 이야기처럼 되지 않기만을 빈다. -_-... 작가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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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가무연구소
니노미야 토모코 글, 고현진 옮김 / 애니북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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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하하하. 만화를 보는 내내 폭소를 터뜨릴 수 밖에.

더군다나 그녀의 삶이 이상하게만 느껴지진 않았기 때문에, 더욱.

 

노다메 칸타빌레를 그린 작가라는 걸 알고 나서 더 놀랐음. ㅋㅋㅋㅋ

 

아, 나도 연구소 한국지부라도 차려야 하는 거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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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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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이 아닌 '희랍인' 조르바였을 때부터, 워낙 많이 들었던 책이지만, 읽는다 읽는다 얘기만 하다가 이제야 완독.

조르바라는 너무나도 독특하고 매력적인 인물 하나만으로도 이 정도의 책이 완성된다는 건 작가의 능력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우리가 '이성'이라는 감옥 안에 갇히고서도 얼마나 '감성'과 '열정'이란 것을 흘끔대는지에 대한 증거이기도 하다.

 

조르바의 말이 옳다는 건 나도 알았다. 그러나 그럴 용기가 내겐 없었다. 나는 아무래도 인생의 길을 잘못 든 것 같았다. 타인과의 접촉은 이제 나만의 덧없는 독백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타락해 있었다. 여자와의 사랑과 책에 대한 사랑을 선택하라면 책을 선택할 정도로 타락해 있었다.

 

  "그래요, 당신은 나를 그 잘난 머리로 이해합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이건 옳고 저건 그르다. 이건 진실이고 저건 아니다, 그 사람은 옳고 딴 놈은 틀렸다…….'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당신 팔과 가슴을 봅니다. 팔과 가슴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침묵한다 이겁니다. 한마디도 하지 않아요. 흡사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것 같다 이겁니다. 그래, 무엇으로 이해한다는 건가요, 머리로? 웃기지 맙시다!"

 

  나는 닥쳤다. 부끄러웠다. '진짜 사내란 이런 거야…….' 나는 조르바의 슬픔을 부끄러워하며 이런 생각을 했다. 그는 피가 덥고 뼈가 단단한 사나이…… 슬플 때는 진짜 눈물이 뺨을 흐르게 했다. 기쁠 때면 형이상학의 채로 거르느라고 그 기쁨을 잡치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직감했듯이) 이 책과 조르바에 깊게 빠져들지는 못했다.

그건 카잔차키스나 조르바의 탓이 아니라, 바로 내 탓인 것도 알았다.

나는, 방드르디와 조르바와 같은 제3 인간형들을 바라보며 동경을 하거나 스스로를 반성하는, 그런 인간형은 아닌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흔들리거나 괴로워하지 않는다'라고 볼 수도 있지만, '굉장히 보수적이다'라고 볼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조르바가 춤을 추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처럼, 나 또한 그러한 인간일 뿐인 것을.

 

오히려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조르바의 과거, 그러니까 지금의 조르바가 왜 그러한 조르바가 되었는가를 암시하는 부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방드르디보다는 조르바에게 더 친근감을 느끼는 듯하다.)

 

  "……내게는, 저건 터키 놈, 저건 불가리아 놈, 이건 그리스 놈,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두목, 나는 당신이 들으면 머리카락이 쭈뼛할 짓도 조국을 위해서랍시고 태연하게 했습니다. 나는 사람의 멱도 따고 마을에 불도 지르고 강도 짓도 하고 강간도 하고 일가족을 몰살하기도 했습니다. 왜요? 불가리아 놈, 아니면 터키 놈이기 때문이지요. 나는 때로 자신을 이렇게 질책했습니다. '염병할 놈, 지옥에나 떨어져, 이 돼지 같은 놈! 싹 꺼져 버려. 이 병신아!' 요새 와서는 이 사람은 좋은 사람, 저 사람은 나쁜 놈, 이런 식입니다. 그리스인이든, 불가리아인이든 터키인이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좋은 사람이냐, 나쁜 놈이냐? 요새 내게 문제가 되는 건 이것뿐입니다. 나이를 더 먹으면(마지막으로 입에 들어갈 빵 덩어리에다 놓고 맹세합니다만) 이것도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좋은 사람이든 나쁜 놈이든 나는 그것들이 불쌍해요. 모두가 한가집니다. 태연해야지 하고 생각해도 사람만 보면 가슴이 뭉클해요. 오, 여기 또 하나 불쌍한 것이 있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자 역시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두려워한다. 이자 속에도 하느님과 악마가 있고, 때가 되면 뻗어 땅 밑에 널빤지처럼 꼿꼿하게 눕고, 구더기 밥이 된다. 불쌍한 것! 우리는 모두 한 형제간이지. 모두가 구더기 밥이니까."

 

  "……내 조국이라고 했어요? 당신은 책에 쓰여 있는 그 엉터리 수작을 다 믿어요? 당신이 믿어야 할 것은 바로 나 같은 사람이에요. 조국 같은 게 있는 한 인간은 짐승, 그것도 앞뒤 헤어릴 줄 모르는 짐승 신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나는 그 모든 걸 졸업했습니다. 내게는 끝났어요. 당신은 어떻게 되어 있어요?"

 

무릇 이런 발언들은 굉장한 위험을 떠안고 있는 것이지만,

속마음을 툭툭 털어놓고 감정을 발산하며 모든 것을 경험하려 하는 조르바이기에, 나는 고개를 주억거릴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작품 속에서 괴상한 인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야 무릇 작가라는 자들이 그리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이겠지만

그 '이상함'을 이상함 이상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독자의 동의(공감이 아니더라도)를 얻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튼 오래 묵혀둔 숙제 하나를 해결한 것 같아서 기분은 좋다. 아. 그리고 이윤기 씨의 번역도 꽤나 맛깔스럽게 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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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 세상을 어떻게 통찰할 것인가
데이비드 바사미언.하워드 진 지음, 강주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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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의 인터뷰 집.

본래 하워드 진은 무겁고 정말 중요한 이야기들을 결코 어렵지 않게 풀어내곤 했지만, 이 책은 더욱 다가기가 쉬운 책이다.

역사, 사회는 물론 문화 및 예술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져 있다.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하워드 진을 처음 읽는 사람에게 정말 적합한 책.

짧은 분량과 구술 인터뷰라는 제한된 조건 속에서도 하워드 진 특유의 설득력을 맛볼 수 있다.

 

  정부가 '안보'라는 말을 어떻게 선전하는지 잘 보십시오. 무척 흥미롭습니다. 안보라는 미명하에 정부는 사람들에게 지문날인을 강요하고 감시합니다. 게다가 한밤중에 잡아가기도 합니다. 시민권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주요 대상이지만, 시민권을 가진 미국 국민도 예외는 아닙니다. 미국 국부의 상당한 부분이 군사비에 지출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모두가 안보라는 이름하에 자행되는 짓이지요. 하지만 일상적인 삶에서 국민의 안전은 도외시됩니다. 국민이 노동을 중단하고 싶은 연령에 이르렀을 때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삶이 진정한 안보입니다.

 

자본주의를 찬양하는 사람들은 생산이 증가하고, 국민총생산이 증가하니까요. 하지만 국민총생산(gross national product)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분석해보십시오. 문자 그대로 '천박하기(gross)' 이를 데가 없습니다.

 

조금 전에 나는 계급을 기준으로 사회를 관찰하고, 우리 모두가 공통된 이익을 가질 수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국민은 소속된 계급에 따라 이해관계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애국주의는 공통된 이익을 지향합니다. 국기가 그런 공통된 이익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애국주의는 정부가 흔히 동원하는 그럴듯한 단어와 똑같은 역할을 하면서 공통된 이익이라는 착각을 조장합니다.

 

정말 이상하게도, 하워드 진의 글에는 사람을 일어서게끔 만드는 힘이 있다. 마음만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몸을 움직이게 만든다.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후방에서 팔짱을 끼고 냉소짓는 것과는 달리, 그는 전장의 최전선에 서서 웃음 짓는다.

그리고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불가능하지 않다고. 내가 젋었을 땐 당신이 서있는 그 자리에 있었다고.

그러니 너의 목소리를 내고, 너의 행동을 취하라고.

 

  조용히 하라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진지하게 토론할 때입니다. 밤을 새우면서라도 전쟁의 타당성을 따져봐야 할 때입니다. 입을 다물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부도덕하고 타당한 근거도 없는 전쟁이 아무런 반대도 없이 그대로 진행되도록 놓아둘 수는 없습니다. 전쟁 중이니까 반대의 목소리를 죽이라고요? 정말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태가 위험해졌고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뤄야 하니까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으라는 뜻인가요? 그런 게 사회적 통념이라고요? 그건 결국 덜 중요한 문제를 다룰 때만 표현의 자유를 갖는다는 뜻입니다. 삶과 죽음의 문제, 가장 절박한 문제를 다뤄야 할 때는 어떤 주장도 하지 말고, 논쟁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고 민주적인 토론과 논쟁이 필요할 때입니다. 사람이 죽어가기 때문입니다. 이라크 국민이 죽어가고, 미국 국민이 죽어가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토론의 수위를 높여야 합니다. 전쟁을 중단시킬 정도로 저항의 수위를 높여야 합니다.

 

그의 자신감은 아마도 그가 경험했던 60년대의 기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말 속에는, 어줍짢은 한국의 386, 그러니까 이젠 486들의 패배주의적 우월감이 없다.

(요새 듣고 있는 한 수업 중 하나에서 이런 패배주의적 우월감 때문에 소통의 단절을 절감하는 중. 짜증도 좀 나고.)

그래서 더욱 세대차가 느껴지지 않는 것일지도.

 

시민불복종. 우리가 택한 이 주제는 약간 혼란스럽다. 시민불복종이 주제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 문제는 시민불복종이 된다. 하지만 시민불복종은 우리 문제가 아니다. …… 우리 문제는 시민복종이다. 우리 문제는 정부 지도자들의 지시에 복종해서 전쟁터로 간 사람들의 수(數)다. 정부의 명령에 복종했기 때문에 수백만 명이 죽었다.

 

또 강연이 끝나면 누군가 일어나서 "그래서 우리가 뭘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정말로 속수무책인데요."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그때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여기에만 1500명 가량이 앉아 있습니다. 전쟁을 반대하고 부와 권력의 독점을 반대하는 내 강연에 여러분 모두가 박수를 보냈습니다. 여러분은 작은 부분일 뿐입니다. 미국에는 어딜 가나 여러분과 똑같이 느끼고 나와 똑같이 생각하는 1500명, 아니 2천명이 있습니다. 여러분만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느낌을 대신해서 행동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여러분은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 신문을 비롯한 언론이 보통 사람들의 일은 보도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어제 무엇을 먹었는지는 보도해도 어떤 중요한 쟁점을 갖고 천 명의 보통 사람이 모여 시위한 사건은 보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똑같은 걸 걱정하는 수많은 사람이 이 나라에 있다는 걸 기억하십시오." 이렇게 대답합니다.

 

수업시간에는 교수의 정치적 입장을 절대 드러내서는 안된다는 막스 베버와는 달리,

하워드 진은 교실 밖에서 선생의 삶이 어떠한 지를 분명하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막스 베버의 말도 이해는 가지만, 나는 하워드 진의 태도가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달리는 기차위에 중립은 없으니까.

 

  나는 선생들에게 개인적인 경험을 교실에서 쏟아내는 데 망설이지 말라고 자주 말합니다. 선생들은 그런 점에서 무척 소심한 편입니다. 선생답지 못한 짓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강의 진도표에 맞춰 교과서를 가르치고, 본인이 가르쳐주고 싶은 내용만 가르칩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삶이나 개인적인 경험은 좀처럼 언급하지 않습니다. 물론 모든 선생이 나와 똑같은 경험을 했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선생은 나름대로 어떤 세계를 경험했을 테고, 그런 경험 덕분에 현재 위치에 있는 것 아닐까요? 선생이 어떤 경험을 했는지, 어떤 경험을 통해 선생의 의식이 변하기 시작했는지 학생들은 알아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나는 학생들에게 내가 모든 걸 아는 건 아니라는 걸 분명히 밝힙니다. 그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나도 배워서 아는 거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내가 그들에게 가르치는 지식을 태어나면서부터 알았던 게 아니고, 신이나 역사가 거저 준 게 아니라, 학생들도 얼마든지 터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배운 거라고 말합니다. 학생들에게 그렇게 말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선생도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걸 학생들에게 알려줘야 합니다.

 

여기까지야 흔히 들을 수도 있는 이야기. 그러나.

 

  이런 자세는 나 자신을 위해서 중요합니다. 내가 세상을 분석하는 관점은 부분적일 수박에 없습니다. 내 나름대로 옳다고 선택한 관점에서 본 세계일 뿐입니다. 따라서 내 관점을 진리처럼 받아들이지 말라고 학생들에게 신신당부합니다. 내 관점은 그저 내 관점에 불과한 거라고요. 지식은 주관적이고 역사도 주관적이어서 수많은 해석이 가능합니다. 내 해석은 그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관점, 즉 '생각을 파는 시장'에서 내 관점은 한 모퉁이를 차지할 뿐이라고요. 물론 '생각 시장'은 자유 시장이 아니라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실물경제 시장처럼 '생각 시장'도 소수의 강력한 집단이 지배하고, 나는 그 시장에서 작은 수레를 밀고 다니며 학생 손님들에게 "이걸 맛보세요. 괜찮은 맛보세요!"라고 외칠 뿐이라고 말합니다.

 

16살의 여학생이 자신을 초청하는 편지를 받고 달려가 강연을 했다는 하워드 진.

그가 이렇게 헌신적으로 활동을 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때문에 그의 말에는 신솔함이 담겨있고, 그의 관점에는 항상 밝음이 담겨져 있었을지도.

학생의 입장에서도, 또 앞으로 학생들을 가르칠 수도 있는 선생의 입장에서도.

내겐 그야말로 '스승'이라 부를 만한 사람이다.

 

편히 쉬시지 마시고, 여전히 제 머리와 마음 속에서 끊임없이 저를 다그치고 용기를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아직 하워드 진의 책을 읽어보지 않았다면, 추전한다. 그리고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는 필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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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꼬프스끼 선집 열린책들 세계문학 64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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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에서 나오던 세계문학 시리즈 'Mr. Know'가 절판됐다.

물론 같은 내용의 책이 양장의 형태로 나오기는 하지만, 요새 나는 양장보다는 페이퍼 북 형태의 저가책이 맘에 들어서 아쉽다.

종이가격도 오른데다가 우리나라에선 이런 형태의 책이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하니 안타까울뿐.

특히 이 시리즈는 다른 전집들과는 달리 각 책의 표지가 다른 컨셉으로 그려져있어 외양상으로도 맘에 딱 들었었는데. 

'20세기 위대한 혁명 시인'으로 불리는 블라지미르 마야꼬프스키의 선집이다.

해외문학, 특히 시 종류는 거의 읽어보질 못했는데, 그 중에서도 러시아 문학을 완독한 건 거의 처음이다.

짧은 산문도 수록되어 있는데, '어떻게 시를 만들 것인가'라는 글을 보면 이 시인이 한 줄을 완성하는데 얼마나 고민하는지 엿볼 수 있다.

'번역시'로는 아무래도 그러한 각운이나 운율을 제대로 맛볼 수가 없기에 좀 아쉽기도.

어쨌거나 마야꼬프스키는 혁명 뿐만 아니라 사랑도 노래했다. 역자가 '혁명의 시인'이라는 말 중 후자를 주목해야한다고 말했듯이.

 

사람들이 킁킁거린다 -

무언가 타는 냄새!

불자동차의 출동

번쩍이는 방화복!

철모!

장화는 안 돼!

소방대원에게 말해

심장에 붙은 불은 애무로 꺼야 한다고.

 

그러나 역자의 지적대로 '시대는 그를 받아들이기에 너무 범속했고 그는 시대를 받아들이기에 너무 민감했다'.

 

  어제 내 동무 한 사람이 전장에서 돌아왔다. 그는 위생병이었다. 그는 보잘것없긴 하지만 아름다움을 무척 사랑하는 예술가였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캐스터네츠를 연주하는 것이었다. 나는 우리 집 파티에 온 그 친구에게 한 곡 부탁했다. 그는 연주를 시작했으나 도중에 그만두어 버렸다. 나는 그의 손가락을 관찰했다. 그의 손은 불구가 되어 있었다. 그는 부상자에게서 총알을 뽑다가 유산탄 조각에 찔려 그렇게 되었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는 또한 포탄이 비 오듯이 날고 있는 장면을 말해 주었고 사흘간 붕대를 감느라고 한잠도 못 자 쓰러진 자신에게 사람들이 피비린내 나는 비슬라 강물 한 컵을 갖다주었다는 얘기도 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건 그의 <직업>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다가 죽을 수도 있었지 않은가. 그는 화를 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연대가 공격할 때 한꺼번에 울려 퍼지는 우렁찬 <만세> 소리 중 어떤 목소리가 이반의 목소리인지 가려낼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수없이 발생하는 전사 중 어떤 것이 내 죽음이고 어떤 것이 다른 이의 죽음인지 가려낼 수 없다. 죽음은 전군을 공격한다. 그러나 죽음은 무력하기 때문에 전체의 극히 일부만을 놀라게 할 뿐이다. 공동의 육신은 그대로 남아 있으며 전장에서 하나가 되어 숨쉬고 있다. 따라서 그곳에 있는 것은 불멸이다. 그것이 내 친구의 생각이었다.

 

개인의 감성과 혁명이라는 사회적 책무 사이에서 그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죽는다는 일은 새로울 게 없다.

그러나 산다는 것 또한 더 새로울 게 없다.

 

라는 글을 남기고 자살한 예세닌의 사회적 여파에 대항하여 그는 시를 지었는데, 그럴 때조차 그는 진지하고도 신중했다.

 

이 세상에서

               죽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자살자와 자살에 반대하는 자들의 이 논리는 오늘날도 그대로 적용된다. 흥미로운 부분이다.

그러나 결국 이 시를 작성한지 5년이 채되지 않아, 마야꼬프스끼 또한 권총으로 자살을 하고 만다. 이 또한 상징적이다.

 

뒷부분에 옮긴이 석영중 교수의 글은, 최근 내가 본 옮긴이의 글 중에 가장 인상 깊었다.

자세한 설명에 적절한 표현과 비유 등이 독자에게 앞서 읽어온 책을 다시 뒤적이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훌륭한 옮긴이의 후기는, 그의 번역에도 신뢰를 가지게끔 만든다.

 

진정어린 관심과 애정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결과물에서 드러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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