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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 무엇이 문제인가 ㅣ 問 라이브러리 3
최장집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최장집 교수의 오랜 화두, 민주주의에 대한 짤막한 글과 강연록을 모아 놓은 책이다.
실은 최장집 교수의 단행본을 완독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이번 기회에 소책자나마 다 읽게 되었음.
역시 이 분야의 전문가답게, 개념을 명확히 정리하여 설명하는 부문은 탁월해보였다.
민주주의는 권위주의의 여러 변종 가운데 하나인 구체제를 해체하는 변화 내지는 변혁적 과정으로서의 민주화와 이후 민주주의를 새롭게 건설하는 제도화와 이를 위한 실천의 과정을 포괄한다. 흥미로운 점은 좋은 민주주의를 건설하고 발전시키는 기준에서 이 두 과정은 하나의 연장선상에서 순기능적으로 작용하기 보다, 역기능적으로 작용하기가 더 쉽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민주화운동이 발생하고 전개됐던 정치적 조건과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체제가 본격적으로 작동하면서 나타나는 정치적 조건은 근본적으로 상이하기 때문이다.
이 설명을 적용해보면, 왜 87년 이후 우리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된 정당체제로 발전하지 못했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민주화투쟁을 주도했던 민중동맹이 민주화된 이후에는 그 단일성과 일체성을 유지하기 아렵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신' 혹은 '변절'이라는 말이 팽배할 수 밖에 없는 건 아닐까. 실은 배신도 변절도 아닌데.
과거의 추억 때문에(물론 그 기억은 분명 가치가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내부의 '갈등'을 인정할 준비가 안되어 있는 걸지도.
민주주의는 간단히 정의해서 갈등과 그 타협에 기초한 정치체제이다. 갈등을 어떻게 조직하고, 어떤 정당과 정당체제를 통해 이를 정치적으로 대표하고, 이들이 어떻게 선거경쟁의 대립 내지 경쟁축을 형성하는가 하는 문제가 민주주의 정치의 성격과 그 방향을 결정짓는 데 관건이 된다는 말이다.
때문에 기존의 민주운동세력이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집단주의적이었으며, 급진적이고 추상적이었으며, 민족주의적이고 국가주의 적이었다'는
지적은 매우 타당해 보인다. 이런 지적을 하면 또 꽤나 흥분할테지만.
그와 더불어 남미와 우리의 차이는 강조점이 계급에 있느냐 민중에 있느냐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언듯 들었다.
그 결과 이런 비판도 가능해진 것은 아닐까.
그들은 다른 인간적, 사회적 가치를 통해 집단주의적, 낭만주의적 민족주의관을 대체하려 시도하기보다는 그 틀 안에서 구질서하 보수적 지배엘리트들의 헤게모니적 가치를 공유하고, 동일한 목적을 추구하는 가운데 다만 그 목표에 이르는 수단이 보다 민주적이고 민족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결국 필자가 주장하는 핵심은 '시민-유권자의 삶의 현실에서 나오는 요구가 정당의 정책대안의 근본적 소재가 돼야한다'는 거다.
또 현재 대한민국의 정당은 지역색이나 인물 중심으로'만' 구성된 허약간 정당이며 그것으로 구성되는 민주주의 또한 불안하다는 것.
대선 또는 총선에서 보이는 투표자들의 보수성은 그들의 문제라기 보다는, 허약한 정당체제의 문제라는 것이다.
나도 최장집 교수의 지적에 분명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촛불시위의 의의가 실생활의 요구를 정치적으로 드러냈다는 것에 있다는 점 또한 대체로 동의한다.
그러나 그의 주장이 지나치게 원론적이고 허무하게 들리는 것은 내가 너무 냉소주의자이기 때문인걸까?
한국의 보수적 정당은 먼저 냉전반공주의의 구시대적 이념을 정치적 자원으로 활용하는 일을 스스로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들은 새로운 탈냉전, 세계화시대에 걸맞은 자유시장과 경쟁이 가능한 체제를 지향하는 현대적 가치와 이념과 대북관계에 있어 화해협력, 평화공존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노동의 사회적, 정치적 포섭을 허용하는 한편, 분배의 정의와 복지의 가치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저들이 왜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자원'을 놓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그들이 어리석기 때문이 아니라, 지독하게 영민하기 때문이다. 분명 그들은 그것에서 얻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이론적으로 얻어낸 결론이 아니라, (비극적이지만) 몸으로 직접 느끼며 쌓아온 경험적 결론이다.
또한 그러한 그들의 정치적 자원의 주요 대상이 되는 이들은 불행히도 사회의 주류가 아닌, '다수의 소수자'다.
매우 효과적으로 정치적 효과를 내고 있는 판에, 그들이 왜 이걸 굳이 포기하겠는가?
만약 필자가 제시하는 대안 혹은 그 출발점이 위에 인용한 부분에서 그치고만다면, 나는 답답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아무래도 이 책이 완전한 단행본은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한계인 것으로 보이기는 하는데.
여튼, 나는 저들을 바라보며 이상향을 제시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어떻게 조직화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더 해야한다고 본다.
(누가 MB를 찍었는가? 누가 홍정욱을 찍었는가? 강남시장 오세훈? 글쎄. 강남의 힘만으로 그가 당선되었나?)
내년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