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통치철학
백승종 외 지음 / 푸른역사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5명의 학자가 모여 조선의 '통치철학'을 살펴본 책. 아무래도 이 시대의 정치에 '철학'이 있는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한듯 하다.

 

  이 책은 이처럼 통치철학의 빈곤에 처해 있는 우리의 현실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되었다. 통치는 정치적 행위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지역과 성별 및 계층을 초월하여 원활한 소통구조를 만들고, 나아가 법과 제도라는 외형적 요소와 사회구성원들의 가치관과 심리적 기제 등의 내면적 요소를 통해 심층적인 의미에서 한 사회를 규율한다. 이러한 통치행위를 가능하게 만드는 가치관 또는 세계관이 바로 통치철학이다.

 

각 학자들은 각기 다른 시대의 인물들과 통치철학을 살펴보고 있다.

조선초기의 정도전과 세종, 조광조와 김인후, 임란과 호란 때의 류성룡과 최명길, 영조와 정조, 그리고 대한제국기의 고종까지.

시작하는 글에서 자평하는 것처럼, 이 책은 기존 연구에서 시도하지 않은 것을 시도하고 있다.

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서술하고 있는만큼, 자세한 실례를 들어가며 분석을 하고 있다. 이것이 아마도 이 책의 강점일 것이다.

(때문에 나는 이 책의 미주를 하나하나 확인해가면서 읽었다. 그래서 읽는데 좀 오래 걸리기도 했고.)

 

그러나, 이 책의 한계점도 너무나 명확해 보인다.

저자들이 '공동연구'를 했다고는 하지만, 연구자들 간의 의사소통이 얼마나 되었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통치철학'이라는 책의 주요컨셉으로 포괄하기엔 각 연구자들의 글이 너무 '제각기'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러다보니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이 책의 기획 목표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다시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또 몇몇 저자의 글들은 조금 거슬리는 부분이 있다.

 

우선 제일 처음 정도전과 세종을 비교분석한 박현모의 글은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실록의 자료를 바탕으로 생생한 장면을 재구성하는데 까지는 충분히 성공한 것 같다.

하지만 통치철학을 다뤘다기 보다는 개인의 '리더십'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초반에 부정부패로 비난을 받던 황희가 명재상이 되었던 것을 두고 '자신의 통렬한 반성과 변화' 때문이라고 한다면?

오만하기도 하고 질투도 심했던 충녕이 '세종대왕'이 된 것을 두고

'좌절의 아픔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며 고쳐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평한다면?

물론 저자가 사료를 오래 보면서 느껴지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쯤되면 '학문적 분석'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비난을 받던 황희를 고집한 것을 두고 '세종의 믿음'이라고 평한다면,

오늘날 총리/장관 임용시 불거지는 구설수도 '믿음'이라고 평할 수 있다는 말인가?

(역사에서 '리더십'을 이야기하는 건 참 쉽고도 위험하다. 왜냐하면 죄다 결과론이니까.)

 

그리고 제일 맘에 들지 않았던 글은 마지막 고종을 다룬 허동현의 글인데, 일단은 분량이 다른 글의 절반도 안되는 수준.

더군다나 이 글은 다른 곳에 발표했던 글을 고친 것이다.

이쯤되면 이 글의 원고가 제일 마지막에 들어왔겠다는 무리한 추정마저 하게 된다.

또 글 자체가 고종의 통치철학 분석에 집중하기 보다는 대한제국의 성격을 두고 벌어진 학계의 논쟁을 정리한 것에 가깝다.

이 글에 나머지 다른 연구자들만큼의 노고가 들어갔는지 의심하는 것이 과연 지나친 것일까?

 

책의 주제와는 별도로 '공동연구'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였다.

인문학자들에게 공동연구는 익숙하지 않다. 명확한 답을 얻어낼 수 있는 학문영역이 아니다보니 더욱 그러하다.

제3자가 보기엔 거기서 거기인 것 같은 내용도 연구당사자들에겐 엄청난 의견차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공동연구라면 연구자들 간의 의사소통을 할 필요가 분명 있다.

이제까지 내가 직접 참여했던 프로젝트도 있었고, 또 행정업무를 담당했던 프로젝트도 있었다.

그때마다 느낀 점은, 인문/사회계열 연구자들이 '소통'할 자세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얘기할지도 모른다. 요새는 '공동연구'가 아니면 연구비를 타기가 힘들다고.

거짓은 아니다. 실제로 공동연구에 할당된 연구비가 개인연구에 할당된 연구비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원칙대로 생각해보자. 연구하려고 돈을 타는 것인가, 돈을 타려고 연구하는 것인가?

연구도 먹고살자고 하는 것이 맞긴 하지만, 공동으로 하는 것도 아닌 연구를 '공동연구'라고 칭하는 것은 일종의 사기다.

그 혐의를 벗어나려면, 적어도 연구자들 간의 상호 의견교환/비판과 검토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저 2달에 한 번씩 모여서 식사나 술을 같이 하는게 '소통'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에 누가 얼마나 동조할 것인가?

이도저도 싫다면, 혼자 연구하면 될 일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렇다.

 

좀 이야기가 많이 벗어났는데, 이 책의 경우는 이런 의문이 떠올랐다.

기획의 문제인가, 아니면 연구자에 대한 배려가 지나쳤던 것일까?하는.

후자의 문제로 생각하자니 앞서 주절주절댄 '공동연구'에 대한 잘못된 태도가 생각났던 거다.

 

언젠가 '인문/사회 계열에서 '공저'가 어떻게 가능해?'라고 투덜대던 한 연구자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렇다면, 혼자 연구하면 될 일이다. 공연히 '공동연구'를 위한 자금을 타려고 지원서를 들이밀지 말고.

 

조광조 부분을 읽으면서 궁금한 부분이 생겼는데, 왜 항상 혁명의 과정에는 통제불능의 과격파가 생길까 하는 것이다.

아니면 조광조도 혁명의 중심에 서면서, 그 집단 안에서는 보수화된 걸로 봐야하나?(이렇게 되면 과격파가 억울한거고)

이 부분은 꽤나 흥미로운 부분이다.

 

여러가지 면에서 흥미롭기도 하고, 아쉬운 점도 많았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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