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의 맛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바스티앙 비베스 지음, 그레고리 림펜스.이혜정 옮김 / 미메시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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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젊은 작가 바스티앙 비베스의 짧은 만화.

제목의 '염소'는 음메~~~하는 염소가 아니라-_-;;; 수영장 물에서 나는 그 냄새와 맛, 원소기호로 Cl을 뜻하는 그것이다.

 

한 소년이 치료를 목적으로 수영을 하게 되고, 수영을 하다가 마음에 드는 여자애를 만나게 되고, 그러면서 자연히 수영이 느는.

그리고 그 수영에 재미를 붙여가는 단순한 스토리인데, 색감 잡는 것과 수영이라는 한 소재에 대한 디테일이 참 좋다.

종종 넘겨보게 될 것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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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 돌베개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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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세가 넘은 레지스탕스 출신 노인의 외침. 분노하라.

 

  나는 여러분 모두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분노의 동기를 갖기 바란다. 이건 소중한 일이다. 내가 나치즘에 분노했듯이 여러분이 뭔가에 분노한다면, 그때 우리는 힘 있는 투사, 참여하는 투사가 된다. 이럴 때 우리는 역사의 흐름에 합류하게 되며, 역사의 이 도도한 흐름은 우리들 각자의 노력에 힘입어 면면히 이어질 것이다.

 

언듯 생각해보면 나치 시대보다는 나을 거 같은데, 왜 지금 이 시대에 우리에게 분노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일까.

프랑스 노인의 외침이 지금 여기 우리들에게는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

1945년 레지스탕스가 주장했던 것들을 살펴보자.



'모든 시민에게, 그들이 노동을 통해 스스로 살길을 확보할 수 없는 어떤 경우에도 생존의 방도를 보장해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회보장제도의 완벽한 구축, 늙고 병든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삶을 마칠 수 있게 해주는 퇴직연금제도'

 

'공동 노동의 결실인 대표적 생산수단-에너지원, 지하자원, 보험회사, 거대 은행들-을 국가로 복귀시키는 것'

 

'경제계, 금융계의 대재벌들이 경제 전체를 주도하지 못하게 하는 일까지 포함하는 진정한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 정립'

 

'파시스트 국가들의 모습을 본떠 구축된 전문적 독재에서 놓여난, 일반의 이익을 특정인의 이익보다 확실히 존중할 합리적인 경제조직'

 

'언론의 자유, 언론의 명예, 그리고 국가, 금권, 외세로부터 언론의 독립'

 

'프랑스의 모든 어린이가 가장 발전된 교육의 혜택을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자, 어떤가.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들 같지만, 2011년 대한민국에서 이야기하면 죄다 '좌빨' 소리 들을 말들이다.

만약 당신이, 내가, 우리가 저 말들에 동의한다면, 분명 우린 분노해야할 시대에 살고 있다.

아직 대한민국은 복지 운운할 때가 아니라고?

 

  이런 우리에게 혹자는 말한다. 시민을 위해 이런저런 조치들을 하는 데 드는 비용을 국가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고. 그러나 프랑스 해방-유럽이 파산 상태였던 시기-이래로 창출되는 부의 양은 괄목할 만큼 증가했는데도 이제 와서 그간 얻은 성과를 유지하고 이어나갈 돈은 부족하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만약 그럴 돈이 부족하다고 강변한다면 그건 아마도, 이젠 국가의 최고 영역까지 금권의 충복들이 장악한 상태에서 레지스탕스가 투쟁 대상으로 삼았던 금권이 전에 없이 이기적이고 거대하고 오만방자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트위터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세상과 타협했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세상은 당신과 타협한 적이 없다고. 당신은 굴복했을 뿐이라고.

 

원문만 치면 43페이지, 전체 페이지는 90페이지도 안되는 핸드북.

하긴 그렇다. 지금 돌아가는 여러가지 상황 속에서 '분노하라'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굳이 길어야할 필요가 있을까?

주위를 돌아보라. 분노할 일은 여전히 많고, 거창하지 않더라도 시작할 수 있는 일들은 널려 있다.

 

분노하자. 그러면서도 웃자. 끊임없이 희망을 고집하자. 그것만이 우리의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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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 - 되돌아보고 나를 찾다
김용택.박완서.이순원 외 지음 / 더숲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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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런 책은 거의 읽지도 않고 나랑 어울리지도 않는데. 흠.

아버지께서 주신 책이라 받자마자 쭉 읽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선입견보다는 그럭저럭 읽은만한 책이었고, 또 여러 문인들의 글을 비교할 수 있어 좋았다.

명성에 비해 실망스러운 글도 있었지만(특히 박완서), 괜찮은 글들도 꽤.

 

스물 몇 해가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고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부랑자처럼 함부로 떠돌며 살던 그해

온몸을 칼로 깎던 자학의 젊은 날들

스무 살의 경계를 넘어

막무가내로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집에 돌아오던 길

 

온몸엔 괴로움이 가득 고여 출렁거렸다

그때 괴로움들은 왜 그토록 많았을까

비젖은 구두를 철벅거리며 귀가하던 나는

어두운 집 앞 골목 어귀에서 보았다

검은 유령처럼 비 맞고 서 계신 아버지를

 

나는 빗물 위에 문장 하나를 새긴다

누구나 고통스럽게 쓴다

자기가 살았던 만큼

누구도 자기가 살았던 것 이상으로 쓸 수는 없다

 

아버지는 내가 쓴 환멸의 문장

빗속에 장화를 신고 서 있는 문장

 

혀는 이미 굳고 퍼런 이끼가 돋아나기 시작한 문장

내가 너무 오래 잊고 살았던

문장이 빗물 위에서 흩어져간다

 

- 장석주, '장화를 신은 문장'

 

허나 여기 실린 20편 가까운 글들의 거의 대부분이 '가족'에 관한 거란 건,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아무리 살아가며 상처를 주고 받는 대부분의 사람이 가족이라지만, '반성'이라는 이 거대한 키워드에 '가족' 밖에 없단 말인가?

'엄마를 부탁해'가 공전의 히트를 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다른 데 있지 않음을 알겠다.

 

한편으로는 이런 질문도 하게 된다. '그렇다면 나에게 '반성'이란 키워드가 주어진다면?'

글쎄. 한 번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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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소설 읽는 노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23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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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굉장히 복잡한듯하지만 이야기의 줄기는 매우 간단한 소설.

소설의 첫 두 문장을 놓고 2시간을 넘는 대화를 하는 장면에서는 이상하게 보르헤스가 연상되었고,

노인이 마지막 사냥을 나설 때에는 '노인과 바다'가 연상되었다.

혹은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

 

하지만 '노인과 바다'의 노인은 무언가를 극복하는 승리자이지만,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은 승리했으나 패배자일 뿐이다.

그리고 현명하게도, 노인은 그 사실마저 이미 알고 있다.

 

  그들은 죽음을 죽음 자체의 행위라고 믿었다. 죽음은 참혹한 것이지만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이 말하는 죽음은 이른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밀림 세계의 냉혹한 원칙에서 나온 죽음이었다. 그때서야 노인은 눈앞의 현실을 되짚어 볼 수 있었다.

  먼저 싸움을 건 쪽은 인간이었다. 금발의 양키는 짐승의 어린 새끼들을 쏴 죽였고, 어쩌면 수놈까지 쏴 죽였는지도 몰랐다. 그러자 짐승은 복수에 나섰다. 하지만 암살쾡이의 복수는 본능이라고 보기에 지나치리만치 대담했다. 설사 그 분노가 극에 달했더라도 미란다나 플라센시오를 물어 죽인 경우만 봐도 인간의 거처까지 접근한다는 것은 무모한 자살 행위였다. 다시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노인의 뇌리에는 어떤 결론이 스쳐가고 있었다.

  맞아, 그 짐승은 스스로 죽음을 찾아 나섰던 거야.

  그랬다. 짐승이 원하는 것은 죽음이었다. 그러나 그 죽음은 인간이 베푸는 선물이나 적선에 의한 죽음이 아닌, 인간과의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싸움을 벌인 뒤에 스스로 선택하는 그런 죽음이었다.

 

  노인은 짐승에게 다가갔다. 그는 두 발의 총탄이 짐승의 가슴을 열어 놓은 것을 보며 치를 떨었다. 생각보다 훨씬 큰 몸집을 지닌 짐승의 자태는 굶어서 야위긴 했지만 너무나 아름다워 도저히 인간의 상상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는 존재처럼 보였다. 죽은 짐승의 털을 어루만지던 노인은 자신이 입은 상처의 고통을 잊은 채 명예롭지 못한 그 싸움에서 어느 쪽도 승리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부끄러움의 눈물을 흘렸다.

 

어찌보면 처절할 정도로 그 길을 걸어나간다는 점에서 김훈의 이순신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이 다분히 남성적인 냄새가 난다고 하더라도, 김훈이 종종 보이는 자뻑 수준에 가까운 '남자의 고독'은 보이지 않는다.

괜히 이 노인이 연애소설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 않겠나.

 

'인간을 품어주는 대자연'이라는 건방진 환상을 만들지 않는 특이한 환경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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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리포트 1 - 나는 고발한다
정경아 지음 / 길찾기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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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에 대한 본격적인 보고서.

저자의 말대로 단순히 일본에게 '당한' 이야기를 반복하지는 않는다. 그것보다는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문제제기가 바탕이 된다.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은, 그 상황을 만들 능력도 의지도 없는 약자들에게 엄청난 희생을 요구한다는 진실.

그리고 전쟁이란 상황이 아니어도 '위안부'와 같은 문제는 여전히 진행 중인 문제라는 것을.

(최근 대한민국 법조인의 많은 수가 '야한 옷차림'이 강간을 '유발'시킨다고 답변했다는 것을 상기하라.)

1장이 푸른눈의 '위안부'로 시작한다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위안부'라는 말에 따옴표를 표기하는 건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위안부'(comfort women)라는 말을 강력하게 거부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을 의미하니까요. 우리들은 위안부가 아니라... 일본에게 의한 강간 희생자(rape victims)들 입니다!   - 얀 뤄프 오헤르네('위안부' 희생자)

 

하지만 '강간 희생자'는 특정 사건, 전쟁에 연루된 사람들을 지칭하기에는 너무 넓은 범위이고,

'위안부'라는 말 자체가 당시에 쓰였던 역사적 용어이기 때문에 가치를 배제한 중립적 언어로 '위안부'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제까지 우리가 듣고 보고 생각해오던 것과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는 책이다.

아쉬운 점은 이 책이 간행된 2006년 이후 2권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인데, 최근 '싱크'라는 잡지에서 연재를 시작했다하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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