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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 돌베개 / 2011년 6월
평점 :
90세가 넘은 레지스탕스 출신 노인의 외침. 분노하라.
나는 여러분 모두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분노의 동기를 갖기 바란다. 이건 소중한 일이다. 내가 나치즘에 분노했듯이 여러분이 뭔가에 분노한다면, 그때 우리는 힘 있는 투사, 참여하는 투사가 된다. 이럴 때 우리는 역사의 흐름에 합류하게 되며, 역사의 이 도도한 흐름은 우리들 각자의 노력에 힘입어 면면히 이어질 것이다.
언듯 생각해보면 나치 시대보다는 나을 거 같은데, 왜 지금 이 시대에 우리에게 분노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일까.
프랑스 노인의 외침이 지금 여기 우리들에게는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
1945년 레지스탕스가 주장했던 것들을 살펴보자.
'모든 시민에게, 그들이 노동을 통해 스스로 살길을 확보할 수 없는 어떤 경우에도 생존의 방도를 보장해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회보장제도의 완벽한 구축, 늙고 병든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삶을 마칠 수 있게 해주는 퇴직연금제도'
'공동 노동의 결실인 대표적 생산수단-에너지원, 지하자원, 보험회사, 거대 은행들-을 국가로 복귀시키는 것'
'경제계, 금융계의 대재벌들이 경제 전체를 주도하지 못하게 하는 일까지 포함하는 진정한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 정립'
'파시스트 국가들의 모습을 본떠 구축된 전문적 독재에서 놓여난, 일반의 이익을 특정인의 이익보다 확실히 존중할 합리적인 경제조직'
'언론의 자유, 언론의 명예, 그리고 국가, 금권, 외세로부터 언론의 독립'
'프랑스의 모든 어린이가 가장 발전된 교육의 혜택을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자, 어떤가.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들 같지만, 2011년 대한민국에서 이야기하면 죄다 '좌빨' 소리 들을 말들이다.
만약 당신이, 내가, 우리가 저 말들에 동의한다면, 분명 우린 분노해야할 시대에 살고 있다.
아직 대한민국은 복지 운운할 때가 아니라고?
이런 우리에게 혹자는 말한다. 시민을 위해 이런저런 조치들을 하는 데 드는 비용을 국가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고. 그러나 프랑스 해방-유럽이 파산 상태였던 시기-이래로 창출되는 부의 양은 괄목할 만큼 증가했는데도 이제 와서 그간 얻은 성과를 유지하고 이어나갈 돈은 부족하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만약 그럴 돈이 부족하다고 강변한다면 그건 아마도, 이젠 국가의 최고 영역까지 금권의 충복들이 장악한 상태에서 레지스탕스가 투쟁 대상으로 삼았던 금권이 전에 없이 이기적이고 거대하고 오만방자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트위터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세상과 타협했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세상은 당신과 타협한 적이 없다고. 당신은 굴복했을 뿐이라고.
원문만 치면 43페이지, 전체 페이지는 90페이지도 안되는 핸드북.
하긴 그렇다. 지금 돌아가는 여러가지 상황 속에서 '분노하라'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굳이 길어야할 필요가 있을까?
주위를 돌아보라. 분노할 일은 여전히 많고, 거창하지 않더라도 시작할 수 있는 일들은 널려 있다.
분노하자. 그러면서도 웃자. 끊임없이 희망을 고집하자. 그것만이 우리의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