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 지식인, 그들은 어디에 서 있나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엮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1.




 “지식인과 지성인은 분명히 다른 개념이다.”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던가,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지식인이 단순히 지식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을 칭하는 단어라면, 지성인은 그가 가지고 있는 지식에 걸맞은 인격을 가지고 지식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쉽게 감동하고 쉽게 흥분하던 그 신입생은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그 말에 수긍했다. 하긴 ‘대학생은 지성인’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쓰이던 시절이었다. 그때만 해도. 이제 그 때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그 단어들을 사전에서 뒤적거려 본다(네이버 국어사전 참조).




지성인 [知性人]

[명사]

1 지성을 지닌 사람.

지성인의 면모를 갖추다

대학 교육을 받은 지성인이면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에티켓쯤 지니란다.≪이청준, 조율사≫

2 <철학>=호모 사피엔스.




지식인 [知識人]

[명사]

일정한 수준의 지식과 교양을 갖춘 사람. 또는 지식층에 속하는 사람.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 전문가가 좀처럼 지식인으로 발전하지를 못하고 언제까지나 전문가의 그것에 머물러 버리는 것이 한 특징이라고 그는 말한다.≪이청준, 조율사≫

지식이 인격과 단절될 때 그 지식인은 사이비요 위선자가 되고 만다.≪법정, 무소유≫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건대, 지성인과 지식인의 개념 사이에는 그처럼 심오한 간극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런데도 10년 전의 대학 신입생이 그 간극을 쉽사리 인정했던 것은 그가 순진무구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시대가 아직 ‘쿨’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어쨌거나 이제 시대는 더 이상 지성인과 지식인의 차이를 언급하지 않는다. 단지 지식인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쿡쿡 찔러볼 뿐이다. 이 현상은 ‘지식인’의 개념 혹은 위상이 어떤 식으로든 변화했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르겠다.

 

  책의 제목이 ‘섹시’해야 책이 어느 정도 팔린다는 건 이제 기정사실에 속한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다시, 지식인을 묻는다’ 따위의 제목보다는 ‘지식인의 죽음’이라고 선언하고 들어가는 것이 더 ‘섹시’하다(실제로 이 책/기획의 최초 제목은 ‘우리시대 지식인의 초상(肖像)’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지식인의 죽음’ 앞에 ‘민주화 20년’이라는 말이 붙어있다는 점이다. 민주화하면 생각나는 인물들이 있다. 물론 권력에 항거했던 ‘민중’들이 생각날 수도 있겠지만, 민중은 얼굴도 이름도 없다. 때문에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인물들은 ‘지식인’들이다.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저항적 지식인들. 그런데 민주화가 ‘된’ 지 20년이 지나, 정작 그것을 앞장서서 추구했던 지식인들이 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일까?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이라는 책에 대한 나의 리뷰는, 때문에 매우 근본적인 곳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지식인은 과연 누구를 지칭하는가라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2.

  이 책에도 ‘지식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되었다. ‘지식인 위기론’에 관련된 질문을 받은 ‘지식인들은 ‘지식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정의로 답변을 시작했다’(71쪽). 그들(그러니까 경향신문사에서 지식인이라고 찾아갔던 이들)이 위기에 처했다고 평한 지식인상은 ‘인텔리겐치아형 지식인’이었다. 인텔리겐치아는 러시아어 intelligentsia에서 유래한 용어로 그 원래 뜻은 말 그대로 ‘지식인’이다. 하지만 인텔리겐치아는 단순히 지식인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성향을 내포한 개념이었다. 사회에 비판적이고 혁명적 성향을 지닌 인물들을 인텔리겐치아라고 칭했던 것이다(두산백과사전 참조).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지식인들이 이런 개념으로서 지식인의 죽음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뒤집어 생각하면 지식인의 삶 혹은 ‘살아있는 지식인’이 어떤 개념인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접근하고 있는 지식인의 ‘생명’은 사회순응이 아니라 사회비판에 있는 셈이다.

 

  이 책에서 ‘지식인’이라는 단어를 제외하면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는 바로 ‘권력’이다. 목차만 찬찬히 뜯어봐도 그러하다. ‘정치권력과 지식인’, ‘경제권력과 지식인’, ‘문화권력과 지식인’…. 책의 전체 내용을 한 마디로 무리해서 요약하자면, 지식인과 권력, 이 두 단어를 사용하면 될 것 같다. ‘지식인은 권력에 종속되어 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자. 역사상 어느 시대 어느 장소이든 간에, 지식인이 권력에 종속되지 않았던 시대가 있던가? ‘펜은 칼보다 강하다’지만, 대부분의 펜은 칼에 맞서지 않았다. 오히려 칼의 첨병이 되어, 칼이 묻힌 피를 닦아주거나 이제는 자리를 잡은 칼이 피를 묻히지 않아도 되도록 잉크를 함부로 튀기고 다녔다. 그것은 어찌 보면 ‘펜’의 숙명인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런데도 여전히 지식인에 관련된 문제제기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지식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그렇다면 권력에게 있다는 말인가?

 

  사람이 죽는 사건이 발생하면 그 수사는 누가 그를 죽였는가라는 ‘책임론’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가장 근본적인 출발점은 죽은 이가 타살‘당했는가’ 아니면 자살‘했는가’하는 지점이다. 자살과 타살의 판단이 선 이후에야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기 시작한다. 그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데 유독 지식인의 죽음을 논할 때는 그 죽음이 타살인가 자살인가를 묻지 않는다. 지식인은 힘이 없으므로 타살당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인 것일까? 그러나 지식인으로서의 삶을 마감하면 또 다른 영생이 열릴 경우, 우리는 자살을 의심해야만 한다. 하지만 과연, 이것을 자살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시 권력으로 돌아가 보자. 정치권력/경제권력/문화권력에 ‘굴복’하거나 ‘종속’된 지식인이 권력을 ‘잃었는가?’ 내가 보기에 그들은 권력을 잃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권력을 얻었다. 그리고 그들은 지식인임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지식인계에서 권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는 자들 중 그 누구도 자신 스스로를 대중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노동’을 먹고 살기 위한 다른 ‘노동’과 동급으로 놓지도 않을 것이다. 여전히 그들은 ‘교수님’이며 ‘박사님’이고 ‘선생님’이다. 이제는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지식인은 권력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지식인에게 종속되어 있다’라고. 배운 자가 아니면 권력을 얻을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그것이 경제적 권력이든 정치적 권력이든 문화적 권력이든 간에. 권력을 얻기 위해 혹은 권력을 유지/세습하기 위해 간판으로 걸 학위를 받아내고 자식을 유학보내고. 이런 현상이 지식인이 권력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인가? 천만에.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다. 권력이 지식인에게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지식인’을 추구할 뿐이다.




#3.

  지식인은 죽지 않았다. 지식인의 죽음이라니, 가당치도 않다. 그들은 더욱 강성하게 살아있다. ‘잡초와 같은 생명력’하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인가? 민중? 맞다. 흔히들 잡초를 민중에 비유하고는 한다. 그러나 그 생명력은 민중의 것이 아니다. 그 끈질긴 생명력의 주인은 민중이 아니라 먹물들의 것이다. 그들은 시대의 변화를 제일 빨리 감지하고는 그것에 적응할 준비를 시작하고는 했다. 변화가 판을 치는 세상이라지만, 그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지식인들의 능력은 더 힘을 발휘하고, 그들의 ‘세습’은 더욱 견고해진다.

 

  그런데도 지식인의 죽음이 언급되는 것은, 지식인들을 만족시켜줄 그 무엇이 약해진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그들을 ‘선생님’이라고 불러주는 그것. 존경심. 그렇다. 이제 그 누구도 지식인을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젠 더 이상 ‘이상적 지식인’(그러니까 저 10년 전의 대학 신입생이 바라보았던 ‘지성인’)을 믿지도 않고 기대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당연한데도 지식인들은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니 아무도 관심 없는 지식인의 생사를 논하고 있을 수밖에. 그러므로 이처럼 웃긴 기획이 또 있을 수 있겠는가. 살아있는 자들이 자신의 죽음을 논하고 있다니. 마치 자신은 죽었다고 여겨지는 ‘지식인’이 아닌 것처럼.

 

  그럼에도 이 기획은 웃기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사람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먹물들이 더 ‘쿨’해질 징조가 보이기 때문이다. 이제 젊은 지식인들은 굳이 ‘존경’을 원하지 않는다. 그저 먹고 살 수만 있으면, 모든 것에 대한 변명이 가능해질 것만 같다. 그것만이 지식인의 전부가 아니라고 이야기하기엔, 되돌아올 답변이 너무나도 차갑고도 단순명료하다. ‘그럼 난 뭐 먹고 살라고?’ 그러니 한 때 ‘쿨가이’였던 푸코의 말도 이제 우리 젊은 지식인들에게는 너무나 무겁게 느껴진다.




“지식인의 역할은 다른 이들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주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무슨 권리로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지난 두 세기가 경과하는 동안 지식인들이 공식화해 왔던 모든 예측과 전망, 지령, 그리고 프로그램들을 기억해 보십시오. 지식인의 역할은 다른 이들의 정치적 의지를 만들어내는 데 있지 않습니다. 지식인의 역할은, 그 혹은 그녀 자신의 영역에서 분석을 수행하면서, 자명해 보이는 원리들에 대해서 새롭게 질문하고, 행위와 사고의 방식 및 습성을 흔들어 놓으며, 상투적인 믿음을 일소하고, 규칙과 제도들을 새롭게 파악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것은 [지식인들이]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행할 것을 요구받는 곳에서, 정치적 의지의 형성에 참여하는 문제입니다.” (푸코 · 둣치오 뜨롬바도리, 『푸코의 맑스』, 이승철 옮김, 갈무리, 2004, 26쪽. )




  그렇다고 해서 젊은 지식인들이 권력에 소탈한 도인들인가?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존경을 바라지 않지만 그들 또한 지식인이고 싶어 한다. 아니 지식인이라는 애매한 칭호가 결코 ‘직업’이 될 수 없음을 누구보다도 냉정하게 인지하고 있다. 그러니 ‘어떤 지식인도 지식인인 채로 대중이 되고자 하지는 않았다’라는 고병권의 지적(219쪽)은, 또 다른 의미에서 촌철살인인 셈이다.




#4.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 누구도 우리를 먹여살려주지는 않으니 이제 지식을 ‘파는’ 것이 정당화되는 것일까? 어차피 먹물들의 자아비판인만큼, 솔직하게 '까놓고' 얘기해보자. 그래, 어차피 자본주의 사회라고 하니 지식을 파는 행위를 무슨 버러지 보듯이 하지는 말자. 우린 ‘아마추어’가 아니니까. 이제 ‘존경’따위도 그다지 원하지 않는 것 같으니 그런 허영에 넘치는 것도 얘기하지 말자(아직까지 존경에 미련을 둔 촌스러운 사람이라면, 존경에 걸맞는 지식과 실천을 보여 달라. 무슨 긴 말이 필요한가).

 

  어떤 물건을 팔았는데 그것이 만든 이가 광고한 것만큼의 품질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당연히 소비자에게 보상을 해줘야 한다. 품질만 보장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었다면 배상을 해줘야 한다. 아무리 신자유주의 시대라지만, 이런 상황에서 배상/보상을 하지 않을 자유를 외칠 정도는 아니니까. 그런데 이런 기본적인 상도(商道)를 지키지 않는 집단이 있다. 그게 바로 지식인이다. 대운하가 말도 안 된다고 자신의 권위에 기대어 주장하다가 순식간에 말을 바꾼다면, 자신이 앞서 기댔던 권위를 포기해야 한다. 모든 것을 민영화해야한다고 강력 주장하는 교수라면, 자신이 속해있는 ‘국립대’부터 민영화하고 ‘고객’인 학생 앞에서 머리 숙여야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아직까지도 이 먹물들은 자신들이 시장논리와는 상관이 없는 ‘선비’인 줄 아는 모양이다.

 

  네이버 지식in에서 한 네티즌이 잘못된 답변을 내놓았다고 그에게 보상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의 답변은 ‘무료’였으니까. 하지만 대학 교수는 무보수 명예직종이 아니다. 하다못해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하더라도 그에게 지불되는 출연료의 일부에는 시청자가 납부하는 시청료가 들어가 있다. 그러니 이제 지식인들은, 그들이 결코 속한 적이 없는 ‘대중’들이 요구하는 ‘그 무엇’에 대해 쿨한 척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남보다 조금 더 배웠다는 이유로 생계를 보장 받는 사람이라면, 지식인이 아닌 척 쿨해서도 안될 것이다. 만약 자신의 변명대로 자신이 지식인이 아니라면, 그의 생계는 보장될 필요가 없다. 너무 먹고 사는 문제, 돈이 오고 가는 문제로만 ‘지식인의 죽음’을 논하고 있다고? 앞서서 얘기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고상한 지식인에 걸맞는 지식과 실천을 보여달라고. 무슨 긴 말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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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혁명 5년
프란츠 파농 지음, 홍지화 옮김 / 인간사랑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파농의 저서 중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책.

경험으로부터 사유를 꾀하는 파농의 저작 중에서도 가장 '현실적'인 저작이 아닐까 한다.

실제로 알제리 혁명에 적극적으로 몸을 담고 있던 시절에 쓴 책이라 다른 저작들보다 훨씬 현장감이 느껴진다.

파농은 알제리가, 아니 알제리인들이 탈식민화의 혁명을 겪으면서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서술하고 있다.

히잡, 라디오, 가족관계, 의학... 이 모든 것들이 탈식민화의 혁명과 함께 극적으로 변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럽인들은 '여성해방'을 근거로 알제리 여성들의 히잡을 벗기려 노력한다. 하지만.

 

  하지만 또한 유럽인은 알제리 여성에 대해 공격성을 구체화하고 폭력을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히잡을 벗기는 것은 여인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강조하는 것이고, 저항을 깨는 것이며, 무모한 모험을 할 준비를 시키는 것이다. 얼굴을 감추는 것은 비밀을 은폐하고 신비와 숨겨진 것의 세계를 존재하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유럽인은 알제리 여성과의 관계를 막연하게 콤플렉스의 차원에서 보았다. 이 여인을 자기 손이 닿는 곳에 두고 잠정적인 소유의 대상으로 만들려는 의지.

 

알제리 남성에 의해 무기력하고 가치가 실추되며 더 나아가 인간성을 성실한 대상으로 불행하게 변형된 여성의 무한한 가능성이 묘사된다. 알제리 남성의 행동은 아주 단호하게 고발되고, 중세적이고 야만적인 삶과 동일시된다. 끝없는 지식과 더불어 여성에 대한 태도에 있어 가학적이고 흡혈귀 같은 알제리 남성에 대한 전형적인 비난이 시도되고 제대로 정착된다.

 

그러나 혁명이 진행되면서, 알제리 여성들이 '행동'에 참여하게 되고 그녀들은 히잡을 벗어던지게 된다.

히잡을 벗어던진 '여성'들은 제국주의의 의심을 덜 받을 수 있으므로.

그리하여 그녀들은 심지어 허리까지 드러낸 자신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커진 눈을 똑똑히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히잡을 벗은 알제리 여성이 이동 중에 부모님이나 가족의 지인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아버지는 금방 상황을 알아차린다. 아버지는 이 의견을 신뢰해야 할지 어떨지 당연히 망설인다. 그리고는 관계들이 얽힌다. ... 그래서 아버지는 해명을 요구하겠다고 결심한다. 말을 시작하자마자 그는 멈춘다. 젊은 처녀의 단호한 시선에 아버지는 행동에 참여한 지 오래되었음을 알게 된다.

 

전략이 새어나가고 드러난 여성들도 마찬가지로 의심받게 되자,

 

히잡 착용 여부에 상관 없이 모든 알제리 여성이 의심받는다. 구별은 없다. 바로 이 기간 동안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알제리 국민이 동시에 일체감과 국가적 사명감, 그리고 새로운 알제리 사회가 만들어지고 있음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들은 다시 히잡을 쓴다. 이제는 전략적 은폐를 위하여. 이 과정에서 전통적 금기를 상징하던 히잡은 '완전히 사라진다'.

 

라디오와 의학 또한 식민주의를 상징하기에 알제리인들은 그것을 거부했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직접적인 이유는 식민주의가 아니었지만.

그러나 라디오와 의학이 독립혁명 속에 자리를 잡자, 그것들은 혁명의 중요한 수단으로 변화하였다.

파농의 말대로 '라디오를 갖는 것은 장엄하게 전쟁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실제로 프랑스는 혁명이 진행되는 동안 알제리에서의 라디오 판매를 엄격히 통제하고 라디오에 사용하는 건전지의 판매를 금지했다.)

 

이 모든 '수단'들은 알제리의 가족관계 또한 변화시켰으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인간관계가 탄생하였던 것이다.

(아마 이 부분이야말로 파농을 비판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 내놓을 수 있는 적절한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파농이 이야기하는 혁명은, 알제리 내에 거주하는 모든 백인들을 죽이거나 쫓아내는 것이었는가?

파농의 말과 알제리 혁명에 가담했다가 체포되었던 한 프랑스 백인의 증언을 비교해 보라.

 

  알제리민족해방전선(FNL)이 보기에 구성 중인 시테 내에는 단지 알제리인들 밖에 없다. 그러므로 알제리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은 알제리인이다. 내일의 독립된 알제리인에서 다른 국적을 얻기 위해 알제리 국적을 포기하거나 가지는 것은 알제리인 각자에게 달린 일이 될 것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심문을 받았다. 경찰관은 나를 훈계하려 했다. "당신은 이 무리의 유일한 프랑스인이오..." 나는 다음과 같은 정부의 말을 떠올리면서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알제리는 프랑스이고, 알제리인은 프랑스인입니다. - 물론 당신은 프랑스 출신이죠! - 아니오, 저는 알제에서 태어났어요. - 아! 당신은 시골의 진짜 아랍인들을 알지 못하는군요. - 저는 오르레앙빌에서 8년간 살았어요. - 이봐요, 당신은 젊어요, 당신은 이런 일에 끼어들었지만 나중에 알게 될 겁니다."

 

그랬다. 프랑스 '백인'을 향해

 

"여러분들도 우리와 같은 알제리인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알제리를 떠나고 싶다면 자유롭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프랑스 '아랍인'들은 이야기했지만, 프랑스 '백인'들은 달랐다.

그래서 혁명에 가담했다가 파리로 잠시 돌아갔던 백인 프랑스인은 이렇게 고백했던 것이다.

 

외출, 연극 관람 그리고 석 달 전부터 준비하는 바캉스 계획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었다. 나는 그들을 증오했고, 아들들을 알제리에 고문관으로 보내놓고 자신들의 작은 가게에만 매달리는 모든 프랑스인들을 통째로 경멸하기 시작했다. 나는 프랑스라는 나라에의 모든 소속감을 거부했다. 결국 내 민족은 이상 없는 부르주아가 아니라, 매일매일 산악지대와 고문실에서 고통받고 죽어가는 민족이었다.

 

  프랑스에서의 체류는 결국 내게 아주 유익했다. 내가 이미 감지하고 있었던 것을 확인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프랑스인이 아니고 결코 프랑스인이었던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하나의 민족에 속하는 데 있어 언어나 문화로는 충분치 않다. 다른 것이 필요하다. 이를 테면 공동생활, 공통의 경험과 추억, 공동 목적 등. 이 모든 것이 부족했다. 프랑스에서의 체류를 통해 나는 내가 알제리 공동체에 속해 있고 프랑스에서는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혁명 속의 알제리 거주 백인들은 알제리인이 되었고, '그들'은 여전히 철저히 프랑스인들이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알제리인으로서 해냈다. 나는 프랑스를 배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알제리인이고 모든 알제리인과 마찬가지로 식민주의를 무찌르기 위해 싸웠고 앞으로도 계속 싸울 것이다. 의식 있는 알제리 시민으로서 나의 자리는 애국자들 옆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했다.

 

물론 이런 백인들은 소수였고, 앞서 언급되었던 혁명의 기운은 독립 이후까지 지속되지 않았다.

(또 한 번 물론, 파농은 알제리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파농이 서술한 알제리의 5년은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민간인을 몰아넣고 폭격을 퍼부어대는, 그러면서도 '폭력'이 어쩌고 이야기하는 저 가증스러운 이스라엘과 침묵하는 미국에게도.

 

  알제리 민중의 폭력은 평화에 대한 증오도 인간적인 접촉의 거부도 전쟁만이 알제리에서 식민체제를 끝낼 수 있다는 확신도 아닙니다.

  알제리 민중은 자신들에게 남겨진 유일한 해결책을 선택했고, 이 선택을 유지해갈 것입니다.

  드골 장군은 "알제리 민중을 깨부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에게 "협상합시다. 현대사에 어울리는 해결책을 찾읍시다. 하지만 당신이 알제리 민중을 깨부수려 한다면 당신네 군대가 영광스러운 알제리 군인들의 벽에 부딪혀 깨지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라고 대답합니다.

 

파농의 이 연설은 그의 얼굴에 드리운 '폭력 옹호'라는 단순한 왜곡을 일시에 걷어낸다.

김규항의 말대로 ‘모든 폭력은 모두 다르며 폭력을 반대하는 일은 그 다름을 세심하게 따지는 일에서 출발한다.’

콜럼바인에서의 총기난사 사건을 두고, 이 조용한 마을에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고 하던

미사일 제조 공장 간부의 말을, 나는 기억한다.

총기난사는 폭력이고, 어딘가 떨어져 폭발한 미사일은 폭력이 아니다.

미네르바의 혐의부정은 유죄의 '근거'가 되고 한 고위 공직자의 '강력한' 혐의부정은 무죄의 근거가 된다.

그렇다. 그 어느 때보다도 '세심함'이 필요한 시기다. 그것이 때로는 귀찮고 복잡한 일이 될지라도.

 

이전의 '인간사랑' 출판사의 책과는 다르게 촌스러운 양장으로 나오지도 않았고 책 사이즈도 아주 맘에 든다.

번역도 괜찮고 이 책의 역자는 세심한 역주를 달아놓았다. 파농을 읽으려면 오히려 이 책부터 시작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한다.

참고로 이 책은 1979년에 '몰락하는 식민주의'라는 제목을 달고 번역, 출판된 적이 있으며

82년에는 '혁명의 사회학'이라는 제목으로 같은 출판사에서 다시 나온 적이 있다.

하지만 원제는 '알제리 혁명 5년'이며, 2008년에 나온 '인간사랑' 출판사의 이 책에는 부록까지 달려 있어 더 맘에 든다.

뭐 30년이란 시간차가 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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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파농 : 혁명가와 페미니즘
T. 데니언 샤플리-화이팅 지음, 우제원 옮김 / 인간사랑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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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은 3분의 1 정도 읽다가 나중에 읽기로;; 했고, 프란츠 파농은 이 책으로 마무리.

프란츠 파농의 저작은 아니고,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파농을 다룬 책이다.

미국 페미니스트들이 파농을 강하게 비판했던 모양. 그래서 저자는 이 현상에 대한 고찰을 시도한다.

 

파농의 저작, 특히 '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 동성애자들에 대한 혐오가 명백히 드러난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대로 '파농의 암시적인 동성애 혐오증이 여성 혐오증으로 번역될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알제리 혁명 5년'에 대해서도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적인 견해가 이어진다.

모니끄 가당을 비롯한 많은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점은 여성들이 혁명 즉 민족이념의 덫에 걸려들었다는 것이다.

여성의 혁명 참여가 반드시 여성의 권리를 가져오지 않았고 해방 전쟁 이후 여성의 관점에서 보면 아무런 진보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파농은 '민족의식의 함정'에 비판적이었다.

그가 꿈꾼 것은 민족의식을 '통하여' 초국가주의나 사회민주주의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가 말하듯이, '여성들이 자유 알제리를 위해 싸우고, 죽고, 또 헌신했다는 사실은 정당하게 기록돼야 한다'.

파농은 그 사실을 기록한 것이고 그 사실 속에서 초국가주의와 사회민주주의로 나가는 빛을 본 것이었다.

 

파농이 가장 심하게 공격을 받는 부분은 바로 마요뜨 카페시아를 맹렬히 공격했던 부분이다.

(이것을 이유로 파농을 공격했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좀 민망했다. -_-;;)

'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서 파농은 카페시아의 작품 '나는 마르띠니끄인이다'와 '하얀 흑인 여자'를 분석했는데,

이 자전적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마르띠니끄 여성이 가진 피부색에 대한 환상을 비판적으로 그리고 직설적으로 서술했다.

이 부분을 이유로 파농이 '여성 혐오주의자'로 낙인찍혔던 것이다.

 

그냥 생각해봐도 이 비난은 참 웃기다. 내가 박근혜를 비난하면 여성 혐오주의자가 되는 것인가? 푸훗.

박근혜나 나경원을 '여자'로 칭할 때, 그 맥락이 중요하다. 내가 이들을 비난하는 지점은 그들이 '여성'이라는 점과는 상관이 없다.

이 여성들이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억압받는 존재로서의 여성을 말한다면, 그들이 과연 '여성'일까?

어쨌거나 데니언 샤플리-화이팅은 이에 대해 흥미로운 사실을 제시한다.

 

  1949년 마요뜨 카페시아는 '나는 마르띠니끄인이다'(1948)로 앙띠유 위대한 문학상을 수상한 네 번째 앙띠유인이자 첫 번째 흑인 여성이었다. 2만 프랑의 상금을 지급하는 이 연례 수상식은 1946년 파리에서 소설, 역사소설, 수필과 시의 발전을 위해 설립됐다. 흥미롭게도, 카페시아의 작품이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심사위원단은 열 세 명의 프랑스 남성들로만 구성됐다.

  위 자전적 소설은 흑인 정신운동의 작품들 가운데 걸작으로 보기 어렵고, 문학잡지 '현대 아프리카'에서 문학 비평이나 책 서평을 위한 지면에 그럴 듯하게 다뤄지지조차 않았다. 다욱이 카페시아가 원작자인가 하는 진위의 문제마저 최근 면밀하게 검토되고 있다.

 

  흑인 남성 작가들에 의해 흑인 여성 작가들이 주변부로 밀려났다는 사실은 놀랄 만한 사안도 아니고, 심지어 남성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동시에 여성의 경험을 여성들이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침묵하게 만드는 끈질긴 시도들이 공공연하게 알려졌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이런 진술을 카페시아를 옹호하기 위해 성급하게 일반화할 필요는 없다.

 

진실로 벨 훅스가 그녀의 글 '페미니스트의 도전 : 우리는 모든 여성을 자매라고 불러야 하는가?'에서 밝히듯이, "우리에 대한 억압과 속박을 제도화하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은 중요하겠지만, 이와 더불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말하고 우리의 정치학이 무엇인지 또한 매우 중요하다."

 

이런 몇 가지 이유로 파농을 공격하는 것은 저자의 표현대로 비생산적인 비판일 뿐이다.

 

  오늘날 파농은 "네가 한다 해도 비난받고 하지 않더라도 비난받는다"(damned if you do, damned if you don't)라는 식의 취약한 비판에 걸려들었다. 알제리 여성에 관한 글을 쓰면서 그는 여성의 침묵과 남성의 특권, 그리고 복화술을 재각인 시켰다는 이유로 비난 받는다. 1959년 만약 그가 여성에 대해 단 한마디의 언급도 없이 알제리 혁명에 관해 썼더라면 그는 성차별주의자로 몰려 마찬가지의 공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여성을 주제로 다뤘기 때문에 오늘날 파농은 성차별주의자로서 보수주의적 하위 텍스트를 통해 신화작업을 했다고 비난받는 것이다.

 

벨 훅스의 지적대로 '일반적으로 여성 패널들이 남성 학자에 대한 페미니즘적 접근을 논할 때, 전제는 오직 그의 성차별주의만을 캐묻는데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또 다른 인종주의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벨 훅스의 말을 들어보자.

 

  백인 남성 작가들이 이같은 비난을 듣는 일은 거의 없다. 문학 연구 가운데 인종주의는 자주 이같은 반응으로 나타난다. 자신들의 도서목록에서 초서(Chuacer), 세익스피어나 조이스(Joyce)를 배제한다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이들 작가들의 작품이 성차별주의와 인종주의를 반영한다 할지라도) 백인 여성들은 쉽게 이같은 기준을 흑인 남성의 저작에 대한 자신들의 무지를 변호하기 위해 사용한다. ... 학자 세계에서 비평 이론이나 탈식민주의 담론의 여성들 가운데 유행은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저작을 쓴 백인 남성 사상가들[예를 들자면, 데리다, 푸코, 제임슨, 사이드(Said)]의 성차별주의나 인종주의를 최대한 많이 관과하는 것이다.

 

뭐... 이 부분의 번역은 딱히 맘에 들지 않지만, 여튼 그 뜻에는 충분히 동의할 수 있다.

이는 어쩌면 '흑인 남성은 가부장적'이라는 더 큰 인종주의의 울타리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이 책의 말미에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들이 모계 공동체의 유토피아를 창조하려는 욕망 때문에

파농과 같은 억압과 해방의 진보적인 남성 이론가들을 창조적으로 이용하기보다는

단지 그들의 남성성을 이유로 마치 악마를 다루듯이 삭제하거나 쫓아내고 말았다고 평한다.

 

  진실로,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들의 의식이 가난한 노동자 계급 여성들의 경험을 향한 이론적이고 실재적인 움직임에 대해 닫혀있는 한, 페미니즘의 적절성이 여성 대중들의 의식에 "분명하지 않게" 남아 있는 한, 그리고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들의 의식이 학계의 재조직과 사회적, 정치적 변형보다 학계의 정통성과 동화에만 맞춰있는 한, 학계의 포스트모던 페미니즘들은 역시 닫힌 책에 불과하다.

 

저자의 마지막 강조점은, 마치 몇 년 전의 김규항과 최보은의 페미니즘 논쟁을 보는 것처럼 매우 민감한 부분이다.

페미니스트들을 '등 따시고 배부른 여성 유한 계급'의 딴따라짓 정도로 취급하여 공격하는 마초사회주의자는 분명 문제가 있다.

하지만 왜 사회주의자와 페미니스트, 이 두 진보주의자들은 항상 대립구도 안에서만 존재해야 하는가?

계급주의와 여성주의는 이분법적으로 서로를 바라봐야할 것이 아니다.

노동자 계급 안에도 남성과 여성의 '계급'이 존재하듯이, 이 둘은 상호보완적인 존재가 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비난을 위해 상대의 약점을 이용할 것이 아니라, 자기발전을 위해 상대의 장점을 이용해야하지 않을까?

 

페미니스트들과 토론을 하게 될 때면, 나는 버릇처럼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고 선언하고 말을 시작한다.

나는 남성이 페미니스트가 절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노동자가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것이 자기기만이듯이, 남성이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도 자기기만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주변의 시선 때문에 자신의 남성성을 숨기고 여성을 '배려'해준다는 식의 페미니스트가 되느니,

차라리 남성으로서의 나를 드러내고 진심으로 여성을 '알아보려는' 태도가 낫다고 본다.

 

딴 것 볼 것도 없이, '나도 집에 처가 있고 딸이 있는 사람이오'라는 식의 말을 지껄였던 이명박을 보라.

집에 처가 있고 딸이 있으면... 뭐 어쩌라고? 나와서는 '안마시술소'를 들먹거리며 '인생의 지혜'를 운운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계급의식'이다.

나의 '계급'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지하고 우리의 '계급'을 위해 택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계급은 성차 또한 반영되어야 한다. 모든 노동자가 남성이 아니듯이, 모든 여성이 피억압자는 아니다.

자기기만적인 계급의식은 욕망을 잠시 채워줄 수는 있겠으나, 결국은 자기파멸의 말로를 맞을 수 밖에 없다.

또 '단순한' 계급의식은 불필요한 내부분열을 만들어낼 뿐이다.

 

강남의 고급주택과 불타는 용산의 한 허름한 옥상 사이에서, 내가 어디에 더 가까운가라는 '뻔한 질문'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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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흔든 공산당 선언 세계를 뒤흔든 선언 1
데이비드 보일 지음, 유강은 옮김 / 그린비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그린비에서 출간되고 있는 '세계를 뒤흔든 선언' 시리즈.

공산당 선언의 원문과 함께 등장배경, 공산당 선언의 여파/유산이 서술되어 있다.

'선언'은 이미 '레즈를 위하여'에서 많이 인용했으므로 한 구절만 인용해본다.

 

  공산주의를 특징짓는 것은 소유 일반의 폐지가 아니라 부르주아적 소유의 폐지다.……

  힘들게 일해 혼자 힘으로 얻은 스스로 번 소유라니! 부르주아적 소유 이전에 있었던 소규모 장인의 소유나 소농민의 소유를 말하는 것인가? 그런 소유라면 폐지할 필요가 전혀 없다. 산업의 발전으로 이미 상당 부분 폐지되었고 또 지금도 나날이 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선언'으로 시작된 공산주의는 이후 여러가지 '해석'의 과정을 거치면서 변화하거나 왜곡되어 왔다.

가장 대표적인 왜곡이 스탈린주의라고 할 수 있겠는데, 하지만 왜곡이 아니라면 변화나 차용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태도로 임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맑스주의의 재해석 과정을 통해 공동체 개념이 '함께 존재함'에 가까운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생겨났다. 모든 인간을 생산자(프롤레타리아트)로 환원하는 대신에 각자의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는 다차원적인 사회로. 이 새로운 공동체 개념이야 말로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사회라는 '선언'의 꿈에 더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어떤 점에서 보면 우리는 길고도 험난한 우회로를 거쳐 다시 '선언'으로 되돌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저자의 지적대로 '현실적 운동'임을 강조하는 '선언'은, '받아들이기에 따라서 "일단 가보아야 한다"는 식의 회피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맑스는 수수께끼를 더욱 분명하게 만들었고, 이 때문에라도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

 

책의 말미에는 고병권의 짧은 해제가 들어있는데, 이 해제의 한 구절이 오늘날 '선언'의 의미를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 같다.

좀 길 수도 있지만 인용해본다.

 

'선언'은 위험한 책이다. 하지만 이때 '위험하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위협하다'는 말과 혼동되어선 안된다. '선언'의 유명한 문장, "지배계급으로 하여금 공산주의 혁명 앞에 벌벌 떨게 하라"가 위협하는 말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선언'의 위험성은 오히려 아무도 위협하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나온다.

  '위협하다'는 것과 '위험하다'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위협하는 자는 무시무시한 폭력을 사용할 때조차 거래를 원한다.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말하는 제국의 지도자도, 직장을 폐쇄하겠다는 사장도, 총파업으로 위협하는 노조도, 회초리를 들고 서 있는 교사도 원하는 것은 거래이다. 위협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이들은 실제로 폭력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폭력은 여전히 거래의 메시지이다. 일정한 개량이 이루어지면 그만하겠다는 메시지. 따라서 이들 때문에 현존하는 세계가 위험에 처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기득권이 강화되고 법이 강화될 뿐이다. 부시를 보라. 위협하는 자가 원하는 것은 세계 속의 이권이지 새로운 세계가 아니다.

  그러나 위험한 자는 세계의 이권에 관심이 없다. 그가 원하는 것은 새로운 세계이다. 폭력은 그에게 수단도 목적도 아니다. …… 위험한 자는 결코 거래를 하지 않는다. 그들이 폭력적으로 느껴진다면 그것은 그들이 폭력을 사용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존재 자체가 폭력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저들이 비난할 때 애용하는 '국가위기'라는 말에 휘둘릴 필요가 전혀 없다. 이에 대해서는 '선언'의 한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 어떻게 가지고 있지도 않는 것을 빼앗는단 말인가.

 

그러나 한 편으로 생각해보면 이제 우리는 진정한 '보수'가 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극명하게 충돌했던 용산에서의 '폭력'을 보라. 한 쪽은 위협을 하며 생존권에 대한 '거래'를 원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 쪽은 거래를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새로운 세계'를 원하는 것이 틀림 없다. 그래서 그들은 '위험하다'.

 

종이질을 조금 낮추고 가격을 조금 더 내린 문고판 형식으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긴 하지만,

'선언'을 부담 없이 읽어보기에는 괜찮은 선택 같다. 유강은 씨의 번역에 대해서도 개인적으로 꽤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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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의 세계 - '죽음의 춤'을 통해 본 인간의 삶과 죽음 역사도서관 교양 10
울리 분덜리히 지음, 김종수 옮김 / 길(도서출판)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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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서점에 갈 때, 혹은 한 달에 한 번 인터넷 서점에서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찾고는 한다.

그래서 바로 읽지는 않지만 책을 한 두 권씩 구입하거나 도서관에 신청을 하곤 한다. 이 책도 바로 그렇게 사게 된 책.

 

서양에서 꽤 자주 볼 수 있는 테마인 '죽음의 춤'을 주제로 한 책이다.

 

죽음의 춤을 그린 그림에서 눈에 띄는 점은 오로지 죽음만이 춤을 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산 자들은 뻣뻣하게, 종종 몸을 돌린 채 조용히 서 있거나 말과 행동으로 죽음을 따라가길 완강히 거부한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갑작스럽고 고통스러운 죽음에 대한 불안은 종교적인 참회의 열망뿐만 아니라 과도한 향락욕을 불러일으켰다. 죽음의 춤은 이 두 가지 열망을 결부하고 있다. 춤과 죽음의 알레고리에는 죽음의 불가피성을 상기시키고 언제나 죽음에 대한 준비(메멘토 모리)를 하도록 설파하는 교훈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죽음의 춤을 통해 '메멘토 모리'라는 교훈적 내용을 설파할 수도 있지만, '카르페 디엠'이라는 현세적 메시지를 강조할 수도 있다.

 

비록 묘사된 해골들이 외형적으로만 보면 중세의 죽음의 춤을 강하게 연상시킬지라도 그들의 임무는 전혀 다르다. 그들은 무상함-육체의 덧없음뿐만 아니라 지상의 모든 쾌락, 지식, 철학적 교리에 대한 무상함-을 연상시키지만, 삶의 향략에 대해서는 경고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인생을 즐기라고 분명하게 요구하기까지 한다.

 

계몽의 시기가 되자 죽음은 구원사적으로 정착되지 못하고, 사람들은 죽음의 고전적 위협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 더는 초자연적인 힘의 개입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의 안전한 지위를 의식한 채 자신들을 커다란 위험과 고대의 불안-예컨데 어둠, 죽음, 자연의 힘과 같은-에 내맡길 줄 안다. 특히 저승에서 벌을 받게 된다는 고전적인 위협들은 이제 그 무서움의 대부분을 상실해버렸다.

 

사실 내가 굉장히 관심이 많은 부분이라 많은 기대를 하고 산 책인데, 결론을 얘기하자면 좀 실망스럽다.

우선 편집.

많은 도판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굉장히 비효율적이다. 그림과 설명이 따로 놀아서 '그림을 보며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흑백 그림이 더 많은데 칼라로 책을 내서 가격 또한 비싼 편이다. (1,8000원)

한스 홀바인의 죽음의 춤이 굉장한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그 부분 또한 도판이 너무 작고 설명이 너무 간결하다.

이 부분에서 그림을 하나 하나 뜯어보며 설명하고 분석을 했다면, 그 다음의 진행도 훨씬 수월하지 않았을까 싶다.

 

더 중요한 건 내용.

우선 각각의 도판을 싣고 있는 '책'에 대한 분석이 전혀 없다. 이 책이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목적으로 발간된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사실 초기 죽음의 춤은 기독교적인 성격을 가진다기보다는 민속신앙 즉 이단에 기반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기독교 교단 족에서는 죽음의 춤을 금지하기도 했지만, 그것을 활용할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이단을 못본 체 하기도 했다.

때문에 각각의 책이 어떤 책인지를 밝히는 것이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도, 이 책은 그 부분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다.

그러다보니 이 책에는 '역사'가 결여되어 있다. 때문에 산만하고 지루한 느낌이 들 수 밖에 없다.

(책을 읽다보면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생각이 종종 든다. -.-;;)

 

이건 작은 부분인데.. 이 책의 저자는 죽음의 춤을 분석하면서 '메멘토 모리'의 '평등성'을 강조한다.

죽음의 춤에는 교황부터 거지까지 모든 계층들이 해골의 손을 잡고 끌려가는 모습이 묘사되곤 한다.

그것이 '누구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 즉 '죽음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어쨌든 그 순서가 서열을 엄격하게 지키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평등보다는 신분차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평등을 강조한다기 보다는 되려 기만에 가까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현실은 괴롭지만 죽음만은 평등하다는 기만.

그렇기에 교황을 비롯한 교회에서나, 권력을 가진 왕이나 귀족들이 죽음의 춤에 대해 침묵했던 것이 아닐까?

차라리 죽음의 춤보다 '죽음의 승리'가 무차별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죽음의 승리는 '추수'라는 느낌마저 준다)

 

반대로 생각하면, 서양사 연구에 있어 이 죽음의 춤은 아직도 연구될만한 여지가 많다고 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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