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의 세계 - '죽음의 춤'을 통해 본 인간의 삶과 죽음 역사도서관 교양 10
울리 분덜리히 지음, 김종수 옮김 / 길(도서출판)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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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서점에 갈 때, 혹은 한 달에 한 번 인터넷 서점에서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찾고는 한다.

그래서 바로 읽지는 않지만 책을 한 두 권씩 구입하거나 도서관에 신청을 하곤 한다. 이 책도 바로 그렇게 사게 된 책.

 

서양에서 꽤 자주 볼 수 있는 테마인 '죽음의 춤'을 주제로 한 책이다.

 

죽음의 춤을 그린 그림에서 눈에 띄는 점은 오로지 죽음만이 춤을 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산 자들은 뻣뻣하게, 종종 몸을 돌린 채 조용히 서 있거나 말과 행동으로 죽음을 따라가길 완강히 거부한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갑작스럽고 고통스러운 죽음에 대한 불안은 종교적인 참회의 열망뿐만 아니라 과도한 향락욕을 불러일으켰다. 죽음의 춤은 이 두 가지 열망을 결부하고 있다. 춤과 죽음의 알레고리에는 죽음의 불가피성을 상기시키고 언제나 죽음에 대한 준비(메멘토 모리)를 하도록 설파하는 교훈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죽음의 춤을 통해 '메멘토 모리'라는 교훈적 내용을 설파할 수도 있지만, '카르페 디엠'이라는 현세적 메시지를 강조할 수도 있다.

 

비록 묘사된 해골들이 외형적으로만 보면 중세의 죽음의 춤을 강하게 연상시킬지라도 그들의 임무는 전혀 다르다. 그들은 무상함-육체의 덧없음뿐만 아니라 지상의 모든 쾌락, 지식, 철학적 교리에 대한 무상함-을 연상시키지만, 삶의 향략에 대해서는 경고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인생을 즐기라고 분명하게 요구하기까지 한다.

 

계몽의 시기가 되자 죽음은 구원사적으로 정착되지 못하고, 사람들은 죽음의 고전적 위협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 더는 초자연적인 힘의 개입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의 안전한 지위를 의식한 채 자신들을 커다란 위험과 고대의 불안-예컨데 어둠, 죽음, 자연의 힘과 같은-에 내맡길 줄 안다. 특히 저승에서 벌을 받게 된다는 고전적인 위협들은 이제 그 무서움의 대부분을 상실해버렸다.

 

사실 내가 굉장히 관심이 많은 부분이라 많은 기대를 하고 산 책인데, 결론을 얘기하자면 좀 실망스럽다.

우선 편집.

많은 도판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굉장히 비효율적이다. 그림과 설명이 따로 놀아서 '그림을 보며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흑백 그림이 더 많은데 칼라로 책을 내서 가격 또한 비싼 편이다. (1,8000원)

한스 홀바인의 죽음의 춤이 굉장한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그 부분 또한 도판이 너무 작고 설명이 너무 간결하다.

이 부분에서 그림을 하나 하나 뜯어보며 설명하고 분석을 했다면, 그 다음의 진행도 훨씬 수월하지 않았을까 싶다.

 

더 중요한 건 내용.

우선 각각의 도판을 싣고 있는 '책'에 대한 분석이 전혀 없다. 이 책이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목적으로 발간된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사실 초기 죽음의 춤은 기독교적인 성격을 가진다기보다는 민속신앙 즉 이단에 기반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기독교 교단 족에서는 죽음의 춤을 금지하기도 했지만, 그것을 활용할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이단을 못본 체 하기도 했다.

때문에 각각의 책이 어떤 책인지를 밝히는 것이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도, 이 책은 그 부분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다.

그러다보니 이 책에는 '역사'가 결여되어 있다. 때문에 산만하고 지루한 느낌이 들 수 밖에 없다.

(책을 읽다보면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생각이 종종 든다. -.-;;)

 

이건 작은 부분인데.. 이 책의 저자는 죽음의 춤을 분석하면서 '메멘토 모리'의 '평등성'을 강조한다.

죽음의 춤에는 교황부터 거지까지 모든 계층들이 해골의 손을 잡고 끌려가는 모습이 묘사되곤 한다.

그것이 '누구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 즉 '죽음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어쨌든 그 순서가 서열을 엄격하게 지키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평등보다는 신분차를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평등을 강조한다기 보다는 되려 기만에 가까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현실은 괴롭지만 죽음만은 평등하다는 기만.

그렇기에 교황을 비롯한 교회에서나, 권력을 가진 왕이나 귀족들이 죽음의 춤에 대해 침묵했던 것이 아닐까?

차라리 죽음의 춤보다 '죽음의 승리'가 무차별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죽음의 승리는 '추수'라는 느낌마저 준다)

 

반대로 생각하면, 서양사 연구에 있어 이 죽음의 춤은 아직도 연구될만한 여지가 많다고 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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