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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eft 1848-2000 - 미완의 기획, 유럽 좌파의 역사
제프 일리 지음, 유강은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1.
누가 말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니, 누가 말했는지 굳이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건 간에, 유명한 어구가 하나 있다. 젊었을 적에 공산주의자가 되지 않는 자는 바보이며, 나이가 들어서도 공산주의자로 남아있는다면 그는 더 바보라는 말. 내가 이 말을 처음 접한 것이 아마 중학교 1학년 즈음이었을 것이다.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로 유명한 이원복이 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다룬 만화책에서 보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고 그 동안 이원복이 보여 왔던 나름의 사상적 행로(?)를 살펴보면, 그가 그 만화책에 굳이 그 말을 인용했던 의도가 짐작이 간다.
그때와는 또 달리, 지금 한국사회에서 ‘좌파’라는 말은 이제 마녀사냥을 위한 ‘페인트’의 역할조차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전히 ‘빨갱이’라는 말이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사용되는 현실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옹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좌파이든 좌파를 공격하는 극우이든 간에, 이제 좌파라는 말은 너무나도 유행이 지나버린 말이 되어버렸다. 좌파하면 두려움에 떨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사상 논쟁 지겹지도 않냐’라는 말이 쿨하게 다가오는 시절이 되었다. 또 다른 이들은 쿨하지는 않더라도 하나의 ‘추억’으로 상기하기도 한다. 그 중 일부는 경험이 부재한 추억 혹은 낭만인 경우도 있다(나를 포함해서). 좌파만이 아니다. ‘계급’이라는 단어조차 이제는 먼지가 풀풀 날리는 단어가 된 것이 현실이다.
#2.
저자의 서문을 읽는 순간, 왠지 모를 슬픔이 느껴졌다. 1984년 봄, ‘광부파업을 둘러싼 대중의 잔인한 분위기’에 아찔함을 느끼면서 ‘세상이 바뀌었음’을 느꼈다는 말이 특히 그러했다. 그러면서도 슬픔만으로 끝나지 않는, 어떠한 비장감도 느껴졌다.
그렇지만 단언컨대 이 책은 묘비명이 아니며 지난 과거를 그리워하는 향수의 몸짓도 아니다. 이 책은 몇 가지 중요한 이야기들이 잘못 전달될 때일수록 역사가 중요하다는 확신의 소산이다. 망각에 맞선 기억의 투쟁이라는 말은 요즘 글쟁이들의 상투적인 표현이 되어버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의 힘이 약해지지는 않는다. 1900년대 동안 새로운 기억상실증들로 인해 몇 가지 없어서는 안 될 역사가 지워져버렸다. 모름지기 좌파의 역사는 인간의 잠재력을 제한하고 왜곡하며, 공격하고 억압하고, 때로는 심지어 완전히 없애버리려고 하는 불평등의 체제에 맞서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그리고 이 역사는 분명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때문에 이 책은, 저자가 서구 유럽의 좌파에게 바치는 ‘비판적’ 헌사다. 여기서 ‘비판적’이라는 말을 굳이 앞세운 것은, 그가 곳곳에서 낭만적인 시선을 과감히 거두어버리고 쓴 소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곳곳에서 다양성을 보장하지 못한 기존 좌파들의 한계를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특히 젠더의 문제에 민감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지점은 오늘까지 유요한 문제이다. ‘이 사람, 젠더 문제에 너무 민감한 거 아냐?’라는 생각이 단 몇 초라도 들었다면, 우리는 다시 한 번 구태의연한 말을 되뇔 필요가 있다. ‘세상의 반은 여자다’. 그리고 그 여자의 수는 ‘노동자’의 수보다 많다. 저자의 지적대로, ‘어떤 식으로든 여성들은 기다릴 것을 요구받았다’.
이 문제는 비단 젠더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노동계급운동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이 ‘자신감’이 혁명의 원동력인 것은 분명하지만, 혁명 세력 내 소수(여기서의 소수는 단순히 숫자를 의미하지 않는다)의 침묵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현대자동차 공장 식당의 아주머니들이 그러했고, 이주노동자들이 그러하고, 정말 숫자로는 다수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러하다. ‘귀족 노동자’라는 원색적인 비난을 옹호할 생각은 절대 없다. 그러나 모든 노동자가 ‘같은’ 노동자인가? 때문에 ‘노동운동은 한편으로는 노동계급 전체의 이해와 권위, 집단적 힘에 호소하면서도 실제로는 훨씬 더 협소하고 배타적이었다’는 저자의 지적이 뼈아프다.
그러나 제프 일리가 제시한 좌파의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혁명에 대해 자신감, 아니 신념을 가진 이들을 ‘교조주의자’로 본다면, 신념이 없는 사람들은 뭐라고 불러야 하는 걸까? 좌파의 초기, 농민을 어떤 계급으로 인지할 것인가라는 부분만 살펴봐도 이 문제가 간단치 않음을 알 수 있다. ‘동정적인 시선’이 없다는 가정 하에, 당시 농민 계급은 분명 반혁명적인 계급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특권계급’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전략적으로 볼 때도 그들은 ‘다수’였다. 노동자만이 대중이 아니었던 것이다. 마르크스의 공식에 맞추자면 그들은 몰락해야만 하는 계급이지만, 절대 목적인 혁명을 위해 그들의 몰락을 지켜보는 것(혹은 부추기는 것)이 타당할 것인가? 100년 전에 던져졌어야할 질문 같지만, 안타깝게도 2009년의 한국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항상 고되고 착취당하는 농민이 과연 ‘진보 세력’으로 묶여질 수 있는가? 굳이 농민까지 갈 것도 없다. 보수적인 노동자를 ‘동지’로 볼 수 있을 것인가? 반대로 보수적인 노동자를 적으로 돌리는 것이 과연 타당한 행위인가?
이런 문제는 ‘계급’이 어떠한 단순명료한 실체가 아니라는 점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 문제는 오늘날 더욱 심화되는 경향이 있다.
노동자들이 조직화된 정치에 무관심해 보였더라도, 이것은 노동자들에게 올바른 삶에 대한 생각이 없었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그런 생각이 종종 ‘개인적인’ 욕망의 경제에 갇혀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런 생각을 어떤 식으로 자유롭게 해방시킬 것인지가 좌파의 문화정치가 직면한 문제였다.
특히 여성, 인종, 성적소수자 등의 문제에 비하여 생산수단의 유무로 판단되는 ‘계급’의 문제는 그 불명확성과 비가시성 때문에 더욱 복잡해진다. 명확히 드러나는 인종이나 국적에 비해 계급은 ‘실재하지만 테두리 선이 없는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3.
좌파가 당면한 구체적 문제에 다다르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행동상의 타협은 위험하지 않지만 강령상의 타협은 위험하다’라는 말은 명확한 원칙이기는 하나 적용하기에는 그다지 명확하지 않다. 부르주아 혹은 자유주의자들과의 연합을 어디까지 용인할 것인가는 여전히 모호한 영역에 머물러 있다.
한편으로 사회주의자들은 인상적인 성장을 이룩했음에도 야당으로 고정되어 계속 외부에 존재해야 했으며, 다른 한편으로 정부에 오를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연합을 통해서만, 즉 혁명의 목표를 수정하거나 유예하는 제한된 강령을 공언함으로써만 가능했다.
이 책의 중간 부분, 그러니까 독일과 이탈리아의 두 사례가 바로 그 증거다. 아주 조금의 성과라도 얻어낼 수 있다면 강령은 차후에 다가올 미래로 넘겨둘 수 있다는 생각은 독일의 사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원칙만을 부르짖으며 그 원칙을 실제로 행사할 수 있는 의회나 행정상의 문제를 도외시하면 이탈리아의 사례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여성의 참정권 등 젠더에 관련된 사항들도 사실 생각해보면 ‘전략적’으로 접근된 경우라고 봐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취해야할 태도는 어떠한 것인가?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문제로 들어가기 전에 분명히 정리를 하고 넘어가야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정권 말기, ‘진보와 개혁’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것을 기억하는가. 제프 일리는 아주 당연한 것처럼 ‘혁명과 개혁이라는 서로 대립하는 견해’라고 표현하고 있으나, 한국에서는 아직까지도 독일과 이탈리아의 사례를 적용할 만큼 명확한 비교잣대가 존재하지 않는다. 나름의 주관이 있던 ‘자유주의자’ 노무현이 ‘빨갱이’가 되는 사회가 아니던가. 게다가 스스로 그 빌미를 풍성하게 제공하기도 하였다. 앞서 말한 ‘추억과 낭만’ 때문인 걸까?
굉장히 슬픈 일인데, 우리가 상상력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어요. 더 나은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 믿음 같은 것이 적어요. 그래서 만날 '우리 현실에서 이것만 해도 어딘데'라는 생각이 지배해요. 개혁이라는 것이 진보의 기초적인 부분과 겹치기도 하지만, 개혁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진보를 가로막기 위해 사회를 좀더 합리화하는 데 있죠. 상상력이 없으니 그 부분을 놓치게 되는 거죠. 개혁이 갖는 소박하고 진보적인 경향에 너무 감사하는 거예요. '이것만 해도 어딘데'하면서. 그것은 어리석은 게 아니라 착한 거라고 봅니다. 그런데 그 착함 때문에 된통 작살이 나는 거죠. 누가 어떤 놈이 밟았는지도 모르는 채 삶이 너무 고달파지는 거예요. 그래서 "에이, 이제 진보고 개혁이고 뭐고 싫고 무슨 사회, 이념도 다 싫다. 먹고사는 문제가 제일이야. 이명박이 제일이야"하는 식으로 가는거죠. 이명박은 디지털 시대를 토목 건설로 해결하려는 몽상가인데 어떻게 된 게 이 사람이 가장 현실주의자가 되어버렸죠. 이것은 대단한 역사적 반동인데, 정말 슬픈 일입니다.
개혁이 실패했다고들 하는데 사실은 그야말로 대성공을 한 셈이죠. 개혁의 목적은 진보를 가로막는 것이니까요.
- 김규항, 지승호와의 인터뷰 중, 『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 시대의 창, 2007.
그것은 참여정부 최대 과오 중의 하나였고, 그 과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인하여 개선의 가능성이 더욱 줄어들었다. 그를 비판하는 것이(특히나 좌파의 입장에서는) 그의 자살로 인하여 더욱 부담이 가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이 그를 죽였다’는 노사모 출신 배우의 말은, 그 격앙된 상태를 감안하더라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도 좀 격앙된 태도로 본문에 인용된 알퐁스 메르앵의 말(246쪽)을 고쳐서 받아치고 싶은 심정이다.
“개혁 세력들은 자신들의 근거 없는 자존심을 위하여 ‘가항력적’인 파도에 휩쓸려버렸고, 수구우파들이 우리를 쏘게 내버려두질 않았다. 그들 스스로 우리를 쏘고 싶어 한 것이다.”
지금 사상으로는 도저히 규정이 불가능한 괴물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비판해야하는 기준을 흐려야 할 이유는 없다. 아니, 오히려 이런 상황이기에 더욱 그래서는 안 된다. 그래야만 대통령 스스로가 ‘좌파 신자유주의’와 같은 웃기지도 않은 유행어를 날리지도 않을 것이며, 또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실패 이후 민주노동당에게 대연정을 위한 손을 내미는 슬랩스틱 에드립을 보이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유행어와 슬랩스틱 에드립은, 결과적으로 희극이 아닌 비극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블로그를 하다가 발견한 다음과 같은 답글을 보라.
*** (답글) 2009/07/26 21:27
우리같은 국민들은 미디어법 이런거 구체적으로 잘 모릅니다. 단지 수구골통이라는 조중동, 수구진보라는 한겨레, 경향...독과점 지상파 3사. 이들 언론이 이념을 떠나 진정 국민들 편에 서서 언론의 진정한 역할을 보여줄때 이념 따지지 않고 손뼉치고 이들을 믿어 줄겁니다.
글쎄. ‘언론의 진정한 역할’은 무엇이고 ‘국민’은 또 누구인가. ‘이념을 떠나 진정 국민들 편에 서’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자신이 누구보다도 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사람이 실체가 없는 몽상을 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념이 없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잘 모른다면서도 이념하면 도리질부터 치는 이 현상의 타개는, ‘커밍아웃’과 ‘충돌’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추신.
‘미완의 기획’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 『더 레프트』는, 저자가 ‘이 책은 단연코 묘비명이 아니다’라고 강조함에도 ‘실패의 역사’라는 머릿속의 이미지를 지우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공산주의는 소련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교조주의와 그 교조주의를 악용하고 일국사회주의라는 논리로 교묘히 포장한 스탈린에 의하여 타락할 대로 타락했다가 결국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사회민주주의 진영은 역사적 굴곡 속에서 연대와 의회를 강조하다가 결국은 ‘자본주의의 몰락’이라는 말 자체를 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이 이루어낸 ‘개혁적’ 성격의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셜플랜에 의지하는 노동당’이라는 기괴한 이미지는 결국 부시의 푸들이 되어버린 노동당 당수까지 배출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협력’과 ‘연대’의 범위가 어디까지여야 하는가라는 어려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이 질문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질문을 던지기 이전에, ‘언어의 정치’에 대해 심각하게 성찰을 할 필요가 있다.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이라는 것을 이야기 한다. 그의 책 제목도 그러하듯이, 논리는 간단하다. 난데없이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외치는 순간 게임이 끝난다는 것이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는 것’은, 어쨌거나 한 번은 코끼리를 생각해야만 한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말라는 외침에 동조하든 저항하든 선점을 당한 주제에서는 결국 그 ‘프레임’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 논리로 미국의 진보세력이 왜 항상 보수세력에게 패배하는가를 분석하였다. 미국의 보수세력이 항상 논제를 선점하고 나면, 진보세력은 그것에 대한 ‘안티’ 그 이상을 넘어설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진보는 어떠한가? 진보, 노동운동, 직접행동, 저항, 불복종. 이런 단어들이 한국사회에서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이미 선점당한 것들뿐이다. 붉은 머리띠, 붉은 깃발, 마스크, 죽창, 쇠파이프, 새총, 마초, 술, 담배……. 이런 것들이 100% 가공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 조작된 이 이미지들이 결국 고착되어 또 다른 실체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자극적인 이미지만이 아니다. 계급, 투쟁, 프롤레타리아, 부르주아, 타파, 진보, 개혁, 좌파, 공산주의, 사회주의, 복지……. 이런 추상적인 단어조차 이젠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왜곡되어,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극단적인 조건반사를 일으키고 있는 형편이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생각해보면 그렇다. 좌파들이 극우 집권세력들의 노골적인 왜곡과 중상모략을 너무 가볍게 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노무현은 빨갱이’라는 말에도 그냥 코웃음을 치고 넘어가고, ‘계급’이라는 놓칠 수 없는 단어에다가 많은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거부감을 일으키는 ‘투쟁’이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고민 없이 붙여 사용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자유주의자를 보고 빨갱이라고 칭하는 현실이 어이없는 것은 백 번 이해하는 바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선점’하도록 그냥 둬서는 안 될 일이었다. 입 아프고 지치는 일이더라도 그것을 꾸준히 설명하고 변명하고 반론해야 했던 것은 아니던가. 이것도 또 다른 의미의 투쟁은 아니었던가. 더 나아가 그토록 비난하던 교조주의를 나 자신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것은 아니던가. 우리는 상징을, 놓쳐서는 안된다.
정말로 천재적인 솜씨였다. 사람들이 돌무더기로 바리케이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군사적인 면에서 보자면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보면 바로 그 일을 해야 했다. 프랑스 역사에서 바리케이트의 이미지는 1830년과 1848년, 파리코뮌 등 민중봉기의 모든 영웅적인 순간과 연결되어 있다. 바리케이트는 상징이며, 왕과 반동의 군대에 대항하는 빈민과 노동자들의 방어선이다.
- 문제제기
세계1차대전 전후에 보였던 전환들(사회주의 -> 애국적 민족주의로 인한 국제적 사회주의 연합의 붕괴 -> 전쟁 말기~전후 대중들의 사회주의적 요구)을 어떻게 볼 것인가? 사실 이 부분은 나를 조금은 절망하게 만든 부분이었다. 전쟁 초기 불었던 애국주의 열풍이 엘리트만의 것인가? 오히려 엘리트들은 대중들의 눈치를 보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전쟁 말기의 ‘사회주의적 요구’는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배가 고파야 움직이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그 인지상정이 ‘강령’이 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연대’의 근거는 어디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 사족
아마도, 내 평생 읽게 될 책 중 몇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두꺼운 책이었다(적어도 단권으로 치자면). 전체 페이지는 1000페이지가 넘고, 참고문헌 정리만 해도 100페이지를 육박한다. 그만큼 이 저서는 역사학자 제프 일리의 '학문적 열정'을 넘어서는 저작이다. 그에게는 지식인이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소명의식이 느껴진다. 자신의 감정을 함부로 표출하지 않고 있는데도, 열정과 애정이 확실히 느껴지는 책이기 때문에 이 책은 굉장히 재미있는 책이며 또 소장가치가 있는 책이다. 마치 사전을 보는 것처럼, 서재에 꽂아두고 틈틈히 찾아봐도 좋을 책(꽂아두면 뽀다구도 난다ㅋㅋ). 페이지가 부담은 되지만 사실 글자 크기가 그리 작은 편은 아니라 페이지 넘기는 재미도 있다.
책이 두꺼우니 리뷰도 엄청 길어지는구나. 허허..
- 1968년 당시를 묘사한 혁명적 공산주의 청년조직의 앙리 웨버의 말.
때문에 좌파의 이념과 정책은 여전히 일상의 영역으로 파고들지 못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경쟁’이 대표하는 현대 자본주의의 일상성에 비하면, 정말 좌절할 수준이다. 제프 일리가 설명하는 1910~20년대의 상황이 낯설지 않은 것이 나만의 느낌일까.
그러나 영화관과 댄스홀의 야단법석에서부터 관람스포츠, 스타시스템, 광고 및 패션 등에 이르는 새롭게 단장한 ‘문화산업’의 장치는 1920년대에 민중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서 놀라울 정도의 성공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사회주의자들이 미처 채워주지 않은 일상생활이라는 인간적 공간을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이 낯설지 않은 상황은 더욱 심각한 걱정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노동운동의 하부구조가 파시즘에 의해 분쇄되자 이러한 사적인 오락의 영역이 파시스트 국가의 가장 성공적인 개입 장소가 되었다. 파시즘은 반민주적인 억압의 도구이자 테러의 체제였을 뿐만 아니라 (분명 둘 다이긴 했지만) 좌파가 스스로 무시해버린 심리적 욕구와 유토피아적 갈망을 동력으로 삼았다.
벌써 4년 정도 지난 일이지만, 조금은 급진적(적어도 한국에서는)인 좌파 소그룹의 회의에서 좌절감만 얻어 나왔던 일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언어와 일상의 정치가 실존할 뿐만 아니라 막대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상황에서, ‘타협’ 혹은 ‘수정주의’라는 비난이 얼마나 타당한지 잘 모르겠다. 물론 주요 강령을 망각한 타협과 변화는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강령’ 그 자체에 올인하는 것 또한 또 다른 변질을 양산해낼 가능성이 크다. 비록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 사회라고 부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복지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롤모델로 꼽히는 스웨덴의 예를 보라.
1928년부터 당 의장을 지내면서 1932년부터 총리로 재직한 페르 알빈 한손이 1928년에 고안해낸 ‘국민의 집People's Home'이라는 아이디어는 위계와 특권의 제거에 상호성의 윤리를 의미했다.
"모름지기 좋은 집이란 평등과 배려, 협력과 도움으로 유지되는 곳이다. 이것을 거대한 국민과 시민의 집에 적용하면, 오늘날 특권층과 소외계층, 지배하는 자와 예속된 자, 부자와 빈자, 배부른 자와 배곯는 자, 약탈자와 피해자로 시민을 가르는 사회 ‧ 경제적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아이디어는 사회정의의 이상을 노동계급의 우위라는 분열적인 생산주의적 수사로부터 해방시켜주었다. 또 대다수 스웨덴인들이 가진 농촌과의 연계를 환기시켰다.
얼마 전, 내가 가입되어 있는 모 당의 지역 모임을 알리는 메일을 받았다. 그리고 그 메일 내용 때문에 당 게시판에는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 당원 모임을 즐겁고 부드럽게 하자는 측면에서 ‘카드게임’을 할 예정이라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은 카드게임을 하는 것은 취소되었지만, 그리고 나 자신도 카드게임은 좀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시도에 대해서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싶다. 당원 가족들이 함께하는 야유회 등도 열리고, 매 달마다 지역 당원들의 모임이 있다. 사실 내 성격상 그런 모임에 참여하는 것이 딱히 내키지는 않지만, 계속 관심을 가져볼 생각이다. 일상에서의 정치를 이야기하면서도 나 자신부터 일상에서 정치를 배제시키고 있고, 그 배제를 통해 다시 정치를 다루는 언어들을 기존의 프레임 속에서 꺼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가봐야 아는 사람 몇 안 되는 학교 동창 모임은 하나도 어색해하지 않으면서(뭐, 그닥 좋아하지 않기는 한다), 왜 지향점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는 당원 모임은 부담스러워 해야 하는 걸까? 언어의 족쇄를 푸는 것뿐만 아니라, 그 족쇄를 다르게 채워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쉽지 않은 일인 줄은 안다. 그러나 불가능하지 않다. 여기 실례를 하나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세상에 나타난 것이 언제 어디서부터였는지 분명히 알기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발전론은 예외입니다. 세계 규모로 경제발전 이데올로기가 나타났던 그 순간이 수많은 학자에 의해 지적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트루먼이 1949년 1월 20일의 취임 연설에서 “미국에는 새로운 정책이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미개발의 나라들에 대해 기술적 ‧ 경제적 원조를 행하고, 투자를 하여 발전시킨다는 그런 새로운 정책이었습니다.
지금 이 정책은 너무나 당연시되고 있기 때문에 그 순간이 획기적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내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만, 당시의 경제학 논문을 보면 트루먼이 썼던 ‘미개발 국가(under-development country)’라는 용어가 그 이전에는 쓰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발표된 학술논문이 모두 실려있는 잡지 기사색인이란 게 있습니다만, 1949년의 연설 이전 것을 보면 ‘미개발 국가’라는 항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근대화’라는 항목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1949년 1월 이후에는 그것이 점점 늘어납니다. 그리고 어느 사이 경제학이나 사회학의 전문용어로 정착이 됐습니다.
‘발전(development)’이라는 언어 자체가 트루먼의 연설에 의해 바뀌고, 다시 만들어진 말입니다. 무엇이 바뀌었냐 하면, 하나는 ‘발전’이 처음으로 국가정책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 이전의 국가정책에서는 ‘발전’이라는 말이 사용된 적이 없었습니다. 물론 미국정부의 정책 속에서 미국 국내의 상업을 진작시키려고 한 정책은 많이 있었습니다만 나라 전체를 ‘발전시킨다’라는 식의 표현은 없었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미국의 국가정책이 되었고 그리고 얼마 뒤 유엔의 정책이 되었습니다.
또하나 중요한 것은 발전을 한다고 할까, 발전을 당하는 나라가 미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라는 점입니다. 경제발전 정책의 대상은 미합중국이 아니라 세계의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들입니다. 식민지에서 막 해방된 나라이거나, 혹은 아직 식민지 상태에 놓여있는 나라가 대상입니다. 지금은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일이 어느만큼 획기적인 일이었는지를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나라 A는 국가정책으로 나라 B를 발전시킨다(develop), 그것이 나라의 발전(development)이다"라고 하는 것, 이것이 왜 '고쳐 만들어진 말'인가 하면 기본적으로 일본어의 '발전'이나 '성장'도 그렇습니다만, 영어의 'develop(발전한다)'는 본래는 자동사입니다. 타동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언어로서 정당치 않게 들립니다. 국가 A가 국가 B의 '발전'을 정책으로 삼고 있는데 그 표현은 자동사라니, 이것은 큰 모순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문법상의 문제가 아니라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더글러스 러미스,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김종철/이반 옮김, 녹색평론사,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