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나쁜 무리
예소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동시대를 마주한다는 점에서, 소설은 시대의 산물이다. 그리고 소설가는 동시대를 관찰하고 기록하며, 때로는 그 시대를 대변한다. 다시 말해: 어떤 작가는 시대가 요구하는 공감대와 감수성을 관통해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면서, 한 시대를 대표하기도 한다. 그 점에서 2024년은 예소연의 시대였다. 여러 독자들이 예소연을 찾아 읽었고, 곧이어 다음 해에 데뷔작 『사랑과 결함』(문학동네, 2024년 7월)에 실린 단편 「그 개와 혁명」으로 최연소 이상문학상 수상자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면서 대세 소설가로 이름 굳혔으니까.

​

​

2.

나도 그 데뷔작을 읽어봤다. 그때는 이렇게 대성할 작가일 줄 몰랐고, 단지 북클럽문학동네의 이달책 도서로 선정되어 읽게 됐는데…… 내 기억에 선명히 남은 단편(들)은 「그 개와 혁명」보다도 일명 '성장기 삼부작'으로 불리는 「아주 사소한 시절」, 「우리는 계절마다」, 「그 얼굴을 마주하고」였다. 이어지는 세 편의 이야기들이 눅눅하면서 꿉꿉한데…… 어떤 음모랄지 꿍꿍이가 도사리고 있는 세계를 잘 그려냈다고 (나는) 느꼈다. 신기하게도 표면적으로는 암울한 이야기인데 그 안에 생명력 같은, 그렇지만 생명력이라 부르기 뭣한 무엇이 꿈틀대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건 뭐였을까.

​

​

3.

이번 두 번째 소설집 『너의 나쁜 무리』를 읽으며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동시에 그 인상의 정체가 뭔지 얼추 알 것 같았다, 아마도. 표제작 「너의 나쁜 무리」부터 보자. 유선은 어릴 적부터 할머니 손에서 자랐는데…… 그렇게 된 사연이 있다. 유선의 부모가 캐나다로 떠나면서 그대로 연락을 뚝 끊어버린 탓에 반강제적으로 유선은 할머니를, 할머니는 유선을 책임지게 된 것이다. 도도하고 거침없는, 동년배들과 비교해도 분명 남다른 성격의 소유자 할머니는 유선에게 말한다. 자신을 절대 할머니라 부르지 말라고. 그렇게 할머니의 호칭은 '여사'로 굳혀진다.

​

​

4.

여사의 남다른 성격은 몇 가지 에피소드로 예를 들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연애 편력: 여사는 수차례 남자를 바꿔가며 사귀었고, 어린 유선 앞에서도 거리낌 없이 남자(들)과 어울렸다. 한 남자와 사귀면서도 그 관계가 신통치 않다고 느껴지면 곧바로 다른 남자의 등에 ― 취한 채로 ― 업혀 들어오기 일쑤요, 집에 데려온 남자친구가 손주(그러니까, 유선)을 귀여워하는 기색을 보이면 질투심에 심술부리기까지 하는데…… 세상에, 어떤 할머니가 자기 손주에게 질투심을 느낀단 말인가. 그렇지만 여사는 그랬다. 유선에게 함부로 가랑이를 벌리지 말라 경고하면서 본인은 쉽게 남자에게 마음 주고 몸도 주는, 그런 사람.

​

​

5.

그래도 여사 밑에서 자란 게 유선에게 썩 나쁘기만 한 게 아닌데, 이런저런 남녀 문제나 애착 관계에 또래보다 지식도 많고 초연했달까. 유선에게도 그 무렵 좋아하는 남자애가 생겼다. 이해신이라는, 함께 토론 대회를 준비하는 제법 똑똑한 친구인데, 왜 그 애에게 마음이 끌렸을까 생각해 본 유선은 나름의 답을 내놓는다: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줄 수 있는 것만 같은 애였다, 이해신은. 그곳이 어떤 곳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대충 느낌으로 이야기해보자자면…… 조금 더 어른스럽고 규칙 같은 것이 그나마 존재하며 내가 아무렇게 나 살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게끔 하는…… 어느 정도 보통의 인간으로 존재하라는 압박이 주어지는 그런 세계.”

​

​

​

6.

그래서 어떻게 되냐고? 유선은 토론 대회 준비를 명목으로 이해신을 집까지 데려온다. 여사는 잠들었고…… 그쯤 되면 토론 얘기는 뒷전이다. 아, 그런데 말이다, 이 타이밍에 문자가 한 통 온다 ― 현구 아저씨로부터, 영문 모를 주소 한 줄과 함께. 현구 아저씨는 여사와 한창 사귀었다가 돈을 빌려 간 뒤로 잠적한 아저씨다. 그런데 왜 이런 문자를 보낸 걸까. 대충 사태를 파악한 똘똘한 이해신은 이렇게 말한다. 어쨌거나 이 주소로 가면 현구 아저씨를 만날 수 있는 거 아냐?

​

​

7.

그렇게 돈 들고 튄 현구 아저씨를 잡으러 세 사람, 여사와 유선과 이해신이 문자 속 주소로 차를 몬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가장 결정적인 장면이 이다음부터 나올 텐데, 거기까지는 이 글에서 밝히지 않겠다 ― 도입부만큼이나 흥미로운 후반부를 만나실 수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꼭 직접 읽고 확인해 보실 권한다.

​

​

8.

이 감상문에서 내가 나누고픈 얘기는 이 소설의 분위기다. 표면적으로는 암울한 이야기인데 그 안에 생명력 같은, 그렇지만 생명력이라 부르기 뭣한 무엇이 꿈틀대는 듯한…… 앞에서 말한 그 인상이 내 요약본을 통해 조금이나마 느껴졌을까? 유선과 여사의 관계는 일반적인 ― 이런 표현을 써도 괜찮은지 모르겠지만 ― 손주와 할머니 사이와 다른 '무언가'가 있고, 그 다름은 뭐랄까, 그리 좋은 (혹은 권장할 만한) 방향처럼 보이진 않다. 그 무언가엔 눅눅하고 꿉꿉한…… 솔직히 말해 불순한 기운마저 돈다. 그럼에도 이 무언가가 두 관계를 끈질기게 엉겨 붙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마치 끊을 수 없는 담배처럼.

​

​

9.

이를 예소연 씨는 몇 줄의 문장만으로 진단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더럽고 내밀한 이야기들에는 이상한 중독성이 있어 점점 그런 이야기 없이는 살 수가 없어지고 결국 그 이야기의 생산자가 되며 다른 사람들까지 그런 이야기의 세계로 끊임없이 포섭하게 된다는 것이다." 「너의 나쁜 무리」 속에 실린 이 문장은 어쩌면 예소연 씨의 작품 세계를 전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는 걸지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

​

​

10.

비슷한 예로 첫 단편 「추운 뺨에 더운 손」도 있다. 오랫동안 못 보고 지낸 동네 친구 기문에게서 선이는 전화를 받는다. 이후 성사된 만남 덕으로 선이는 반가운 마음이 일었지만…… 얼마 못 가 선이의 어머니와 기문의 어머니 사이 얽힌 모종의 문제를 알고 나자 찝찝한 기분이 든다. 사실 선이의 어머니는 주변 지인들로부터 여러 차례 사기를 친 전적이 있었다. 기문의 어머니도 그 피해자 중 한 명이었고. 혹시 기문은 자기 어머니가 못 받은 빚을 선이에게서 받으려는 속셈일까? 그렇다면 그 빛은 도대체 얼마일까? 반가운 재회는 그렇게 의심스러운 교섭 자리가 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소설은 그 예상을 보란 듯이 깨며, 뜻밖의 장면을 결말에서 제시한다.

​

​

11.

내가 보기에 위에서 살핀 두 단편의 공통점은 이것이다. 두 이야기를 추동하는 힘은 의심과 음모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건너편 사람의 의중을 살피고 조심하는 일이야 오늘날 흔하지 않나? 그런데 그게 애매모호하게 가까운 사이, 가령 오랜만에 만난 친구라든지 새로 사귄 친구나 연인 사이에서면…… 조금 더 어렵고 까다로워진다. 이런 관계의 경우 의심과 애정을, 다시 말해 애증을 동반하기 때문에. 데뷔작 『사랑과 결함』부터 '사랑'에 '결함'을 더한 시선 또한…… 예소연 씨의 작품 세계를 알 수 있는 또 다른 힌트 아닐까.

​

​

12.

그리고 생각보다 타인들은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

​

13.

의심도 많고 불안한 사람들. 그렇다고 그들이 모든 문제를 계산적으로 다루는 건 아니며, 불편하더라도 자신이 직면한 상황에 기꺼이 휩쓸릴 줄 안다. 닥쳐온 불운 앞에서 세상 무너진 것마냥 굴지도 않고, 섣불리 타인을 판단하거나 매사에 시니컬한 태도를 취하지도 않는다. 타인을 덜컥 믿을 만큼 순수하지도 않지만, 그 타인 없이 살 수 있다고 믿을 만큼 어리석지도 않다. 어쩌면 이런 태도가 오늘날 현대인의 모습과 가깝지 않을까. 그래서 사람들이 예소연 씨의 소설에 열광하고 공감하는 게 아닐까. 이것이…… 내가 느낀 암울함 속의 생명력일지도.

​

​

14.

덧붙이는 말. 수록작 중 「아무 사이」는 손보미 씨의 「임시 교사」가 연상됐다. 두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그 결말도 상당히 비슷한데 미묘하게 다르다고 느꼈다. 굳이 말하자면 「아무 사이」가 「임시 교사」보다 조금 더 따뜻한 결말 같다고 느꼈다.

​

​

​

15.

또 덧붙이는 말. 소설가 정이현 씨는 추천의 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예소연은 엉뚱한 야심가다.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이 작가가 웃기는 데 진심임을 느낄 수 있다. 잘 웃기기 위해 궁리하고 있다는 것을. 냉소도 실소도 아닌, 그야말로 진짜 웃음을 위하여." 이 말에 나도 공감했다. 이야기 자체만 놓고 보면 예소연 씨의 소설은 눅눅하고 꿉꿉할지언정…… 은근한 유머도 있다. 아주 좋은 예시가 「소란한 속삭임」 같은 단편. 그래, 타인들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지. 서로 조심하고 경계하는 이 세상에서도 누군가는 자그마한 틈새를 만드는데, 그게 얼마나 대단한지. 이제는 조금 알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