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조금 지난 유행어지만…… 유튜브 채널 민음사 TV에서 활동 중인 해외문학팀 편집자 김민경 씨는 홍상수 영화를 두고 "대충 알고 좋아하고 다 알고 싫어하자"는 말을 했다. 이 말이 아무래도 뭇사람들로부터 큰 공감을 샀는지 이런저런 곳에서 자주 인용된 걸 봤다.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은 이 말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으니, 호감이 생기기까지(정확히 말하자면 호감이 생긴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확신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나로서는 무턱대고 좋아한다는 소리를 할 수 없다. 가뜩이나 싫어한다는 말은 더더욱.

​

​

2.

평소 좋아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아직 좋아한다고 사정없이 고백할 수 없는 작가들이 몇 있다. 소설가 김중혁 씨도 그중 하나인데, 왜냐하면 그의 책을 내가 많이 읽어 본 편이 못되기에…… 그리고 그는 2000년에 데뷔한 작가인 만큼 발표한 작품이 무척 많다. 최근에 발표한 장편 소설 『꿈이다 아니다』(안온북스, 2026년 7월)까지 포함해서 장편 소설만 총 9편 남짓. 소설집은 5편에 에세이는…… 공저까지 포함하면 세기 바쁘다. 이뿐이랴. 그를 소개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한때 B tv에서 영화 평론가 이동진 씨와 함께 진행한 프로그램 <영화당>. 거기서 평론가 못지않은 자기만의 시선과 박식함을 보여준 바 있다.

​

​

​

3.

아무튼 김중혁 씨. 내가 읽은 그의 책을 나열하자면 단편으로는 『펭귄 뉴스』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이, 장편으로는 『나는 농담이다』 『미스터 모노레일』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좀비들』 정도 같다(읽은 순서대로, 기억에 의존해서 나열해 봤다). 산문집도 물론 읽었는데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것들이 많다. 이 정도면 충분히 읽었겠거니 싶긴 하지만 그의 책은 이보다 훨씬 많고…… 이는 물론 희소식이다. 이번 단편집을 고른 이유도 그의 소설을 읽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을 통감했기 때문이다. 『스마일』이 나온 지 4년이 지났는데, 출간 소식 듣자마자 읽고 싶었는데, 여태 읽지 못했구나 하면서.

​

​

4.

첫 단편 「스마일」. 이를 예전에 2017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실렸을 때 만난 적 있다. 그때도 흥미로웠고 이번에도 역시 재미있게 읽었다. 휴스턴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 '데이브'는 좌석에 앉아 조용히 쉬고 싶었지만 어째 뜻대로 될 것 같지 않다. 바로 옆좌석에 앉은 남자 '잭'이 그에게 수시로 말을 걸기 때문이다. 몇 차례 얘기가 오가던 중, 잭은 스스로를 "관찰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더니 다른 승객들의 직업과 상태를 추측하기 시작한다. 저 사람은 의사일 텐데 저 옷차림이 이러이러하기 때문이고 저 손 모양은……

​

5.

승객 중 한 남자가 급작스럽게 쓰러진 것도 그 즈음이다. 다급해하는 승무원과 혼란스러운 기내 상황. 결국 남자는 죽었고 승무원들은 주검을 끌어다가 승객석에서 보이지 않는 안쪽 칸으로 옮긴다. 역시나 예리한 관찰자인 잭은 데이브에게 말한다. 저 남자가 왜 죽었는지 자기는 알 것 같다고. 저 남자는 스왈로워일 거라면서. 스왈로워?

​

​

6.

스왈로워에 관한 잭의 설명을 한번 들어보자.

​

“콘돔에 싼 헤로인을 운반하는 밀수꾼들입니다. 항문으로 넣는 부류를 스터퍼라고 부르고, 입으로 삼키는 부류를 스왈로워라고 부르죠. 장단점이 있어요. 약을 똥꾸멍으로 넣는 새끼들은, 내 생각에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부류들이야. 물건도 옮기고 오르가슴도 느끼려는 거지. 입으로 삼키는 부류들이 진짜야. 걔들은 사심 없이 물건을 옮기는 데만 집중하거든. 전에 스왈로워들이 준비 작업 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정말 살벌하더라고요. 콘돔에다 코카인이나 헤로인을 가득 채운 다음에 기다린 실로 끝을 묶습니다. 그리고 그걸 삼켜요. 정말 꿀꺽 소리가 얼마나 크게 나는지 몰라요. 콘돔을 삼키고 나면 기다란 실을 어금니에다 꽉 묶어둡니다. 크크크, 나중에 끄집어 올려야 하거든요. 바다에 나가본 적 있습니까? 배들이 항구에 도착하면 닻을 내리고 밧줄로 묶어두죠? 그 이치와 똑같습니다. 콘돔이 멀리 도망가지 못하도록 어금니에다 꽉 묶어두는 거죠.”

​

​

​

7.

그렇구나. 그런데 이게 말이 되나? 싶을 즈음 독자는 뜻밖의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데이브가 잭의 얘기를 듣더니 급작스럽게 복통을 호소하며 화장실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이런 장면을 회상하는 게 아닌가. 불과 얼마 전, 라텍스 장갑의 손가락 마디를 잘라 정체불명의 가루를 부어 넣은 다음 치실로 묶어 입에 넣었던 '피에르'라는 남자를…… 그리고 자신도 그 짓을 똑같이 했음을…… 피에르는 데이브에게 말했다. "보물 이동 사업이라고 해두자. 어때, 괜찮은 작업 같지?" 괜찮을 리가. 죽은 저 남자도 데이브처럼 보물 이동을 하다가 죽고 만 걸까? 왠지 잭은 데이브 또한 스왈로워라는 걸 아는 눈치다.

​

​

8.

이 기묘한 스왈로워 이야기는 보다 현실적인 문제, 죽음에 관한 문제로 비틀린다. 노련한 소설가 김중혁 씨는 독자도 작가도 모르는 걸 모른 채 놔둔다. 그 미스터리를 보존하면서 이야기를 '있을 법하게' 잘 매듭짓는다. 그렇다. 소설가가 해야 할 일은 독자를 속이거나 깜짝 놀래는 게 아니라 흥미로운 이야기를 짓는 것 ― 그리고 흥미로운 지점에서 멈추는 것. 혹자는 심심하다고 여길 테지만 나는 이 정도가 충분하다고 본다.

​

​

9.

김중혁 씨는 소설을 쓰는 데 있어 가장 중시하는 게 대사라고 밝혔다. 서로 다른 등장인물이 탁구의 랠리(rally)를 주고받듯이. 실제 두 사람이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느껴지게. 이번 소설 또한 인물 간의 '대화의 희열'이 느껴지는데, 가령 네 번째에 수록된 「차오」는 주인공과 그의 자동차에 탑재된 자율 주행 인공지능 '차오'와의 대화가 소설 전체를 이끈다. 이 소설도 흥미로우니 추천 ― 닮진 않았지만, 묘하게 그의 데뷔 소설집 속 「멍청한 유비쿼터스」가 떠오르기도 한다.

​

​

​

10.

이번 소설집에 실린 이야기들 모두 저마다 엉뚱하고 별나다. 버스에서 일 년 내내 사는 사람이 등장하는가 하면, 왼손만 쓰는 부족을 관찰하기도 하고, 플라스틱 섬에 조난당한 여자의 생존기도 나온다. 근사한 반전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 자체가 어쨌든 흥미로운 이야기 아닌가? 그의 소설은 독자를 (나쁜 의미에서) 곤란하거나 불쾌하게 만들지 않으며, 그래서 나는 김중혁 씨의 소설을 좋아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수록작이 다섯 작품 밖에 안 된다는 것? 그 얇음 역시 누군가에게 미덕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그의 다음 책도, 내가 아직 못 읽은 수많은 책들도 기대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