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호성
구소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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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데뷔작을 읽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새로운 작가를 만나는 일은 곧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는 과정과 같아서. 자고로 소설을 읽을 때 독자들은 그저 이야기만 따라가지 않는다. 그 작가가 이야기를 하는 방식, 관점, 태도…… 종합하자면 창작자의 '톤 앤 매너'를 함께 만나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볼 수 없던 새로운 톤 앤 매너를 마주하는 일 ― 그게 내가 신예 작가를 만날 때마다 하는 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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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동시에 생각하게 된다. 요즘 출판계와 작가들은 무엇에 관심 있는지. 어떤 작품에 호응하고 찬사를 보내는지. 무엇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감수성인지. 아무래도 당대 문학 작품에 '트렌디함'을 요구하거나 의식하기로는 쓰는 입장도 읽는 입장도 마찬가지일 테다. 기대에 부응하듯 구소현 씨의 소설은 젊다. 여기서 말하는 '젊다'란, 다루고 있는 소재의 폭을 두고 하는 말이다. 책 뒤표지에서 나오는 문구 "되살아나고 싶지 않은 유령, 세상을 파괴하려는 신, 믿음을 버리고픈 교주" 등을 봐도 짐작 가능한데, 이 말고도 게임 제작자 · 장기 최면 · 사이비 종교 · 신흥 종교까지…… 구소현 씨가 다루는 소재는 거침없이 뻗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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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실 표지만 보고 밝은 내용일 줄 알았다. 푸른 하늘에 터지는 폭죽, 혹은 탄산수 속 탄산이 터지는 모양 같기도, 아니면 잔잔한 호수 위에 사방으로 튀는 물방울 같기도 한…… 아무튼 시원한 감각이 담긴 표지니까. 게다가 제목은 또 어떻고. 내 딴에는 청량하고 상쾌한 이야기가 펼쳐지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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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화이트 데이」를 보자. 소설의 도입부부터 펼쳐지는 울창한 참나무 숲…… 이 장면이 짧게 비친 다음 등장하는 두 사람은 승현과 연주다. 연주는 버스 정류장에서 우연히 재원과 마주쳤는데, 재원이 이상한 종교에 빠진 것 같다고 말한다. 재원은 포교 활동 중이었다. 두 사람은 만난 김에 연락처를 공유했고 그 과정에서 승현의 연락처도 전달됐다 ― "언니 번호 물어보길래 고민하다 알려줬는데, 혹시 연락 와도 그냥 받지 마." 그렇지만…… 승현은 재원의 소식이 궁금했다. 재원도 그곳 출신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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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곳? 그곳이 어디길래. 그 정체는 얼마 못가 밝혀진다. 어렸을 때 승현과 재원은 함께 숲에서 뛰놀았던 친구였고, 함께 기도를 올리며 어른들께서 주신 천조유(天鳥乳)를 마셨더랬다. 여기서 '천조유'란 하늘 새의 모유. 오염된 피를 정화하고 날개를 얻기 위해 마셔야 할 양식이다 ― 무언가 수상함을 직감하셨는지. 이들이 지내는 숲 혹은 산골, 그러니까 소설 첫 장면에 잠깐 스치듯 지나간 '그곳'의 정체는 사실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사이비 종교 단체 약속천인사원(約束天翼寺院)의 근거지였다. 이들 단체는 선택받은 자만이 새처럼 등에 날개가 돋아날 거라는 믿음을 이용해 신도들을 세뇌했다. 승현과 동생 연주, 재원은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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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교주의 신도 착취, 살인 교사, 불법 의료 행위 등이 폭로되자 교주는 '선택받은 신도'들과 함께 절벽에서 투신했다. 그 신도 중에는, 안타깝게도, 승현과 재원의 부모도 있었다. 약속천인사원이 해체되면서 아이들은 대리 보호자를 찾아야 했다. 그렇게 승현과 연주는 고모네 집에 살게 됐고…… 재원은 보육원으로 보내졌다. 그 뒤로 세 사람은 연락이 끊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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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예상 가능하듯 재원은 보육원에서도 종교 활동을 끊지 못했다. 아니, 끊을 수 없었다고 말해야 하나. 나고 자라서 보고 배운 게 전부 약속천인사원의 교리였으니까, 오히려 재원의 입장에서 볼 때 바깥세상은 더 이상하고 낯선 곳이었다. 사회와 직장 생활에 적응할 수 없었던 재원은 자신의 신앙생활을 블로그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 블로그가 알음알음 유명해지면서…… 지금의 포교 활동까지 이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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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승현은? 승현도 실은 마찬가지다. 그녀도 종교 단체에서 못 배운 학교 교육을 따라잡으려 남들보다 부지런히 공부했고 대학에 들어가서 남자 친구도 사귀었다. 하지만 우울증, 강박, 불안장애 등을 달고 살았고 회사 생활도 실패적이었다(소설에서는 그녀가 '폐급'이었다는 표현까지 쓴다). 직장 내 괴롭힘이 갈수록 심해질수록 눈치만 보며 전전긍긍하는 생활. 사실 승현이 재원을 만난 이유 또한 그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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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사실 날 망치고 싶어서 만나자고 했어. 멀쩡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이제는 지쳐서. 내가 나를 망치는 것보다 남이 나를 망쳐주는 게 나을 것 같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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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재원도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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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빠져 있는 종교는 잘못됐으니까 거기서 나오라고, 나를 설득해주길 바랐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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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유년 시절을 그곳에서 보낸 두 사람은 결국 운명 공동체처럼 같은 지점을 공유하고 고민하고 괴로워한다. 그래서 서로를 마주하며 잠시나마 숨통이 트인 듯한 기분을 만끽하는데…… 여타의 소설들과 달리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뒤에 일어날 일들은 이번 글에서 함구하겠다. 내 감상을 조금 보태자면, 조금 혼란스러웠다. 이야기를 이렇게 끝내다니. 이렇게 끝낼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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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사실 이 소설집을 읽으며 고개를 갸웃하게 된 지점이 몇 가지 있었다. 내 취향 문제와 직결되는데, 일단 나는 범죄나 불법적인 일을 다루는 이야기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이 쉽게 죽어버리는 이야기도. 노파심에 말하지만, 내가 범죄나 죽음 같은 소재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썩 좋아하지 않는다'와 '싫어한다', 두 단어에는 분명 미묘한 차이가 있다). 그런 이야기를 다룰 거라면 그만큼 쓰는 이에게 책임감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에 가깝달까. 나를 죽이거나 다른 사람을 살해하는 일. 그런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소설 속 등장인물이 죽거나 죽임당했다면…… 나는 그 사건을 중대하게 바라보며 소설에서도 중대하게 다뤄지기를 바란다. 그런데 구소현 씨의 소설에서는 많은 사람이 죽거나 죽인다. 수록된 여덟 작품 거의 대부분에. 그리고 모든 작품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내 딴에는 죽음이 쉽게 다뤄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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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이것은 작가가 중요히 다루는 면과 나라는 독자가 중요히 보는 면이 다르기에 생긴 간극 ― 말하자면 입장 차이일 뿐이다. 사람과 사람이 대화를 하다 보면 견해가 엇갈릴 때가 있듯이 독자와 소설가 또한 마찬가지. 지난번에 최은미 씨의 『다른 사랑』 감상평에서도 말했듯, 나는 인물들의 동기에 관심이 많고 특히 자살이나 타살 같은 사건에서는 더 민감히 반응한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 마땅한 이유가 없더라도 그 사건이 어느 정도 비중 있게 묘사되기를 바라는 게 나라는 독자의 성정(性情)이다 ― 그런 점에서 나는 「시트론 호러」와 「요술 궁전」을 좋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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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그리고 등장인물. 이들은 대체로 고아거나 사회부적응자 들이다. 보육원 동기 말고는 친구가 없고, 직장에서 소외되며, 자기 바운더리(boundary) 안에서 최대한 조용히 살아가고 기타 등등. 그런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유가 다 있겠지만, 연달아 여덟 작품을 읽는 독자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앞서 읽은 이야기들과 연관 짓게 되면서 묘한 기시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설령 앞의 단편들과 어떠한 연결 고리도 없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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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주목하고 싶은 점은, 이야기를 끌고 가는 구소현 씨의 추진력이다. 암에 걸린 언니 도르마무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하려 하는 조의 의지가 무서울 정도로 거침없이 뻗어나가는 「완치」, 아무리 모멸에 찬 세상일지라도 사랑을 지켜야 한다는 「험악한 세상」 같은 이야기가 딱 그렇다. 두 이야기 모두 첫 장을 펼쳤을 때와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인상이 확 바뀐다. 그만큼 이야기가 크게 도약하고, 폭발적으로 뻗어나간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표제작 「환호성」은 확실히 이 소설집의 하이라이트다. 내일 당장 종말 할지 모르는 세상에서도 지키고픈 것을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도 톡톡 튀는 메세지를 놓치지 않는…… 이게 오늘날 신예 작가가 보여주는 이 시대의 톤 앤 매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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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마지막으로 작가의 말도 재미있게 읽었음을 밝혀 둔다. 책 제목에 걸맞은 작가의 말이었다. '그래도 되는 바다'에서 나 역시 즐겁게 놀다 갔음을 슬쩍 고백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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