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프릴 마치의 사랑
이장욱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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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설을 읽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사람마다 소설을 읽는 이유는 제각각일 것이다.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어서, 아름다운 문장과 사유를 만나고 싶어서, 혹은 생각하는 힘을 키우고 싶어서…… 좋다. 그 밖의 동기들도 얼마든지 환영이다. 그런데 내가 던진 질문은 그게 아니다. 동기를 넘어서 그 소설을 읽게 하는…… 읽고 싶게 만드는…… 쉼 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하는 힘. 그 힘이 무엇인지 나는 묻고 있다. 그리고 이미 답을 하나 정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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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식해 보이고 싶어서, 마음 수양에 도움 돼서, 멋진 표현을 배우고 싶어서…… 그중에서도 으뜸은 재미다. 소설은 재미있어야 읽힌다. 재미있어야, 소설은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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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장욱 씨의 글은 취향을 탈지언정 일단 기호에 맞으면 도저히 읽기를 관둘 수 없게 만든다. 이야기도 흥미롭고, 이야기하는 방식도 흥미롭고, 이야기를 짓는 문장마저도 흥미롭다. 내 딴에는 그렇다. 여기 실린 단편들의 첫 문장만 떼어 보아도 얼추 감이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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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이란 무엇일까? 입는 것일까? 먹는 것일까? 바삭바삭한가? 물렁물렁한가? 경험이 모여 추억이라는 게 되는 것일까?

(「행자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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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복화술사입니다. 여러 가지 목소리를 가졌어요. 진짜 내 목소리가 뭔지 헷갈릴 때도 나는 여러 개로 흩어진 나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의심스러우신가요? 의심스럽다고요? 야 이 새끼야,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복화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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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다른 존재가 되고 싶다. 공무원이 드러머가 되고 싶고, 은행원이 이종격투기 선수가 되고 싶고, 모범생이 일진처럼 존나 욕을 해대고 싶은 것이다.

(「크리스마스 캐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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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취향을 탈지언정 누군가는 이런 문장 다음에 이어질 다음 문장을 기다리며 읽는다는 소리다. 당신이 느끼기에 어떠한가? 나와 같다면, 당신도 이장욱을 좋아할 확률이 절반 이상은 되었다고 본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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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잠깐 위에서도 나왔지만, 실린 소설들의 제목들을 봐도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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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자가 사라졌다!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

복화술사

크리스마스 캐럴

낙천성 연습

최저임금의 결정

양구에는 돼지코

스텔라를 타는 구남과 여

눈먼 윌리 맥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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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듯 말 듯 한 제목들. 개중에는 익숙한 단어들(예컨대 크리스마스 캐럴, 최저임금 등)도 보이고 익숙하지만 낯설게 배치된 단어들(예컨대 양구와 돼지코, 낙천성과 연습 등)도 보인다. 여담이지만 이 중에 네 번째 단편 「크리스마스 캐럴」은 나중에 장편 『캐럴』(문학과지성사, 2021년 6월)로 확장된다. 두 소설이 같은 지점을 공유한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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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물론 제목이 내용을 다 말하지 않으므로…… 이야기를 들여다볼 차례다. 「행자가 사라졌다!」를 보자. 사라진 행자의 정체는 뭘까? 바로 집에서 기르는 볼파이톤, 그러니까 뱀이다. 이 행자는 아마 "경험"이랄 게 없을 텐데, 왜냐하면 이 집에 들어온 이래로 리빙 박스 바깥에 나올 일이 ― 내가 잠깐 그 박스에서 꺼내 핸들링할 때를 빼면 ― 전무하니까. 그러나 할머니께서 얘기하신 바: "경험 많은 인간들이 외려 세상을 오해하는 법이라고 말씀하셨다. 그이들은 대개 경험이 만든 틀에 갇혀 살아가니까. 육이오를 경험한 사람은 육이오에, 유신을 경험한 사람은 유신에, 가난을 경험한 사람은 가난에 갇혀 살아가는 법이다. 평생 돈 귀한 줄 모르고 살았다면? 다들 지들처럼 사는 줄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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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경험 없는 지혜랄 게 있다. 그 증거가 실종된 행자다. 행자는 냉혈동물답게 조용하고 고독이니 우울이니 하는 것을 느끼지 않으며 우아한 자세로 세상을 꿰뚫어 본다.* 그리고 그 고요한 눈으로…… 이 집안의 분위기를 정확히 감지한다 ― 행자가 사라진 것도 그래서 아닐까? 행자의 실종 사건은 내가 대학교 기숙사에서 추리 소설을 뒤적거릴 때 일어났다. 거실에서 TV를 보던 할머니가 문득 행자가 사라진 걸 눈치채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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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추리 소설 애독가인 나는 곧장 추리에 나선다. 가장 행자에게 적대적이었던 아빠부터, 내가 없을 동안 행자의 먹이를 책임진 엄마, 한창 사춘기를 겪고 있는 남동생, 마지막으로 모든 가능성을 고려할 시…… 최후의 용의자 할머니까지. 겉보이게 추리 장르를 차용한 듯 보이는 이 소설은 가족 구성원들을 주인공 눈으로 해체하는 과정에서 색다른 이야기로 뻗어나간다. 행자는 과연 사라진 것일까? 행자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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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표제작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도 흥미롭다. 무명 시인이 우연히 자기 시를 인용한 블로거를 알게 되면서 화면 건너편 블로거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그런데 그 블로거가 나의 시를 제멋대로 인용하기 시작하는데…… 그 시는 과연 내가 쓴 시가 맞을까? 왜 바뀐 시가 내 눈에 더 매력적이게 보이는가? 왜 그녀는 내 시를 가지고 그런 장난을 치는 걸까? 그녀의 정체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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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문제는 기반이다. 사람들이 평소 의심하지 않는,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은 그 자체로 단단한 기반을 만든다. 마치 우리가 딛고 선 땅바닥, 무너지지 않을 거라 믿는 콘크리트 건물, 주기적으로 돌아올 이 시간과 계절의 흐름처럼. 그런데 약간의 의문만 가지고 바라봐도 그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를 곱씹을 수 있다. 조금 망상처럼 들려도 괜찮다. 나는 나인가? 내가 나라고 확신할 수 있을 만큼 나에 관해서 잘 아는가? 내가 아는 게 맞나? 실은 의심한 적 없는 게 아닌가? 그동안 생각해 본 적 없던 게 아닌가? 왜 나는…… 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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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기반을 뒤흔드는 물음표가 가장 예리하게 날선 소설로 나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꼽고 싶다. 시니컬한 신흥 투자전문업체 캐피털 컨설팅 오너가 아내의 전남친이라 주장하는 젊은 치 만난다. 그것도 허름한 대학가 술집에서. 얼핏 보면 계급 담론 문제로 빠지기 쉬운 이 주제를 이장욱 씨는 보기 좋게 빗겨나간다. 예상치 못한 대화, 주점의 알바생과 노인의 개입으로 미묘해지는 상황…… 오너가 생각하는 세계상(像)는 그렇게 균열을 내며 무너진다. 무엇 하나 논리적이지 않으면서, 도래한 미래의 풍경은 섬뜩한데 또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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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이런 이상함이야말로 이장욱을 읽는, 읽게 하는, 읽고 싶게 만드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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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가령 이런 구절. 시인으로서 이장욱 씨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문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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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밥을 먹다가 이가 하나 빠졌던 것을 김은 기억해냈다. 북어라든가 인절미 같은 것도 아니고 그냥 김치를 씹었을 뿐인데…… 원래부터 부실하긴 했지만…… 고춧가루가 묻은 치아 하나가 무슨 고생대의 유물처럼 손바닥에 놓여 있었다. 뿌리 쪽으로 피가 묻어 있고 전체적으로 누렇게 변색되어 있는 그것이 김의 마음속 무언가를 건드렸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때는 그저 의미 없는 몇 개의 문장을 웅얼거렸을 따름이다. 이건 피가 묻어 있구나. 치아는 동물에 속해 있나 광물에 속해 있나. 아니, 식물일 수도 있겠지. 어디다 버려두면 싹이 나고 잎이 나고 뿌리가 벋어서 무성해질 수도 있겠지. 그 나무가 자라서 희고 단단한 이빨들이 주렁주렁 맺히고……

(「눈먼 윌리 맥텔」, pp.297-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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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양구에는 돼지코」. 작가의 말에서 이장욱 씨는 이런 이야기를 앞으로 이런 방식으로 쓰지 않으리라 다짐했다고 말한다. 그 말을 나도 이해했다. 무척 잘 읽었지만, 작가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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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나는 「스텔라를 타는 구남과 여」를 읽고서 인디밴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를 알게 됐다. 소설 내용은 이상했고 그들 노래도 특이했다만, 결국 나는 ― 소설 속 인물들처럼 ―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팬이 됐다. 나는 2집 [우정모텔]의 <아침에 빛>을 좋아한다. 물론 수록곡 대부분을 좋아하는 것은 물론이다. 소설 속 구남과 나의 얘기는 어쩐지 장편 소설 『캐럴』과도 이어진다. 이장욱의 세계가 그렇게 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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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빼놓으면 섭섭해서. 「낙천성 연습」과 「최저임금의 결정」도 잘 읽었다. 실은 나 또한 내색은 안 할 뿐 「낙천성 연습」 속 아버지처럼 별의별 걱정을 시뮬레이션 돌리는 부류다. 이런 생각을 되도록 긍정적인 쪽으로 돌리기야 하지만. 「최저임금의 결정」을 읽을 무렵 나는 군대를 전역하고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일하는 중에 이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 새벽 4시는 그런 시간이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라도 그 시간에 일어나기는 쉽지 않고, 늦게 잠드는 사람이라도 그 시간까지 깨어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인기척이 희박한 시간. 인간의 시간이라고는 할 수 없는 시간. 고양이라든가 벌레라든가 나뭇잎의 시간." 그때 내 손에 글록 26은 없었고 이 책이 쥐어져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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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이장욱의 소설에는 유머가 있다. 깔깔대는 유머라기보다는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유머다. 거울 건너편에 비친 내가 내 모습이 아니게 되고 그자는 천연덕스럽게 내게 손을 흔들어 보인다…… 는 식의 뻔뻔한 유머. 이렇듯 뜻밖의 상황을 연출하는 그의 소설은 피가 낭자하지 않을 뿐 기괴하고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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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그러고 보면 소설을 읽는 재미 중 하나는 기묘함이기도 하다. 기묘한 이야기들은 재미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서서, 그 경계를 비틀고 마구 흔들어대는 이야기. 아, 좋아한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게 이렇게 힘들다, 내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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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을 이장욱 씨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소설집은 『기린이 아닌 모든 것』. 기호는 물론 얼마든지 바뀌며, 궁극적으로 가장 좋은 책은 그의 신간이다. 얼마 전 출간된 『호러는 아니지만 어쩐지』(마음산책, 2026년 9월) ― 나는 이미 제목만 보고 좋아하게 되어버렸다. 아닌가. 작가 이름만 보고,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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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마지막으로, 마주친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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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우리 자신도 모르는 내면의 목소리가 신의 목소리라고 한들 그게 잘못이겠습니까? 그 목소리가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을 알려준다면 그게 바로 신의 목소리 아닙니까?

(「복화술사」,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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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세상은 모순투성이고 모순조차 없으면 스스로를 지탱하지 못하는 게 인생 아닌가.

(「낙천성 연습」,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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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숙한 것을 솔직함이나 진실함으로 착각하는 부류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보게, 지고지순한 과거 같은 건 자네가 가지게. 나는 현재와 미래만 필요하니까. 그렇게 말해주면 이 친구, 말귀를 알아먹을까?

(「크리스마스 캐럴」, pp.1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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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의 삶을 환기하거든. 그렇지 않은가?

(「최저임금의 결정」.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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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의 글을 읽고 당신도 언젠가 나의 글을 읽을 거예요.

(「에이프릴 마치의 사랑」,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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