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 농장
성혜령 지음 / 창비 / 2024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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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버섯은 희한한 생명체다. 같은 종이라도 다른 생김새를 갖는데 가느다란 것도 있고 쭈글쭈글한 것도 있고, 개중에는 한 생명을 앗아갈 정도로 무시무시한 독이 있다. 습한 곳에서 자라며 보통 포자를 통해 번식하는 이 녀석은 생물학적으로 식물도 동물도 아닌 균류에 속한다. 배경지식 없이 이를 자연에서 맞닥뜨리면 식물인지 동물인지, 아니 애초에 식용인지 아닌지조차 구분하기 힘들다. 함부로 식용이라 생각해서 덥석 삼켰다가 어떤 불상사를 맞이할지 모르지 않나. 우리 식생활과 밀접하지만 실은 잘 모르는, 그런 이유로 가까이 두기 껄끄러운 그것. 내게 있어 버섯의 이미지는 그러하다.

2.

이번에 읽은 성혜령 씨의 단편집이 바로 그런 이미지라고 불러보면 어떨까. 소설집 이름부터 '버섯'이 들어간 것도 그렇지만, 정말 버섯의 이미지에 딱 부합하는 느낌이 든다. 이번 소설집에 실리지 않은 단편 「원경」 얘기를 잠깐 하겠다 ― 이 단편을 읽고 나는 성혜령 씨의 소설 스타일(혹은 매력)에 감명받았으므로. 줄거리는 간단하다. 신오는 여자친구 원경에게 가족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별을 통보한다. 그러나 며칠 뒤, 공교롭게도 암 진단을 받게 된 신오. 자신의 죽음을 인지한 그는 다시 원경을 찾아가지만, 원경은 최근 이모가 당한 사기 피해를 수습하느라 바빴다. 급기야 원경은 신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3.

이를 두고 평론가 전승민 씨는 엔트로피 개념을 차용했다. 여기서 엔트로피란 흔히 열역학 제2법칙에 소개되는 용어인데, 간단히 말해 균질한 에너지가 무균질해지면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소리다. 커피와 우유를 섞어서 만든 라떼를 생각해 보자. 라떼를 다시 커피와 우유로 분리시킬 수 있는가? 마술 세계에서는 가능할지 모르겠다 ― 일단 나는 할 수 없다. 돌아가서, 전승민 씨는 이 개념과 「원경」을 이렇게 엮었다.

신오의 실존적 크기는 서사의 진행에 반비례하여 작아지지만(>) 불안이라는 엔트로피는 선형적으로 증대되는(<) 양상을 보인다. 신오가 자신의 불안을 타개하기 위해 내린 선택은 오랜만에 원경을 만나러 가는 사소한 일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선택으로 인해 신오의 눈앞에는 [원경-이모님-보살님-비구니 스님-금괴-구덩이-돼지 뼈]로 이어지는 타자들이 줄지어 출현하고 일단 나타난 그들은 순서대로 존재감을 더해가며 사라지지 않는다. 세계의 부피는 낯선 것들의 출몰 속에서 점점 더 불안하게 증가한다.


*: 전승민, 「불안에 관한 두 개의 방법론」, 『2025 제1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pp.226-227

4.

그렇다, 엔트로피. 내가 성혜령 씨의 소설에서 느낀 매력도 그렇게 설명 가능했다. 이야기 속 세계관이 계속 팽창하는데, 그래서 도저히 앞길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데…… 그게 싫지 않았다. 결말의 예측 불가함은 실은 (꼭 성혜령 씨가 아니더라도) 많은 소설가들이 강조하고 활용하는 작법이다. 다만 성혜령 씨의 소설은 중반부까지 읽어도 그 결말이 가늠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비유하자면 사건 A와 사건 B가 연쇄적으로 쓰러지는 '도미노' 같은 모양새가 일반 소설인데, 성혜령 씨의 소설은 그 도미노가 방향을 틀어 사건 S로 넘어간달까…… 나쁜 말로 하자면 이야기의 갈피가 안 잡히는 '산으로 가는 이야기'로 비치겠지만, 나는 이 기질 또한 소설가가 갖추면 좋을 덕목 중 하나라고 본다. 어쨌든 결말을 궁금하게 만드니까. 그리고 위의 전승민 씨의 글을 읽은 만큼, 나는 이 소설집을 엔트로피라는 관점에서 읽게 됐다.

5.

등단작인 「윤 소 정」을 보자. 세 사람(윤, 소, 정)은 과거 입시 학원 버스에서 만났다가 직장을 갖거나 결혼을 하면서 뿔뿔이 흩어진 친구 사다. 그러나 소원해진 관계 뒤에는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는데, 서른 번째 생일날 서남부 유럽을 여행할 계획으로 세 사람분의 예산을 모았던 정이 그만 보이스피싱을 당한 것이다. 죄책감에 빠진 정에게 윤과 소는 위로를 건넸지만 사라진 돈은 돌아오지 않았고…… 이 뒤로 정은 두 사람과 멀어졌다. 윤과 소도 딱히 정을 붙잡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참 뒤 정이 선뜻 두 사람을 집에 초대한 것이다.

6.

여기까지 봤으면 소설깨나 읽으신 분들께서는 다음 내용이 유추될 것이다. 세 사람이 서로 화해하든지 아니면 그 시절을 묻어두고 다시 제 갈 길로 가든지. 성혜령 씨가 택한 길은 그 무엇도 아니다. 그 결말은 나로서는 꽤 충격적이고 찜찜했는데…… 그 역시 나쁘지 않았다. 이 소설을 읽은 사람들은 궁금할 것 같다. 과연 정의 남자친구 말을 믿어도 되는 걸까. 하지만 거의 몇 년 만에 정을 만난 소와 정, 그리고 적어도 두 사람보다 최근의 정을 잘 알고 있을 동거인 남자친구. 누구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겠는가. 성혜령 씨가 남자친구를 수성 쩍은 존재인 채 놔둔 것이 이 소설의 서스펜스와 불온한 기운을 살리도록 한몫한 셈이다.

7.

이 역시 엔트로피 개념으로 접근해 보면. 처음에 세 사람의 만남이 있고 → 사기 사건으로 관계가 해체된 다음 → 재결합의 기미가 보이지만 이미 다른 관계(남자친구)가 더해졌고 → 정의 어머니를 뵈러 버스를 탄다. 「윤 소 정」에서 보이는 엔트로피 증가 양상은 낯선 인물의 확대, 그리고 (결말부에 등장하는) 공간 이동까지 확장된다. 이 도식에 더 잘 들어맞는 소설은 표제작인 「버섯 농장」이다. 이는 휴대폰 결제 사기를 당한 진화와 이를 돕는 친구 기진의 모험 이야기로, 인물 관계는 [전남친 → 전남친의 군대 후임 → 그 후임의 아버지]까지 확장되며 공간도 [요양병원 → 버섯 농장]까지 확장된다 ― 장담하건대, 이렇게 도식화된 인물과 장소만 보고 이 소설의 내용을 간파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그만큼 이 소설의 줄거리를 종잡기는 힘들다. 특히 결말부는 더더욱.

8.

말이 나온 김에. 「버섯 농장」의 결말은 당혹스럽다. 하지만 나는 그 당혹스러움, 의외의 상황이 생각보다 기억에 선명하게 찍혔다. 그들이 저지른 행동에 너무 차분하다는 것만 빼면…… 누군가 이를 영화로 만들 것 같은 예감도 든다.

9.

내가 엔트로피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혀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 도식에 들어가지 않는 단편들은 덜 흥미로웠다. 예컨대 「물가」의 주인공 '나'는 '유안'이 기르는 치와와 '치약이'를 임시로 맡았는데, 이 과정에서 지역 커뮤니티 앱에서 만난 '크림'을 알게 되지만 딱 거기까지다. 소설은 주인공이 사는 물가 근처를 벗어나지 않고, 결말부에 맞닥뜨리는 사고에도 그 이상을 넘어가지 않는다 ―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물가를 벗어나려 하는 그 찰나에 소설이 끝난다. 또 다른 예시로 「마구간에서 하룻밤」도 있다. 마구간이라는 공간에 자꾸만 사람이 들이닥친다는 설정은 「주말부부」와 흡사하지만 그 결은 다르다. 「주말부부」 속 손님들은 주인공 조오의 입장에서 완전히 낯선 사람들인 데 반해 「마구간에서 하룻밤」은 주인공 문진이 아는 사람, 혹은 마구간을 보러 온 노부부로 신원이 명확하다. 그래서 후자는 초반부부터 긴장감이 덜하다 ― 물론 나중 가서 손님들에게 감춰진 비밀이 드러나지만.

10.

이렇게 갈무리하면서 보니 더 선명해진다. 여기 소설집에 수록된 이야기들의 패턴은 비슷비슷하다. 낯선 자의 침입이 있고, 그 자와 기묘한 공존(불화까지 가지는 않는)을 시작한다. 이때 '침입 이후'로 이어질 이야기가 성혜령표 소설의 핵심 키(key)가 아닐까 싶다. 내 삶에 갑자기 끼어든 치약이(「물가」)가, 군인(「사태」)이, 아버지의 친구(「간병인」)가 얼마나 흥미로운가? 불쾌한가? 기괴한가? 그런 그들에 주인공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11.

이 글을 쓰는 오늘, 그러니까 26년 9월 2일에 성혜령 씨의 두 번째 소설집 『대부호』가 출간됐다. 출판사는 문학동네. 조만간 두 번째 소설집이 출간되리라 기대했지만…… 이렇게 기묘한 타이밍일 줄 몰랐다. 내가 흥미롭게 읽은 「원경」도 그 소설집에 실렸다고 한다. 출간을 축하드리며, 새 책도 조만간 만나기를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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