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물리학자 6 - 디랙에서 겔만까지 입자 물리학의 세계 위대한 물리학자 6
윌리엄 크로퍼 지음, 김희봉.곽주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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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세기를 정의하라고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대중의 시대였다고 할 것이다  문학, 음악(특히나 락음악이나 댄스뮤직의 탄생) 그리고 미술등. 모든 분야가 대중의, 대중에 의해, 대중을 위해 움직인 세기였다고 말이다. 

 

하지만 여기 20세기에 엄청난 황금기를 맞이했지만,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했던 분야가 있다. 바로 물리학이다. 큰 틀에서 보면 과학일 수도 있겠다. 아마도 물리학계의 슈퍼스타 아인슈타인을 빼고는 대체적으로 대중은 20세기의 물리학의 흐름이 어떤지, 물리와 공학과의 관계, 물리와 천문학과의 관계등 우리가 실제로 살고 있는 자연의 법칙이 물리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고 물리가 자연의 법칙을 어떻게 방정식화 했는지 알지 못한다.

 

일반 대중이 물리학에서 요구되는 고도의 수리적 능력과  천재적인 발상과 사고능력을 미처 따라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평범한 능력으로는 받아 들이기 쉽지 않는 분야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 대부분은 깊은 사색과 사고보다 즉흥적인 즐거움에 더 현혹되어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위험한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전 세계 10% 미만의 사람들만이 끈질기게 세상의 물음에, 호기심을 가지고 우리 지구를 둘러싼 의문에 답을 찾으려고 한다. 지구는 정말 네모가 아니고 둥근지. 왜 밤과 낮이 생기는 것인지. 지구의 역사는 어떻게 되는지, 공룡은 정말 있는 것인지, 나무는 왜 자라는 것인지. 바다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지구 밖 우주는 무한한지 아니면 유한한지 같은. 수 많은 의심과 호기심은 수 많은 이론과 실험을 통해 수정을 거치면서 정론이 되곤 한다.

 

20세기 이전의 사람들은 빛이 파장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여러번의 사고 실험을 거쳐 빛은 파동도 입자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또한 그는 빛의 입자가 에너지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채렸다(그래서 그는 광양자 이론을 내놓게 되었고 그 이후 많은 학자들에 의해 기술적으로 발전되었는데, 그 예가 휴대폰이다).

 

입자가 에너지를 가질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실로 놀라운 통찰력이었다. 원자에서 시작되어, 원자가 아원자로 쪼갤 수 있고, 에너지가 될 수 있는 입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입자물리학 초기에는 그 입자를 어떻게 다뤄야하는지 잘 몰랐지만, 수 많은 과학자들이 입자의 바다속으로 뛰어 들었고, 현대에 이르러 신의 입자를 찾으려고 많은 과학자들이 노력하고 있다. 아마 입자가 에너지를 가질 수 없다면, 많은 과학자들은 시간과 비용 그리고 노력을 거둬들였을 것이다. 

 

<위대한 물리학자 6>은 입자물리학에 거대한 변혁을 이룬 세명의 과학자를 다루고 있는데, 그들이 바로 폴 디랙, 리처드 파인만, 그리고 머리 겔만이다.

 

이 책은 폴 디랙을 찾아보기 위해 검색했다가(생각보다 폴 디랙에 대한 책은 많지 않았다. 우리 나라에 나온 책 중에서 그를 전체적으로 다룬 책은 아예 없었다), 그나마 여기에 폴 디랙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나와 있어 읽어보게 되었다. 책은 문고판 형식으로 되어읽기 편하게 되어 있고 세 사람의 인생중에서 주요한 부분만 나와 있지만, 상당히 핵심적인 내용만 수록되어 있어 세 사람의 업적이나 인생을 간략하게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에는 파인만과 겔만의 사이가 약간 삐그덕거리는 정도만 묘사되었지만, 사실 두 사람의 사이는 앙숙이었다고 한다. 서로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 날 정도로. 워낙 책이 개략적이어서 세 사람에 대한 업적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감만 잡았을 뿐, 정확하지는 못하다. 입자 물리학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한 사람들이라면, 불만족 스러울 수도 있겠다.

 

이 세 사람에 의해 발전된 입자 물리학은 현재 우리의 에너지원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고에너지입자가 어쩜 우리가 만들어 낸 환경오염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그리고 원자력같은 위험한 에너지에서 좀 더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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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가가 4월 27일 우리나라를 시작으로 월드투어 한다길래

티켓예매날(2월27일 12시)만 오매불망 기다리며.

내내 이날을 잊지 말자고 그렇게 다짐했건만,

애들 학원 데려다주고 데려오면서

오늘이 티켓예매일인걸 까먹었어.

부랴부랴 인터파크에 들어가면서 설마 그 많은 자리가 꽉 찼겠어,

라고 생각하며 지금 들어갔더니

맙소사~ 자리가 없어==;;

아, 어떡하지, 어떡해.

B석이 있긴 있지만..난, 난 가가를 좀 더 가까이 볼 수 있는

스탠딩을 원했단 말이야.

 

아, 가가 좋아, 좋아 미쳐버리겠어 ==;; 가가 울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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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한국문학은 잘 안 읽는다.

일년에 한 두권이던것이 이젠 몇 년에 한 권정도.

최근에 이상문학상 빼고는 몇 년동안 읽는 적이 없는 듯.

그나마 이상문학 단편소설 읽고 이제 한국 문학은 완전 접어야겠다는

결심 아닌 결심.

 

오늘 구글 들어갔다가 본 이효석 탄생 105주년 기념 두들

메밀꽃이 저렇게 생겼나.

 

지금까지 본 구글의 두들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두들은

작년 할로윈데이날 본 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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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 모중석 스릴러 클럽 4
제프 린제이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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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소설은, 작가의 사적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건조하고 깔끔한 문체로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소설들이다. 작가의 사적 감성이나 감정은 캐릭터의 성격에 대입해 충분히 살릴 수 있으며, 소설에서 작가의 감정을 위임 받는 것은 캐릭터의 몫이다.

 

그래서 캐릭터를 다룰 때는 작가는 조심해야 한다. 작가의 감정이 과잉으로 캐릭터에 대입되었을 때는 과도한 자기 연민으로 이야기가 흐를 수 있고, 감정이입을 거의 하지 않을 땐 캐릭터가 이야기에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잘 짜여진 이야기의 힘으로 소설이 이끌여 나가는데, 개인적으로 과잉으로 소설이 이끌려 나가는 것보단 차라리 이야기의 힘만으로 전개되는 것도 나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소설을 읽을 때 캐릭터보다 이야기에 중점을 둔다. 아주 독특한 캐릭터가 아닌 이상,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역량에 관심을 둔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프 린제이의 소설속 인물 덱스터는 좀 다르다. 아마 그는 내가 만난 몇 안 되는 정말 특이하고 독특한 캐릭터일 것이다. 나는 미국스릴러나 미스터리물을 읽긴 하지만, 정말 좋다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특히나 남들이 이구동성으로 다 좋다고 말하는, 할렌 코벤, 마이클 코넬리, 제프리 디버같은 거물급 작가들의 미스터리물을 읽고 난 후의 그 텁텁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도록 계산된 장면, 거듭되는 반전의 반전의 트릭과 악의 클레쉐적인 설정등. 재미는 있지만 매력을 느낄 수 없다.

 

덱스터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그의 직업은 경찰내부에서는 공개적으로 혈액분석가이지만, 그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스런 직업이 있다. 그건 바로 연쇄살인범. 그것도 연쇄살인범을 죽이는 연쇄살인범 말이다. 그는 세상에서 없어져 버려야 하는 사람들을 한동안 지켜보고 죽일 기회를 찾는다. 자신의 살인 본능을 선량하고 일반적인 사람에게 향하는 것이 아니고 죽어 없어져도 무방한 사람들, 연쇄살인범에 촛점을 맞춰 자신의 살인 행위를 정당화 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덱스터는 많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캐릭터이다. 과연 연쇄살인범을 죽이는 그의 연쇄살인 행위는 정당하다고 할 수 있는가? 왜 국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을 개인의 처벌해야하는가? 그의 그런 캐릭터로 비춰볼 때 사람은 환경에 지배 받는 것이 아니고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 것인가? 선이나 악을 집단적(성선설, 성악설)으로 정의내릴 수 있는가?

 

연쇄살인범을 죽이는 연쇄살인범인 그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은 법적인 면에서는 정당화 될 수 없지만, 사회적 통념상 암묵 될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제프 린제이가 창출해 낸 덱스터의 본능이다. 그의 살인행위는 사실 정의로운 의지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다. 그는 수 많은 연쇄살인범들처럼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살인 본능을 타고 났다. 그래서 그의 양부 해리가 그의 본능을 알아채고 그에게 사람 대신 동물들을 죽이도록 인도해 주었지만, 결국 그의 본능을 잠재울 수가 없어 타깃이 된 것이 바로 연쇄살인범인 것이다.

 

제프 린제이의 이 소설에서 만들어낸 교활한 장치는 덱스터가 연쇄살인범을 죽인다는 것 때문에 침묵의 공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누구나 다 연쇄살인범은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용기 없는 우리 대신 그가 칼을 들었다는 사실은, 그가 살인 본능을 타고 났다면 차라리 그런 사람을 죽이도록 부추기고 침묵으로 유도한다는 것이다. 그의 행동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그의 행동을 소리 높여 비난 할 수 없다는 것.

 

그렇다면, 제프 린제이는 덱스터의 살인 본능을 어떤 관점에서 보았을까? 우리는 대체로 사람은 주변 환경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는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윈 이후, 많은 과학자들은 한 인간을 형성하는데 있어 유전자(우생학)과 환경결정론, 두 이론 중에서 어느 것이 인간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논쟁은 분분하다.

 

제프리가 만들어 낸 덱스터의 살인본능은 환경보다는 유전자쪽에 무게를 둔다. 하지만 그의 살인 본능이 전적으로 유전자의 무게중심으로 쏠리지 않는다. 그는 그의 살인본능, 양부모지만 번듯한 부모밑에서 자랐고, 그의 양부 해리는 그가 살인에 대한 쾌감을 느낀다는 것을 알고 무단히도 그의 살인본능을 잠재우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선 환경적인 요인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 환경적인 요소는 그가 연쇄살인범만을 죽이도록 도덕적인 라인을 제시한 것이기.

 

양부 해리의 노력에도 불과하고, 그의 잠재적인 살인본능을 덮어버릴 수는 없었다. 살인에 대한 쾌감은 마침내 발현되었고, 그 대상이 연쇄살인범으로 유도되었을 뿐. 그러고 보면, 도킨스가 말한 우리는 유전자의 대를 이어주는 수단(껍데기)에 불과하는 말은 소름끼칠 정도로 맞는 말일 주도 모르겠다.

 

덱스터나 여타의 살인자들(테디 번디나 김길태 같은)과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살인본능은 환경적인 요인도 무시 못하지만, 유전적인 요인이 크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의 선악을 집단적으로 몰아부치는 성선설이나 성악설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판단이 아닐 수 없다. 인간 개개인은 개별적이며 고유의 바코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덧 : 리뷰 제목은: 리처드 도킨스의 <무지개를 풀며>에서 별빛의 바코드에서 따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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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키튼 1 - 사막의 카리만
우라사와 나오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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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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