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친정엄마가 시골(시골이라고 해봤자 경기도 근처지만 어릴 때부터 붙어버린 이 말이 영 떼어지지 않아)땅에 뭐라도 심겠다며 같이 내려가 땅 좀 일구자고 해서, 아침 일찍 경기도 근교로 차를 몰고 내려 갔다. 

 

친정엄마와 나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고무장화로 갈아 신고 호미로 땅을 일구는데, 정말 죽어 나는 줄 알았다. 한동안 추웠던 날씨는 우라질 왜 이리 더운지, 추울 줄 알고 입고 간 패딩은 로봇옷처럼 답답하고 땡볕에 땀은 줄줄 흐르고, 자갈 많은 땅이라 기계가 일굴 수가 없어 호미로 땅을 파고 흙을 가운데로 모으는데, 허리 한번 제대로 못 펴고 쭈구린 채 땅을 일구다가, 두시간도 안 돼  더 할 엄두가 나지 않아, 나는 더 이상 못하겠다고 나가 떨어졌다. 우리 옆의 땅에서 작업하시는 할아버지는 기계로 땅을 일구시는데, 그것도 쉬워보이지는 않는 것은 매한가지.

 

내가 나가 떨어지니깐 엄마도 할 맘이 더 이상 안 생기는지 이 정도면 됐지 뭐, 다음에 와서 씨나 뿌리자면서 자리를 떨고 일어나셨다. 그래도 이왕 온 거 냉이라도 캐자고 하시는데, 솔직히 내 눈엔 냉인지 민들레인지 좀처럼 구분이 가지 않아, 주머니속에 넣어 두었던 쿠키 먹으면서 건성건성 따라다녔다. 엄마는 열심히 냉이 캐고 나는 빈둥거리며 쿠기와 싸 가져온 커피 홀짝 거리는데, 날씨는 화창해서 더할 나위 없이 좋긴 좋았다.

 

허나~ 나보고 농사 지으라고 하면 그 화창한 날씨와 공기 좋은 땅에서, 바람만으로도 배부를 것 같은 곳에서 나는 도망갈 것이다. 허허.

 

그렇게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엄마가 캔 냉이. 가져가서 먹으라고 해서 고추장에 무쳐 봤다. 된장으로 무칠까하다가 새콤달콤하게 해서 먹는 게 낫겠다 싶어 고추장, 조청,설탕,식초, 들기름을 넣고 조물조물(울딸은 내가 나물을 무칠 때 조물조물이라는 말을 쓴다고 놀리곤 한다)넣고 무쳐봤다. 빨가니 봄날의 식욕을 돋구는, 村스러운 입맛을 가진 나.

 

 

 

 

 

역시 나는 내 손으로 흙을 일구고 씨를 뿌려 열매 맺어 수확하는 기쁨을 누리지 못할 종자라는 것을 뼈져리게 깨닫고 왔다.  평생 시골에서 농사로 세자식 키워내고 장에 나가 땅에서 그때그때 거둬들인 농산물을 파시는, 90도로 굽어진 고모의 허리를 보면서, 삶의 고된 흔적을 보는 것같아 언제나 안쓰럽다.

 

나는 고모와 같이 흙과 함께 하는 노동으로 우직하게 살아가지 못할 것 같다. 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장담하지도 못할 것이니 말이다. 그게 경제적이든, 정신적이든간에 말이다.

 

아니, 농사의 댓가가 무서워 자신 없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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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9 14: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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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0 18: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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