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대기>만 읽으면 우리 나라에 나온 레이 브래드버리의 소설들은 거진 다 읽은 셈이다. 근래들어 레이 브래드버리와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들과 번갈아 읽으면서, 어쩜 책은 영원불멸한 존재가 아니고 언젠가는 소멸되는, 생물체와 같은 생명체같은 존재이구나 싶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가 탄생, 삶 그리고 죽음의 세가지 단계를 거치는 듯, 책 또한 탄생과 동시에 수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살아 남으려고 바둥거리다가 서서히 소멸되는 그런 생명력 말이다.

 

레이 브래드버리나 마쓰모토 세이초의 소설이 수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칭송되어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러 나라에 출간되며 영원불멸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읽으면서 그들의 소설이 주제나 소재면에서 번뜩이고 예리한 미래적 아이디어와 통찰력을 가지고 있지만, 시대의 뒤틀림은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현재의 내가 수십년 전의 사실성과 감성을 이해하고 감지할 듯하면서도 선뜻 완전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현재와 비교하여 시간적 배경적 공간적 차이가 너무 심해 그들의 미래적 아이디어는 좁은 세계관과 상상력의 한계를 보는 듯해, 당대의 시공간을 초월했을 듯한 소설적 상상력이 초라해 보였다.

 

그래도 여전히 그들의 소설은 살아남을 것이다. 고전이라는 이름하에, 하지만 모든 고전이 영원불멸의 삶을 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죽지 않는 삶이 저주인 것처럼 영원불멸의 책 또한 자신의 무한한 생명이 저주라고 느낄 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독자들에 의해 이어져 내려오는 삶이 아닌 평론가들의 입에 의해 살아 남는 책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모든 생명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비록 세대에 세대를 거쳐 잊혀진다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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