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르, 앙리오트, 에렌페스트, 헤르젠, 드 동데르, 슈뢰딩거, 버샤펠트, 파울리, 하이젠베르크, 파울러, 브릴루앙
디바이, 크누센, 브래그, 크라머스, 디랙, 콤프턴, 드 브로이, 보른, 보어
랭뮤어, 플랑크, 퀴리 부인, 로렌츠, 아인슈타인, 랑주뱅, 게이, 윌슨, 리처드슨

 

자주 가는 모님의 블로그에서 흥미롭게 읽은 폴 디랙의 글, 

창피하게도 꽤 오래 전에 <20세기를 만든 아름다운 방정식>을

사다 놓고 읽지도 않은 채,

책장에 쟁겨 두고 있었다. 아마 모님의 글을 읽지 않았다면,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을지도.

 

방정식의 위력은 실로 신비롭다. 마법사의 제자가 만들어 낸 빗자루처럼, 그것은 힘을 갖고 스스로 생명력을 가지며, 그것의 창조자는 기대하지 못했던 결과물들에 생명을 불어 넣는 등 통제할수 없고 심지어 모순된 모습을 보이기도 하다. 아인슈타인이 E=mc^2을 발견했을 때, 고전 물리학의 토대를 통합한 특수상대성 이론의 정점에서 그는 대량살상무기도, 무진장한 에너지 발전기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물리학의 모든 방정식들 중에서 `가장 마술과도 같은 것'은 아마도 디랙방정식일 것이다. 그것은 실험에 의한 제약이 거의 없이 가장 자유롭게 고안되었지만, 가장 이상하고 깜짝 놀랄만한 결론을 만들어냈다.

 

1928년 초반 전기공학에서 이론물리학으로 전공을 막 바꾼 물리학자 디랙이 훗날 디랙방정식으로 명명된 놀랄만한 방정식을 만들어냈다.  - 252p

 

위의 사진은 1927년 브뤼셀에서 열린  5차 솔베이회의에서 찍은 사진.

폴 디랙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인슈타인의 뒷줄에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참석한 29명의 과학들 중 17명이 노벨상을 수상하였고, 퀴리부인은 두 부문에서 노벨상을 받았다. 과학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사진을 보고 흥분했을텐데. 세계를 뒤 흔든 사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폴 디랙은 처음 들어본 물리학자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오후에 갑자기 하이젠베르그가 쓴 <부분과 전체>에서 폴 디랙과의 일화가 생각났다. 분명 일화의 주인공이 폴 디랙이고 맞는다면, 디랙 방정식의 주인공일 것이라고 생각되어 내가 기억하고 있는 부분을 찾아보았는데, 맞았다. 종교에 대한 나의 생각과 너무나 흡사한 종교관을 가지고 있어 기억했던 일화였던 것이다.

 

하이델베르그는 저 솔베이 회의 때 브뤼셀의 호텔에서 동료들과 종교에 대한 토론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25살의 폴 디랙이 끼어 들어

 

 

"나는 도대체 이 자리에서 왜 종교에 관해서 논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반론을 폈다.

 

"만약 사람들이 정직하다면 - 특히 자연과학자들은 그래야하지만 - 종교에서는 그야말로 아무런 정당성도 없는 터무니 없는 거짓 주장만을 외치고 있음을 인정할 것이다. '신'이라는 개념은 도대체가 인간의 환상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보다도 휠씬 더 자연의 위력에 눌려 살던 원시 민족들이 자연의 위력에 대한 공포에서 그 힘을 의인화해서 신성의 개념에 이르게 되었으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지금고 같이 자연의 연관성을 통찰하고 있는 우리 세계에서는 그런 표상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는 전능의 하나님아른 존재의 가정이 우리를 어떻게 해서든지 계속 도울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 이와 같은 가정이 어째서, 예를 들어 하나님이 이 세사에 불행과 불의를, 부자들에 의한 가난한 자의 억압을, 그리고 그가 막을 수 있는 다른 모든 무서운 일들을 어찌하여 허락하였느냐 하는 따위의 무의미한 문제 설정에 이르게 되었는가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시대에서 아직도 종교가 무엇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은 거기에 우리를 납득 시킬 수 있는 어떤 근거가 있어서라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 즉 민중을 달래려는 욕망이 배후에 숨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말썽이 없는 사람은, 불안하고 불만에 차 있는 사람들보다 다스리기 쉬울 것이다. 이들을 쉽게 이용할 수도 있고, 착취하기도 쉽다. 민중을 행복한 소망의 꿈으로 부풀게 해 놓고 그들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부정을 기만하기 위하여 민중에게 던지는 일종의 아편인 것이다. 그러니깐 커다란 정치적 권력단체인 두 단체, 즉 국가와 교회의 동맹도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자비하신 하느님은 지상에서가 아니라 하늘나라에서, 불의에 반항하지 않고 침착하고 참을성 있게 의무를 다하는 사람에게 크게 보답하신다는 환상을 이 두 단체는 공통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까닭에 이 하나님을 인간의 환상의 산물에 지난지 않는다고 정직하게 말하면그것은 죽음에 해당하는 가장 흉악한 대죄로 여겨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36p

 

에피소드의 끝은 파울리가 "예,예 우리들의 친구 디렉은 하나의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종교의 주제는 "하나님은 없다"는 것입니다. 디렉은 바로 종교의 예언자입니다"라고 말해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고 또한 디렉도 웃으면서 그 날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후에 그는 "신은 매우 높은 차원의 수학자이고 신은 이 우주를 만드는 데 높은 수준의 고급 수학을 썼을 것"(p34)이라는 말때문에 디렉이 신의 품으로 귀화한 것처럼 말하기도 하지만, 정확한 자료를 찾아 보지 않는 이상 그가 유신론자가 되었다고 하기엔 좀처럼 신빙성이 없다. 마치 다윈이 죽음 직전 신을 찾았다는 가정부의 말 한마디로 그가 신적 존재를 인정한 것처럼 유신론자들에게 전해내려오는 오해처럼 말이다.

개인적인 생각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폴 디랙이 신따윈 찾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가장 큰 두려움인 죽음앞에서라도 말이다.

 

폴 디랙은 슈뢰딩거와 함께 1933년 원자 이론의 새로운 형식의 이론의 발견으로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어린시절은 프랑스인 아버지의 학대로 매우 불행했는데, 큰 형의 자살 이후 아버지와의 관계를 완전 끊냈다고 전해진다. 노벨상 수상식에도 아버지는 초청하지 않고 어머니만 초청할 정도로. 하지만, 그가 이론 물리학자 유진 위그너의 동생인 마르지트 위그너와 결혼해 낳은 자녀들에게는 좋은 아버지는 아니였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회고록에 "역사가 반복된다는 말은 그의 가족에게 딱 들어 맞았다. 디렉은 횡포한 아빠는 아니었지만 자녀들과 거리를 두었다. 이런저런 면에서 그것은 낡은 빅토리아 시대 같은 결혼생활이었다"라고 썼다고 하니 말이다.

 

20세기초반은 물리학이 막 꽃을 피우고 절정을 이루었던 시대라, 이 시대의 물리학자들을 들춰본다는 것에 어떨 때는 경외감이 든다. 또한 그들의 천재성을 즐긴다고 해야 하나. 남들이 풀지 못해 끙끙거리는 문제들을 거침없이 해결하는 그들의 천재적인 에피소들을 읽을 때마다 감탄과 즐거움의 감정이 동시에 생겨난다. 물리학자들의 책을 읽을 때마다 좀 더 체계적인 나만의 과학사를 정리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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