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계기로 마츠모토 세이초의 작품을 읽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일본 미스터리물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일본 추리 소설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해서 어떤 작가길래 그래?, 하는 호기심에 읽었을 것이다.

 

2006년께였나. 그 당시에는  세이초의 작품을 읽을 수 있었던 유일한 작품이 바로 저 <점과 선>뿐이었다. 아니 한 작품 더 있었나.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여하튼 저 작품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오래된 작품(50년대 작?)인데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세 편의 단편이 실려 있었고, 완벽한 트릭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눈치 챌 수 있는 허점 또한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렇게 세 편의 단편만 읽고 세이초는 잊혀졌다. 덜도 말고 더도 말고 한 두편의 작품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지난 날의 작가일 뿐이었던 것

 

이다.  그러다가 북스피어에서 세 권의 마쓰모토 세이초의 걸작 단편집을 냈다. 세이초의 장녀라고 알려진 미야베 미유키(갸악~)가 주도적으로 관여했다고 해서 묻지마 식으로 사서 읽었다.

 

단편 <점과 선>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 전에 읽던 그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점과 선>이나 <제로의 촛점>보다 사회적, 정치적인 세이초의 입장을 명확하게 보았다고 해야하나. 

 

사건에만 촛점을 맞춘 <점과 선>의 단편에서보다 북스피어에서 낸 단편집은 사회적 비리와 병폐 그리고 인간의 범죄적 추악성을 예리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좀 더 색다른 세이초의 발견이었다. 그의 많은 작품을 접할 수 없었기에 트릭의 작가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 책을 읽고 나선,  세이초에게 뭔가 얻을 수 있겠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작품은 심리 묘사가 뛰어 나거나 감성적이지 않다. 전체적으로 건조해서, 이야기의 전개와 캐릭터의 행동에 중점을 둔다. 작중 인물의 심리 묘사가 없기에 이야기의 장면마다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지루하지 않다는 말). 독자에게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고, 캐릭터들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에 온통 신경을 쓰게 만든다. 그런 글쓰기는 사건과 인물에 집중할 수 있게 해서 읽는 속력을 부여한다는 것을 알았다.

 

작가마다 각 자의 개성이 있는데, 나는 세이초의 장점은 뛰어나지 않는 심리묘사에 있다고 본다. 어쩡쩡한 캐릭터의 심리 묘사는 소설을 그것도 미스터리를 감성적으로 이끌 수 있다. 감성이 풍부한 10대을 

 

위한 소설이 아닌 이상 감성은 소설에서 불필요한 재료라고 생각하는 사람인지라. 세이초의 르포스타일의 건조한 이야기 전개에 상당한 흥미를 가지고 읽었다. 

 

그 전에 난 세이초의 이력에 대해 잘 알지 못했는데(도대체 그에 대해 뭘 읽었는지 모르겠다는), 물론 북스피어에서 낸 컬렉션집에서 그의 논픽션을 읽었고 그게 일본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가지고 왔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그가 반 우익의 노골적인 정부비판자라는 사실을 인지 하지 못했다.

 

이 책 책 날개에 이런 소개글이 있다. 세이초는 평생 규범을 넣어선 작가였고, 전쟁과 조직과 권력에 반대한 사람이었다. 그로 인해 문단과 학계에서는 한번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1976년부터 실시한 독서 여론조사(마이니치 신문 주최)에서 10년동안 `좋아하는 작가' 1위로 선정 되면서 명실상부하게 국민 작가의 지위을 얻었지만, 관에서 받은 훈장은 평생 동안 단 하나도 없었다.

 

<짐승의 길>을 읽고 저 문장을 보면, 1억부 판매에도 불구하고 관에서 단 하나의 훈장을 받지 못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의 작품 성향으로 미루어 볼 때, 세이초는 우익에서 볼 때는 눈에 가시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우익과 일본 정부가 어떻게 연대를 하고 맺고 있는지, 일본의 권력들이 우익앞에서 어떤 식으로 꼬리를 내리는지를 불쾌할 정도로 노골적으로 묘사하기 때문이다. 

 

통속적으로 일본 정치를 묘사한, 세이초를 읽으면 일본 권력의 우스꽝스러움이 보인다. 그리고 통렬히 비판한다. 일본 권력은 제대로된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고 알 수 없는 실체에 의해 쥐락펴락 한다는 것이다. 후쿠시마의 원자력 사고 후 일본 정부가 보인 대응 능력만 봐서도, 일본 권력이 얼마나 무능력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세이초가 이 소설을 통해 일본 우익과 정부의 실체를 드러낸 것처럼, 아마 지금 현재도 일본 우익과 정부는 쌍쌍 연합으로 세이초가 묘사한 60년대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세이초는 지금도 통하는 작가이고 읽을 건덕지는 많은 작가라는 것은 확실하지만, 문제는 내가 세이초를 수집해야 하는 것이냐에 있다. 종이책 부담스럽다. 정말 부담스럽다. 이사갈 때마다 이고지고 해야하는 책들이 이젠 뿌듯함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고 짐짝으로 느껴지기에. 게다가 과연 일본 국민 작가를 내가 굳이 수집해서 읽어야하는 의문도 자꾸 드는 것도 사실이고(너무 옹졸한 생각인가!)

 

 

 

 

저 두꺼운 두께의 책들을 보고 있자니, 정말 내가 세이초를 모아야할까,하는 고민은 계속 된다. 모비딕에서 나온 의 초판 증정은 세이초파일이고 북스피어에서 나온 초판 증정본은 <르찌라시>인데, 개인적으로 북스피어 좋아하지만, 증정본 형태는 모비딕이 휠씬 낫다. 일단 책으로 나와 세이초의 약력부터 세이초 기념관에 가서 인터뷰한 내용까지 일목요연해서, 찌라시처럼 쫘악 펼치지 않아서 읽기 편하다. 인터뷰 읽다가 세이초하고 미야베 미유키가 함께 찍은 사진을 세이초 기념관 관장님이 보여주셨던데...그 사진 좀 올려주시지. 아쉽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