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애들 보내고 혼자 식탁에 앉아 밥 먹으면서 거실창문을 바라보는데, 나무잎 사이로 비추는 햇살이 반짝반짝 빛났다. 비록 오래된 낡은 집이긴 하지만 이 집에서 7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저런 나무의 고즈넉한 풍경을 만날 수 있어서였던 것 같다.

날씨가 좋아 나갈 채비를 한다. 집에 진득히 앉아 책이나 읽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래봤자, 심란한 맘 책으로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날씨를 핑계로 나갔다. 그래서 밖에 나와 돌아다니다가 롯데시네마청량리에서 노다메와 아리에티를 보았다.
노다메는 여러 리뷰어들의 글을 보고 부지런히 만화책을 사고, 다운 받아 놓은 일드도 있지만(심지어 OST까정), 딱히 끌리지 않아 안 찾아 읽고, 보다가 지난 추석에 올케가 언니, 노다메 일드 정말 재밌어요~~~ 우리 영화나 보러가요! 하는 것을 추석연휴때 외삼촌이 돌아가셔서 거기 다녀오는 바람에 못 보았다가 어제 보러갔다. 영화 중간에 여러번 키득키득 혹은 킥킥거렸다. 이 원작자의 <음주가무연구소>를 먼저 읽은 나로서는 작가와 영화의 내용이 매치가 안돼 한동안 멍~~~~ 때렸다. 술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클래식과 엽기발랄한 만화적 상상력과의 결합이라니. 갑자기 마구마구 클래식이 좋아지려고 하고 있다.
오늘은 아리에티. 전날 엠넷에서 아리에티의 OST를 다운받아 지하철에서 들으면서 왔는데, 재즈가 다시 들린다. 난 일본인들의 재즈 사랑을 좀 역겹게 느꼈었는데....젠체하는 우월감이라고 해야하나. 재즈가 좀 있어보이는 음악쟝르여서 좋아할 뿐이라는, 그런 만족감으로 재즈를 듣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리에티 테마곡을 재즈풍으로 편곡한 것을 들으면서 그런 유치한 생각은 접기로 했다.
난 다양한 음악 쟝르를 들어왔지만 내 귀에 재즈는 아니었다. 궂이 시디까지 사면서 듣지는 않았는데, 재즈의 유연한, 이제껏 내가 느껴 보지 못했던 재즈음을 느꼈다.
영화 내용은 뭐.... 좋았다. 일단 다른 거 다 필요없었다. 애니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으니깐. 나이가 들면서 왜 이렇게 풀 한포기, 나무 그리고 꽃이 좋은지. 아리에티도 아리에티지만 그림 속의 자연이 너무나 아름다워 나도 남자주인공 쇼우처럼 풀밭에서 걍 눕고 싶었다.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한 것인지 아니면 아직도 필림작업을 하는 것인지. 그래픽 작업일텐데 자연의 터치가 매우 좋았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MP3에 좋아하는 음악(어제 다운받은 아리에티와 에이스오브베이스 노래)을 골라 들으면서 갔지만, 영화를 기다리는 동안 스타벅스에서 카페모카 한 잔을 시켜 놓고 <막스 플랑크의 평전>을 꺼내 읽었다.
이 책의 저자 피셔의 <슈레딩거의 고양이>을 읽은 적이 있어서 어느 정도 이 작가의 저술력을 파악하고는 있었지만, 역시나 과학저술가답게 일반인들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플랑크의 일생을 다루고 있다. 어렵고 힘든 부분은 읽다가 흐름이 끊겨 넘겨버렸다. 과학사에서 그의 위치는 절대적이다. 이 책의 첫 장에 이런 말이 있다. 막스 플랑크는 두가지 위대한 발견을 했다. 하나는 양자역학이고 하나는 아인슈타인이다, 라고.
잠깐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살면서 내 주위의 물건에 참 무관심했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콘셉트에 꼽기만 하는 밥이 되는 밥솥, 냉장고, 세탁기같은 가전제품들이 그냥 내 주변에 널려 있는 이런 것들이 생활의 편리를 도와주는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했지, 이런 것들의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같은, 진지한 고민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에너지의 사용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마술같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던 출발점이 바로 막스 플랑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셔가 이 책에서 이런 말을 한다. 우리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그 전의 세기와는 다른 엄청난 변화를 겪었는데, 역사가들은 그것이 자연과학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서 그 누구도 다루지 않고 있다고. 일리있는 말이다. 역사가들이 대체로 인문학자인 경우가 많아서 자연과학사에는 무지해서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처럼 알라딘이나 예스에 자주 들어오지 않는다. 왤까? 읽은 거리의 부족인가 싶기도 하고. 그래도 습관은 습관인지라. 저녁 먹고 잠시 예스 한바퀴 돌고 알라딘에 들어오면서 본 신간들, 낼이 10월이라 긁으면 11월 결제이긴 한데 긁을까 말까 고민중이다. 읽을거리는 잔뜩 쌓아놓고있기는 한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