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010년 안데르센상 후보 작가 중에는 미국의 일러스트 작가 후보로 에릭 칼옹이 올라와 있다. 개인적인 바램으로는 부디, 제발 옹이 수상했으면 하는데, 과연 안데르센위원회에서 그의 40년, 그림책작가로서의 경력을 인정해 줄지는 미지수다. 에릭 칼이 우리 시대의 위대한 그림책작가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의 그림책이 뛰어난 상품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수십년간의 그림책 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차례의 칼데콧 수상도, 그리고 그보다 휠씬 인지도가 낮은 동화책 작가들에게도 상을 수여한 안데르센상을 받지 못한 이유로, 그의 여러 그림책에서 보여지는 화면 클리셰와 단순한 이야기를 꼽을 수 있겠다. 그렇다. 그의 그림책에서는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 똑같은 형태의 그림이 널려 있으며, 그러한 단점을 커버할 만한 능수능란한 이야기꾼이 아니다.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지기 보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림책을 놀이감으로 가지고 놀 수 있게금 만든, 아이디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게 왜 단점이냐고? 아이디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보니, 그의 그림책의 대상연령은 한계가 있다. 아무리 높게 잡아도 7,8세 수준정도. 그러다 보니 그의 그림책 이야기 수준은 유아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며 그렇기 때문에 칼데콧이나 안데르센에서 그에게 상을 주는 것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물론 우리는 이럴 때 흔히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상복이 없다고!).  

아이들 그림책 세계에도 놀랄만한 이야기꾼들은 많다. 특히나 기무라 유이치나 신시아 라일이런트의 경우가 그렇다. 둘다 그림은 그리지 않는, 일러스트 작가들와 함께 공동작업을 하면서 자신들의 상상력을 펼쳐 나가지만 그들이 수 놓은 이야기의 그 감동은 잔잔한 가슴에 파문이 인다고 할까나. 기무라 유이치의 경우 내가 그림책계의 세헤라자데라고 말하고 싶은 작가이다. 어린이 책치고는 긴 분량(총6권)이긴 하지만 (흥, 제발 부탁이야, 영화따윈 잊어줘!), 이건만은 장담한다.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어주는 순간, 하루하루 이 책 읽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고, 결말 무렵에는 코끝이 찡해지면서 눈시울이 붉어진다는 사실 말이다. 어린이 그림책의 이야기 분량은 적지만 그 깊이만은 다른 쟝르 못지 않은 감동을 주며, 어린이책을 위해 뛰어들어 열심히 활동하는 이야기꾼들이 수 없이 많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런 이야기꾼이 대거 활보하는 그림책 세계에서 에릭 칼이 우리 시대에 뛰어난 작가로 남을 수 있는 것은 다른 그림책에서 볼 수 없는 뛰어난 색채감각이 살아있다는 것일 것이다. 그의 그림책 속에 나타난 색은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비비드한 경쾌함이 살아 있다. 그의 색채에서 톡톡 튀기는 듯한 스타가토의 느낌과 상쾌하고 경쾌한 왈츠같은 느낌을 상기할 수 있었던 것은 밝은 색채가 주는 유쾌함에서 기인한 것이리라. 그리고 그의 이러한 색채감각이 그만의 색채가 되었고(어떻게 보면 이러한 색채가 자신의 그림책 세계에서 확립된 뒤에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점에서 클리셰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 놀라울만한 전체적인 색감은 그의 전용색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림책 역사에서 꼭 그의 이러한 색채감만은 집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며 인정해야 할 부분이다. 이렇게 여러가지 색을 쓰고도 부조화스러운 느낌이 안 난다는 것은 그의 색채감이 경지에 올랐다는 것일 수도(아, 그러면에서 볼때 팀 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알록달고하던데, 영화에서 전체적으로 어떤 색을 썼는지 너무나 궁금함).

   

 
(실물은 더 매력적!)그의 그림책에서 배경의 색은 대체로 없다. 콜라쥬와 색을 같이 사용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내 생각에는 화려한 면의 색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과감하게 배경색을 제거한 것일 것이다. 저 화려한 색 뒤로 배경색을 칠한다면 죽도 밥도 되지 않았을 것.
 

에릭 칼이 43년동안  그림책 작가 활동을 하면서 자신만의  색을 확립했다면, 다른 작가들은 어떨까? 최근에 오픈 키드 갔다가 눈에 확 띄어 구입한 중국 그림책 작가의 <모모의 동전>, 전체적으로 여자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짠한 이야기이지만 독자의 감정을 들었다 났다할 정도로 확 잡아버리는 여운이 강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야기가 여리고 섬세한  반면에 이 그림책속의 색은 둔탁하고 색의 농도가 짙다. 개인적으로  색채가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온 그림책이었다. 대체로 일본의 그림책이 밝고 튀지 않는 반면에, 내가 접한 중국 그림책들은 전체적으로 배경이나 화면이 어둡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중국 그림책 작가들의 그림책에서 사용하는 색의 농도가 어둡다는 말이다. 처음엔 수묵화의 영향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촌스럽지는 않지만 에릭 칼의 그림책에서 느낄 수 있는 색의 세련미는 없다. 오히려 색채가 솔직하다고 해야하나. 어린 아이같은 진솔함과 솔직함이 느껴졌다. 어찌나 이야기와 색이 어울리던지.   

  

 
실제 화면은 어둡지만 상당히 매력적인, 오밀조밀하다는 느낌이 드는 그림책이다. 우리의 60년대가 연상되지 않는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제 그림책 작가들도 서양미술사의 연대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서양 미술사가 수 백년간 쌓아올린 문화적인 업적이라면 업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영향속에 배우고 모사하고 숭배되기 때문에, 그림책 작가들이 서양미술사에서 보여지는 색채를 많이 사용하고 있고 자신의 영역속으로 그 색채를 많이 집어 넣으려고 한다. 위의 <모모의 동전>은 어쩜 그 중간 세대의 그림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중국 미술사와 서양 미술사 사이(그러니깐 동서양의 미술사 중간쯤)에서 정체적인 혼란을 겪고 있는.  이 그림책의 일러스트 작가 주청량이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그림책 속의 색채는 매력적인, 상당히 매력적인 것만은 틀림 없다. 그가 어떤 영향 속에 있던 간에 당분간은 이 색채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게 클리셰가  돼도 그림책 속에서 자신의 색을 확립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야기뿐만 아니라 색도 작가의 세계관을 표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모의 동전>에서 분명한 것은 일러스트 작가가  이야기 작가의 글을 완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그리고 자기만의 색으로 표현할 정도로 농익은 작가라는 것이다. 좀 더 일찍 그림책의 일러스트 작가로 데뷔했다면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48년생. 우리 나이로 60이 넘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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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2 15: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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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6 17:0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