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황금가지에서 낸 2권짜리 아서 클라크 단편집은 총 65편이 실려 있다. 하지만 저 위의 원서에 실려있는 클라크의 총단편은 105편. 알라딘의 작품 해설란에는 아서 클라크의 저 단편집의 단편수 104편이라고 소개되어있지만 몇번을 세도 105편. 할 일없이 단편수나 세고 있다고 뭐라 할 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편집광적인 면모일 수도 있겠지만(저는 제 자신이 여러모로 꽤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책을 둘러싼 호기심은 도저히 누룰 수가 없어요. 심지어 전 알라딘의 전설적인 리뷰어 N님의 페이퍼와 리뷰 싸그리 몽땅 다 읽고 그 분이 누군지도 알아낼 정도였으니깐요. 아, 저 왜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어요) 일일히 밥 하면서 식탁에 앉아 다 세워보았다.  하핫,  그러니까 현재 황금가지에서는 먼저 클라크의 단편집 2권를 출간했으며 나머지 41편의 단편은 작년 가을에 나머지 단편들을 뿜빠이해  2권 더 출간한다고 큰소리 치더니만, 아직까진 뻥에 그치고 있다는 이야기.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자만 혹 41편을 한꺼번에 내 1권으로 낼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하니 기다려 봄세. 아직 출간을 기다리고 있는 단편중 하나인 The forgotten enemy 는 예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린 적이 있어 여기에 올려 본다.
1961년 펭귄사이언스픽션 옴니부스에 처음으로 수록.

밀워드교수는 좁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이번만은 분명 꿈이 아니었다. 가슴팍이 파고드는 싸늘한 공기는 여전히 밤의 어둠 속에서 들려오던 그 요란한 굉음으로 메아리치고 있는 듯했다. 그는 두꺼운 모피옷으로 어깨를 감싸고 귀를 곤두세웠다. 죽음의 도시 런던은 정적에 잠겨 있었다.   

밀워드는 침대 밖으로 기어 나와 코크스 몇 덩어리를 이글거리는 놋쇠화로에 던져 넣고는 제일 가까운 창문으로 갔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창문 아래 보이는 눈 덮인 지붇들은 달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그 소리는 천둥소리가 아니었다. 그 소리는 북쪽에서 들려왔고, 그가 귀를 곤두세우고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도 다시 그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그가 일찍이 들어본 자연의 소리와는 달랐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한번 희망을 가졌다. 

사람만이 그런 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영국의 잉글랜드지방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일까? 분진이 온통 하늘을 뒤덮기 전에 과학이 그들에게 주었던 무기들을 이용하여 얼음과 눈을 폭파하여 길을 내며 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육지로, 그것도 북쪽에서 온다는 것이 이상했지만, 그는 새로이 타오르는 희망의 불길을 꺼버릴 상념들은 애써 떨쳐 버렸다. 

20년전 밀워드는 쉬지 않고 내리는 눈을 회전기으로 휘저으며 리전트공원에서 힘겹게 날아오른던 마지막 헬리콥터들을 지켜보았었다. 정적이 그의 주위에 내려 덮였을때까지도 밀워드는 사람들이 북방을 영원히 포기했다고는 믿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때부터 그는 30년을 꼬박 기다렸다. 

그래도 초기에는 라디오를 통해서 이따금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남방과의 유일한 접촉수단이었단 라디이가 이제 온대로 바뀐 적도지방을 식민지화하려는 싸움에 관한 뉴스를 들려 주었던 것이었다. 그는 그 속에서 벌어진 전투의 결과는 알 길이 없었다. 라디오가 침묵을 지킨 지도 이미 15년이 되었다.  

밀워드는 꼭 필요한 때에만 대학 건물 밖으로 나갔다.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이 도시를 탈출하면서 엄청난 물자를 남기고 떠났으므로, 지난 20여년 동안 그는 아무도 없는 이웃가게에서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가 모아 두었다. 사실 그의 생활은 여러모로 사치스럽다고 할 만했다. 영문학 교수치고 옥스퍼드 거리의 모피상점에서 가져 온 그런 옷들을 입어 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밀워드가 배낭을 메고 둔중한 출입문을 열었을 때, 맑은 하늘에서 해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한때는 굶주린 개들이 무리지어 이 일대를 설치고 다녔었다. 지난 10년 동안에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는 밖에 나갈 때는 여전히 권총을 지니고 다녔다. 

햇살에서는 열기를 거의 느낄 수 없었다. 그 즈음 태양계가 통과하고 있던 우주의 분진띠가 햇빛의 밝기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그 힘은 깡그리 거의 빼앗고 말았던 것이다. 이 지구가 온기를 최찾을 수 있을때가 10년 뒤일지 1000년 뒤일지 아무도 몰랐다. 그래서 문명은 "여름"이라는 낱말이 아직 실감이 나는 땅을 찾아 남쪽으로 떠났던 것이다.  

지붕 위에 눈이 위태롭게 쌓여 있고, 추녀끝에는 칼처럼 끝이 뽀족한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집들을 피하면서 밀워드는 북쪽으로 가다가 드디어 자기가 찾고 있던 가게에 당도했다. 산산조각이 난 창문 위의  글씨는 예나 다름없이 선명했다. "젠킨스부자상회, 라디오와 전기제품. 텔레비젼 전문." 

2층의 작은 방은 부서진 지붕 틈으로 눈이 약간 흘러 들어오긴 했지만, 10여년 전 그가 마지막으로 왔을 때나 달라진 것이 별로 없었다. 올웨이브 라디오가 여전히 탁자 위에 놓여 있었고,  고맙게도 전력이 아직도 남아 있는 건전지들도 있었다. 사람과 기계들이 돌아오고 있다면, 사람들이 서로간에 혹은 그들의 출발지와 교신하느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인내심을 최대한 발휘하며 밀워드는 30년전에는 고함치는 목소리와 급하게 타전되는 모르스 부호로 뒤범벅이 되었던 단파대를 찬찬히 훑어 나갔다. 어떤 소리든 찾아내려고 열심히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조심스럽게 가슴을 품고 있던 그 한가닥 희망이 점차 그의 마음 속에서 스러지기 시작했다. 한 때 떠들썩하게 북적대던 에테르의 바다에도 이 도시와 마차나가지로 정적만이 깃들어 있었다. 

자정이 지나자 건전지의 전력도 동이 나고 말았다. 밀워드는 더 찾아볼 마음이 없었으므로 모피 옷 속에 몸을 웅크리고 어지러운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가 집으로 돌아가려고 밖으로 나섰을 때는, 인적 없는 하얀 도로에 열기 없는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자꾸만 덮치는 구출의 환상에 놀라 잠을 설친 탓으로 그는 몹시 지쳐 있었다. 

하얀 지붕 위로 굴러오는 아득한 청둥소리에 갑자기 고요가 깨졌다. 길 양쪽의 건물들에서 작운 눈사태가 일어나 넓은 거리로 눈이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는 다시 사방이 고요해졌다. 그 소리는 흔한 폭발음치고는 너무 길게 끌었다.- 그는 다시 꿈을 꾸고 있었다- 그것은 멀리서 들려오는 원자폭탄의 폭음 같았다. 원자폭탄이 한꺼번에 100만톤의 눈을 날려 버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의 희망이 되살아났고, 간밤의 실망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순간 멈칫거리다가 그는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 했다. 옆 길에서 나온 거대하고 허연 무엇인가가 그의 시야에 갑자기 들어왔다. 한순간 그의 마음은 눈으로 본 현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를 덮쳤던 마비가 풀리자 그는 별로 효력이 없을 것 같은 권총을 더듬어 찾았다. 머리를 이리저리 휘접고 뱀처럼 꿈틀거리며 최면에 걸린 듯한 걸음걸이로 눈을 가로질러서 터벅터벅 그에게 다가오는 있는 것은 거대한 북금곰이었다. 

밀워드는 들고 있던 물건들을 내팽개치고 달아났다. 그는 가장 가까운 건물을 향해 비틀거리며 뛰어갔다. 다행히 지하도 입구가 불과 15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마비된 손가락으로 쇠로 된 문을 열려고 애를 썼다. 한순간 그는 공포에 질렸다. 그는 가까스로 문을 조금 밀어붙이고, 비좁은 틈으로 겨우 몸을 밀어 넣었다. 

혼비백산한 밀워드 교수는 한 피선처에서 다음 피신처로 옮겨가며 3시간 뒤에야 대학 건물로 돌아왔다. 이 오랜 세월동안 자기 혼자만이 이 도시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알았다. 

그 주일이 끝날 무렵, 그는 북방의 동물들이 이동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번은 아무소리도 내지 않고 쫓아오는 이리떼에 쫓기며 순록 한마리가 남쪽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았고, 밤 중에 이따금 목숨을 걸고 싸우는 동물들의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무엇인가가 짐승들을 남쪽으로 몰아가고 있었으며, 그 사실이 그를 한층 더 들뜨게 했다. 이 사나운 생존자들이 사람 이외의 다른 무엇을 피해 날아날 리는 만무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기다림의 긴장이 밀워드의 정신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걸핏하면 그는 모피옷으로 몸을 감싸고 몇 시간이고 멍하니 앉아서 구조대가 다가오는 꿈을 꾸었고, 사람들이 잉글랜드로 돌아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겼다. 원정대가 북아메리카를 떠나 대서양의 얼음판을 건너 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항공 정찰 한번 없지 않았는가? 비행기술을 그렇게 빨리 잊어버릴 수 있으리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이따금 그는 그 오랜 세월동안 잘 보존해온 서가를 따라 걸으면서 무척 아끼는 책에 대고 소곤소곤 말을 걸기도 했다. 낮이 점차 길어지고 햇빛이 더 밝아지자 그는 때때로 시집 한 권을 뽑아들고 옛날에 좋아하던 시들을 다시 읽어보곤 했다. 그러다가 높다란 창문으로 다가가서 이 세상에 걸려 있는 마법을 풀기라도 하려는 듯 내다보이는 지붕 위에다 대고 목청을 높여 주문 같은 말들을 외쳐대곤 했다. 

잃어버린 여름의 망령들이 돌아와 떠들기라도 하듯이 그 무렵 날씨가 조금 따뜻해졌다.  북쪽에서 다가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더 가까이 와 있고,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수수께끼같은 굉음이 천둥치듯 도시 위로 울려 수 많은 지붕위의 눈을 밀어내리곤 했다. 

밀워드에게는 전보다 더욱 강렬한 희망과 공포가 번갈아 가며 나타났다. 매일 아침 그는 탑의 제일 높은 창문으로 가서 쌍안경으로 북쪽 지평선을 살폈다. 

그렇게 북쪽을 살피는 일도 그 짧은 여름이 지나가면서 끝이 났다. 밤중에 들리는 우르릉 거리는 소리는 전보다 휠씬 더 가까이에서 들렸지만, 그 소리가 이 도시에서 얼마나 떨어진 곳에서 나는 소리인지는 짐작할 수 없었다. 위협을 받고 있는 어느 성채의 성벽에 서 있는 감시병이 쳐들어 오는 적군의 창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햇살을 처음 보았을 때처럼, 그 순간 밀워드는 진실을 알았다. 공기는 수정처럼 맑았고, 언덕은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예리한 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가 깜빡 잊고 있었던 적이 밤 사이에 마지막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최후의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비운을 맞은 언덕의 능선을 따라 반짝이는 그 무서운 빛을 보슨 순간, 밀워드는 마침내 그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옛 고향 북쪽을 떠나, 먼 옛날 그들이 차지했던 땅으로 의기양양하게 되돌아 오고 있는 그들은 빙하였다. 

1990년 1월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린 아서 클라크의 <The forgotten enemy >를 20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보니, 이상하게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가 오버랩. 히로시마 원폭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니네 일본 샘통이다,라고 생각했지 니네들 그 거 참 안됐다라고 생각해 본적은 없었으며 원폭의 피해로 인해 2차대전의 주역이 너구리 둔갑술처럼 일본이 피해자라는 식으로 말하는 일본 지식인들에 대해 한마디로 밥맛없었다는 것이 더 솔직한), 원폭의 후푹풍이 서구 작가들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오히려 서구 작가들이 더 인류에 대해 그리고 미래의 테크놀로지에에 대해 더 회의적이며 절망적으로 생각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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