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CJ그림책 작가로 선정된 작가는 크베타 파코브스카라는 아주 어려운 이름의 작가이다(맨날 외워야지 하면서 잘 안된다는. 특히 무슨무슨 스키는 더더욱 외우기가 쉽지 않다). http://www.yes24.com/ChYes/ChYesView.aspx?title=003001&cont=3985 에서 그녀와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오랜만에 그녀의 그림책을 다시 뒤적여 봤다. 그림책 역사에서 그녀의 최고 업적이라면 아마도 추상을 그림책에 도입한 것일 것이다. 그게 뭐 별거인가? 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그림의 형태에서 추상을 도입, 시도를 했다는데 점수를 주고 싶다. 유럽그림책에서 이야기가 추상적인 경우는 많다. 허나 이미지 자체가 추상인 경우는 아마도 크베다 여사가 처음이 아닐런지. 

 내 자의적인 아주 주관적인 해석일테지만, 그림책과 추상은 궁합이 잘 맞는 편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키워보면 알겠지만 아이들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예를 들면, 아이들은 사물을 보고 그림을 그릴 때 아주 그럴싸하게 구체적으로 그릴려고 노력하지, 추상부터 그리지 않는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추상처럼 느껴지는 것은, 단지 테크닉이 따라주지 않을 뿐이다. 아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사물을 구체적으로 사실적으로 그리고 싶어한다. 저 위의 인터뷰를 읽고 어느 정도 짐작하겠지만 아이들은 어느 정도 커야 추상성을 이해하고 납득하기 시작한다. 추상을 이해하는 단계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그 나이에 다달았다고 해서 완전히 추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이것도 자의적인 해석이지만, 그림의 역사에서 추상의 등장은 아주 혁명적이다,라고 생각한다. 추상의 등장은 그림 속의 이야기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일단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는 추상화면은 전의 이야기도 다음 이야기도 이끌어 낼 수 없다. 단지 내가 마주보고 있는 추상화면은 우주 공간처럼 무한 확장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냥 그 뿐이다.몬드리안의 그림이나 잭슨 폴락의 추상 화면을 보면서 당신은 다음 장면을 연상할 수 있는가. 사실 나는 다음 장면을 연상하기 보다는 내가 보는 그 추상화면의 무한확장만 머리 속에 그릴 뿐이다.  

이야기가 없는 추상화면을 이야기 그림책에 도입했다는 자체가 아니러니하다고 생각했다. 그림책을 보면 알겠지만, 그녀가 그려내는 추상화면은 이야기를 보충해주는 일러스트가 아닌 단지 독립된 추상화면일 뿐이다. 하나의 이야기와 독립된 추상화면이 그림책 속에 상화연관이나 보완이 아닌 각자의 노선을 가지고 나열되어 있을 뿐인데,이러한 시도가 얼마나 신선하고 새로운 실험인지. 그리고 그 실험이 도전적이었뿐 성공적이지 않다라고 하더라도 난, 그녀의 이런한 접목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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