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깐한 독서본능 - 책 읽기 고수 '파란여우'의 종횡무진 독서기
윤미화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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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좀 읽는 사람들 사이에서 즐기는 독서문답이 있다. 책에 관한 질문놀이인데 그 중 첫번째 질문은 "책은 당신에게 무엇인가?" 이다. 대답은 다양하다. 책은 영혼 치료제이거나 친구이며, 세상과의 또 다른 통로인가 하면, 지식의 허영기이고, 밥 먹고 똥 싸기처럼 일상적인 일, 또는 돈이기도 하다. 최소한 책을 읽고 글을 써서 밥을 버는 직업이라면 책은 곧 돈이고 밥이다. 누군가에는 책이 세상이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p71 )

집의 방 한칸 네 면 빼곡히 책이 둘러싸여 있다. 나와 아이들이 책방이라고 부르는 공간. 책방으로 만들려고 작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책을 한권 두권 사다보니, 책이 그 방을 전부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언젠가 책방이 된 방을 뿌듯하게 흝어본 후, 아들에게 바슐라르의 그 유명한 문구(책이 많은 곳, 그 곳이 천국이 아닐까! 했던 문구)를 표절하며, 민준아, 이 방이 천국의 책방 같지 않니? 하고 물었더니, 리모컨과 베개를 벗삼으며 게임 유흥에 빠진 우리 아들이 하는 말, 엄마, 난 책 읽는 게 지옥이야. 땡땡땡! 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지만,  

문득 아들의 말에, 천국과 지옥이 상대적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사람들은 꿀과 젖이 흐르는 땅 그리고 살기 좋은 곳을 천국이라 비유하며 그 천국으로 들어가기 위해 기를 쓰지만, 몸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누군가에겐 건들건들 놀 수 있는, 꿀과 젖이 흐르는 곳이 지옥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말이다.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그 누군가에게 책이 많은 천국은 지옥이고 음주가무를 싫어하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 책은 천국 그 이상일 수 있다는 말이다. 천국과 지옥은 내가 처한 관점과 상황에 따라 언제나 그 모습을 바꿀 수 있으며 내가 실존해 있는 이 곳이 천국일 수 있다라는 말도 된다(참고로 난 도킨스와 윌슨빠로서 무신론자이다). 

그렇다. 천국은 저 멀리 있기보다는 내 가까이 있으며 어쩌면 내가 천국의 한칸에 살고 있는데 그것을 깨달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투정부리며 살고 있지만, 사실 현재 난 내 삶의 그 어느 때보다 책친구가 많다. 그것만으로 천국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부부 싸움이 끊일 날이 없었던,  평온치 못했던 10대시절 나의 유일한 도피처이자 안식처는 책이었지만, 그 책을 매개로 소통할 수 있는 친구는 없었다.  끽해야 대학시절 책을 좋아하는 친구를 한 사람 만만나, 시를, 소설을 논했지만 다른 곳에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것이 생각보다 쉬운 것은 아니었다. 차라리 하늘의 별을 따는 것이 더 쉬웠으리라. 책을 읽는 다는 것 자체가 고독을 수반하는 것인데, 소통까지 막혀 있으니 언제나 외로웠다. 그리고 외롭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달리 외로움을 면할 뽀족한 방법은 없었다. 저기 커트 보네거트 식으로 말하면 그렇게 가는거지 정도. 그러던 차에 결혼을 하고 애를 낳으면서 한동안 책을 멀리했었다. 애 키우기 바빠 책 자체에 관심을 갖지 않다가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구입해 읽어주기 위해서 들어간 인터넷 서점에서 의외의 공간을 발견했다. 알라딘 서재라는 곳. 나에겐 천국의 발견이나 다름 없었다. 그 곳엔 책에 미쳐 있는 사람들이 천지였으며 그들의 책내공은 최상 고수였다. 그 때 내가 느낀 내 독서 이력의 하찮음이란. 잊고 지냈던 책에 대한 자극이 일었고 그 자극은 태풍급이었다.

각각의 쟝르마다 깊이 있는 내공을 보여주며 쓴 그들의 리뷰들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전문비평가들도 그렇게 하지 못 했을 것이라 장담한다. 그들의 리뷰을 보고 책을 사 들이면서, 파란여우님의 비유인 고구마 줄기처럼  캐도 캐도 책 줄기는 끊임 없이 나왔으며 그 줄기는 영원히 다 캐내지 못 할 것이다,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실제 나는 책을 좋아해서(나와 만나 이야기해보면 거의 90%는 책이야기일정도로)  책리뷰를 예스든 알라딘이든 상관없이 거의 다 섭렵했는데, 리뷰어 각자의 개성적이고 매혹적인 글들이 많았으면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리뷰는 단순히 줄거리만을 써 놓은 리뷰(줄거리 들어간 리뷰 진짜 싫다!)가 아닌 자신의 생각이 논리정연하게 (아니 엉뚱하더라도) 들어간 리뷰를 좋아한다.  

그러면에서 파란 여우님의 리뷰는 복잡다단하다. 그녀의 책읽기는 단순한 책읽기의 기록이 아닌 좀 더 깊이 뿌린 내린 고구마 줄기를 끌어올리며 잡다한 뿌리는 쳐 버리는, 책의 핵심과 자신의 사유가 어우러진 그런 리뷰이기 때문이다.  수 년간 그녀의 리뷰를 접하면서 그녀의 리뷰 대상책들이 점차 소설에서 인문사회과학으로(그렇다고 완전히 소설이나 여타 장르에 손을 뗀 것은 아니지만, 파란여우님 덕에 마르케스가 한동안 인기 있었던 것을 상기해보라!) 나아가는 것을, 그녀의 독서 이력이 점차 그라데이션처럼 진해지는 현상을 목격할 수 있었다. 다만 이 책에서 그녀 자신의 사유의 흔적이 연대기 순이 아닌 한국소설, 외국소설, 인문사회과학이다 보니 블로그에서 보여준 그녀의 사유의 연대기가 어떻게 하루 하루 다르게 통찰력을 획득했는가(5년간 천권이다. 일년에 이백권의 책을 읽어내면서 책에서 얻은 지식과 그녀 사유의 짝짓기란!)),를 맛 볼수 없다는 것이 오랜 독자의 아쉬움이긴 하지만. 리뷰 한편마다 그녀가 보여준 냉철하고 힘 있는 책 읽기와 상호연관된 텍스트에 대한 그녀의 사유는 부족함이 없다.  

난 많은 파워블러거들의 책 출간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우석훈은 블러거들 자신의 블로그글 모음인 책제작을 못마땅해 하지만 파워블러거들이 많을 수록 한 곳에 집중된 기득권 세력(특히나 문단세력)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정일작가를 예를 들어볼까. 그는 짧은 가방끈때문에 문단에서 철저히 외면 받는 작가중 한명이다. 비평가들은 그의 시나 소설에서 보여주는 피폐한 삶의 진정성은 보지 못한 채 에로시나 에로소설의 키취작가로 무시하곤 했다. 그리고 그 설움은 계속되고 있지만, 그의 문학을 알아보는 블러거들이 그의 문학 이야기를 하면서 그의 위상은 높아졌다. 특히나 파란여우님의 장정일 작가에 대한 분석은 그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였다. 파란 여우님의 장정일 작가의 애정 넘치는 글이 뜨면서 장정일 작가의 위상은 한층 더 높아졌으리라. 그리고 높아졌다.그녀의 글이 얼마나 파급효과가 컸는지 실감할 것이다. 절대로 파워 블러거가 아니면 할 수 없는 힘이다. 파워블러거들의 활약은 새로운 문학 좀더 넓게 말하면 글쓰기의 공간을을 확장시키는 것이며 기존의 문단의 권력분산을 도모한다. 아,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지.  

만약 요 몇년 동안의 블러거들의 농축된 글, 특히나 파워풀한 글이 어떤 글이고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는 글이 어떤 형식으로 쓰여졌는지 알고 싶다면, 그리고 읽을 거리도 많고 볼 것도 많은 글 중에서 빈틈 없는 지식으로 채여진 글을 발견하고 싶다면, 그리고  여러 분야의 경계를 뛰어 넘으며 사회 전반의 통찰력을 보여주는 그런 글을 읽기를 원한다면,  파란 여우님의 이 책을을 읽어보시라. 분명 당신도 여우에게 홀리고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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