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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나무 ㅣ 비룡소의 그림동화 72
클로드 퐁티 글 그림, 윤정임 옮김 / 비룡소 / 2001년 11월
평점 :
오랜만에 큰 애가 읽어달라고 가져 온 클로드 퐁티의 <끝없는 나무>를 읽어주면서 이런 추상적인 성장 그림책을 왜 좋아할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미지만 남을 뿐 구체적인 의미는 덩어리채 삼켜버렸을텐데,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일단 아이에게 책을 다 읽어주고, 이 책이 왜 좋아?하고 물었더니 아이는 말을 찾지 못하고 우물쭈물 말을 삼킨다. 내 생각에 아이는 퐁티의 웅장한 일러스트와 함께 상징적이며 서사적인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을 단순히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생각해 보면, 큰애는 일상의 구체적인 모습을 담은 일본그림책도 좋아했지만 이런 추상적인 그림책도 마다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독일 그림책 작가 야노쉬나 야니쉬의 작품들은 되풀이해서 읽어달라고 했었다. 유럽 그림책 작가들에 대한 나의 인상은 여타의 유아그림책은보다 좀 더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다, 라는 것이다. 이야기가 열려 있어 이야기의 층은 여러겹 쌓여 있는 것처럼 보이고 (야노쉬의 작품들이나 야니쉬의 할아버지의 붉은 뺨을 보시라!) 구체적인 해석보다 점점히 추상적인 이미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고 일러스트는 금자만큼이나 불친절하다.
수년동안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아이들은 자신과 동일시 할 수 있는 캐릭터가 나오는 일본(이나 영어권) 그림책을 더 선호한다.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결부된. 처음에 일본 그림책을 좋아하는 이유가 같은 동양권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막연하게 추측했는데,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결론은 일본 그림책에 나오는 캐릭터의 행동이나 심리를 자신에게 쉽게 구체적으로 동일시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생각하고 내가 행동하는 것을 이 그림책의 아이도 하고 있어! 그래서 엄마인 나도 일본그림책의 일상적인 따스함, 넉넉함에 빠져들었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그러나 아이의 선호에 따라, 일상을 구체적으로 그린 그림책이든 모호하고 애매한 이야기를 담은 추상 그림책이든 간에 어떤 그림책이 더 좋은가라고 하는, 그림책에서 가치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위험하다. 아이는 이야기가 구체적이든 추상적이든 상관없이 이야기의 이미지를 쫓아다니며 언젠가 나이가 차면 그 추상적인 상징성이더라도 구체적으로 이해할 때가 오기 때문이다. 이야기하는 방식이 일본그림책처럼 구체적이어서 아이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고 유럽그림책처럼 추상적이어서 아이가 의미를 당장 파악하지 못해도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면 이해할 날이 온다는 것이다. 저울에 균형을 맞추듯 그렇게 구체적인 그림책과 추상성을 띤 그림책 모두를 아이들에게 어릴 때 읽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는 생각이 든다.
이 그림책의 주인공 소녀 이폴렌이 성장하면서 겪을 수 밖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그녀는 상상의 모험(?)을 통해 슬픔을 극복하는 것처럼 보인다)과 모험과 대결을 통해 한층 성숙된 이폴렌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모험이야기의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아이들이 이 이야기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이폴렌의 성장 이야기는 추상에 가깝다. 큰 이야기 줄기는 이폴렌이 할머니의 죽음으로 할머니에 대한 상실감과 슬픔을 내면적으로 극복 과정이 모험이라는 이야기로 뻗어나가지만, 아마도 아이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이폴렌의 내면의 성장 모험은 해리포터식의 아슬아슬한 선과 악이라는 칼의 대결이라기 보다는 심리적이고 내면적인 투쟁 기록에 가까워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것만 뭉쳐 덩어리로 받아들일 것이다. 클로드 퐁티는 그 한 소녀이 내면적으로 방황하는 성장이야기를 거대하고 웅장한 스케일의 이미지로 그려내고 있으며 써클 형식으로 제자리로(다시 이폴렌의 집에서 출발해서 다시 이폴렌의 집으로 회귀) 돌아가게 한다. 이 책은 편안하고 안락한 어린 시절의 허물을 벗고 앞으로 아이들이 겪게 될 성숙한 내면의 이야기를 앞 당겨서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아이들에게 읽어줄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다.
덧: 8살 짜리 딸애가 더 어렸을 때 큰 애한테 이 책 읽어줄 때마다 재미없다고 자리를 피하곤 했는데, 며칠전부터 계속해서 읽어달라고 가져오네. 이제 슬슬 크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