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로버트 레드포드, 페이 더너웨이 주연의 <콘돌>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시드니 폴락 감독의 75년작인데, 뒤늦게 우리나라에서는 80년대 후반 아니면 90년대 초반에 개봉했거나 아니면 비디오로 출시되었을 것이다. 이 십년 전, 그 때에도(물론 지금도) 페이 더너웨이는 <보니와 클라이드>의 명성 그대로 가지고 있었고, 이 영화도 로버트 레드포드라는 아이콘보다 보니역을 맡았던 페이 더너웨이의 보니 아이콘에 끌려 선택한 영화였다고 기억된다.  

솔까해서 <콘돌> 줄거리도 캐릭터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이 영화의 한 장면, 이십년이 넘어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는데, 바로 저 장면 로버트 레드포드와 페이 더너웨이의 섹스 씬이다.  흐흐흐  이십년이 넘어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 아줌마가 참 주책이지 싶은데, 그게 참.... 그 섹스씬을 기억하는 이유가 두 남녀주인공의 19금의 야하디 야한 노골적인 섹스 씬이라든가 아니면 세계 영화사에 길히 남을 만큼의 파격적인 혹은 아름다운 정사씬이어서 그런게 아니고 그 두 남녀 주인공의 첫 만남에서 섹스까지의 과정이 참 흥미로웠기 때문이었다. 암튼 두 주인공이 섹스를 하게 된 대강의 경위는 이렇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누군가에서 쫓기는 과정에서 페이 더너웨이를 만나고 그는 그녀와의 첫 만남에서 자신이 쫓기는 처지임을 그리고 왜 쫓기는 지를 말하고 나서 둘은 첫 눈에 불꽃이 튀기듯 튀겨 서로에게 이끌려 잠자리에 드는데, 이런 우라질! 성적인 면에서는 꽉 막혔던 나로서는 불과 몇 시간만에 원나잇스탠드 분위기를 도저히 이해할 수 가 없었던 것이다.  아니 도대체 왜? 일측일발의 쫓기는 순간에 한가롭게 섹스나 하고 말이야, 로버트 레드포드 쫓기는 몸 맞아!  지네들이 만나봤자 2,3시간이구만, 그 짦은 시간에 심각한 대화 몇 마디 나누고 서로의 처지를 이해했다고  저래도 되는 거야. 궁시렁 궁시렁거렸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생각해 보라. 두 남녀가 잠깐 동안의 이야기 후 생뚱맞게도 이어지는 장면이 섹스씬이라면, 당신이라면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 땐 그 장면이 불필요한 장면 혹는 영화의 흥행을 위한 눈요리라고 생각했다. 섹스 심벌로서의 보니와 선댄스 정도.  

그러나 막 20살로 접어들 무렵에 봤던 그 영화의 이해불가 섹스 씬은 나중에 나이가 들어 이것저것 다양한 책을 읽고 나서 섹스 자체가 최고의 긴장완화제라는 것을 알았고 그들이 왜 그 상황에서 섹스를 하게 되었는지를 알 게 되었다.  극도의 신경이 최고조에 달할 때의 섹스야말로 최고의 이완제라는 것을 말이다. 나이가 차면 알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고 누가 그러더만. 그 때처럼 그 말이 와 닿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뇨, 틀렸어요. 프로 같은 거 아니에요. 변태도 아니고. 그 냥 일반 시민이에요.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 그냥 솔직하게 이성과 성행위를 하고 싶을 뿐이라구요. 특이한 것도 아니고 지극히 정상적인 거잖아요. 어려운 일 하나 끝내고 해가 저물어서 가볍게 한잔하고 낯선 사람과 섹스하면서 발산하고 싶다구요. 신경를 좀 쉬게 하고 싶어요. 그게 필요해요. 당신도 남자라면 그런 기분 잘 알겠죠?"(135p)  

혹 이 책을 읽고 이 글을 읽는 분들중에서 이 장면에서 므훗할런지도 모르겠다. 나는 일큐팔사의 아오마메편을 읽으면서 문득 예전에 이해불가였던 콘돌의 섹스씬과 그 씬에서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나온 페이 더너웨이를 떠올리며 아오마메에 빠져들었다. 그렇다고 아오마메와 페이 더너웨이의 이미지가 오버랩 된 것은 아니다. 하루키의 글쓰기가 아마추어 글쓰기는 아니니깐. 하루키의 문장은 똑 떨어지는 맛에 읽는다.  군더더기 없는 그의 캐릭터 묘사는 비슷한 이미지가 끼여들 여지가 없으며 페이지를 넘길 수록 빛을 발한다.

아오마메는 현관에 걸린 전신 거울 앞에서 옷차림에 빈틈이 없는지 확인했다. 그녀는 거울을 마주하고 한쪽 어깨를 가볍게 위로 쳐들며 <화려한 패배자>에 나온 페이 더너웨이처럼 보이지 않으려나, 하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 영화 속에서 차가운 나이프처럼 냉철한 보험회사 조사원으로 나온다. 쿨하고 섹시하고. 비즈니스 정장이 매우 잘 어울린다. 물론 아오마메는 페이 더너웨이처름은 보이지 않지만, 약간은 거기에 가까운 분위기는 있다. 적어도 없지는 않았다(일큐팔사 2권, p547)

일큐팔사를 읽으면서 나는 덴고보다는 여성 캐릭터인 아오마메에 휠씬 더 이끌렸다. 덴고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덴고는 덴고대로 매력적인 캐릭터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같은 여자로서 덴고보다는 아오마메, 그녀의 심리를, 행동을 더 이해하기가 쉬웠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루키, 그는 아오마메 캐릭터를 어디에서 얻은 것일까. 덴고야 뭐 같은 남자니깐 그렇다 치고, 여성 캐릭터인 아오마메의 심리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정확하게 들어맞는 여성의 보편적인 감성을 상당히 많이 보유하고 있다. 남자 작가가 한 여성 캐릭터를 정확하게 묘사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신발 바꿔신기 정도로만 갖고는 그 정도의 정확한 묘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 자신과 대입시켜 하루키가 묘사하는 아오마메의 성격이나 심리에 움찔, 정확하게 들어 맞아 때가 다 있었으니깐. 수십년 동안의 여성 잡지를 빌려다 봤나? 아니면 영화를? 마누라? 젊은 처자들과의 인터뷰? 인터뷰는 젊은 처자들이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자료로는 여성의 보편적인 감성과 심리를 묘사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자료를 근거로 아오마메라는 인물을 창출해 낼 것일까. 일큐팔사의 사건 전개를 따라가다보면 나의 긴장은 극에 달하고 그 긴장은 심장을 오그라뜨리며 폭발해 버릴 것 같았다. 그 내부적 폭발 움직임이 기이한 사건 자체의 의 전개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생생한 캐릭터 라인 때문인지 잘 모르겠지만, 하루키가 묘사하는 캐릭터는 그의 소설에서 보여주는 전형적인 캐릭터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으로 먹혀든다. 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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