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타가와 상을 타면 평판이 높아져. 세상 대부분의 인간들은 소설의 가치 같은 거 거의 몰라. 하지만 세상 흐름에서 뒤떨어지고 싶지는 않지. 그래서 상을 타고 화제가 된 책은 일단 사서 읽어봐. 작가가 여고생이라면 더욱더 그렇지. 책이 팔리면 상당한 돈이 돼. 돈을 벌면 셋이서 적당히 나누자구. 그건 내가 무리 없이 잘 처리할 거야" 

"무슨 돈을 바라고 이런 일을 하려는 게 아니야. 내가 바라는 건 문단을 조롱해주자는 거야. 어둠침침한 동굴 속에 오글오글 모여서 서로 칭찬하고 핥아주고 서로의 발목을 붙들고 늘어지면서 한편으로는 문학의 사명이 어쩌고 저쩌고 잘난 소리를 주절거리는 한심한 자들을 마음껏 비웃어주고 싶어. 시스템의 뒤통수를 치고 들어가 철저히 조롱해 줄 거라고. 유쾌할 거 같지 않아?"

하하하, 하루키가 문단 경력 30년이 되도 아쿠타가와 상은 못 받은 것으로 아는데, 하루키가 단단히 일본문단에 삐졌나보네.  카프카상 이후, 매년 노벨문학상까지 거론된다는 하루키도 자국 문단에서는 찬밥 신세라 이 말이지. 상이 뭐 별건가 싶은데, 하루키도 나이가 드니 좀체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순수문학자들이 아니꼬운가. 하루키의 경우는 아는 분의 말에 의하면 미국 서점에서도 외국코너가 아닌 서점 중앙에 꽂혀 있을 정도로 인지도나 인기면에서 상당하다고 하던데 말이야. 근데 어쩜 저동네나 이동네나 문단이 돌아가는 사정은 쌍동이처럼 똑같은지 몰라. 서로 칭찬하고 핥아주고 약간의 비난의 소리만 들어도 신경질내면서 비난자를 합세해서 공격하고 따 시키고.... 역시 세를 만드는 게 중요해. 

나도 역사책 읽는 게 좋아요 역사책이 가르쳐주는 건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기본적으로 똑같다는 사실이지요. 복장이나 생활양식에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우리의 인간이 생각하는 것이나 하는 일에는 그리 큰 변화가 없어요. 유전자 입장에서는 인간이란 결국 단순한 탈것에 불과하고 거쳐가는 길에 지나지 않는 것이에요. 그들은 말이 움직이지 못하면 또다른 말로 바꿔타듯이 세대를 건너 우리를 타고 건너가지요. 그리고 유전자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이냐하는 건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가 행복하건 불행하건 그들은 알바 아니지요. 우리는 그저 수단에 지나지 않으니까. 그들이 고려하는 것은 무엇이 자기들에게 가장 효율적이냐는 것뿐이에요(436p). 

노부인의 말처럼 만일 우리가 단순히 유전자의 탈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어째서 우리 인간 중 적지 않은 자들이 그토록 기묘한 형태의 인생을 살아가는 걸까. 우리가 심플한 인생을 심플하게 살고 쓸데없는 건 생각하지 않고, 그저 생명유지와 생식에만 힘을 쏟으면, DNA를 전달한다는 그들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 될 게 아닌가. 인간들이 복잡하게 굴절된, 때로는 너무나 이상하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종류의 삶을 사는 것이, 유전자에 과연 어떤 메리트가 있다는 것일까(524~525p).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를 처음 읽었을 때만 해도 이게 도대체 뭔 말인지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읽다가 걍  내려 놓자,라고 몇번을 망설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휙 던져버릴 수 없는 매력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그의 유전자에 대한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유전자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없다면 생각해 낼 수 없는 그런 깊이를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현재의 나는 dna의 숙주일뿐이다. dna는 영원불멸한 존재이며 내 몸 속에 dna를 구성학 있는 것이 아니고 나는 dna의 일부일뿐이다. 우리 인간은 dna의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스쳐지나가는 탈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리차드 도킨스의 유전자 이론은 실로 놀라운, 감탄스러울 수 밖에 없는 하지만 그의 이론을 읽으면서 현재 살아 가는 나란 존재는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에 대해 깊은 회의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루키가 변했다. 지금까지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나는 하루키야말로 인문학적인 세계관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 나 또한 자연과학 책을 탐독한지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전 작품들에서 자연과학적 세계관이 얼마나 표출되었는지 알 수는 없다. 일큐팔사 읽으면서 틈틈히 그의 전작품을 뒤적여보고 있지만 자연과학적인 세계관이 드러난 대목을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다. 일큐팔사에서 그는 리처드 도킨스의 유전자 이론을 무단 사용하고 있으며, 그의 관심타가 진화론으로 발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들이다. 게다가 도킨스의 무종교의 강조와 일큐팔사가 다루고 있는 사이비 종교에 대한 대비는 암시하는 바가 크다. 2권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지만, 하루키가 강조하는 것이 도킨스처럼 무종교성인지 아니면 종교에 대한 구원인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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