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앤오더의 프로듀서 딕울프를 주목하게 된 것은 그가 프로듀서하고 있는 로앤 오더라는 성범죄드라마 특유의 자극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연히도 테레비에서 처음 로앤오더 성범죄전담반을 봤을때만해도, 소재의 선정성과 자극성때문에 적잖은 반발심을 불러 일으켰다. 뭐 사람들의 성적 호기심이나 만족시킬만한 저질 소재를 다루면서까지 시청률을 올리며 돈 벌고 싶을까하는, 소재의 한계를 모르는 미드라마의 소재 자유에 대해 한탄과 함께 다소 경멸감을 드러냈었다.  

솔직히 로앤오더 성범죄전담반의 성격을 깊히 파악하지 못하고 그 드라마를 처음 접했을 때는 그 드라마는 단순히 눈요기, 일반 시청자들의 몰래 들여다보기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그런 얄팍한 상술의 드라마일지도 모른다는 선입관을 깨기가 쉽지 않다. 나 또한 그랬다. 어째든 자극적인 범죄에 대한 호기심이 선정적인 소재를 재미로 선택했다는 도덕적인 반발심을 누르고 시청하게 되었으니깐.  

하지만 이 드라마는 결코 호기심의 욕망을 충족시키며 즐거운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유희의 드라마가 아니다. 우리 주변에 일어날 수 있는 혹은 일어난 성범죄 사건을 재구성하여 형사드라마답게 사건을 해결함과 동시에 더 나아가 그 사건이 법정에서 어떻게 다루어 지는가를 심도있게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드라마의 성격상 시청자들에게 순간적이며 자극적인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시작된 범죄는 그 범죄가 미국의 사법 체계에게 어떤 형벌을 받을지까지 보여주고 있지만, 이 드라마의 핵심은 바로 지금부터이다. 미국의 주마다 다른 사법체계에서 그 법이 어떻게 다루어 지는지, 그리고 범인이 어떻게 그 법망을 피해 자신의 형벌을 줄이고 교묘히 피해 나갈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친할아버지에게 지속적인 성폭력을 당하고 있음데도 불구하고 뉴욕법에 따라 성폭행을 당한 소녀는 친할아버지에게 다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주법이나 연쇄 살인을 저질러 사형이나 무기징역이냐의 기로에서 변호사들의 농간에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날지도 모르는 개떡같은 사법체계를 드라마하고 있고 그것을 지켜보는 시청자들을 분노케 만든다. 

이 드라마가 일사천리로 사건발생, 해결 그리고 범인에 대한 응징이라는 도식 속에 묶여 있다면 이 드라마는 보통의 범죄 드라마나 소설과 다를바가 없었을 것이며, 내가 프로듀서가 딕 울프인지 늑대인지조차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다가 시즌 1기부터 9기까지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시즌 10기 초반 에피소드까지 사건이 일어나는 과정과 사건 해결 그리고 해결을 위한 미국의 사법 체계를 지켜 보면서, 뒷끝이 개운치 않는 엔딩때문에 후유증에 시달리면서까지 이 드라마를 9시즌까지 본 이유가 드라마 중독이라기 보다는 바로 딕 울프가 범죄를 이야기로 형상화하면서 보여준 미 사법체계에 대한 모순, 부조리함 그리고 대응방식 때문이었고 한없이 천박할만한 소재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그의 법체계에 대한 집요한 집념때문이다. 그는 강력 범죄에 대한 솜방망이처벌은 분명 잘 못 되었다고 분명한 어조로 말한다. 심지어 그는 연쇄 살인범에 대한 사형 판결이 뭐 어때서 ? 라는 판결을 시청자들에게 유도해내기까지 한다. 연쇄 살인법이라는 혹은 미성년자 강간범이라는 캐릭터의 과장이 있을 수 있지만 잔인한 범행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사형제도에 대한 찬성까지도 이끌어 내고 있는 그의 드라마의 힘은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하고 있다.

물론 이 드라마를 보면 잔혹한 범행때문이라도 사법과 형벌에 대해 보수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의문은 남는다. 하지만 딕 울프의 행보는 무시하고 싶지 않다. 딕 울프가 강력범죄에 대해 미국의 부조리한 사법과 형벌제도에 대해 끊임없이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들을 각인시킨 것이 십년이 넘는다. 그 말은 사람들에게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과 환기시키는 작업을 꾸준히 해 왔다는 것이다. 난 오히려 급작스런 여론몰이의 사법개혁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딕 울프같은 사람들의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드라마를 통해 사람들의 성범죄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켰다고 생각한다. 그는 성폭행,미성년자 강간과 같은 민감한 성범죄에 대해 타협이란 없다는 인식을 일반화하였으며 로만 폴란스키같은 감독이 미국내에서는 미성년자 강간범이라는 딱지가 떨어지는 않는 이유이기도 하지 않을까. 

조두순사건을 보면서 우리 나라도 이런 장기간 성범죄에 대한 끊임없는 경각심과 환기를 시켜 줄 수 있는 프로듀서가 있었으면, 조두순 같은 사건은 12년이 아니고 무기징형까지 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맨날 불륜같은 막장 드라마는 잘도 만들면서 이런 드라마 한 편 없는 우리나라 드라마 현실에 실망스럽다. 로앤오더가 미국내에서 큰 인기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로앤오더의 소재나 결말의 묵직성이 시청자들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딕 울프같은 프로듀서가 성범죄라는 주제하나 가지고 10년을 넘게 로앤오더라는 드라마를 끌고 갈 수 있는 환경이 한없이 부럽다. 우리나라에도 이제 딕 울프같은 집요한 프로듀서 한명쯤은 아니 소설가 한명쯤은 나와야만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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