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용기를 주는 27가지 이야기
하인츠 야니쉬 글, 젤다 마를린 조간치 그림, 강명희 옮김 / 한겨레아이들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하인츠 야니쉬를 주목한게 된 것은 그의 2006년 국제아동도서전에서 라가치상을 수상했다는 <할아버지의 붉은 뺨>을 읽고 나서부터였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다.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과장과 허풍이 두루치기된 그런 이야기였고 할아버지의  몽상가적인 기질이 그대로 대를 이어 손자에게 전해지는 듯한 암시를 남기며 끝내는 그 그림책은 " 현실에 저항하고 판타지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헌사하는 일러스트 작가 알료샤 블라우처럼 몽상가적 기질이 다분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공감할 만한 유머스러운 그림책이었다.  당근, 헐레벌떡 이 그림책 작가에게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운 좋게도 오스트리아 출신인 그의 그림책이  은근 슬쩍 꾸준히 우리나라에 제법 소개되고 있다는 것을 아시는지. 올 상반기만 해도 두 권의 그의 그림책이 나와 있고, 그 중에서 최근에 관심을 갖고 아이에게 읽어준 책이 바로 자기계발서 제목을 흉내 낸 <딸에게 용기를 주는 27가지 이야기>.  

사실 하인츠 야니쉬가 아니라면 자기계발서로 착각하여 관심을 갖지 않았을 터였지만, 야니쉬와 조간치가 콤비로 제법 많은 그림책을 발간했고 그들 작품에 대한 기대치가 한껏 높았기에 제목에 아랑곳없이 선택한 책이었다. 이 책은 작가 자신의 단편창작품과 대부분 유럽 각국의 전래동화 모아놓은 책이다. 딸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했지만, 그가 선택한 소재 열정, 용기, 지혜, 적극성, 대담함, 행복그리고 꿈은 부모라면 누구나 자신의 아이들이 가졌으면 하는 덕목일 것이다. 전래동화는 어떤 이야기는 변형되지 않은 채 실려있고 어떤 이야기는 현재의 가치관에 맞게 변형되어 있다. 기존의 전래동화를 변형하는데에는 그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수 세기동안 구전으로 전해오는 이야기가 현재의 우리의 모습과 다르고 수세기 동안 변하지 않았던 인식의 변화가 수십년만에 급격하게 변화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야기의 변형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야기의 상상력은 그 시대를 대변하는 사회적, 문화적, 제도적 가치관을 많이 내포하고 있다. 상상력은 그 시대를 사는 가치관의 틀을 그대로 반영할 수도 혹은 깰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주제와 소재는 아이가 컸다면 충분히 결말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이야기꺼리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개인적으로 전래동화중의 한나인 신데렐라책을 수집하고 있다.  수년동안 신데렐라 책을 수집하면서, 신데렐라 원형책만을 수집할 것인지 아니면 신데렐라 이야기의 변형책을 수집할 것인지에 대해 한동안 고민한 적이 있었다. 처음에 수집의 목적은 작가마다 같은 이야기에 다른 이미지가 투영되었다는 점에 흥미를 느껴 수집한 것이었다. 흥미로웠던 것은 신데렐라 이야기가 수 백년동안 변하지 않다가 여성의 사회 참여도가 높아지는 20세기 말에 들어와서 급격한 변형을 가져 왔다는 것이다. 특히나 다른 공주이야기보다도 더 신데렐라는 여타의 성구별 없이 많은 작가들의 타깃이 되었는데, 이제 신데렐라는 왕자에 의한 신분상승이 아닌 좀 더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상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수 세기 동안 변하지 않았던 여성의 신분상승의 이야기가 우리 시대의 독립적인여자 이야기로 변했다는 사실이 흥미롭지 않은가! 작가들의 상상력이 주도했다기보다는 사회의 변혁이 상상력을 불러일으켜 이야기의 변형을 야기시킨 경우였다. 

현대의 여성상과 비교하며 신데렐라의 원형이야기에 비판을 가할 생각은 없다. 신데렐라는 행운아도 어리석은 여성도 아니다 . 수세기 전에 살았던 여인일뿐이며 신데렐라의 원형이야말로 20세기 이전의 사회와 여성의 가치관을 그대로 대변하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는 그 이야기대로 내버려두자. 하지만 우리는 이제 신데렐라나 백설공주같은 이야기의 원형속에선 살 수 없다. 이야기의 변형이 가지고 온 결과는 우리 시대의 딸들에게 좀 더 앞 서 나아갈 수 있도록 주도하고 있다. 신데렐라 이야기 외에도  전래 동화의 원형과 변형 사이에서 우리는 시대의 자화상을, 그리고 작가적 상상력을 볼 수 있다. 야니쉬가 전래동화를 통해 딸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과거의 수동적인 여성상이 아니고 개척적이고 도전적이며 주체적인 딸들의 모습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작가의 상상력은 그 시대를 그래도 반영하지만 위대한 작가는 그 시대를 뛰어넘는 예지적 상상력의 이야기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의 해설자 김경연씨는 후기에 이렇게 썼다. "이 책에 들어 있는 이야기 가운데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이야기가 있으면 독자 스스로 이야기를 바꿔 봐도 좋겠다"라고 말이다. 이야기 변형이 과거의 틀에 박힌 인식과 가치관을 바꿀 수 있다. 비록 그것이 수세기가 걸리다 할지라도. 사회변동으로 상상력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든 상상의 이야기가 사회적 변혁을 가지고 오든지 간에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이야기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그 힘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 만큼의 핵폭탄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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