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제 마이트너 - 한 번도 인간적 면모를 잃은 적이 없는 여성 물리학자
샤를로테 케르너 지음, 이필렬 옮김 / 양문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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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위인전만큼 동기부여의 성격이 짙은 책도 없다. 아이들에게 위인전을 읽도록 권장하는 독서지도의 목적은 아이가 위인전을 읽으므로해서 위인전의 공시적인 코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무엇인가를 이뤄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내 아이도 그런 사람으로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would be의 목적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은연중에 어린 시절부터 읽는 자기계발서격인 어린이용 위인전기는 한 사람의 시련극복기이자 가장 밝은 조명의 하이라이트의 긍정적인 기록서이다. 반면에  성인이 한 사람의 인생역전사인 평전이나 자서전을 찾는 이유는 그 인물의 생애와 학문에 대한 경외심(respect)와 더불어 그 인물의 또 다른 측면을 엿보고 싶어하는 voyeurism의 성격이 짙기 때문에 찾아 읽는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물론 그렇면이 없지는 않겠지, 사실 어린이용 전기처럼 明한 쪽만 기술했다면 그거 뭐하러 찾아 읽냐고, 일상적으로 몰랐던 부분, 그 사람의 暗의 실체를 속속들히 알고 싶은거지.   

리제 마이트너는 대한 관심은 데이빗 보더니스의 E=mc²에서 아인슈타인의 에너지는 질량과 같다라는 공식을 바탕으로 핵분열을 이끌어낸 오토 한과  슈트라스만 그리고 마이트너를  소개할 때, 오토한을 극악무도한 치사한 놈으로 몰아부칠 때 증폭되었다. 당시만 해도 여자가 물리학을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시대였고, 궁극적으로 오토 한의 노벨화학상 수상이 리제 마이트너의 書伸(서신) 속에 이루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노벨상 수상은 전적으로 자신의 능력이었음을 신문,방송 할 거 없이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니는 것을 못 마땅하게 여기는 데이빗 보더니스의 신랄한 감정적 서술이 인상적으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독일 청소년용으로 만들어진 샤를로테 케르너가 쓴 리제 마이트너의 전기이다. 상당히 얉아서 청소년들이 읽기에 적당하고 전문적인 물리학자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서술용어도 그렇게 어려운 것은 없다.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였고 데이빗 보더니스와 달리 오토 한을 파렴치범으로 몰아세우지는 않았다. 물론 오토 한을 파렴치범으로 몰아세우지 않았다는 이유로 객관적인 서술이라고 한 것은 아니다. 그녀 또한 마이트너가 배제돤 오토의 노벨상 수상에 대해 확실하게 언급을 하고 있다. 근데 뭐랄까, 데이빗 보더니스의 오토를 보는 격앙된 시선과는 달리 차분한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보더니스와 케르너의 서술방식을 통해 작가의 다양한 서술 방식이 굳이 객관적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더니스의 서술방식이 감정적이라 원시적일 수 있지만 독자를 전율 시키는 힘은 그 쪽이 더 우세하지 않나 싶다. 그렇다고 이 책이 재미없다는 것은 아니다. 상당히 술술 넘어간다.  

1878년 11월 17일, 오스트리아에서 변호사이자 자유사상가였던 필립 마이트너의 셋때 딸로 태어난 리제 마이트너는 어린 시절부터 수학과 물리학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부모는 그녀의 재능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썩히도록 두지는 않았다. 여성이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는 않았던 시대에 그녀의 부모는 마이트너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했고, 대학에 들어가서  마이트너는 이론 물리학자인 볼츠만 교수(이사람에 대해서는 http://navercast.naver.com/science/physics/133을 참조)의 강의를 통해 자신의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에 대한 진로선택이 확고하게 결정되었고 그녀는 평생의 업으로 물리학을 선택하였다.   

프란츠 하버는 연구자의 삶을 생성기, 존재기, 그리고 인정기 세단계로 나누었다고 한다. 마이트너의 생성기는 오토 한과 만나 공동연구했던 베를린 목공소 시절(1907~1912)이 생성기였고, 카이저빌헬름 연구소에서 독자적으로 핵물리학 분과를 구축할 때1912~1920)가 존재기(p94)였다. 그리고 나치에 의해 할 수 없이 독일을 떠나 스웨덴으로 정착하면서 오토한과의 지속적인 서신으로 오토 한이 풀 수 없었던 문제를 그녀가 아인슈타인의 E=mc² 공식을 끄집어내, 성공시킨 오토 한의 우라늄 핵분열 발견은 미국이 핵을 만들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 핵이 만들어져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비극을  남긴 그때부터 그녀의 명성은 거의 확고해진, 인정기라고 할 수 있다.    

리제 마이트너의 전기를 읽으면서 새삼 노벨상의 위력이 얼마나 폭발적인지 극단적으로 알 수 있다. 우리는 여성과학자라고 하면 대개 마리 퀴리(혹은 그녀의 딸 이레나 퀴리)을 떠 올리는데, 그녀가  노벨상을 받지 않았다면 과연 우리는 애어른 할 것 없이 그녀를 위대한 여성과학자중 한사람으로 추앙했을까! 리제 마이트너는 핵의 시대를 연 이론 물리학자였고 오토 한과 노벨상을 받아야했음에도 불구하고 받지 못하면서 그녀의 명성은 사실 그렇지 드높지 않다. 물리학과에서나 명성이 자자한 저명한 여성과학자정도. 그녀는 오토한에게 이렇게 썼다.     

"1917년 카이저빌헬름 화학연구소 행정이사회는 나에게 공식적으로 물리학 분과장을 맡겼고, 나는 21년간 그 분과를 이끌었다. 너도 한번 내 입장을 생각해보기 바란다.내가 나의 어떤 좋은 친구도 격게 되기를 원하지 앟는 15년의 시간을 보낸 후에, 이제는 학문적인 과거까지도 빼앗겨야 하는 것일까? 과연 이것이 공정한 것일까? 애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 만약 네가 나의 오랜 연구원으로 표현된다면 넌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현재 수 많은 과학역사가들에게 의해 그리고 여성운동가들에게 그녀는 우라늄핵분열연구(혹은 원자폭탄)의 창시자라는 타이틀을 역사에 남기고 있다. 시대를 앞선 그녀는결혼도 하지 않은 채 여성으로서, 엄마로서의 삶도 포기한 채, 오로지 연구에만 매달렸고 90세의 나이로 영면할때까지 수십편의 논문을 남겼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결과가 좋든 나쁘든간에 이제 그녀의 명성이 페이머스 쪽이든 아니면 notorious쪽으로 남는 것은 순전히 후세인 우리들의 몫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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