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겨울이라 집에서 굿치는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그 어느 때보다도 책 읽어주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고 보면, 책을 읽는 기회는 가을보다 오히려 겨울이 더 많지 않나 싶다. <겨울을 준비하는 가게>검색하고 절판이어서 깜짝 놀랐는데,  <친구에게 주는 선물>이란 제목으로 다시 바꿔 달고 나왔다. 큰 갈색곰과 겨울잠쥐 시리즈인 이 책은 겨울에 더할나위 없이 어울리는 책. 겨울에 꼭 읽어주는 그림책이고 아이들도 따스하고 푸근한 곰과 겨울잠쥐의 우정이야기에 읽고 있으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아이들 주변의 공기가 더 촉촉하고 따스하게 감싸주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행복한 그림책이다.

 

 

눈 오기 전에 읽어주며, 할머니, 눈 내려 주세요라고 아이들에게 주문하는 책인데, 어제 월요일에 눈 온다길래, 아이들에게 이 책 읽어주고 할머니, 눈 내려 주세요라고 해보라고 했더니, 10살 난 아들 왈 "할망, 눈 내려달랑께~ 이러더라. 그 불량한 말투와 불손한 태도가 지금껏 보아 온 순진한 아들의 모습에서  반항하는 청소년기의 미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약간 움찔했다. 아들애한테 웃으며 임마, 누가 그렇게 말하래,하고 약간의 못 마땅한 따박은 주었지만, 세월이 내편이 아니구나 싶었다는.

 

 이른 감이 없지는 않지만 아이들에게 이 책 읽어주는데,아들애가 엄마, 아이들이 그러는데 산타할아버지가 없대, 근데 작년에 산타할아버지가 준 닌텐도는 뭐야?  머리를 갸웃거리며 알쏭달쏭해하는 아들애를 보면서, 웃으며 속으론 순진하면서도 모자란 울 아들의 마지막유년시절의 끝자락을 이제 흘려보내야하는구나 싶었다. 아마 내년엔 산타가 있다고 내가 강력하게 우기고 우겨도 믿지 않을 것이다. 덩달아 7살난 딸아이의 순진함이 오빠의 성숙에 따라 일찍 흘려 보내야하는 것에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기도 하고. 이 그림책 속의 그림은 너무 멋지고 색채는 따스한 느낌이 들어 계속 들여다 보고 싶어진다.

 

 

이쁜 리본에 묶여 포장지에 쌓여 있지도 않고, 가지고 놀 수도 없고, 반짝거리는 트리 아래 놓여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자연의 일부를 포착한, 할아버지가 주는 이런 선물이라면 무조건 오키하고 싶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선물하고 싶다. 시몽은 크리스마스를 할아버지와 보내기 위하여 멀고 먼 길을 자동차를 타고 할아버지 댁에 늦은 시각에 온다. 피곤하고 졸리운 상태에서 시몽은 할아버지가 말한 기가 막힌 일을 보기 위하여 비몽사몽인 할아버지를 따라 크리스마스 새벽에 집을 나선다. 할아버지가 시몽에게 주고 싶은 선물은 물질적인 선물이 아닌, 새벽아침에 먹이를 찾아 강에 나온 고라니! 얼마나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장면일까?  그 멋진 풍경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 할아버지가 타주신 뜨거운 코코아를 마시는 기분이란!

 내가 나이를 먹었다고 절실하게 느꼈을 때가 아마 이 그림책의 한 장면을 따라 하고 싶으면서도 여러가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귀찮은 일의 처리를 생각하면 하고 싶은 욕망을 꾸욱 누르고 말때이다. 이 책은 눈 오는 날의 아이들의 신나는 기분(?)을 한껏 느낄 수 있다. 눈 쌓인 길 위에서 나도 천사 만들고 싶다만.... 머리 젖는 것도 싫고 차가운 느낌도 싫고 놀고 난 후의 빨래 더미 생각하면, 눈 위에서 놀고 싶은 맘 뒤로 빠지지만, 눈 오는 거 바라보는 것만도 행복하다.

 

아이들하고 북극으로 가는 급행열차를 타고 산타 마을에 갈 수 있다면 얼마나 낭만적일꼬. 처음 이 책을 받아봤을 때, 크리스마스 감흥은 오지 않았다. 뭘 보고 좋다는 거야. 눈만 내리고 있구만, 라는 것이 나의 첫번째 인상이었다. 이 그림책은 그 다음 해 영화가 개봉되면서 내 주의를 다시 한번 끌었는데, 그 때 다시 펴 봤을 때의 느낌은 확연히 달랐다. 폭설처럼 내리는 눈의 풍성함이 마음 속에 고요한 따스함으로 은은하게 스며들었다고 할까나. 보면 볼수록 좋아지는 그림책이고 알스버그의 재료를 다루는 솜씨와 선택의 탁월함이 돋보이는 책이다. 보통 아이들 그림책은 유화를 잘 쓰지 않는다. 두껍고 무거움이 느껴지고 표현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인데, 이 그림책을 수채화로 그렸다면 아마 저 기차, 눈 속에서 가볍게 날아가버렸을 것이다.  

에릭 칼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은 사람인데, 프뢰벨이여 제발 이 할아버지 좀 놔줘라! 놔줘! (씩씩대며) 전집에 묶여 있어 우리 나라에서는 제대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무명씨.에릭 칼의 단순함과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책. 우리 집에서 겨울 크리스마스 시즈만 되면 또로롱 울려 퍼지는, 짧지만 크리스마스 분위기 제대로 잡아주는 그림책이다. 음...너무 멋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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