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코맥 매카시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난 글이 머리 속에 영상적으로 찍히는 것을 좋아하는 않는데, 이 작품은 그런면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코엔영화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을 토미 리 존스와 함께 영화화했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2008년도 아카데미 수상작 원작이라고 인식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었을 지 모르겠지만,  코맥 맥카시의 작품을 처음 접한 나에게 이러한 사실은 오히려  글을 읽는 내내  코엔 형제 영화 스타일로 오버랩되었고 심지어 벨보안과의 등장부분은 토미 리 존스의 음성으로 처리될 정도였다. 이 정도니  맥카시의 글을 읽는다기보다는 작품 속에서 코엔형제와 토미 리 존스를 계속해서 만났다고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한때 영어공부한답시고 딕테이션에 열을 올린 적이 있어서 맥카시의 이런 식의 대화문장은 낯설지 않았다.  그 때의 꼭 그 느낌이었다. 드라마속의 인물들이 대화한 것을  글로 옮겨 적고 나서 다시 들여다 보았을 때의 그 뚝 떨어진 듯한 느낌. 드라마에서 사용했던 그 언어임에도 불구하고...뭐랄까! 이제  글로 써진 대화는 배경도 없고 전후문장의 인과관계도 없어 영상으로 만들어 지지 않으면, 더 이상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여기에서는 묘사나 설명은 삭제(cut)시키고 대담하게 장면을 장면을 이어주는 것이 대화이며, 그 로그는 그가 살고 있는 곳 답게 황량하고 건조하며 단순하다.  맥카시는 자신의 창출해낸 이야기가 어떤 문체와 어울리는지 그리고 어떤 어떤 식으로 진행되야하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미국 사회의 병폐인 마약과 검은돈이 인간의 욕망과 얽히면서 어떻게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지를 텍사스를 무대로 우리를 어둠속으로 이끌고 있다. 코엔 형제 영화 이전에 이 작품을 알았다면, 단순하고 건조한 게 딱 내가 선호하는 스타일이어서 코맥 맥카시의 글가치를 더 잘 알 수 있었을 텐데하는 생각이 머리속에 맴돈다.  자, 그럼 맥카시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한 번 이야기 해 볼까.

No reason 매 페이지마다 총성이 울리고 피비리내가 진동하는 것이, 쫓고 쫓기는 현대판 서부극이라서! 그렇다는 것에 별 의의는 없다. 재수 없게도 36살의 베트남 참전병이었던 모스는 사냥하다가 240만달러가 든 돈가방을 발견하고, 우리 식으로 이야기하면 돈가방을 들고 거머진 행운을 놓치고 싶지 않아 튄다. 하지만 그의 가방에는 추적장치가 달려 있고 그 가방을 찾기 위하여 연쇄 살인마 시거(Chigurh)가 그의 뒤를 쫓는다. 이때는 적어도 왜 시거가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는지에 대해 이유라도 있었다. 돈이 목적이었으니깐.  모스를 죽이고 그 돈을 다시 마약업자에게 되돌려 주었을 때, 그는  " 나는 그냥 내 신의를 지키고 싶어서 찾아왔을 뿐이오. 아주 어려운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고 싶다고나 할까. 완전히 믿음직하고 정직한 사내로, 뭐 그런거요(274p)." 라는 말을 내 뱉을 조차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도 믿음직하고 정직한 사내 운운하는 게 우습고 꼴리고 화도 났지만 그래, 살인마에게도 그런 이유와 신념이 있어 사람들을 죽이고 돌아다녔단말이지하고 인정했었다. 하지만 모스의 아내 칼라 진을 살해했을 때는 정말이지 시거의 연쇄살인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사람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돌아다니는 이유가 뭐야!  시거의 존재 이유는 돈 가방을 되 찾기 위한 쫓는 자 아니었던가!  칼라 진까지 죽일 필요가 뭐가 있었지. 겨우 20살인데.  No emotion  그 이유를 찾기 위하여 아무리 책을 들춰봐도 찾아봐도 알 수가 없었다. 작가의 의도도 그리고 시거의 내면세계도.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벨만 자신의 내면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코맥 맥카시는 작중 인물들의 감정을 다 배제했을까. 모스가 돈가방을 발견했을 때의 기분도, 도망다닐 때의 쫓기자의 숨막히는 공포도, 칼라진의  불안한 내면도, 살인마 시거의 쫓는자의 느근한 감정따위는 단 한 줄도 없다. 독자의 몫. 쫓는자와 쫓기는 자 그리고 남은 자의 감정을 우리가 다른 매체에서 경험했다고 생각해서 친절히 생략한 것이니 데자부적 감정이입을 하면 되려나. 흠.... 솔직히 작가의 의도가 궁금하기는 하다. 일부러 감정을 배제한 것인지 아니면  작가가 제시하는 대화나 행위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No girl like Lili Rush 이런 작품에서 여성이 큰 역활을 차지 하리라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칼라진도 그렇고 벨의 아내 로레타도 그렇고 모스가 도중에 만난 16살짜리 여자애도 그렇고. 여기에서 여자는 편안함을 가져다 주는, 안정제에 지나지 않는다. 맥카시의 소설이 마초적이거나 남성적이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맥카시의 남자는 나약하고 비이성적이며 어리석을 뿐이다. 만약 벨의 역활이 <파고>나 <콜드 케이스>처럼 여성이었다면.  약간 터프 해졌겠지. 물론 그랬더라면 토미 리 존스가 벨역활을 못 맡았겠지만.....그래도 여자가 보안관으로 나왔다면 신선하지 않았을려나. 요즘 책 읽으면서 여러가지 가능성이 떠올리기는 이 책이 처음인 것 같다. 왜냐하면 벨이 난 시거를 잡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뻔한 결말로 치닫는 것이지만(난 그래도 뻔한 결말을 원하고 있었는데) 시거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특히나 모스가 죽은 여관에 돈가방을 찾기 위하여 여관에 시거가 들어갔을 때 벨이 그 여관에 모습을 드러내던 그 씬에서 시거를 잡지 못했을때 이제 서부극도 끝났구나 싶었다.  No hero  그 장면에서 벨이 시거를 잡는 쾌거를 이뤄 낼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시거는 자신이 살인청부나 일삼으면서 정직이나 믿음직하니 뭐 그런 말 갖지 않는 말을 떠들어내지만 시거는 연쇄 살인범에 지나지 않는다.  시거를 잡았다면 벨이 영웅으로 등급하는 것인데 말이다. 맥카시는 그런 등식을 버렸다. 심지어 영웅이 빛좋은 개살구라고까지 말한다. 어떻게? 벨은 자신의  삶이 세계대전에서 무공훈장을 받았을 때부터 훔친 삶이라는 것을 털어 놓는다. 모든 것이 다 조작되었다고. 우리 시대에 영웅이 없음을 이 작품보다 더 강렬하게 더 씁쓸하게 상기시켜 준 작품은 없었던 것 같다.  

어차피 열어 놓은 작품으니깐 나의 상상력을 덧붙이자면, 안톤 시거는 죽었을 것이다. 칼라 진을 죽이고 돌아오는 길에 자신의 트럭을 뷰익이 들이박으며서 그는 뼈가 다 보일 정도로 상처가 났다고 한 걸로 미루어 짐작컨데 도망가다 죽지 않았을까 싶다. 코맥 맥카시가 죽이지 않았다면 내가 죽이고 싶다.  자신이 믿음직하고 시부렁거리는 그 입이 다시 떠벌리길 바라지 않으며 칼라진과 사라진 영웅 벨을 위하여.  

떠도는 이야기로는 이 작품이 600페이지정도 였다고 하니 가지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맥카시의 문장력이 탄탄했으니 반을 쳐내도 작품이 죽지 않는 것을 보면, 글이란 자신만의 문장을 가지고 있어야하는 구나 싶다. 작가는 미국은 마약으로 인해 타락했고 윤리은 저 멀리 사라지면서 어둠 속에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 어둠을 밝혀주는 빛은 당신같은 작가 아닌가. 비록 흥건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작품이었지만 말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남자작가라면 이런 작품 쓰고 싶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량한 사막, 쫓고 쫓기는 자, 냉혈한, 마약, 돈다발, 총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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