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에 잠깐 외출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거리를 둘러보았다. 거리엔 온통 빼곡하니 네온사인으로 뒤덮여 있었고 휘황찬란한 빛을 번쩍이며 밤거리의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난 진짜 어둠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늦은 밤조차 가로등 불빛이 어둠을 가르고 그 불빛은 우리 집 안방이나 거실사이사이를 넘다들곤 하니 말이다. 희미하던 휘황찬란하던지간에, 24시간 365일 온통 빛과 함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도시에서 살아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언제부터인지 진짜 컴컴한, 어둠속에 묻혀 사물조차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컴컴한 어둠과는 마주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순간적으로 깨달었다.
어둠속에서 수 많은 각양각색 발하는 빛을 보면서, 만약에 이 모든 불빛이 꺼진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다. 아무 것도 안 보인다면 우리 모두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니면 두려울까. 차라리 똑같은 조건하에 있다면 즉, 세상이 암흑을 변해 우리 모두가 암흑 속에서 생활한다면 두려움 따위는 생기지 않을 지도 모른다. 나와 타인 모두가 같은 처지에 속해 있는데 두려울 것이 뭐 있겠는가. 세상이 불공평한 것은 모든 존재와 사물이 다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 부자와 가난한자. 배운자와 못 배운자 그리고 정상인과 비정상인등등. 그 간격이, 그 차이가 두려움과 차별을 낳고 극복해 나가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지도 모른다.
아이가 나서 성장하면 부모 곁을 떠나 한 사회의 정상적인 구성원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머릿속에 박혀있다보니,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이가 아무 탈 없이 자라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되어 지기도 하고. 어느 날 갑자기 아무 탈 없이 잘 자라던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가족내의 불화와 갈등이 생기게 되고 그 극복은 분명 쉽지 않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는 가족해체까지 불러올 수 있고 대부분은 세상과 접촉을 끊고 자기의 울타리속으로 들어가 버릴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아무탈 없이 잘 자라다가 사고로 장애를 가진 소녀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하여 용기내어 세상속으로 한 발자국 내딛으려고 하는 10대 소녀 메를렌의 성장소설이다. 메를렌은 9살에 사고로 시력을 잃었고, 그 사건은 그녀의 모든 어린 삶을 송두리채 바꾸어 놓았다. 눈이 보이는 않는 그녀에게 세상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고, 그녀의 부모 또한 그녀를 돌보기 위해 24시간 그녀에게 매달리게 되면서, 메를렌의 가족은 세상과 문을 닫은 채 소극적으로 살게 된다. 주인공과 그 가족이 겪는 충격, 어려움, 갈등을 미화하지 하지 않고 솔직하게 그려냈다. 메를렌을 보호하고 세상 밖으로 내 보내는 것을 주저하는 부모와 메를렌을 세상 밖으로 그리고 그녀의 보호틀을 깰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운디네와 그녀의 오빠 조지가 메를렌의 이웃집으로 이사를 온다. 장애를 가진 메를렌을 아무런 편견없이 자신의 친구로 받아주는 운디네와 조지와 친하게 지내면서, 메를렌은 서서히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신이 두려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이 왜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스스로 딛고 일어나야 하는지를 서서히 깨닫게 되면서 자신을 감싸고만 들려는 부모님과 의견충돌, 갈등과 화해 그리고 조지와의 사랑이야기이다.
작가는 장애를 독립적인 시선으로 보며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믿음이 굳게 깔고 있다. 부모의 곁에서 언제나 보호받고 세상사람들과 단절한 채, 당당히 밖을 나오기를 주저하는 메를렌과 이에 부응하듯이 딸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 두려운 메를렌의 부모를 통해, 우리 세상이 얼마나 많은 장벽이 놓여져 있는 알 수 있다. 나 같아도 두려울 것이다.(까짓 거, 어둠이 문제야. 세상이 무서운 거지.) 그 심정 잘 안다. 하지만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법. 언제가는 이 미지의 세계로 나와야하고 소통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둠에 익숙해졌듯이, 세상에 나와야 만만치 않는 세상살이도 익숙해지고 이 땅위에 넉넉한 맘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법이다.
이런 소설들은 장애를 보는 우리들의 인식을 많이 바꾸어 놓았다. 장애를 보는 시선이 동정이나 연민이 아닌, 장애는 불편할 뿐이지 타인에게 해를 주는 것이 아니며 세상밖으로 나오는 것은 두려운 것이 아니다. 당신 삶의 권리이며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야하는 사람들뿐이다라고 말이다. 장애에 대한 우리의 인식의 전환은 바로 이런 작은 이야기들로부터 시작된 것일 것이다. 판에 박힌 결말일 수도 있지만, 우리의 인식전환을 돕는 이런 책들의 출간이야말로 고무적인 일일 것이다.
|
|